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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떠난 후에 (창 13:14-18)

2021년 3월 7일 주일2부예배 설교

“눈 뜬 장님”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요.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켜서 “눈 뜬 장님”이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씁니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바로 제 얘기인데요. 저는 물건 같은 걸 찾으려고 하면, 왜 이렇게 못 찾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냉장고 안에 음식을 찾으려고 하면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겁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있어서, 그 남은 게 어디 있냐고 찾으면서 냉장고 문을 열면,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그러면 제가 아내에게 묻죠. 그거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냉장고 안에 있다고 얘기를 해 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냉장고 안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살펴보는데도,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제 아내가 오면 딱 찾아서 주는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제 눈에는 안 보였던 그것이 왜 있는지? 요즘에는 제 아내가 이골이 났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합니다. 끝까지 찾아보라고.

여러분들은 그런 경험이 없으십니까? 아마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손에 전화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전화기를 찾는 그런 경험. 안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안경이 어딨는가 찾았던 경험들은 사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이 생활 가운데서 자주 경험하는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해서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해서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을 바라보라고 말씀해 주시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동서남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라고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이해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지금 아브라함이 만난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면, 바로 자신의 유일한 친척이었던 조카 롯과 헤어진 직후의 상황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 가나안 땅으로 왔는데, 그 타향살이를 하면서 그래도 의지가 되었던 사람은 바로 조카 롯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은 타향살이를 해보았을 때, 그 서러움 그리고 그 아픔을 아십니까? 아마 이곳에만 사셔 가지고, 잘 모르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16년을 살면서,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그 아픔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 경험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같은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한국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전혀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도 그렇게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고, 그리고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던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그 타향살이 가운데 유일하게 도움이 되었던 사람 의지가 되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조카 롯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차 저차 해서 그 롯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데리고 있던 목자들 사이에 서로 다툼이 생겼는데요. 우리 양을 먼저 먹일 것인가? 너희들의 양을 먼저 먹일 것인가? 그렇게 아브라함의 종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로세 목자들 사이에 서로 다툼이 일어나서, 그래서 함께 살 수 없는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아쉽지만 아브라함과 롯은 헤어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주어서,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할 것이고 네가 우한다고 한다면 내가 좌할 것이라고 선택권을 주었을 때, 롯은 눈을 들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땅이었던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비교적 좋아 보이지 않는 땅에 남아서, 그리고 이제는 롯이 떠나버린 그 상황 가운데서 앞으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그러한 답답한 마음, 어쩌면 한숨이 나올 수 있고 불평이 나올 수 있는 그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해주신 겁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덧붙인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15절의 말씀에 이 땅을 내가 너와 내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셨고, 뿐만 아니라 내 자손들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해 주겠다고, 지금은 아브라함의 가족만 있는데, 그 가족이 넘치고 넘쳐서, 아니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해주신 약속이 무엇이냐면, 네 자손이 땅에 티끌처럼 많아질 거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지금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만 바라본다고 하면 절망적일 수가 있을 겁니다. 하나밖에 없었던 조카와도 헤어졌을 것이고, 아브라함과 살아 두 사람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아브라함을 향해서 그렇게 잊지 말고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근데 이 말씀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아브라함이 지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그리고 저 그냥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해 주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눈을 들어서 주위를 살펴보고, 그리고 그것을 보고만 있지 말고, 걸어 다니면서 이 땅이 어떠한 땅인가를 한번 직접 밟아보고, 느껴보고 알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 분들? 사실 오늘이 어떤 날이냐면,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새롭게 마련하고 입당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르죠. 상가 건물에 있다가 예배당을 세우게 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건축을 진행하는 과정 가운데서, 많은 분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모든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이 이 건축 현장에 와서 바라보았습니다. 출근하면서 일부러 이곳을 지나가면서 바라보고, 퇴근하면서 일부러 이곳을 들려서 이곳을 바라보고 가고, 또 운동하시는 분은 자전거를 끌고 운동하시면서 이곳까지 와서 공사가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는가를 바라보고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들 와서 이곳을 바라보신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와서 쳐다보면 건축이 좀 더 빨리 되죠? 그렇지 않죠.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정말 지금 어떻게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그걸 확인하면서 그리고 기쁨을 느껴보는 것인데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 주신 말씀도 바로 그런 말씀인 것이죠. 너는 지금 그 방 안에 가만히 있지 말고, 눈을 들어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고, 그리고 종과 횡으로 다니면서 그 땅을 한번 바라봐라. 그것은 그냥 걸어 다녀라. 그냥 그곳을 다녀오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두루 다녀보라고 했다고 해서, 네 하나님 그냥 두루 다녀보겠습니다 하고 다녀보고 온다고 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닐 겁니다.

마치 정말 마지못해 불침번을 서면서 경계를 서는 그런 군인들처럼, 정말 싫증이 나고 싫은데 순번이 돼서 하는 수 없이 나가서 불침번을 서야 하고 경계를 서야 하는, 그래서 그것을 때우고 돌아왔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걸어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신 그 약속을 한번 느껴보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이 땅을 가득 채울 그런 민족을 너에게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는데, 그것을 가서 밟아보면서, “그렇구나. 여기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구나.” 그것을 신뢰하라고 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시편 34편 8절 말씀을 보면 아주 특이한 표현이 하나 나와 있는데요. 뭐라고 표현하냐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어떻게 하라고요? 맛을 보라고 그래요. 맛을 보라. 그걸 어떻게 맛을 봅니까?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냥 눈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냥 힘 빠진 채 주저앉아 있지 말고, 걸어 다니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를 직접 느껴가면서, 그것을 체험해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였습니다. 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내가 내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말 길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됐어요.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것을 그대로 해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죠.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일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냥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겁니다.

