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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하시는 하나님 (잠 3:11-26)

오늘 읽은 말씀 11절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징계가 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혼내시는 일이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을 보게 될 때,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징계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은 것,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다가 만나는 여러 가지 참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 모든 어려움들이 다 하나님의 징계일까요? 아니면 그 가운데는 징계가 아닌 것도 있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가 아닐 것인가라고 하는 그런 질문을 우리가 던져볼 수가 있겠습니다.

여호와의 징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돌아간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까 우연히 발생하는 일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도 빠짐이 없이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선하신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군데에서 표현하고 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떨어진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자연이 돌아가는 것 같고, 그냥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그리고 가을 겨울이 오는 자연의 흐름인 것 같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생로병사가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일하는 모든 일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들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냐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그것을 움직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런 모든 일들은 어떠한 하나님의 목적 어떠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우리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정말 고통스럽고, 그리고 정말 힘든 일들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일어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일들을 허락하시는지, 왜 이러한 고통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시는지,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는 것이고, 정말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질문을 던져보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여기에 무슨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겠는가? 과연 이러한 일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그냥 불행이고, 이것은 그냥 아픔이고, 정말 피하고 싶은 일들인데, 이러한 것들에 무슨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까?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가운데 일어난다고 하는 게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요.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요셉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형제들이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그리고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렸고,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혀야 하는, 그런 정말 인생의 고통스러운 일들을 엄청나게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그 요셉을 훈련시키고 연단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7년 풍년 동안의 곡식들을 모아,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살리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의 한 일부였다고 하는 사실을 요셉이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그러한 일들을 허락해 주셨는가? 그것은 우연히 허락한,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우리 가족을 살리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고, 그런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하는 것은 한참 뒤에야 나중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것들이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와 통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과연 여기에는 하나님의 어떠한 뜻이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묵상을 하는 일이 꼭 필요한데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필요합니다. 성경 말씀은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66권에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명하게 밝혀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만 묵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것들도 묵상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런 모든 일들을 깊이 묵상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우리가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만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뜻은 온 세상이 돌아가는 것들을 통해서도 드러내주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시고 통치하신다고 한다면, 그 통치하심 속에는,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것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어떤 뜻과 계획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알아낼 수가 있는 것이죠.

우리 가정에서도 살다 보면,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부모님들이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행동하는 그 행동들을 보게 되면, 말은 하지 않아도 행동을 보면서, 어떤 의도가 있었나 보구나라고 우리가 지레 짐작을 합니다. 냉장고 속에 재료들을 쟁여놓은 것을 보면, 아 내일 아침에는 우리 어머니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지금 요리를 준비하고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뭔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그 행동을 보면서 아 이 아이가 지금 배가 고프구나, 아니면 이 아이가 지금 덥구나, 더워서 지금 짜증이 나는구나, 우리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왔는데, 어깨가 축 쳐져 있는 것을 보면, 직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왔구나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을 바라보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런 일들을 벌어지게 만들고 계시는지, 우리가 깊이 묵상하게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의 주관적인 해석들로 인해서 잘못 해석할 가능성들이 너무나도 많고, 그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오해할 가능성들이 참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결국 우리가 깊이 묵상해보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이러한 일들을 움직이시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죠.

바울 사도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원래 계획한 것은 아시아라고 하는 그 지역에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터키라고 하는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계획하고, 목적하고,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무던한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일들이 자꾸만 막히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그런 사명을 주셨는데, 왜 그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자꾸만 막히고,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선교사에게 자꾸만 막히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만 해도 바울 사도는 잘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왜 선교 사역이 이렇게 힘이 들까? 어려울까? 왜 자꾸만 길이 막힐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밤중에 마게도냐 청년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는 그런 환상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지금 이것을 막으시는 것은 이곳이 아니라, 저 유럽으로 건너가서, 저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전에는 아시아에서만 활동했던 그 바울이 이제는 마게도냐로 넘어가고, 저 유럽으로 향해서 복음을 전하려 넘어가는 그런 엄청난 그 선교사역의 확장이 이루어지게 된 거예요.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발걸음들을 인도해 주시는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해석과는 달리,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그래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는 어떠한 객관적인 그런 가이드들도 있고, 바른 해석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우리들의 삶에 대한 묵상 우리들의 삶에 대한 묵상은 종종 잘못된 해석이 많을 수가 있습니다.

