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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사람과 속 사람(고후 4:16-18)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중에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런 힘든 경험을 하게 될 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일을 하는데,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다가 고난을 겪는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내가 죄를 지어서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요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런 심각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당혹스럽다. 욥의 경우처럼 말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경우는 선한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상황에서 사도 바울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비난했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이 고난을 겪는 것을 보니, 순 가짜 사도라고 비난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대적자들은 오히려 잘 되는 모습이 바울을 괴롭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고후 4:16-18에 기록되어 있다. 첫째, 지금 당하는 괴로움은 시간상으로 볼 때, 잠시 고난을 겪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교하여 우리가 누릴 영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 당하는 괴로움은 강도로 볼 때, 약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교하여 우리가 누릴 영광은 장엄한 것일 것이다. 지금 괴로운 것은 그저 겉 사람일 부분이고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벧전 4:12-13).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어쩌다 보니까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 기도를 응답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사도 바울을 사랑하셨고 그 사도 바울을 위해서였다(고후 12:9).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를 아끼지 아니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시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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