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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죄 (잠 6:6-11)

오늘 잠언서의 말씀은 게으른 인생을 살지 말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데, 부지런히 살라고 하는 교훈을 하면서, 개미의 부지런함을 예로 들면서 배우라고 합니다.

개미는 어떻게 하는가요? 여름 동안에 예비하고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데, 그러한 개미의 부지런함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오늘 잠언서의 말씀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개미가 여름 동안에 예비하고, 추수할 때 양식을 모으는 게 정말일까요? 이게 과학적으로 맞는 이야기이고 정확한 묘사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개미가 굳이 여름이나 추수할 때, 즉 가을에만 예비하고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개미는 사시사철 늘 열심히 모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에도 모으고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겨울에도 모으고, 끊임없이 모으고 있는데, 오늘 잠언서의 말씀에서는, 그런데 특별히 뭐라고 이야기하냐 하면, 여름에 예비하고, 가을에 양식을 모은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말로 개미가 그때에만 모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사이클을 반영해서, 우리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설명하기 위한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우리 사람들은 주로 언제 일을 하고 모으죠? 여름에 일하고 가을에 추수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개미에 투영시켜서, 그런 언어의 표현들을,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언어의 표현들을 차용해서, 개미에게 설명하고 있는 그런 문학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냥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 개미는 열심히 일을 하고 모은다’라고 하는 그런 개념을 말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건 과학적으로 맞지도 않는 말이다.’ ‘이건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고 시비를 그렇게 걸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개미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모으는 그 예를 들면서, 우리로 하여금 배우라고 교훈하고 있는데, 우리 인간들이 배워야 할 개미의 특성이 있다고 한다면, 부지런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개미들이 어떻게 부지런한가? 오늘 잠언서의 말씀에서는 두령이 없어도, 그리고 감독자가 없어도, 통치자가 없어도,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 양식을 모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러한 표현이 정확한 묘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 곤충학자들이 연구를 한다고 하면, 아마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강제하는 어떤 강제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그 모습, 일반인이 바라볼 때에는 어떤 강압적인 어떤 폭력이 있거나, 어떤 강압적인 제도 하에서, 할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미라고 하는 것이 본성적으로 그렇게 열심히 양식을 모으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또는 이렇게 협력해서 일을 하고, 그렇게 부지런히 일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에게 해주시는 교훈이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야 된다고 하는 교훈의 말씀을 오늘 성경 말씀 가운데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 크리스찬들 중에서도 부지런히 열심히 살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요. 우리가 부지런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누군가 감독을 하고, 그리고 감독을 하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내고, 닥달을 하고, 뭔가 칭찬과 혹은 책망과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서 강제해야만, 열심히 일을 하고, 그러한 감독이 없을 경우에는 누군가 무섭게 하거나 닥달을 하지 아니하면, 나에게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없으면,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나태하게 행동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보면 일꾼들이 일을 하는데요. 일을 하라고 불러오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슬렁슬렁 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좀, 제발 열심히 일하라’고 ‘우리가 당신들에게 월급을 주려고 하면, 일당을 주려고 하면,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하면서 좀 기분 나쁜 소리를 하면, 그때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정작 감독자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열심히 일하지 않고, 둘러 서서 잡담을 하거나, 또는 담배를 피거나 하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경우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일을 할 때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지 아니하면, 상관이 보지 않거나, 또한 어떠한 강요나 어떠한 장치가 없으면, 그저 슬슬 눈치 보아가면서, 적당히 일하고 또 나태하게 행동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요. 이것은 마치 달란트의 비유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주인이 멀리 떠나버려서, 더 이상 보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내가 열심히 일을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고, 그냥 게으르게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있는데요. 