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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유익 (잠 2:1-22)

잠언서 2장 말씀을 우리가 다 읽었는데요. 잠언서 2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혜가 어떤 물건이면 참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마치 보석과 같고, 어떤 음식과 같고, 돈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쉽게 그 누구든지 그것의 소중함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보석이라든가, 아니면 맛있는 음식이라든가, 아니면 돈이라든가 이렇게 우리가 실제적으로 눈으로 쉽게 보기도 하고, 형체를 가지기도 하고, 그 가치를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물건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갈망하게 될 것이고, 또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지혜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추상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를 잘 알아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소중한 것인데, 소중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해서 하찮게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내 팽개쳐 버리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고요. 심지어는 그 지혜의 말씀을 들려줄 때에, 그 지혜의 말씀이 정말 소중하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가슴에 새기고,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텐데, 고마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반발하고 공격하는 모습을 우리가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향해서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죠. 우리 아이들이 정말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이 아이가 정말 미래에 정말 위대한 일을 하는 그런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부모가 자녀들을 향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부지런해야 된다고도 말하고, 그렇게 내 시간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친구를 사귈 때 사람을 잘 분별해서 잘 사귀라고도 말하기도 하고, 정말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해주게 되는 것이죠.

지혜의 말이고,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한다면, 사랑해서 해 주시는 그 말씀을 정말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하면,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큰 유익이고, 그리고 이 아이가 앞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해주는 그 충고의 말씀, 지혜의 말씀, 그리고 이렇게 훈계의 말씀들을 듣게 될 때, “이것이 정말 보배로운 것이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그 보배와 같은 말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자녀들 그것을 잘 모릅니다.

오히려 자녀를 향해서 해 주시는, 그런 정말 사랑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면서, 대들기도 하는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지혜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그 사랑의 말씀이 정말 소중한 보석과 같고, 맛있는 음식과 같고, 정말 구하기 힘든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지혜를 들으면서도 내 팽개쳐 버리고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 그 지혜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리고 완전히 지혜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길로 행동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지혜의 말씀을 들려줄 때에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격하는 모습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6절 말씀에 이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정말 소중한 보배와 같은 것이고, 진주와 같은 것이어서, 이것을 주면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지혜의 말을 들려주는 사람을 향해서, 오히려 공격하고 대적하려고 하는, 그런 안타까운 일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지혜의 말씀이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푸대접을 받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지혜가 좀 어떤 보석과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보석 어떤 좋은 물건과 같은 것이었으면, 좋아서 그래서 보면 탐스럽기도 하고, 보면 정말 가지고 싶은 그런 욕심들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들의 눈에 보이기도 쉽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갈망하기도 쉽고, 또한 그것을 보았을 때, 서로가 얻으려고 노력하고, 또 구하기도 쉬워서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그리고 획득할 수만 있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이번에 잠언 강의를 하면서, 시리즈로 하게 되면서, 참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늘 혼란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면, “도대체 그 지혜가 뭐냐?”라고 하는 것이, 정말 잠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지혜가 무엇인가? 그것에 잘 마음속에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그런 문제가 있는데요. 그런데 정말 확실하게 “지혜가 이것이다”라고 보여줄 수 있고, 그래서 만져질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혜는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추상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쉽게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리고 쉽게 구할 수도 없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돈이 한 푼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할지라도 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 잠언서 2장 말씀에서 지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고 계시는데요. 그러면 지혜가 무엇이냐? 지혜가 무엇인가? 우리가 잠언서를 쭉 살펴보게 될 텐데, 잊지 말아야 될 딱 하나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이냐? 지혜가 무엇이죠?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첫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혜의 시작, 지혜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는가? 지혜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부터 지혜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오늘 잠언서 2장 말씀에서도 이 점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지혜가 무엇이냐? 지혜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가 있겠지만, 삶의 여러 가지 측면들에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어떻게 사업을 하고, 어떻게 사람과 대화를 하고, 어떻게 가정생활을 하고,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하고, 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과 여러 가지 형편 가운데서 어떻게 지혜롭게 행할 것인가? 다양한 방법들, 우리가 지혜 그러면,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지혜로운 것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지혜로운 것이고, 어떻게 이 순간에 정말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지혜로운 것이고, 장사를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것이고, 우리가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것인가, 방법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많이 맞춰지기가 쉬운데요. 사실은 지혜는 그런 방법이라기보다는 아주 간단합니다.

