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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베풀라 (잠 3:27-35)

오늘 성경 말씀은 설명이 필요 없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어렵거나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 설명해야 될 필요가 없이 아주 자명한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그대로 읽고 또 묵상하면서, 이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 종일 이 말씀을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을 천천히 그리고 다시 한 번 제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요약하고 정리하자면, 몇 개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선을 베풀어라 하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악을 행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씀이고, 세 번째는 까닭 없이 다투지 말라는 말씀이고, 네 번째는 포악한 자를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씀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벌하시고, 의인에게 복을 주신다는 그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주 간단한 말씀이고 아주 분명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한 구절씩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좀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7절의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선을 베풀어야 하는데, 선을 베푸는 그 전제가 무엇인가요?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있으면!” 만일 너희에게 선을 베풀 만한 어떤 능력이 있으면, 선을 베풀 만한 여유가 있으면, 선을 베풀 만한 어떠한 능력이 있으면, 그러면 선을 당연히 베풀어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선을 베풀 만한 어떤 능력이 있다. 우리가 선을 베풀 만한 어떤 어떤 여력이 있다라고 하는 이 표현 내 손에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있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의미의 말씀일까요? 그러니까 선을 베풀 수 있는 자격이 드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입니까? 선을 베풀 수 있는 자격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얘기일까요? 어떤 의미겠습니까? 우리가 언뜻 보기에는 선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특정 몇몇 소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보면 너희에게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있다고 한다면 선을 베풀라고 했으니까, 나에게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없다면, 내가 남을 도와줄 만한 여력이 없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쓸 만한 그러한 능력이 없고 재정적인 힘이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하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아니지 않겠는가라고 그렇게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슨 뜻이냐면,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선을 베풀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만 도와주고 선을 베풀 만한 여력이 없는 사람은 안 도와줘도 괜찮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다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 가운데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만한 그런 힘이 없다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그런 분 없어요. 모두가 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는 거예요.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그리고 지금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정말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는 그런 사람에게도, 남에게 도와줄 수 있는 선을 행할 수 있는 그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없느냐라고 질문을 던진다고 하면 그렇지 않아요. 성경적인 관점으로 본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선을 베풀 만한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 모두가 다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믿으십니까?

성경에 보면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어떤 표현이 있냐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은 들으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얘기는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소수만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야 된다고 하는 말씀일까요? 종종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들을 게 있는 사람들은 들으라고 말씀해 주셨으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듣는 것이고 못 알아듣는 사람은 할 수 없다. 너희들이 못 알아듣는 것은 너희들이 들을 귀가 없으니까, 못 알아듣는 것이니까, 오로지 소수의 사람, 오로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만 알아듣든지 말든지, 그 사람들만 듣고,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들어도 내 알바 아니다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들을 귀 가지고 계십니까? 안 가지고 계십니까? 제 말소리가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안 들리시는 분 손 들어보시고, 다 들리잖아요! 사람이라고 하면 말하면 말소리를 듣게 돼 있잖아요. 못 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소리를 다 듣는 겁니다. 청각장애인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빼놓고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들아, 들어라! 너희 모두가 다 들어라! 이 말씀이 그 말씀과 비슷하게 오늘 이 잠언서 3장의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선을 베풀 힘이 없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다 있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연세가 많으셔서 이제는 기운이 다 떨어졌어도,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씩 사람마다 물론 그 크기나 양이나 방법이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아무리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따뜻한 말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고, 내가 손을 잡아주면서 따뜻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고,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나는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만 받아야지, 나는 다른 사람을 도울 힘이 전혀 없다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27절의 말씀이 무엇이냐면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에게 남을 도울 만한 힘이 있지 않느냐? 너희들에게 선을 베풀 만한 그런 힘이 있지 않느냐? 그 선을 베풀 만한 그 힘이 무엇이겠습니까? 꼭 돈이 힘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것이 다 힘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베풀어주신 것이 다 있는데, 그것이 때로는 우리들의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이라든가, 아니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나약한 모습마저도, 고통마저도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능력이 될 텐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하게 하시고,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셨다고 한다면, 그것들이 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어떤 종류의 도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이 표현은 누구나 다 어느 정도는 도와줄 능력이 있는데,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27절의 말씀을 해주시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에게 남을 도울 수 있는 손을 베풀 만한 힘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27절 하반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우리에게 도울 만한 힘이 있다고 한다면 선을 베풀 만한 힘이 있다고 한다면, 그 선을 마땅히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표현하고 있는 방식이 아주 특이합니다. 어떤 점이 특이합니까? 선을 베푸는 것을 받는 그 사람에 대해서 표현할 때 뭐라고 표현하냐면, 그 사람에게 그냥 선을 베풀어야 된다. 그 불쌍한 사람에게 정말 너무나도 연약한 사람에게 도와주어라. 너희 옆에 있는 그 강도 만난 사람 같은 사람에게 그냥 도와줘라.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표현하냐면, 마땅히 받을 자에게, 그러니까 마땅히 받는다고 하는 얘기는, 또 도움을 받는 사람이 권리가 있다는 얘깁니까? 주는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는 얘깁니까? 받는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는, 마땅히 줘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주는 사람은 누굽니까? 채무자가 되겠죠. 받는 사람은 누가 되겠습니까? 채권자가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에게 누구에게가 선을 베푼다고 한다면, “아, 내가” 의시대면서, “내가 사랑이 많고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니까, 그래서 내가 당신 도와주는 거야.” 하면서 이렇게 뻐기면서 이렇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줘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채무자가 돈을 빌린 게 있는데, 채권자에게 빚을 갚아야만 하는 것처럼, 의무로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 그러니까 이 표현이 아주 묘한데요. 우리가 어떻게 선을 베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여기에서 등장하는 겁니다.

