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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제사(창 4:1-8)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아마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성이 부족해서일까?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회개하는 마음이 없어서였을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가인에게서 무슨 문제가 있었을 것이 분명할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창세기의 기록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가인의 제사가 잘못되었다는 분명한 점을 찾기는 힘들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거부하셨다는 것은 가인에게 충격적이고 황당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가인은 분노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일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사실 가인이 만났던 그런 황당한 사건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들의 예배와 삶을 돌아보고 계시기나 하는 걸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가인처럼 반응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욥처럼 반응해야 한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았다. 그의 삶 자체는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이었다. 하지만 마치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듯, 하나님께서는 욥에게서 재물을 빼앗아버리셨고 그의 자녀들을 모두 죽이셨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보다도 더 심한 반응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때 욥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때 판명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믿음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는데, 어린아이는 부모의 회초리를 보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부모에게 다가간다. 부모님밖에는 의지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벨과 같을 수도 있고, 가인과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형편에 있든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아는가? 사실 정성과 사랑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 바로 우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해버렸고 죄악의 길로 나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안색이 변하며 분노하고 우리를 심판해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마치 밥을 먹여주었을 때 뱉어버리는 아이를 보면서도 신경질 내고 아이를 밀쳐내지 않고, 오히려 더 맛있는 밥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까 진정으로 사랑하며 돌보아주었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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