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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은 없다 (행 4:5-12)

2021년 4월 25일 주일예배 설교

등산을 좋아하십니까? 등산을 하시는 분들은 여러 산들을 등산하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설악산 정상 대청봉이라고 하는 그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등산로가 있습니다. 동쪽 동해 바다 속초 쪽에서 올라가려고 한다면, 울산 바위가 있는 그 등산로로 해서 올라가면 되겠고요. 서쪽에서 올라간다고 하면, 오색 약수터나 백담사길로 해서, 그렇게 해서 등산하게 되면, 어느 길로 가든지 설악산 정상 대청봉으로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한번 검색을 해보니까, 대청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 등산로가 유명한 등산로가 몇 개나 되는가 하고 검색을 해보니까, 15개의 등산 코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 15개의 등산 코스 가운데서 어떤 등산 코스가 훨씬 더 쉽고 혹은 더 재미있고 더 멋있는 등산로인가에 대해서는 산을 타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느 등산로를 선택하든, 결국에는 똑같은 정상 대청봉 정상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등산로를 선택해도 산 정상에는 다 똑같이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도달하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이 있을 수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이슬람교를 믿든 힌두교를 믿든 어느 종교를 믿더라도, 결국에는 나중에는 똑같은 하나님, 누구나 다 진실된 믿음만 가지게 된다고 하면, 똑같은 하나님에게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종교가 옳다. 우리 종교가 맞다. 너네 종교가 틀렸다고 이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생각을 가리켜서 종교 다원주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라고 하는 것의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종교가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가 옳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결국에는 다 똑같은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이니까, 어느 종교가 옳다고 그렇게 배타적인 주장을 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이런 산길로 올라가도 되고 저런 산길도 올라가도 되는 것처럼, 서로 배타적인 주장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종교다원주의의 생각입니다.

