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교만은 욕을 부릅니다 (잠 11:2)

교만과 겸손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오늘 잠언 11장 2절 말씀 가운데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이 한국말로 번역된 잠언 11장 2절의 말씀을 보면 그냥 밋밋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좀 더 참 멋있게 이 표현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공부를 한번 해볼까요? 한번 보겠습니다.

어떻게 읽느냐 하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나가는 것이 히브리어입니다. 그래서 지금 가운데에 있는 것이 히브리어인데요. 어떻게 읽냐면 “바 자돈 봐야보 칼론”이라고 하는 히브리어입니다. “바”라고 하는 것은 온다는 얘기고, “자돈(זָדוֹן)”이라고 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하는 말이고, “봐야보”라고 하는 것은 ‘그리고 온다’라고 하는 말이고, “칼론(קָלוֹן)”이라고 하는 것은 수치, 욕, 이런 의미입니다. 교만이 오면 수치가 온다는 말인데요. 제가 핑크빛으로 표현을 했습니다마는, 교만을 나타내는 “자돈”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수치를 의미하는 “칼론”이라고 하는 단어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슨 공통점이 있죠? 운(韻)이 같아요. 우리 한시 공부하다 보면 한시는 뒤에 운율이 같은 운으로 해서 이렇게 한시를 만들어 가듯이, 이 히브리어 언어에서도 시를 표현할 때, 어떤 문장을 표현할 때 운율을 맞추어서 표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 자돈 봐야보 칼론”이라고 얘기해서, “자돈”, “칼론”이라고 하는 교만과 수치를 같은 운율로 해가지고 기억에 팍팍 남도록, “자돈” 하면 “칼론”이 생각나도록, 교만하면 수치라는 말이 생각나도록 이렇게 연결시켜 놓은 것이 히브리어 표현입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온다고 하는 우리 한국말 번역보다는 히브리어 표현이 훨씬 더 운율이 있어서, “아, 그렇구나. 자돈(교만)이 생기면 칼론(수치)이 오는구나”라고 하는 것이 생생하게 우리들의 마음에 박히도록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잠언 11장 2절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교만한 자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그런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겸손한 자야말로 정말 지혜로운 자라고 하는 것이 오늘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한 모습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요. 도대체 그러면 이 교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가리켜서 교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교만을 우리가 가지게 된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교만이 찾아오면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고 정말 욕을 당하게 되는 것이 교만인데, 우리가 그러므로 경계해야 할 것이 교만이라는 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싹트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야 될 것인데, 도대체 교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선을 행한 다음에, 뭔가 열심히 수고한 다음에,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한 다음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생겨나게 되는 자연스러운 만족감, 혹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생겨나게 되는 기쁨, 그런 것을 가리켜서 교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구분해야 될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이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있는데요. 그래서 하나님의 그 특성들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도 그대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선을 행하면 기쁘고 악을 행하면 정말 고통스럽고 슬픈 그런 마음이 우리들에게 자연스럽게 있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긍유를 베풀어주고 용서를 베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기쁨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만족감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고 애쓴 다음에 그 수고의 대가로 어떤 열매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면 기쁨과 만족감이 생겨나게 되어 있는데요.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생겨나는 것, 아, 정말 대단한 자부심이 생겨나고 만족감이 생겨나는 것은 교만한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사실 이러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기쁨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생겨나는 그런 만족감, 자부심 이런 거야말로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동력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건전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불교나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특히 불교에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자꾸만 비워야 한다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래서 우리들의 기쁨도 슬픔도 만족함도 궁핍함도 그 어떤 종류의 감정이라도 다 나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아예 그런 것 자체를 다 없애버려서 그냥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생각도 없는 그런 평온함, 어떤 거 하나에 따라서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그냥 이 세상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냥 내 마음 가운데 잔잔한 고요함,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이 그게 불교적 영성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기쁨도 별로 좋은 게 아니에요. 만족함도 바람직한 게 아니에요. 아마 유교적인 관점에서도 어떤 그런 관점들이 조금씩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서도 성경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왔던 유교적인 배경에서 성경을 읽기도 하고 불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성경을 읽기도 하기 때문에 성경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선을 행하고 그 선을 행하는 가운데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쳐나고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만족함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 자체를 성경은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선을 행할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정말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그것을 죄악시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애쓴 다음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다음에 수많은 수확을 거두게 될 때 기쁨이 넘치게 되고 즐거움을 얻게 되고 성취감을 누리게 되는 것이야말로 그것은 건전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잠언 11장 2절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처럼 교만이 오면 수치가 따라올 것이라고 했을 때, 그러므로 이것은 별로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그런 교만이 무엇일까? 도대체 이 교만이 무엇이고 교만이 아닌 만족, 교만이 아닌 기쁨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지 못한 교만, 결국은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자부심이나 정당한 기쁨, 정당한 행복한 마음을 넘어서서 그래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는 왜곡된 기쁨, 왜곡된 만족, 왜곡된 성취감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정당한 기쁨, 성취감, 자부심 이런 것들은 괜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조금 잘못되어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들은 바로 교만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무엇이냐면, 그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마음이 동반된 감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교만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에 있고 더 낫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내리고,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경멸하고 무시하는 그런 악한 마음이 수반되는 것이 교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교만은 단순한 정당한 기쁨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을 향한 무시와 모독, 멸시가 수반되는 것으로서 이것은 아주 사악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어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고 정말 성실하게 살아서 시험 공부를 잘해가지고 전교에서 1등 하는 그런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자기가 지금까지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그것은 정당한 거고 괜찮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순식간에 어떤 마음으로 변하게 되냐면, 다른 사람을 향한 경멸과 무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아주 깔보는 그런 마음의 태도가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죠. “저 공부도 지지리도 못하는 놈들” 그러면서 비난하고 무시하고 깔보는 그런 악한 마음들이 나타날 수가 있겠는데요. 이러한 모습, 그러니까 기쁨이 정당한 기쁨이 아니라 그 경계선이라는 것이 굉장히 깻잎 한 장 차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교만으로 쉽게 변해버릴 수가 있겠는데요. 아무튼 그러나 차이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겁니다. 정당한 기쁨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죠. 대표적인 케이스를 성경에서 찾는다면 누가 있죠?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신앙생활을 참 열심히 했어요. 여러분 신앙생활 잘한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겁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마음 가운데 기쁨이 넘치지 않습니까? 정말 좋은 것이고 그것이 행복해지게 되는 요소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견주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태도로 나타나는 겁니다. “아니, 목사라고 하면 이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니야? 장로라면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아?” 그렇게 기준을 세워놓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누가복음 18장 11절에서 12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바리새인들이 기도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이 행한 것은 다 잘한 거예요. 못한 게 없어요. 그런데 그 일들을 하는 가운데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경멸하는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죠. 가장 사악한 형태의 교만함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예들이 성경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헤롯 왕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헤롯 왕은 연설을 하는데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 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에 교만함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안하무인이고 자기가 마치 신이라도 된 것인 양 교만한 마음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셨다고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있는데요. 전 세계를 통일한 군주였습니다. 어느 날 왕궁 위에 올라가 자기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보면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이 세상을 얻어냈다”는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그 느부갓네살을 치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다니엘서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왕위에 오르고 난 다음에 자기가 이룬 업적에 대해 생각하며 인구 조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악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가운데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화를 내며 분노하며 말을 내기 시작했는데요. 교만한 마음이 들 때는 분노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겁니다. 상대방을 깔보게 되고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죠. 민수기 20장 10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판결을 받게 되는데요. 모세가 처음 사역할 때에는 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출애굽기 14장 13절 말씀에 보면 그렇게 기록합니다. 그런데 기적이 나타나고 이끄는 가운데 자기가 기적을 베푸는 것인 양 착각하고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교만해져 버린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사무엘하 6장에 웃사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법궤가 흔들리는 순간 달려가 만졌는데 하나님께서 쳐 죽이셨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웃사가 이 법궤를 내가 관리하고 보존하는 사람이라는 교만한 마음으로 대했기에 결국 그렇게 되었다고 평가했는데, 의미 있는 해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정당한 기쁨과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교만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당한 자부심은 무엇이고 나쁜 교만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자부심과 교만의 차이에 대해 김영자 씨가 쓴 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자부심과 교만