우리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가르침, 에베소서 6장 5절에서부터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선한 덕목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고, 만일 어떤 사람이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요령을 피운다고 한다면, 그것은 악한 모습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 중에는 성경적인 가르침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이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지혜는 열심히 안 하는 겁니다. 눈치를 봐서 감독자가 없다? 눈치를 봐서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면, 슬슬 요령을 비우면서, 적당히 내 이득을 찾고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지혜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 세상의 지혜가 가장 널리 통용이 되고 가장 잘 체화시켜서 가르치는 곳이 있는데 그게 군대입니다. 군대에서 우리 남자들은 그곳에서 어쩌면 평생을 살아갈 잘못된 학습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군대에 있으면서 배우게 되는 하나의 원리가 무어 무엇이냐 하면, 튀지도 말고, 뒤쳐지지도 말고, 그냥 ‘중간에 숨어 가는 것이 제일 좋다’라고 하는, 하나의 삶의 요령을 배우는 곳이 군대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모든 남성들이 그 군대에서 배운 것이, 괜히 내가 앞서 나갔다가, 괜히 내가 잘난 척하고 튀었다가,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니까, 열심히 하지도 않고, 그리고 뒤로 쳐지지도 않고, 중간 정도만 따라갈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게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이 몸에 익숙하게 베어져 버리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배운 하나의 일종의 삶의 방법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강화되면서, 어쩌면 우리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행동의 방법, 그것이 이 세상의 지혜의 방법을 따라가면서, 그렇게 요령을 적절하게 피우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고, 그렇게 요령을 잘 피우면, 내가 정말 지혜롭게 행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저는 교역자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때가 있습니다. 어떤 한 청년이 군에 들어가게 되니까, 그 군에 들어가는 청년을 향해서 어떤 교역자가 충고를 하더라고요. 군에 들어가는 청년을 향해서 어떤 교역자가 충고를 하면서 하는 말이, ‘군대 가게 되거들랑, 튀지도 말고, 뒤쳐지도 말고, 그냥 중간만 따라가. 그게 제일 안전한 거야.’라고 이야기를 해주는데, 물론 그 마음에, ‘이 청년이 군대에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청년이 군대에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무사히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에서 그 이야기를 해준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기는 알았지만,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제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더라고요. 과연 이게 군에 들어가는 우리 크리스찬 청년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인가? 적당히 행동하다가 남들에게 혼나지도 말고, 뛰어난 일을 해서 그래서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지도 말고, 적당하게 눈에 띄지 않게, 잘 숨어 지내다가 제대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청년 크리스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인가?’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큰 충격에 빠졌는지 모릅니다.

그 교역자가 평상시에도 사역을 그런 식으로 하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는데, 왜 그렇게 사역을 하는지, 나중에 그 이유를 알 수만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을 하라고 시키고, 화를 내면서 이것을 하라고 말하면, 그러면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면 자기가 창의적으로 자발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일을 안 만들려고 하고, 가능하면 어떤 일을 만들지 않고, 그저 시키는 일만, 문제되지 않게, 적당히 따라가는 것만 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저 사람은 왜 목회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교회에서 사역을 왜 하고 있을까?’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교역자를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청년을 향해서, 군대 가는 청년을 향해서 해주는 말이, 군대 가서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뒤쳐지지 지만 말고 그냥 적당히 따라가라고 하는 그런 권면을 하는 그 모습을 보고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될 삶의 태도가, 그런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잠언서의 말씀은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는 것이죠. 부지런한 것이 성실한 것이고, 성실한 것이 신실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신실한 자를 찾으시는데, 그런 신실함이 아니라, 성실함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아니라, 적당하게 눈 가리고, 사람들이 보는 그 선 안에서만 적당하게, 요령껏 해 나가려고 하는 그런 삶의 자세가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군대 가는 청년을 향해서 권면합니다. ‘가거들랑 정말 열심히 하라.’ 