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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신앙(막 2:23-28)

십계명 중 제4계명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규정한다. 이 말씀을 지키려면 당장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서부터는 일이 아닌가? 실제적으로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해야만 이 안식일 법을 잘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디까지가 안식일에 허용되는 일이고, 어디서부터는 안식일에 허용되지 않는가를 따져서 정해놓았다. 이렇게 세밀하게 율법을 지키는 방법을 정하는 것은 거룩한 의도에서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신실하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들은 신앙을 율법주의로 전락시키는 위험이 있었다. 율법주의란 하나님의 의도는 망각한 채, 율법의 문자적 규정만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러한 율법주의의 위험에 빠져 있는데, 신앙을 그저 기본적인 몇 가지 신앙적인 일들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며 회개하는 마음이다.

율법주의적으로 신앙생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더 나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이 밀이삭을 잘라먹자, 이를 비난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과 긍휼의 마음인데, 그러한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우리는 이런 바리새인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시장할 때 진설병을 먹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진설병은 제사장들만 먹도록되어 있는 것이 율법이다. 그런데 제사장은 이것을 어떻게 줄 수 있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법이었다. 돈을 우상으로 삼고 돈을 벌기 위해서 노예들을 착취하지 말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쉬게 해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법이 오히려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법으로 바뀐 것이다.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통이 만들어진다. 전통은 가장 좋은 의견들이 모아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종종 그 의도는 사라진 채 사람들을 죽이는 칼로 변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개혁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스스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시고, 우리를 치유하셨다. 그 안에서만 참된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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