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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바늘 귀(마 19:16-30)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왔다. 그는 부자일뿐만 아니라 경건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것 같은 이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가 예수님에게 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리고 아무리 종교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았다 해도, 여전히 불확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다. 온전하고자 하려면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종종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불교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무소유를 주장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결국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무소유의 가르침 즉 자기를 비워야 한다는 가르침은 감동적이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큰 함정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완변하게 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실제로 비움을 실천한다는 종교인들이 사실은 탐욕으로 찌들어 있는 것을 뉴스로 너무나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물질을 완벽하게 없앨 수만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가 정말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를 물으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과연 물질을 의지하며, 숭배하며 사는가? 아니면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는가? 확인하는 방법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소유를 다 버릴 수 있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마치 항아리 속에 든 바나나를 손에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잡히게 되는 원숭이처럼, 우리는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물질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 우리에게 소망은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섬기며 사는 결단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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