남이 시키지 않아도, 가서 하고, 먼저 자원에서 봉사하고, 힘든 건 내가 먼저 하고, 그 군대에 3년 동안, 지금 3년이 아니죠, 어느 정도 봉사를 군대에서 지내게 된다고 한다면, ‘국방부 시계는 흘러간다’ 하면서, 가만히 시간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군대에 가서 정말 내가 할 일은 무엇이 없는지, 정말 힘들고 연약한 전우가 있다고 한다면, 그를 위해서 내가 봉사해 줄 것은 없는지, 청소한다고 한다면 내가 먼저 더 많이 청소를 하고, 무엇이 힘든 일을 한다면, 내가 먼저 자원해서 그 힘든 일을 내가 먼저 하고, 훈련 받는다고 한다면,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정말 최고의 훈련을 받는, 그리고 그 군대에서 최고의 병사가 되어서,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그렇게 있다가 군대를 제대하라고, 그게 우리 성도의 모습이라고 권면해 줍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은 군대에서 그렇게 하셨나요?’라고 물으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몸이 힘들어서 그렇게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고, 실패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게 정답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은 ‘가서 개미에게 배워라’는 거에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감독자가 있고 통치자가 있어서, 그래서 마지못해서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그 개미에게 가서 배워라‘ 하는 것이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면, 그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정도, 그냥 받는 만큼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일만 하다가, 안 시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가 나서서 일을 더하고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정말 나를 고용한 사람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해서, 그래서 정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보여야 되는 것이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냥 하는 일이 아니라, ‘주께 하듯 하라.’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만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그것이 그냥 하찮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일이오. 군대에 가서 내가 훈련받고 군대에서 일하는 그것도, 그것도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주님께 하는 일이고, 우리가 하는 그 모든 일들이 다 주님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께 하듯 하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내 일인 것처럼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해야 된다. 왜?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며,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것을 하든지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되고, 주님께 하듯 해야 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는 이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언서 6장 10절에서부터 1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내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내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당연한 겁니다. 부지런하면 풍성해질 것이지만, 게으르면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부지런하고 수고한 자에게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고, 게으른 자는 빈궁을 당하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개미와 베짱이”라고 하는 동화가 있습니다. 개미는 여름 동안에 열심히 일을 했고, 베짱이는 낮에 음악을 즐기며 놀기만 했는데, 언제가 다가왔는가? 항상 여름만이 아니라, 겨울이 곧 다가오게 되는데, 겨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때를 가리킵니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죠. 고통스러운 때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 겨울의 때에는 미리미리 준비했던 개미는 편안하게 잘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지만, 베짱이는 그 겨울에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서, 곤란을 당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솝 우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베짱이나, 그리고 개미와 베짱이가 아니라, 원래는 매미라고 하는데, 아무튼 매미든 베짱이든, 사실은 이 곤충들도 게으른 곤충들이 아니고 정말 부지런한 곤충들이라고 하는데요. 아무튼 이 이솝 우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는 그런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열심히 일해야 풍성해지는 것이고, 게으를 경우에는 결국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그 이솝 우화에도 이야기하고 있고, 오늘 잠언서의 말씀 가운데서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개미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고 수고했는데, 그래봤자 그냥 직장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그런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데, 베짱이는 늘 기타 치고 놀고 그러다가 나중에 연예인이 돼서 돈을 엄청나게 번다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요즘에는 좀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요즘은 무슨 얘기를 합니까? 정말 성실한 사람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봤자, 그저 힘들게 힘들게 그렇게 직장생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베짱이처럼 지내는 사람은 부모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받아서 계속 여유롭게 늘 해외여행 다니면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는 그런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이죠. 정말 하나님의 법칙이 맞습니까? 