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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삼상 8:1-22)

2016.12.4 주일오전예배 설교

몇 주 전에 이어서 두 번째 여러분들을 뵙고, 하나님의 말씀 함께 나누게 돼 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올려드립니다. 옆 사람하고 한번 인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따뜻하게 환영해주면서 인사 한번 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은혜 많이 받읍시다 손도 잡아주시고, 네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굉장한 혼란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대통령이 하야해야 된다. 혹은 탄핵시켜야 한다고 하는 그런 뜨거운 주장들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그리고 숫자를 갱신해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지금 들끓고 있는 그런 시기입니다. 지난 몇 년간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지지층이 30%가 넘는 그런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하루아침에 5%도 채 안 되는 그런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게 느껴집니다.

저는 지난 4년간 대구에서 목회를 했었는데요. 거기에 살면서 대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제가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냉담해졌고, 심지어 분노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이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지금 이 현 시국에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문제가 좀 잘 해결되고 순리대로 진행이 돼서 이 땅에 정의가 짓밟히고 있다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기보다는, 그래도 정의가 살아있구나 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고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어쩌면 현재의 시국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만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상 8장의 말씀을 보면 사무엘의 뒤를 이어서 사사가 되었던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사무엘과는 달리, 자신의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그런 상황에 이르르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탄핵하고, 그리고 새로운 왕을 뽑아달라고 하는 요구가 빗발치는 그런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지금까지는 사사들이 다스리는 시대를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있어야 되겠다고 요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민족도 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사가 아니라. 사사는 당시에 그저 평상시에는 그냥 생활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가서 싸우기도 하고. 아니면 때에 따라서 재판도 하는 그런 일들을 했는데, 그런 좀 시시한 사사 말고, 번듯한 왕이 있고, 총리가 있고 군대가 있고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저 선진국 주변의 강대국들처럼, 우리나라도 왕이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뜨거운 분출이 지금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주변의 민족들을 바라보면서 부러웠을 겁니다. 왜냐하면 주변 민족들은 강대국으로서 전쟁이 일어나면 왕의 명령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전쟁을 이겨나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내심 부러웠을 것 같아요. 우리는 왕이 없는데 저들은 왕이 있고, 우리는 군대가 없이 그냥 우왕좌왕하다가, 남의 지배를 받다가 나중에 군인들을 모으니라고 힘이 드는데, 저 민족들은 왕 밑에 군대 장관이 있고, 그리고 군대가 있어서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주변 민족들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민족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은 애굽 땅에서 바로 왕의 그 압제 아래서 종살이 하다가, 이제는 해방되어서 하나님이 왕이 되는 그런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신정 국가로서 살아왔는데, 신정국가 왕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그 나라는 왕이 없었고, 때에 따라서 사사나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해서 다스림을 받는 그런 삶을 살았는데, 그게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왕을 요구하게 됐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을 세우게 되면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인지 왕의 제도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왕의 제도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무엘 상 오늘 읽은 말씀 8장 11절부터 18절 말씀까지 보면, 왕을 세울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요약하면 어떤 내용이 나오냐면, 왕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왕을 세우면 나라가 좀 튼튼해지고 군대도 제대로 잘 갖추고 있어서 그래서 좀 체계적인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그래서 우리도 강대국에 진입하고 싶다고 하는 그런 소망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은 무엇이냐면, 왕이 되면 그런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작용도 있다는 거예요. 단점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단점입니까? 왕은 너희의 아들 딸들을 데려다가 시녀 시종으로 삼을 거다. 너희들의 물건들을 빼앗아 나가 10분의 1씩 빼앗아서 세금으로 빼앗아가게 될 것이다. 왕이 되면 다 좋은 것이 아니라, 왕이 자기의 밭을 갈게 하는데, 너희들의 아들 딸들을 데려갈 것이고, 왕의 그 궁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신들의 재산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 경고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해주고 계시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면 언제나 커다란 소망을 가지고 뽑습니다. 몇 년 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요. 그때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각각 자신들만의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저렇게 하겠습니다. 그 공약들을 보면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공약들만 보면 정말 좋은 공약들이 정말 많이 들어있었어서, 그래서 그 공약들만 보고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기만 하면 우리나라가 다 잘 될 것 같고, 우리나라가 곧 선진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고, 곧 복지국가가 되게 될 것이고, 어린아이들 교육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 같고, 내가 늙어도 전혀 진료 때문에 의료 때문에 문제 겪고 있지 않는, 그런 선진국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장밋빛 소망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 그때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대구에 있으면서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택시 운전사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택시 운전사가 했던 말이 기억이 아주 생생하고 재미있게 기억이 납니다. 경상도 그 택시 운전사가 하는 말씀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다 대통령 시켰으면 좋겠대요.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할 것 없이 세 명 다 대통령 시켰으면 좋겠다. 공약들을 보니까 너무나 다 좋기 때문에 다 시켰으면 좋겠다. 누가 나와도 우리나라는 잘 살 것 같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속에 뼈가 들어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몇 년이 지난 지금 놀랍게도 우리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라고 아우성을 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게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이 그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를 잘 살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4대강이니 자원외교니 하면서 나라를 망쳐 먹고, 국고를 고갈시켜 버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되면 무엇인가 좋을 줄 알았는데,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실망에 빠져버리는 그런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면서, 왕만 세워주면 우리나라도 다른 민족처럼 그렇게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도 좀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제발 왕을 좀 우리에게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그럼 왕을 세워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왕을 세우게 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왕이 너희들의 아들 딸들을 종으로 삼을 그 왕이 너희들의 물건을 10분의 1씩 세금으로 걷어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어쩌면 이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그 소망이 우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로 하여금 절망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잖아요. 하와는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사탄의 유혹을 받습니다. 사탄의 유혹이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저 선악과를 먹으면 그러면 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그 이야기에 솔깃해 선악과를 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저것만 먹으면 내 문제가 다 해결이 되고, 저 선악과만 먹으면 내가 하나님과 같은 높은 위치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선악과를 먹고 나니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그 결과는 비참해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 죽음 에덴동산으로부터 축출당하는 그런 비참한 결과, 장미빛 선악과(공약)를 바라보면서 그걸 먹으면 살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조상들이 선택했던 그 문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돈에 소망을 겁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요. 돈이 있으면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고, 돈이 있으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고, 돈만 내 손에 집어넣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돈만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그 돈에 두는데, 그런데 그 돈을 얻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지불했던 대가가 무엇입니까? 돈을 얻기 위해서 결국 비참한 삶을 살게 된 것이고, 내 건강 다 잃어버리게 된 것이고, 돈을 얻기 위해서 가정이 깨어지고, 가족이 해체되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이 없었던 민족인데, 그 왕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좋았는가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에 우리의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소망을 두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편 146편 3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인생을 의지하지 말지니.” 사람을 믿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100프로 실망할 것이에요. 사람을 믿으면, 저 사람이 나의 구세준가? 저 사람이 나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하고 그 사람을 믿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냐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이것은 단순히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우리 교인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목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는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하는 잘못된 망상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의 생각이 뭐예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뭡니까? 좋은 사람만 있으면 해결될 거 아닙니까? 좋은 사람만 있으면 되겠다고 하는 거짓된 망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갑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는 결혼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주 인생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중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고, 아주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잘못된 망상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좋은 신랑감만 찾으면, 결혼 생활은 행복할 거라고 하는 착각이죠. 좋은 아내만 만나면 행복할 거라고 하는 착각입니다. 좋은 남편이 있던가요? 좋은 아내가 있던가요? 좋은 남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신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미완성이고 연약하고 모든 것이 부족한 한 남자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아직 미숙한 한 여성이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게 그게 결혼이에요.

