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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행복(눅 19:1-10)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정현종) 사람이 떠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음으로 인하여 내게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C.S.루이스). 만남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낸다. 에디슨은 좋은 어머니를 만났기에 훌륭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고, 헬렌 켈러는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났기에 위대한 사람으로 설 수 있었다.

누가복음 10장은 위대한 만남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부자였다. 하지만 그는 부자라는 사실로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예수님을 보러 왔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수많은 관중들로 인하여 예수님을 볼 수 없었을 때,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고 나무 위에 올라간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왜 그는 그렇게도 갈망했는가? 돈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는 돈을 버는 과정에서 민족으로부터 소외를 당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들 그의 마음이 채워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무 위로 올라간다 한들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엔 수많은 군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그 앞에 와서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내려와라. 어떻게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알았을까? 아마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만 안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과거도 아셨음에 틀림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삭개오의 행적을 알고는 모두 비난했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손을 내미신 것이다. 교제의 악수를 청하신 것이다. 여기서 삭개오는 변화되었다.

예수님은 완벽한 인생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다. 아니 이 세상에 완벽한 인생이 없기 때문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진 자들을 초대하신다. 그 초대를 받고 오는 자들에게 쉼을 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주님은 마치 우리의 부모님과 같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돌보는 부모님처럼,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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