부지런한 자가 보상을 받고, 게으른 자가 궁핍하게 될 거라고 하는 이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 맞습니까? 하나님의 법칙 맞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사는가를 보면, 부지런한 사람이 항상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고 겨우 오후 2시 3시 그때서야 겨우 일어나는 사람이 알고 보면 수천억 대의 돈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그러고 있고,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새벽부터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보면 사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던져지는 겁니다. 하나님 정말 맞습니까? 부지런하게 살면 부유하게 되고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법칙이 맞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죠. 종종 그러한 예외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그런데 예외가 한두 건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래서 이 성경 말씀은 ‘이제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닌가?’라고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사실 모든 것이 하나의 요인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함과 게으름, 이 한 가지 요소만 가지고, 어떤 사람이 잘 사느냐 못 사느냐를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 말씀에 보면 내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장수할 것이고 잘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거라고 하는 말씀도 있는데, 다 따지고 보면 안 그런 것 같거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딱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지런함으로 모든 사람을 다 평가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부지런함으로도 평가할 수도 있겠고, 부모를 공경하는 걸로 평가할 수도 있겠고, 운동을 하고 있느냐로 평가할 수도 있겠고, 무엇을 먹느냐로 평가할 수도 있겠고, 잠을 어떻게 많이 자느냐? 적당하게 자느냐를 가지고 평가할 수 있겠고, 그리고 그 삶의 스타일이 위험한 짓을 많이 하느냐? 안전하게 행동하느냐에 의해서 차이점이 있을 수 있겠고, 그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래서 상식적이고 그리고 현명한 판단들을 내리느냐? 아니면 어리석은 판단들을 내리면서 사느냐 등등 우리의 인생의 요소들을, 우리 인생의 모습을 결정할 요소들이 한 가지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요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볼 때에는 그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하지 않고 그냥 어느 한 가지 요소만 가지고 이게 맞느냐 틀렸느냐를 따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거 하나님 말씀 안 맞는 것 같다라고 하는 그런 느낌을 느낄 때가 많은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그 말씀들이 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부모에게 똑같이 유산을 어마어마하게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어마어마한 유산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게으르고 한 사람이 부지런하다면, 그 똑같이 유산을 많이 물려받았어도 부지런한 사람이 게으른 사람보다 어쩌면 더 잘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고요. 그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은 또 부지런하고 어떤 사람은 게으르고 한다고 한다면, 그 요소가 어느 정도 차이점이 있을 수 있겠는데 우리가 아무튼 그것을 객관적으로 산술화시켜서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삼을 수는 없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우리가 신실 부지런한 것이 그것이 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고 우리가 게으른 것이 우리가 멸망의 길이라고 하는 것만큼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실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우리가 죄성으로 너무나도 많이 있어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부지런해야 되는데, 부지런한 것보다는 좀 더 자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욕망이고, 좀 더 쉬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욕망이고, 우리가 게으르지 않고 그냥 우리가 낙태해 버리고 싶은 그런 육체적인 욕망들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하기보다는 눈치 보면서 쉬고 싶고 눈을 가리고 아웅하고 싶고 한 그런 마음들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다시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정말 내 신분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애쓰고 최선의 나하고 신실해야 되는데, 그러한 마음들이 내 마음 가운데서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죄성이 있어서 그럴 수가 있겠는데, 그러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서 우리들의 죄를 자복하고, ‘주님, 다시 회복하여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모든 일들을 할 때 주님께 하듯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부지런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교훈을 받을 수가 있겠는데요.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4절에서 25절의 말씀이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게으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인이 미웠기 때문에 그래요. 주인은 나를 앞제하는 주인이고, 주인은 포악해서 내 것을 뺏어가는 주인이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주인이 아니라, 나를 나쁘게 대하는 주인이라고 하는 그러한 나의 생각 때문에, 열심히 일해 줄 수가 없는 거죠.