아주 그럴듯한 설명이고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설명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생각입니다. 성경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 복된 것이겠지만, 참된 신이 아닌 우상을 섬기게 된다고 한다면, 이방신을 섬기게 된다고 하면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성경에서 이렇게 배타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모든 등산로가 설악산 대청봉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등산로는 설악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모악산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려고 한다면 설악산 대청봉으로 인도하는 길로 등산로를 선택해야 되는 것이지, 중인리길로 가거나, 금산사길로 가서는 모악산 밖에 못 올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선택하면 모악산 밖에 못 가는 것이고, 설악산 대청봉은 구경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등산하는 것이야 큰 산을 올라가든 작은 산을 올라가든 나름대로 유익이 있으니까, 어느 산으로 올라가든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신앙이라고 한다고 하면, 그 신앙을 제대로 된, 그 신앙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어른이라고 하면 아무나 다 따라가도 되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야 될 사람이 있고, 따라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유치원생이라도 아는 진리입니다. 내가 만일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따라간다고 하면, 내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따라간다고 하면, 맛있는 것도 얻을 수 있고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가 있겠지만, 유괴범의 손을 잡고 따라가게 된다고 하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무서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녀들을 가르칠 때 잘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잘못된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잘 이야기해 줘야 되는데, 만일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시다. “얘야, 어느 등산로를 선택하든지 다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갈 수 있는 거니까, 어른들이 가자고 하면, 아무나 다 따라가도 괜찮은 거야. 괜히 이 사람을 따라가면 되고, 이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느 길을 가더라도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아무나 다 따라가도 된다”라고 우리 자녀들에게 말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부모님이 자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하면서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 너에게 과자를 사준다고 이야기하고,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아무나 따라가서는 안 되고, 정말 엄마 아빠만 따라가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만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네가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부모님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기 때문에 유괴범과 같은 다른 신, 유괴범과 같은 그런 가짜 신, 이방신 우상을 따라갔다가는, 결국 공포스러운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상은 우리들에게 멋있는 것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착취하고, 우리를 멸망시키고 파멸시키기 때문에, 그런 우상을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서 사도행전의 말씀을 연이어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는 그 내용을 우리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서게 된 이 산헤드린 공회에는 아주 살기가 등등한 아주 위협적인 분위기가 감지되는 그 상황 가운데서,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고, 그래서 만일 예수님을 전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그런 위협적인 태도로 그렇게 위협하고 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런 위협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굴복하지 않고 전혀 쫄리지 않고,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정말 자신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면, 산헤드린 공회가 위협을 할 때 그냥 뒤로 물러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경험한 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확실한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그 산헤드린 공회의 아주 살기등등한 위협 앞에서도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베드로가 전한 이 메시지 가운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될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이 표현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선언은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는 정반대의 생각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말하기를, 모든 종교가 다 똑같다.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나 그냥 민간 신앙이나 어느 신앙이든지 종교가 다 똑같은 것이며, 어느 종교를 믿든지 결국에는 같은 하나님 이름을 다르게 부르지만,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야훼라고 부르기도 하고, 알라라고 부르기도 하고, 상제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쌍띠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이 등산로로 가든 저 등산로로 가든 결국 저 정상에서는 다 같이, 만나게 되는 것처럼 모든 종교가 다 똑같은 것이고, 어느 종교들 정말 진실하게 믿기만 한다면, 어느 종교든지 정말 그 가르침대로 산다고 하면, 결국에는 같은 천국에서 만날 거라고 하는 것이 종교 다원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철저하게 정반대로 말씀하고 있는데요. 오늘 베드로도 말하고 있는 그 내용이 무엇이냐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예수님이 아닌 그 어떤 이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하는데요. 왜 다른 종교는 가짜이고, 왜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인가, 왜 다른 모든 종교 교주들은 다 엉터리인데, 왜 예수님만 참된 구세주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만이 참된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그러면 결국 구원을 얻을 거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된 성경적인 종교가 아닌, 참된 기독교, 참된 바르게 가르치는 기독교가 아닌 모든 잘못된 종교는 무엇을 가리키냐면, 여러분 열심히 신앙생활하십시오. 여러분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여러분 마음을 많이 비우십시오. 여러분이 수련을 많이 하게 되고, 신을 감동시키는 노력을 하고 여러분들이 착하게 살면, 그러면 결국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수련을 하게 되면 부차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경지에 올라갈 수가 있고, 도를 터득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잘못된 종교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냐면, 여러분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여러분들이 마음을 잘 비우기 시작하면, 마음을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면, 열심히 수련을 많이 하고 또 하고 또 하면, 여러분들이 물질을 많이 드려서 신을 감동시키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에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그런대로 논리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조금 노력하면 좀 더 나아지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냥 대충 사는 것보다는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노력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납득을 하는 그런 교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그런 종교의 가르침처럼 완벽하게 최상의 경지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만큼 우리가 하나님에 도달할 만큼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저 천국에 갈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완벽하게 죄 없이 착하게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가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못하는 것이죠.

사실 우리는 그렇게 영적으로 완벽해질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인데요. 사실은 그런 목적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목적도 도달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여러분들 달성하게 됩니까? 아니요. 이 세상의 목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게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모두가 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다고 부자가 됩니까? 안 되잖아요. 정말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만,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성적이 나옵니까? 안 되잖아요. 살 하나 빼는 것도 못해요. 살 빼고 싶어서 이런 다이어트 해보고, 저런 다이어트 해보고, 비싼 거 사다 먹어보고 아무리 노력해도 살아나 빼지 못하는 게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의 목표도 잘 이루지 못하면서, 정말 완벽하게 도를 닦고, 완벽하게 내 마음을 완전히 비워버려서, 무아지경에 이르는 그런 수련을 하고 해서, 완벽한 경지에 올라가서 우리가 하나님의 경지에까지 올라간다고 하는, 그렇게 하라고 하는 종교의 가르침은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하는 그런 요구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에 In the Grip of Grace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표현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달까지 닿으려고 시도했으나, 우리는 땅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대서양을 헤엄쳐 건너보려고 했으나, 연안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구원이라고 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려 했으나, 산등성을 오르고 있기는커녕, 아직 베이스캠프에서조차 떠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자 보급이 필요하고, 더 많은 근육이 필요하고, 더 좋은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우리를 태우고 우리를 옮겨갈 헬리콥터가 필요하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원을 구원이라고 하는 에베레스트 산 정말 최상의 목적이라고 될 수 있는 그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는 거예요.