첫 시간에서부터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주 간단한 것이 바로 지혜인데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불꽃 같은 눈으로 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계산하실 때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이것처럼 지혜로운 것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꾀를 가지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혜를 가지고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가 있겠는데, 그러한 모든 것들도 물론 지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지혜의 정의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고, 그 하나님이 두려운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아서, 지금 오늘 내가 생각하고 행동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그 심판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 앞에서 떨며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기억하는 것, 그러니까 성경 말씀을 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에 이 자리에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그 명령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일까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그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오늘 이 순간에 이 자리에 있게 하셔서, 이런 사람을 만나게도 하시고, 저런 사람을 만나게도 하시고, 나에게 이런 형편에 처하게도 하시고, 저런 형편에도 처하게 하시는데, 바로 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 그게 바로 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게 된다고 하면, 지혜를 따라서 살게 된다고 한다면, 어떠한 유익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첫 번째로는 우리가 정직하고 공의롭고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국은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본다고 하면, 우리가 속임수를 쓰거나, 또는 여러 가지 불공정한 일을 행하거나, 불의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따라서 공의롭고, 정의롭고 정직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서 2장 9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런 즉 내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지혜에 따라 살면, 어떻게 살게 되는 것인가? 공의로운 길, 정의로운 길, 정직한 길로 가게 되는 그런 유익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정직한 길로 살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납니까? 10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혜, 곧 지혜가 내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오.” 지혜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은 기쁨이 즐거움이 마음 가운데서 솟아오르게 되는 것이고, 만일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과는 떠나서 산다고 한다면, 정반대로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이, 기쁨이 아니라 괴로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혜를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떠나서 사는 삶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결과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유익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2장 11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게 되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겁니다. 안전한 길로 가게 되면, 우리가 보호를,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대로로 걷게 된다고 하면, 안전하게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대로가 아니라, 위험한 길, 제대로 닦기지 않은 길, 그래서 뭐가 나올지도 모르고,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떠한 웅덩이가 있을지도 모르고, 어떠한 짐승이 나올지도 모르는 그런 아주 위험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 길을 가다가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는 길이 있을 텐데, 이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가게 될 것인가? 우리가 지혜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면, 그 길이 안전한 길이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길이 되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게 된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에는 많은 돈을 확보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당장에는 명예를 얻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금 당장에는 인기를 얻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한다면, 지혜를 따라 산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가운데 살게 된다고 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인가? 음란의 죄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오늘 성경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범죄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치명적인 범죄입니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유혹입니다. 이러한 죄의 유혹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오지 않아서, 그래서 우리가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지, 기회가 온다고 한다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그 기회 앞에서 무찔러버리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던 다윗도, 음란의 죄, 성적인 죄를 저질러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그 죄는 아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데, 지혜는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는가? 우리로 하여금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음란의 죄에서부터 우리를 건져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게 된다고 한다면, 그 순간에 우리가 음란의 죄 가운데서, 성적인 죄 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죠.

그 예를 우리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요셉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단둘만의 상황 가운데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 아주 젊은 남자였던 요셉은 그 상황 가운데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범죄를 할 수가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단 둘이만 그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있었냐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 요셉의 마음 가운데 있었어요. 다른 게 지혜가 아니라, 바로 그게 지혜인 거예요.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구나.