완벽한 배우자를 찾지 마세요.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거예요. 옛날에 어떤 노처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그래요. 자기가 결혼하고 싶었는데 자기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항상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못 했다는 겁니다. 저 남자 참 좋네 하면, 유부남. 저 남자 참 좋네 하면, 유부남. 그래서 결혼을 못 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나중에 그 노처녀가 나중에 고백하는 말이 뭐라고 고백하냐면, 나는 왜 그렇게 유부남만 좋아했었나 했더니,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족한 남자가 결혼을 해서 그래서 인격적으로 점점 성숙해지고 해서,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된 거지. 결혼하기 전에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몰랐다는 거에요. 결혼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게 좋은 결혼이 아니라, 아직도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든 게 미숙한 한 남자와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든 것이 어설픈 한 여자가 만나서 두 사람이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싸우면서 성격 차이 때문에 서로 조율해 가면서 다투면서 그러면서 점점점점 인격이 성숙해져 나가는 게, 그게 인생이고 그게 결혼 아닙니까?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데 완벽한 부모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젖을 어떻게 먹여야 되는지, 이 아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철 모르는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 아이를 기르는 과정 가운데서, 내 인격이 성숙하고 인내심이 생기고 신앙이 더 커가는 그런 성숙의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 그것이 인생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완벽한 100퍼센트 흠도 없는 배우자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는 경우가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완벽한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완벽한 교회를 간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 교회에 가면 내가 신앙생활 잘할 것만 같아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는 꼴 같지 않은 그런 사람들도 있고, 결국 여러 가지 불합리한 모습 이기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면서, 이 교회는 정말 안 된 교회다. 이 교회는 정말 내가 다닐 수 없다라고 포기하면서, 더 나은 교회를 찾으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스펄전 목사님이 한 번은 어떤 청년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청년이 스펄전 목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그래요. 목사님,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내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교회 성도님들 내가 다니는 이 교회 성도님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너무나 많이 주고, 그래서 내가 이 교회를 도무지 다닐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좀 사랑이 넘치고 그리고 따뜻하고 정말 아름다운 교회 어디 없을까요? 목사님은 그래도 유명한 부흥사니까, 영국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많은 교회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 교회 중에서 제일 좋은 교회, 추천할 만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정말 멋있는 교회, 아름다운 교회 소개해 주시면, 제가 그 교회 다니겠습니다. 제발 그 교회 좀 하나 소개시켜 주십시오. 그랬더니 스펄전 목사님이 그 청년 앞에서 고민고민하면서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습니다.