잘못된 해석들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욥의 세 친구들의 해석입니다. 욥이라고 하는 친구가 정말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하게 되었을 때, 재산들을 모두 다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다 죽어버리고, 그리고 요셉의 몸에는 온갖 그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본 요셉의 새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냐면, 이것은 필시 욥이 어떤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이고,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 때문이니까, 너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게 된 것이죠. 근데 그 해석이 잘 되는 해석이냐면, 잘 된 해석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 세 친구들을 향해서 책망하십니다. 잘못된 해석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못된 해석을 어디서 볼 수가 있습니까? 사울의 해석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는 가운데, 다윗이 그일라라고 하는 성으로 들어왔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사울왕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다윗이 지금 그일라라고 하는 도시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사울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다윗을 내 손에 넘기셨도다. 다윗이 지금 문이 있고 문 빗장이 있는 그런 성읍에 들어가 버렸으니, 이제는 갇혀버린 것이고, 우리가 공격하게 되면 포위가 될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다윗을 나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하지만 다윗의 이런 비슷한 해석을 한 사람이 누가 있냐면, 또 다윗의 동료들이 다윗의 신복들이 이런 비슷한 해석을 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이 숨어 있는 굴 속으로 들어오게 된 모습을 보았을 때, 다윗의 신복들은 다윗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다윗이여. 다윗 장군이시여. 하나님께서 지금 사울을 당신에게 넘겨주신 겁니다. 지금 이 사울을 죽여서, 지금 모든 고난을 다 종식시켜버리고, 전쟁을 끝내버리고,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는 신호를 주신 거라고 그렇게 해석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해석들은 다 잘못된 해석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탐욕적이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바른 해석이 무엇입니까? 바른 해석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해석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해석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인데, 다윗은 이게 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았고, 지금이야말로 사울왕을 향해서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할 때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들의 삶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해석하게 될 때,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나 중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정말로 기뻐하실 만한 해석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우리가 해석을 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해석을 잘 해야 될 텐데요.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징계하시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모든 징계가 다 모든 고난이 다 하나님의 징계는 아닌 것이죠. 그런데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징계하신다라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회개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회계를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 상태로 돌아가도록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잠언서 3장 11절 말씀에서는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대해서 묵상을 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삶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치시고 징계하시고 나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신다고 하는 그런 결론이 마음속에 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그냥 외면해 버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징계를 통해서 나로 하여금 어떠한 모습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원하는지를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징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징계의 목적은 회복입니다. 바른 길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징계의 목적인 것이죠. 그래서 징계의 목적은 심판과는 다른데요. 심판은 최후의 마지막 날에 있는 것이 심판이고, 그리고 그 심판은 결국 영원한 형벌이나 영원한 상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이지만, 징계라고 하는 것은 심판이 있기 전에 우리들을 회복시키시고 온전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들을 치시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다고 생각이 된다고 한다면, 그냥 그것을 외면해 버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은 없는지,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벗어난 것은 없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그런 믿음의 결단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으시는 것이죠. 그것을 가리켜서 “유기”라고 말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잘못된 길로 갈 때 책망하시고, 그래서 바른 길로 돌아오게 만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자,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 하나님께서 포기하신 자라고 한다면, 그들이 아무리 악을 행해도, 그런 악한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심판이 없는 것처럼, 아무런 책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겁니다.

따라서 죄를 지으면서도 내가 아무리 악을 행해도 아무 문제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죠. 심판이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큰 위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악을 드러나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악을 창피하게 만드시고, 부끄럽게 만드시는 일들을 하게 될 텐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깨닫고, 그 죄에서부터 회개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 같아도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오히려 자기 변명으로 일삼고, 그래서 마치 자신을 숨기는 일에 급급하면서, 회개의 길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징계하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 왜 나를 이렇게 징계하시는지 깊이 묵상하면서, 믿음의 길로 돌아서고 더욱더 겸손해지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절에서부터 17절 말씀에 보면, 지혜를 얻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로 복된 것이냐? 은을 얻는 것, 정금을 얻는 것, 혹은 진주를 얻는 것, 그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복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지혜를 얻는 것이 복된 일이 될까요? 그것은 지혜로운 자에게 장수함의 축복이나, 부위와 기쁨과 평강이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그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지혜의 길이 뭐죠? 지금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본 것처럼 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지혜로운 삶이 될 것이고,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그 지혜를 무너뜨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9절 20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하나님의 지혜로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그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그 하나님의 계명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복된 길이라고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그 지혜로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어리석은 것들을 따라갑니다. 말 못하는 우상을 따라가기도 하고, 말 못하고 정말 우둔한 사람들을 따라가기도 하는데, 만일 이렇게 우둔한 자들을 따라가게 된다고 한다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아서, 결국은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따라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고, 그것은 순금을 얻고 은을 얻고, 그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도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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