우리가 선을 베풀 때 어떻게 선을 베풀어야 되는가? 교만한 마음으로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어떻게 어떠한 마음으로 내가 당신에게 도와줄 수 있는 기회를 나한테 주셨으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그런 감사의 마음으로 선을 베풀어야해요. 내가 주는 자가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내게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당신을 도울 만한 여력이 있고, 줄 수가 있으니까, 그러한 기회를 준 그분을 향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을 베풀라. 그게 바로 27절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는데 사실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다 그렇게 해왔습니다. 어떻게 했죠?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할 때 그렇게 했어요. 부모의 마음이 뭡니까? 자녀들에게 다 해주고 싶어요. 다 쏟아주고 싶고, 더 해주고 싶고, 못줘서 미안하고, 더 많이 못해줘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고, 그리고 그 자녀를 우리가 사랑하면서 기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그게 선을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그 관계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향해서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 주면서도 우리 부모에게 무엇인가 있다고 한다면 내게 있는 그 이유가 뭐예요? 우리 자녀를 사랑하라고 내게 주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다 주는 것이고, 다 아낌없이 사랑해 줄 뿐만 아니라, 더 못 줘서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우리가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 때에도, 그런 마음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잠언서 3장 27절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 여행을 다녔는데요. 바울 사도가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가졌던 마음의 자세가 바로 그런 마음의 자세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이 고생하면서 이런 선교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이만큼 고생하는 줄 너희가 알아.” “내가 이만큼 고생하는 거야” 하면서 자신의 고생하는 것을 자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수고에 땀을 흘렸는지에 대해서 알아주라고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교만한 마음으로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 사도는 뭐라고 고백했냐면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니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그렇게 고백하면서, 바울 사도의 고백이 뭐냐 하면 나는 빚진 자라라고 이야기했어요. 나는 빚진 자라.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그 대상자들을 향해서 무슨 의식을 가지고 있냐면, 채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채권자들이고, 내가 그 채권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그 채무자의 의식으로 빚진 자의 의식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겁니다.

조금 전에 제가 잠언서 3장 27절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선을 베푸는 자가 어떤 교만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채무 의식을 가지고 채권자에게 돌려주듯이 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바울 사도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나는 저들에게 빚진 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정말 고생하면서 정말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까지 겪어가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녔는데, 내가 이렇게 엄청난 고생을 하니까, 나 좀 알아달라고 이야기한 것이 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왜 하는가? 나는 저들에게 빚진 자가 되어서, 이 빛을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채무자의 자리에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를 생각하기를, 나와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었고, 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신다면, 심판하셔도 아무 할 말 없이 지옥불에 떨어져 마땅한 사람이 바로 나인데,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떻게 내가 이 영원히 멸망할 자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그것은 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시켜주셨으니까, 저 이방인들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이 사명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고, 이 사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시고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사도로 만들어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이 나를 영원히 심판의 길로 보낸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게 하신 것이고, 내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누구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라? 저 복음을 들어야 될 사람들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래서 나는 채무의식으로 빚진 자라고 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다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을 베풀 힘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있는 그 힘을 사용하여서 이웃에게 선을 베풀게 하기 위해서 그런 힘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나고 내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이러한 것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것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에게 빚진 자들이고 마땅히 베품을 받아야 될 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 사랑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제사장장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연결시키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인들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그런 사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기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감사하면서, 이방 민족들을 향해서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서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그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선민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이방 민족을 무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당신들은 망할 민족이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는 택한 민족이니까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서는 저 할례받지 못한 민족이라고 비난하면서, 저주하면서, 제사장 나라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그 사명을 망각해버린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슬픈 역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마치 반장을 세워 놓았더니,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자기 반 학생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 행태일 것이고, 대통령을 손 뽑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이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그런 신하로서, 국민의 공복으로써 뽑아주는 것인데, 오히려 국민을 무시하고 그냥 자기 뱃속만 채우고 자기 가족들만을 돌보는 그런 나쁜 대통령이 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느 것이든지 마땅히 선을 베품을 받아야 될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따뜻한 말 한 마디든, 손 한 번 잡아주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든, 어떤 종류의 선이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그 선으로 우리 이웃들을 사랑하고 품고 돌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8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까지는 우리가 이해가 잘 되겠습니다마는, 과연 28절의 말씀대로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살아도 괜찮을까라고 하는 질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인생을 산다고 한다면 괜찮을까?”라고 하는 질문이 당장 떠오르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속여 취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 극성하고 있는 보이스피싱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조금만 어리버리해 보이면, 우리가 조금만 유약해 보이고 우리가 조금만 허점을 보이고, 어떤 여유를 보이면 우리를 다 빼앗아가 버리고, 우리의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과연 이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도 괜찮을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겁니다.