우리는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죄를 마음껏 짓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또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아니 교회의 일을 아주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렇게 신앙적으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때때로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에, 죄악을 범하는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런 죄가 없느냐 하면, 아니요. 죄가 늘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습니다. 그 예를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는 거죠? 홉니와 비느하스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제사장들이었어요.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로서 그들도 제사장이었고,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재물을 가지고 오면, 그 재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성직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 그러니까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정말 일반 평신도들보다도 훨씬 더 성경적인 지식, 신학적인 지식, 모든 지식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던 사람들이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적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두렵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재물을 탈취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며, 그런 일 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죠. 전혀 지혜가 없던 사람들이었고 그 당장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해서 계속해서 그 죄악을 저지른 그런 악한 일을 범한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구약 시대에, 아주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대에만, 한번 반짝 있다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늘 반복되어 오고, 또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거에요.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도 하나님께서 그 여리고성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다 불살라버리라고 하는 지엄한 명령을 들었지만, 그러나 블레셋의 시날산 외투를 보고, 물질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자신을 바라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아시고 심판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망각해 버려서, 그래서 그 블레셋에 좋은 옷들을, 시날 산 옷들을 챙기면서, 그래서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했으나,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 때 교회가 출발하는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재물을 다 팔아서 교회 앞에 헌금한다고 그렇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인정을 받은 그 일을 한 다음에는, 재물을 다 숨겨놓고 마치 하나님이 보지 않을 것처럼,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께 거짓말하다가 결국 심판을 당하여 죽게 되었던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성경시대에만 기록되어 있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 지금 우리들 가운데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인 것이죠.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망각해버리는, 잊어버리는 거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속에서 다 없애버리고, 하나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아니 하나님 안 계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교회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뻔뻔한 것이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의 더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생생하게 안다고 한다면, 음란의 죄에 빠지지도 않게 해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되면, 여러 가지 죄에서부터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지혜를 얻게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선한 길 의인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을 받고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고 오히려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정말 내가 의를 위해서 힘쓰면, 정말 수고한다고 박수 쳐주고 고맙다고 말하고, 정말 용기를 붙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너나 잘하세요” 하면서 공격이 들어오는 게 그게 현실이에요. 주의 일을 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우리를 못살게 굴고, 우리가 주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침묵하고 있으라고, 우리를 우리의 입을 막아버리고, 우리의 행동을 막아버리고, 우리가 선한 길 의의 길로 가는 것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들이 자꾸만 발생하게 되는데, 그럴 때 우리가 지혜가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고, 선한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두렵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한다면, 선한 일을 하다가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고 하면, 결국 때가 이르면 거둘 것임을 믿고, 순종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혜의 유익이 우리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얻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지혜가 어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다고 그랬죠? 아주 가까이에 있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양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너, 그런 짓 하면, 안 돼.” “너, 지금 이 순간에 그렇게 못 본 척하면 안 돼.” 가까이에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들려주고 계시는 것이죠.

신명기 30장 11절부터 14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지혜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에요. 보석과 같은 그 지혜의 말씀이 우리가 구하지 못해서 못 얻는 게 아니에요.

이것이 이방 종교와 성경과의 차이점이죠. 이방 종교와 참된 종교의 차이점인데, 가짜 종교 우상 종교 잘못된 종교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당신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 신앙생활해서는 안 돼. 신을 감동시켜야만 하고, 지성을 보여야 되고, 지성을 보여서 감천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열심히 해서 값비싼 재물도 드리고, 열정을 드리고, 최선을 다해야, 그래야 겨우 응답할까 말까라고 이 가짜 종교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 지혜를 꽁꽁 숨겨놓고 아무나 발견하지 못하도록 봉인해버려서, 아무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들을 향해서 다 공개해 놓으셨어요. 이미 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새겨놓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양심의 소리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내가 이게 잘못했구나 하는 걸 다 알아요. 다 알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고, 다 알아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비싼 게 아니라 공짜로 주시고 계시다는 이사야서 55장 1절 2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기를 원하세요.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여러분들이 여러분 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주님의 뜻을 다 이미 개방해 놓으셨고, 알려놓으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시면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지혜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고, 오늘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주고 계실 때, 그 주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복종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참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셔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누구든지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주님으로부터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개방해 놓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실 때 애써 외면하며, 자꾸만 안 들으려고 하고 듣지 않으려고 하고, 귀를 막아버리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양심에 화인을 맞은 것 같아서, 천둥 번개처럼 그렇게 큰 소리로 울려 퍼져도 전혀 듣지 못한 채, 아무 소리도 못 듣는,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영적인 귀머거리, 영적인 소경, 마치 영적인 우상처럼,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그런 우상을 닮아가는 그런 인생이 될 수가 있기에, 우리가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날마다 날마다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주님이 해주시는 그 지혜로, 믿음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죄에서부터 벗어나고, 또한 즐거움을 얻고 기쁨이 넘치고, 또 여러 가지 모든 악한 것에서부터 보호함을 받는, 그런 놀라운 지혜의 유익 지혜의 축복들이 우리 애들의 삶 가운데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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