“여보게. 청년. 내가 지금까지 부흥회를 하고, 집회를 다니면서 영국에 있는 모든 교회를 대부분 다 다녀보고, 그 교회를 다 살펴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내가 볼 때 아무 문제없고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교회는 단 한 교회도 발견하지 못했다네. 내가 간 교회마다 다 문제 투성이고, 거기에 문제의 교인들이 있고, 여러 가지 시기와 질투와 그리고 갈등들이 있는 교회들 뿐이었지, 그렇게 좋은 교회 찾지 못했다네. 미안하네. 내가 좋은 교회 추천해줄 수가 없어서 정말 미안하네.” 이 청년이 대단히 실망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이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게. 청년. 자네가 한번 찾아보게나. 자네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정말 좋은 교회 있으면 한번 찾아보게. 그리고 그 교회가 어디인지 발견하게 되면 나에게 알려주게.” 그러자 그 청년이 목사님에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알겠습니다. 스펄전 목사님. 제가 한번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정말 좋은 교회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스펄전 목사님에게 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청년이 떠나려고 하는 그 찰나에,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이야기하기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게. 청년. 잠깐만.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네.” “무슨 부탁입니까?” “만일 자네가 영국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사랑이 넘치고 따뜻하고, 정말 좋은 교회를 발견하거들랑, 제발 그 교회에는 절대로 가지 말게.” 깜짝 놀라서 그 청년이 물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제가 그런 교회를 찾고 있는데, 그런 교회에 가지 말라요. 무슨 말입니까? 저는 그런 교회를 다니고 싶습니다.” “여보게. 만일 그렇게 좋은 교회에 자네가 들어가는 그 순간, 나쁜 교회가 되는 거야. 절대 가지 마.”