그대는 자부심과 교만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내가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는 생각은 자부심이요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교만입니다 겸손히 낮추어 남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은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요 결코 남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안정감이 있어 누구든 기댈 수 있지만 교만한 사람은 갈대와 같아서 아무도 그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라는 자부심은 갖지만 하나님이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교만한 사람은 아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교회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무척 사랑하신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우리 교회만큼 좋은 교회가 어디 있느냐는 교만한 교회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부심은 있어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언제나 하나님 의식 속에서 살고 자기 도취 속에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논설은 아니지만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자부심과 교만 사이의 경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하나님을 계산에 넣었느냐 넣지 않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자부심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것이라면, 교만은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공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감사가 나타나지만 교만한 사람은 불평이 나옵니다.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지만, 교만한 사람은 사명감을 잃고 남을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우리는 교만을 유교적 관점에서 생각하여 무조건 드러내지 않고 숨겨야 겸손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 교회 성도님들을 보니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드러내면서도 참 겸손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미국 교회는 헌금자의 이름을 다 적어 놓습니다. 성경책 한 권, 의자 하나, 방 하나에도 누구를 기념해서 바쳤는지 이름이 다 붙어 있습니다. 무명으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교만한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성도님들은 무명으로 하기는 하는데, 안 하는 사람들을 깔보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은 자부심은 강화하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내 힘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힘으로 하는 자세로 남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교만이 싹트는 가장 위험한 지점은 사람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는 늘 옆 사람을 신경 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준 사람도 있고 한 달란트 준 사람도 있습니다. 옆전 두 닢을 드린 과부의 마음을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교만해진다면 그것은 나쁜 교만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4절에서 5절은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내가 행한 일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보는 겁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을 보고 선한 일을 하면 자부심이 아니라 교만함이 생길 뿐입니다. 교만에는 수치가 따른다고 오늘 성경은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거품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심판날 앞에 거품은 사라지고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게 됩니다.