지난주에 세미나를 하시면서 함영주 교수님이 했던 강의 내용 가운데 무슨 얘기를 했냐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뭐라도 좀 하자고. 그런데 그 말이 아 정말 큰 울림이 됐어요. 그래 뭐라도 해야지. 코로나니까 포기하고, 상황이 이러니까 가만히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변화를 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는 겁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고, 그것에 따라서 나아가고 동서남북도 바라보고 걸어가 보기도 하고, 일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을 텐데, 그냥 방구석에만 가만히 앉아서 천장만 바라보고 벽만 바라보고 신세 한탄만 하고, 그렇게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지금 떠나간 롯을 생각만 하면, “이제 정말 나 혼자만 남았구나. 외톨이구나.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에 좌절하지 말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해주신 그 약속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 가운데서 담대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 가운데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대로 행했고, 또 어떻게 했습니까? 18절 말씀을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물의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재단을 쌓았더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 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나를 그냥 버리신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놀라운 약속을 해 주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담대히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가 있었다고 오늘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 아브라함과 비슷한 상황들을 만나면서 삽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 발을 붙이며 살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기 전까지는 우리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런 걱정 아무런 문제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곤란한 일을 만나면서 살고 있게 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될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본다고 하면 100% 실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만을 바라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 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우리는 정말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되는가?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서 그 너머를 봐야 되고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봐야 되고, 눈을 떠서 하나님의 놀라운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들은 어린아이를 기르면서 그 어린아이의 현재 모습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농사꾼은 농사를 지을 그 씨를 보면서 그 씨의 현재의 모습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교사 선생님들은 그 어린아이들의 현재의 모습에만 주목하지 않습니다. 사업가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라봅니까?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지만, 나중에 변화가 될 것을 꿈꾸면서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것이죠. 갓난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합니까? 손발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까? 대소변을 가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어린아이를 보면서, 그런데 그 아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울음소리가 크면, “야, 이 녀석이 나중에 성악가가 되려고 하나?” 꿈을 가지는 거죠. 울음소리가 크면, “이 아이가 나중에 대단한 연설가가 되려고 하나? 정치인이 되려고 하나?”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하면, “이 아이가 무슨 집중력이 있구나. 뭔가 힘이 장사가 될 것인가?” 미래를 꿈꾸면서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만을 바라보고 현재의 모습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맞닥뜨리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누굽니까? 바로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고 그리고 그 사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런 엄청난 교회의 핍박자인 사울이 있었는데요. 그 사울이 어느 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 사람이 손에 이끌려서 예루살렘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사울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저 사람이 누군가? 우리 형제를 죽였던 사람이 아닌가?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 아닌가? 저 사람이 지금 들어와서 왜 이 교회 안에 들어왔는가? 저 사람에 대한 불신의 눈으로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무도 환영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한다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뛰어난 조직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바울 사도의 탄생을 기대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은 그 사울의 손을 이끌고 성도들에게 소개하는 겁니다. 이 사람이 과거에는 교회를 핍박했지만,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왔다고 하는 그 사실을 설득시키고, 환영하게 되었을 때 결국 이 사울이 놀라운 역사를 내는 엄청난 능력의 바울 사도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룬 줄로 믿습니다.

과거만을 바라보고 실패한 것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환영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위대한 바울 사도의 탄생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우리나라에 선교를 왔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1907년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우리나라에 첫 발을 들이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그 모습은 복음을 전하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유교 사상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다 유교 사상에 쩔어 있었고, 서양인들을 배척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 그리고 정말 서양 귀신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그 상황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상황 가운데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드렸을 거라고 생각되는 기도의 내용을 쓴 것이 언더우드의 기도라고 하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은 이 언더우드의 기도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쓴 기도문이 아니고, 언더우드의 마음이 아마도 이랬을 거라고 생각한 언더우드의 전기 작자가 쓴 글입니다. 그런데 아마 언더우드의 마음이 정말 이랬을 것 같아요. 그 언더우드의 기도에 보면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릇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놓으신 듯한 지금, 이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한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들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오. 보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의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고는 것을 믿습니다.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만약 그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이 땅에 와서 정말 척박한 그 사실만 바라보았다고 한다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그건 정말 아프고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우리가 만나는 슬픔과 고통은 정말 우리들의 뼈를 깎는 것 같은 아픔일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 바라보고 한탄하며 좌절하고 쓰러져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서 들려주시는 말씀, 너는 그렇게 잊지 말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내가 너를 향해서 베풀어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라고 하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그 길은 결코 실패할 길이 아니라, 어떤 길을 가든지 하나님께서 결국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닌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방 안에 숨어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또 하나님의 은혜에 그 손길을 느끼며 걸어가면서 체험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바라보신 관점이 바로 그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신다고 한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정말 아무런 소망이 없는 모습인 것이죠. 늘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우리들의 모습,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우리들의 모습 그래서 우리들에게 아무런 소망도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습만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변화시킬 모습으로 그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셔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고 하는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또 우리의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주님 앞에 엎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던 그 놀라운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달라고 날마다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다시 한번 힘과 용기를 얻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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