예수비전교회는 이제 새로운 담임 목사님을 모시려고 하는 단계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목사님 오실 때, 가장 좋은 목사님 가장 훌륭한 목사님만 오신다면 괜찮아지겠지,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이 세상에 좋은 목사님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목사님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없으면, 멸망당할 죄인들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은혜가 없다고 한다면, 다 멸망의 자식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믿는 그 순간 우리는 100퍼센트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혼란은 한국사회의 이런 현상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시편 146편 5절 말씀에 “여호와 자기 하나님을,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믿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사람에 대한 소망이 아니고, 건물에 대한 소망이 아니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실력과 능력에 대한 소망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에게만 우리의 소망을 두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모든 걸 다 내버려야 된다고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배격하라고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병을 낳기 위해서 의사와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면서도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과 협력하고 무엇인가를 협력하면서 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 하나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배격하라고 하는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좋은 목사님도 찾아야 할 것이고, 좋은 신랑감도 찾아야 할 것이고,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찾는 것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는가? 사람에게 있는가?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에게 있는가? 사람에게 있는가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왕의 제도를 설명하면서, 왕을 세우면 이런 단점 이런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경고하시면서도,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는 것을 금한 것이 아니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질문을 던질 겁니다. 아니, 왕의 제도의 나쁜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십니까? 나쁜 거라고 한다면 세우지 못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왕을 세우는 것이 상반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을 세우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왕을 세우기는 하지만, 우리가 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왕을 세우지만 그 왕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애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 그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 왕은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은 온전히 잊어버리고, 왕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거나, 물질이나 내 능력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는 그 순간에, 우리의 문제가 완전히 잘못되어 가게 될 수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인류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우리들의 우상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가를 의지했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 대신에 물질을 섬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애굽을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는 인간 왕을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결과는 아주 비참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참되신 왕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소망을 두는 것 밖에는 우리에게 다른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월은 성탄의 계절입니다. 성탄은 만왕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기독교 전통은 오래된 기독교의 전통은 성탄절을 앞둔 한 달 동안 정도의 기간을 가리켜서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대강절은 대강대강 지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강림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 바로 대강절인데, 저는 지난주에 미국에 갔을 때 미국 교회에 참석했는데, 미국 교회에서 대강절 첫 번째 주일을 지내면서 나뭇잎으로 만든 동그란 원에 촛대가 꽂혀져 있는 여러 개의 촛대가 꽂혀져 있는 그 촛대에, 첫 번째 촛대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대강절 그런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냐면 초록색 나뭇잎으로 엮은 동그란 원인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끊임없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끊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그리고 그 촛대들은 어둠 가운데 오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인데, 한 주 한 주 지나면서 촛대에 불을 켜면서,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을 기념하는 그 모습 가운데 첫 번째 촛대를 켜는 것을 봤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누구로 오셨는가?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장 6절 말씀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오셨는데, 이 세상의 왕, 이 세상의 권력자는 우리들에게 실망을 주지만, 참된 왕이신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오셔서 참된 평화와 위로를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미국에 있는 두 딸 아이를 만나러 갔다 왔는데, 큰 딸 아이는 27, 28 나이가 되고, 두 번째 아이는 23살 정도 되는데, 미국 나이랑 한국 나이랑 좀 헷갈려서 그래요. 그 아이가 있는 사는 곳에 가보니, 한숨이 나오는 거에요. 우리 둘째 아이는 지금 어느 한 집에 자취생 한 대여섯명이 함께 살고 있는 거예요. 방 하나하나에 대학생들 자취생들이 모여 살아서, 함께 살고 있는데, 화장실을 하나 공룡으로 쓰고 있는 그런 상태인데, 방 안에 갔더니, 고양이 털이 날리고, 화장실은 먼지로 가득 떼가 가득 차 있고, 엉망 신청. 그 딸아이를 방문하러 이번에 처음, 사는 곳을 이사 간 이후로 처음 가봤는데, 대학생 아이들이니 청소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까? 미국 아이들은 공부하면서 평생 학교 청소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과는 달리. 그러니까 청소를 배워보지 못한 이 아이들이 엉망 칭찬으로 살고 있는 그 모습을 본 제 아내가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졸라매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그 화장실을 깨끗이 닦아내는데, 우리 아이가 말하면 엄마 이거 여러 명이 쓰는 건데 우리가 청소할 필요 없다고 하는데,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반짝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허리가 아픈데도 힘들어 하면서도, 그렇게 막 하고 그리고 방도 막 고양이들 다 털어내고 하면서 가서 쉬고 온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치우고 청소하느라고 막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그때 제 아내가 “내가 이러려고, 배 아프고 딸 나서 엄마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은 힘든데 행복한 거에요.

그게 엄마의 마음 같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엉망진창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고,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 가운데 온갖 더러운 모습을 가지고 사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깨어진 가정 갈등이 있고, 재정적 문제가 있고, 건강에 문제가 있고, 소외의 문제가 있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 그 모든 문제가 바로 우리들이 지은 죄의 문제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비롯될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 주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그냥 외면한 것이 아니라, 저 높고 높은 그 보좌를 버리시고, 영화롭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우편의 자리에서 이 땅 위에 내려오셔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엉망진창된 우리들의 모습을 고치시고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주님에게 두어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들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착취하고 재벌들의 돈을 뜯어가는 권력자가 아니라, 애국애국 입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뱃속만 채우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이 바로 성탄절 크리스마스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12월 성탄절을 앞에 두고, 어떤 성탄절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의 소망을 더더욱 하나님에게만 두고 만왕의 왕 되신 주님 앞에만 두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주님 앞에 나아가시고 엉망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괜찮다 하시고 우리들의 모습에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소망을 두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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