이 이야기는 반대로 말하자면, 두 달란트 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 주인이 없는데, 어떻게 종들이 열심히 일해서 다섯 달란트를 가진 종이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어떻게 또 두 달란트를 남길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정말 그렇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그런 가능한 사람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추측해 본다고 한다면, 한 달란트 받은 종과는 생각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그래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밉고, 주인에게 강포함을 당해서, 내가 너무나도 주인이 너무 미워요 싫어요. 그러니까 충성할 수 있는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런데 두 달란트 받은 종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주인만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어떻게 종이 주인에게 감사할 수 있죠? 그 가능성을 우리가 만약 추측해 본다고 한다면, 어느 나라 전쟁을 하다가 전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을 이 장군이 살려주어서 그래서 너 우리 집에 와서 일해라라고 목숨을 살려준 그 주인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나를 살려주셔서 너무나도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종은 최선을 다해서 일해주는 거에요. 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주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 사랑의 마음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가 등장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 세상을 다니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명성을 얻었습니까?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습니까? 고위 관직에 올라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바울 사도가 복음 전해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바울 사도는 무엇을 얻었는가? 두드려 맞았어요. 태장으로 맞고, 곤장으로 맞고, 또 강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온갖 위험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데, 바울 사도는 왜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러 다닐 수가 있었는가?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서 10절 말씀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핍박하던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지옥불에 쳐넣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죄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셨어요. 그 사도를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하나님의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아 주시겠다고 받아주셔서, 그래서 그 바울 사도를 사도로 삼아 주신 그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고맙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고마워서, 목숨을 다하여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부지런한 것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부지런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때, 최선을 다할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바로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사야서 37장 32절의 말씀에,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니라. 만군에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죄로 인하여 영원히 심판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저 먼 곳에서 한가롭게 구경하시면서, ‘거참 안 됐네. 아이고 그러지 말지. 왜 그랬을까?’ 한가하게 저 높은 곳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그냥 보고만 계셨던 것이 아니라, 열심을 가지고 달려오시는 거에요. 죄악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열심히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죠.

마치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서 쉬지 않고 모든 일들을 다 계획하고, 계획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모든 걸 계획해서. 결국은 그 룻을 자기의 아내로 삼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부 삼으셔서, 영원히 멸망받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신부 삼기 위하여. 열정을 가지고 쉬지 않고, 우리를 구원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 어떤 대가도 다 치러주셔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명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축복이에요. 우리가 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감사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느 분야에서든, 늘 감사하며 성실하게 신실하게 일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감사해서 최선을 다해서 정말 주를 위해서 섬기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그 열심히 섬기는 그 열심이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주신 바로 그곳이 우리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해야 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명의 현장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으로 불러주셨습니까? 남편과 아내로 부모와 자녀로 불러주셨다고 한다면,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의 신실한 일을 해야 될 그 자리입니다. 우리를 직장으로 불러주셨습니까? 그 직장이 별 내놓을 것도 없고, 사람들한테 자랑할 것도 없고, 허접한 직장처럼 보여도, 그곳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셨다고 한다면 거기서 신실하게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부지런하게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마치 요셉처럼.

요셉은 채색 옷을 입는 그런 정말 귀한 아들이었으나, 끌려가서 종이 되어서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런 허접한 집에서 종으로서 내가 무슨 기쁨으로 살 수 있는가?’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피해 다니면서,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적게 하기 위해서 피해 다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능하면 내가 일을 가장 적게 하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나의 목표가 아니라, 요셉은 그 보디발의 종으로,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최선을 다해서 주께 하듯 섬겼어요. 최선을 다해서 보디발을 섬겼을 때, 보디발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옥으로 더 떨어졌어요. 감옥으로 떨어진 그 순간에, ‘이제는 내 인생 끝났구나. 도대체 여기서 무슨 소망이 있나? 이 억울함 누가 풀어주나?’ 한탄하며 그리고 좌절하며, ‘여기서 무슨 일을 하겠나?’ 그냥 피해다니면서, 밥을 먹은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밥을 먹고, 그리고 일을 피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피해서 일을 조금만 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가서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수고하고 감옥에 나오는 밥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더 많이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 배고플까 봐 하나 더 다른 사람에게 주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지 감사하며, 성실하고 신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를 어디에 집어넣으시든지 하나님의 큰 도구로 사용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있는 곳은 마음에 안 드는 곳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나를 무시하고, 내 능력과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종의 옷을 입혀 놓았을 때, 우리는 불만과 원망 가운데 한탄하면서 그냥 시간만 보내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권고의 말씀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배워라.’ 가서, 집안 일 할 때도, 가서 배워라. 내게 오는 손님을 대접할 때에도, 그냥 눈가리고 아웅하고, 적당히 해버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진실하게 주님께 하듯이 섬겨라.

오늘 이 말씀처럼, 게으른 자가 결국 빈궁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부지런한 자가 결국 풍성해질 거라고 하는 것이, 눈으로 만져지지 않더라도, 이 죄가 많은 세상 가운데서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억울함을 풀어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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