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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자로 임직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어제 저녁 금요 기도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교회 로비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술 냄새가 풍기고 얼굴은 불그스레한 것으로 보아 이미 한잔 걸친 분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로비 안으로 들어오자 나를 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목사님 아니십니까?” 그러면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나랑 이야기하자는 거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기도회 직전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부교역자에게 인계한 후에 나는 자리를 비워야 했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분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도 목사가 되려고 합니다.”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 분이 한 말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도대체 목사가 무엇인 줄 알고서 목사가 되겠다는 말을 한 것일까? 그분에게 목사란 아주 좋은 직업 가운데 하나로 비쳐진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될 수 있는 직업이라 느껴진 모양이다. 왜 목사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아쉽기 그지없다. 정말 목사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일까?

그 다음 날에 있을 이웃 교회의 임직식에서 임직자들에게 축하와 권면의 말씀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터라, 직분으로 임직받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내게 어제 그 사람과의 만남은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말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 일은 좋은 일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로 임직받거나, 장로 집사 권사로 임직을 받게 되면 축하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이 일이 복된 일일까?

한 편으로 복된 일이다. 만일 직분을 받게 된 자가 순종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만일 직분을 받은 후에 불순종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복된 길일 수 없다.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결국 복된 인생을 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제사장으로 섬기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복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망령되이 여기며 악한 일을 도모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은 직분을 맡은 자가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하여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이 말씀은 직분을 맡은 자가 그 직분에 맞지 않은 삶을 살 때,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임직을 받는 자는 그 만큼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임직 자체는 복된 것이거나 복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임직받으면서 복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 있음으로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임직받는 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싶다. “절대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따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특별하게 사랑하셨던 제자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묻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신 적이 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22). 이 말씀은 베드로 너는 그냥 너의 일에만 신경쓰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말라는 권면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섬기는 일을 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의 기쁨이 사라지고 처음 가졌던 감격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처음 주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처음 세례를 받을 때, 처음 임직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은 감격이 넘친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 우리는 그 첫 기쁨과 첫 감격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에베소 교회가 아니었던가(계 2:4)? 언제 그렇게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이다. 그래서 마르다는 처음에는 주님을 대접한다는 기쁨으로 시작했지만 도중에 마리아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눅 10:40). 그렇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할 때, 우리의 감격과 기쁨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게 익숙하다. 그래서 거기서 자부심이나 우월감을 얻기도 하고 또한 바로 거기서 열등감이나 자괴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의 권면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말고, 각각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자신의 일을 하라는 것이다(갈 6:4). 그러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그 사실 자체로부터만 기쁨이나 자부심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조심하여야 한다. 그 옛날 바리새인들이 빠졌던 그런 잘못된 길로 다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상을 이 세상에서 받아버렸기에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하셨다(마 6:2, 5, 16). 임직을 받는 일이 복된 일이 되는가 아니면 저주받을 일이 되는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22일 국민일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98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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