종종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은 이런 식의 대우를 하는 줄로 알고, 목사님에게 와서 목사님 것을 다 뺏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만일 우리 성도들이 이런 식으로 살게 된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당장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달려와서 이것저것 다 빼앗아가버리고 결국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도둑들은 애써 속이고 훔치러 올 필요 없이 당당하게 와서 요구하고 그냥 빼앗아가 버리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누군가 와서 우리들에게 달라고 하기만 하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다 줘야만 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것은 오늘날의 상황과는 좀 많이 다른 그 옛날 시대에 주어진 말씀이었는데요. 그 시대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이웃에게 달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경우에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고 한다면, 사실 이 말씀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정말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승휼의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도와주라고 하는 그런 말씀인데, 오늘날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냐면 그냥 정말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속이는 방법으로, 그리고 남의 것을 취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렇게 좀 어리숙한 사람들의 것을 감언이설로, 혹은 거짓말을 통해서 자기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것이냐 거짓말을 해가면서 다 속여 빼앗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는 점이 참 많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무조건 달라고 하기만 하면 그러면 무조건 다 줘버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선한 일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일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도와줄 필요가 있겠지만 그런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습관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또는 무책임한 삶을 살면서 그리고 자신의 것을 자신이 해결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려고 하는 악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술에 빠져 있는 사람들, 도박을 하는 사람들, 혹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고 애쓰려고 하지 않은 채, 그냥 편하게 이웃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하고, 그렇게 해서 무작정 도와준다고 한다면, 그것은 현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선한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도와준다고 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하고,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고, 우리의 삶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는 그런, 그런 노력들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하지 않은 채 열심히 살려고도 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도 않고 정말 수고도 하지 아니하면서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빌붙어서, 그 사람의 흘린 땀을 그냥 공짜로 얻으려고 하는 그런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악용당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되기 때문에, 돕는 사람, 이 말씀 때문에 28절의 말씀 때문에, 그러니까 누군가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무조건 다 주라고 하는 그런 식의 말씀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데 적용이 될 수 있냐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의 경우와 같은 경우에만 해당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강도 맞는 사람이 있어서, 피를 흘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가서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런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일도 하지 않고 맨날 놀면서, 그냥 허랑방탕하게 아무렇게나 막 살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와서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고, 또 달라고 하면 또 와서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어야만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29절에서부터 30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헤아려 꾀하지 말며, 사람이 내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이죠. 이웃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될 것이고, 이웃과 까닭 없이 다투어서도 안 될 것이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항상 이웃을 향해서 사랑과 배려를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31절 말씀. “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포악한 자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포악하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라가는 길은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그런 포악한 자를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그의 죄의 유혹에 따라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왜 우리가 그런 포악한 사람의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까? 32절에서부터 34절 말씀 가운데 이렇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대제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결국 포악한 자는 망하게 될 것이고, 패역한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것이고, 악인은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고, 의인의 집에는 복을 내려주실 것이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영광을 기업으로 주실 그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약삭 빠르게 사는 게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고, 남들을 배려하는 것들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선을 베풀고 사랑하는 것이 그게 지혜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억울한 일들을 당할 수도 있겠고 악을 행하면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을 줄로 믿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강도 만난 자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보시고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강도 만난 자를 치유해 주시듯, 예수님께서는 저 높고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천한 이 세상까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려서 우리를 싸매어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보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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