늘 넘어지는 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겸손하게 신앙생활 해야겠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솟아오르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 순간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 다시 한번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다시 한번 일어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Pride, Humility, and True Wisdom

Today, we will examine the words regarding pride and humility. Proverbs 11:2 records: “When pride comes, then comes disgrace, but with humility comes wisdom.” In the Korean translation, this verse might feel a bit plain. However, in the original Hebrew, this expression is crafted beautifully. Let’s look at the Hebrew together.

Hebrew is read from right to left. The phrase in the middle reads: “Ba zadon wayyabo qalon.” “Ba” means “comes,” “zadon” means “pride,” “wayyabo” means “and then comes,” and “qalon” means “disgrace” or “shame.” So, when pride comes, disgrace follows. If you look at the words “zadon” (pride) and “qalon” (disgrace), you will notice they share a common sound. They rhyme. Just as classical poems use rhyme to create a rhythm, Hebrew poetry uses rhyme to make truths stick in our minds. By pairing “zadon” with “qalon,” the Bible ensures that whenever we think of pride, we immediately think of disgrace.

Compared to a simple prose translation, this Hebrew expression vividly embeds the truth into our hearts: pride is inextricably linked to shame. The Bible teaches that while the proud will face disgrace, the humble will avoid it, for the humble are truly wise. Therefore, it is vital for us to put away pride and clothe ourselves in humility. But what exactly is pride? What is it that we must guard against so that it doesn’t take root in our hearts?

Pride is not the natural sense of satisfaction or joy that arises after we have done something good, worked hard, or performed a kind deed. We must distinguish between the two. Because we a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we share His heart. God’s character is reflected in us; one of these traits is that we naturally feel joy when we do good and feel sorrow or distress when we do evil. When we practice love, help others, show mercy, forgive, and live in obedience to God’s will, a natural joy springs up in our hearts. This sense of satisfaction or healthy pride after a job well done is not a sin. In fact, this healthy self-esteem and satisfaction are important motivators that drive us to continue doing good. These are healthy emotions.

From a Buddhist or sometimes a Confucian perspective, there is an obsession with “emptying the mind” to the point where all emotions—joy, sorrow, satisfaction, or want—are viewed as obstacles. Buddhism seeks a state of equanimity where one feels nothing, regardless of what happens in the world—a stillness that is neither happy nor sad.

However, the Bible does not take this view. We often misunderstand the Scriptures because we read them through the lens of our Confucian or Buddhist cultural backgrounds. The Bible does not forbid us from feeling overflowing joy or a sense of accomplishment when we do good. Feeling pleasure when seeds sown in tears result in a harvest of joy is a healthy, human emotion.

The “pride” that Proverbs 11:2 warns against—the pride that brings disgrace—is a distorted form of joy or achievement. It is what happens when legitimate satisfaction crosses a line and moves in a wrong direction. It is a perversion of healthy self-esteem.

The defining characteristic of this sinful pride is that it is accompanied by contempt for others. Pride is not just simple joy; it is a feeling of superiority born of comparison. It is an inflated self-evaluation that leads one to look down on, despise, or ignore those they perceive as “lesser.” This kind of pride is wicked because it involves the belittling and insulting of others.

Suppose a student works harder and more faithfully than anyone else and ranks first in the school. It is perfectly fine for them to feel joy as a reward for their labor. That is a legitimate feeling. However, that heart can instantly turn into pride if they begin to look at others with contempt, thinking, “Look at those fools who can’t even study.” The boundary between legitimate joy and sinful pride is as thin as a single leaf. It can shift in an instant. The difference is clear: pride moves toward despising others. The prime example in the Bible is the Pharisees.

The Pharisees were very diligent in their religious lives. Being diligent in faith is a good thing. We should feel joy when we try to live by God’s Word. However, at some point, they began to compare themselves with others and treat them with contempt. They set a standard and looked down on anyone who didn’t meet it, thinking, “If you’re a pastor, shouldn’t you at least do this?” or “Shouldn’t an elder do that?”