이 길로 가고 저 길로 가고, 그 어떤 길로 가도, 산 정상 꼭대기에 올라갈 능력이 우리들에게 없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인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이 무엇이냐면, 여러분 열심히 마음을 비우세요. 마음을 비우면 여러분도 부처가 될 수 있어요. 마음을 비우면 되는데, 왜 안 비웁니까? 마음을 비우세요. 그러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길로 가고 저 길로 가고 그 어떤 길로 가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지, 단 한 발자국도 더 좋은 곳으로 더 높은 위치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르침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냐면, 마치 카지노에 비유할 수가 있겠습니다. 카지노에서 선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일확천금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억만장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카지노에 와서 열심히 돈을 집어넣고 그래서 계속 한번 당겨보면, 언젠가는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하면서, 그래서 이 카지노에 와서 돈을 집어넣어 투자해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종종 신문에 뉴스가 나는 겁니다. 어느 카지노에서 억만장자 터졌다느니, 어디에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자꾸만 흘려보내면서, 여러분들도 들어와서 열심히 투자하면 열심히 언젠가는 언젠가 돈을 넣고 당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그래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알거지만 되는 것이 카지노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 모든 거짓 종교는 말하는 거짓 종교는 마치 카지노와 같습니다. 우리를 향해서 말하기를, 이 세상 거짓 종교는 말하기를, 여러분들의 마음을 비우십시오. 이 세상의 연을 끊어버리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등바등거리며 살 것이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친척을 다 내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살면서 거기서 모든 것을 다 마음을 비우면서 노력하면, 언젠가는 당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열심히 착하게 살고 또 살고 또 살면, 언젠가는 그 경지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다 똑같은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다른 종교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오셔서 너희들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너희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 너희들이 노력을 많이 하게 되고, 착하게 살면, 그러면 구원받을 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기에,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말씀해 주시는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에 예수님은 바로 헬리콥터와 같은 분이십니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저 높고 높은 보좌 위에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런 구원자이시기에,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이 난 건물에 그 건물에서 도망갈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온 건물이 화염에 싸여서 그 어느 통로도 불가능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도 없고, 층계를 내려가려고 하니 화염이 쌓여 있는 상황 가운데서, 그 불난 건물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블 난, 화염이 완전히 휩싸인 건물 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 종교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공부 열심히 하면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학문을 습득하게 되면 여러분들에게 길이 열릴 겁니다. 지금 불타고 있지만, 지금 공부를 해서 여러분들이 완벽한 지식을 얻게 되고 박사 학위를 받게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통달하게 되면, “살 길이 열릴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 종교는 말을 합니다. 지금 불이 났지만, 당신이 살기 위해서는 당신의 체력으로는 안 되니, 지금부터 팔 굽혀 펴기를 열심히 해서, 운동을 열심히 해가지고 근육을 기르고, 그래서 건강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건장해져서 그러면 저 불길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건장한 체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주는 것이죠.

이 세상 종교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 가운데서, 당신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돈을 열심히 버는 겁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불난 그 상황 가운데서, 거래를 열심히 해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돈을 많이 벌면 돈이면 다 해결돼요. 그러니까 돈 많이 버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 종교의 가르침들이죠.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허망한 소리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헬리콥터처럼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너희가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바로 그 예수가 부활하셨고, 그분이 바로 우리들의 구주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마치 불난 건물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살려놓고 죽었다고 하는 소방관의 이야기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그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이 세상에 헛된 것에 소망을 걸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돈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인 양, 혹은 어떠한 권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 냥,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면 행복할 것인 냥, 헛된 것에 소망을 거는데, 헛된 것에 소망을 걸면 언제나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해 주시고 계시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주님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주님 바라보고, 주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믿음으로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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