In Luke 18:11–12, a Pharisee prayed like this: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Everything he did was “good” in a legal sense, but his heart was filled with the most wicked form of pride—contempt for his neighbor.

There are many other forms of pride in the Bible where contempt might not be as obvious, but the arrogance is clear. King Herod was struck down by God in the book of Acts because he accepted the people’s worship as if he were a god. In the Old Testament, King Nebuchadnezzar, the monarch who unified the world, looked at his achievements and thought, “I have done this by my own power and strength,” leading God to strike him. Even King David was not exempt; he conducted a census out of a wicked motivation to boast in his power.

Moses, too, stumbled in this way. When God told him to speak to the rock to provide water, Moses reacted with anger and arrogance. Pride often manifests as anger because one feels superior enough to belittle others. In Numbers 20:10, Moses shouted, “Listen, you rebels, must we bring you water out of this rock?” For this, he and Aaron were judged and told they would not enter the Promised Land. Earlier in his ministry, Moses had said, “See the salvation the Lord will bring you” (Exodus 14:13). But after many miracles, he fell into the illusion that he was the one performing them, saying, “Must we bring you water?” He failed to give glory to God and became proud. There is also the story of Uzzah, who touched the Ark of the Covenant when it stumbled and was struck dead. Pastor Eugene Peterson interpreted this by saying Uzzah had the arrogant heart of someone who thought he was the one protecting and managing the Ark of God.

This raises a question: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righteous joy and the kind of pride that inevitably leads to shame? What exactly is righteous self-esteem, and what is bad pride? Regarding the difference between self-esteem and pride, I would like to introduce a poem written by Kim Young-ja.

Self-Esteem and Pride

Do you know the difference between self-esteem and pride? To think “I am a precious child of God” is self-esteem; To think “God is only my God” is pride.

A person who can humbly lower themselves to serve others is a person with self-esteem; A person who can never bow to others is a person of pride.

A person with self-esteem has a sense of stability that anyone can lean on; But a person of pride is like a reed, and no one leans on them.

I hold the self-esteem of truly being God’s beloved daughter, But I hope not to be a person of pride who thinks God loves me more than anyone else.

Our church also has the self-esteem of knowing God is with us and loves us dearly, But I hope we do not become a church of pride that asks, “Where else is there a church as good as ours?”

The way to have self-esteem without being prideful is to always live with an awareness of God and not live in self-intoxication.

While this is not a theological treatise, I believe it is a poem that offers deep meditation. When thinking about where the boundary lies between self-esteem and pride, it seems to be the difference of whether or not you have “factored God in.” If self-esteem is rejoicing while acknowledging God, pride is failing to acknowledge what God has accomplished and instead emphasizing one’s own merit. Furthermore, in a person with self-esteem, gratitude is revealed, but in a person of pride, complaints arise. A person with self-esteem views their position as a calling and has compassion for the weak, but a person of pride loses that sense of calling and instead ignores and despises others.

We tend to view pride through a Confucian lens, thinking that humility means hiding everything and never revealing one’s name. However, when I observed the members of American churches, I saw many who were truly humble even while revealing their names with confidence. American churches record the names of all their donors. Even on a single Bible, a single chair, or a single room, a name is attached to commemorate who gave it. It is rare for a donation to be made anonymously. Despite this, I did not get a sense of pride from them. Instead, I felt their hearts of humble service and love for the Lord.

Believers in our country often give anonymously, but there are times when they may look down on those who do not give. The biblical perspective is to strengthen one’s sense of self-esteem while remaining humble before God, respecting others with an attitude that recognizes we act not by our own strength, but by the strength provided by the Lord. The most dangerous point where pride begins to sprout is when we look at other people. We are constantly preoccupied with the person next to us. However, God has created each of us differently. To some He gave five talents, and to others He gave one talent. Whether it is much or little is not a significant matter to God. The Lord was delighted with the heart of the widow who gave two small copper coins. Galatians 6:4-5 says, “Each one should test their own actions. Then they can take pride in themselves alone, without comparing themselves to someone else, for each one should carry their own load.”

The life of faith is very simple. It is not about looking at people, but looking at God. Matthew 6:1 says, “Be careful not to practice your righteousness in front of others to be seen by them.” If we do good deeds while looking at people, it only leads to pride rather than healthy self-esteem. Today’s Scripture teaches that shame follows pride. This is because pride is like a bubble. Before the final Day of Judgment, the bubble will vanish, and our naked selves will be exposed.

Falling down is part of who we are. Even when we resolve to live a humble life of faith, pride constantly springs up within us. In those moments, I believe we must all go before the cross of Jesus Christ, repent once more, and rise again by the power of the Lord’s grace.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