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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이 인도하는 길은 안전합니다 (잠 11:3)

잠언서의 말씀을 우리가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은 11장 3절 한 절을 살펴보게 됐습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겠지만,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성실한 사람이 어떻게 된다고요? 성실한 사람은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고요? “자기를 인도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기를 인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자기를 인도하는 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성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은 채, 그냥 흘러버리기가 쉬운데요. “자기를 인도한다” 도대체 “자기를 인도한다”고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를 인도하는 게 도대체 뭘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다음 행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면, 그 의미가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 그 다음 행이 무슨 내용이냐면, “사악한 자의 패역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인도한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의 반대 말인가요?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의 반대말로, 자기를 인도한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표현 성실한 성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를 인도한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어떤 뜻이냐면, 망하지 않게 된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망할 리가 없다라고 하는 이야기고, 망하지 않는다고 하는 얘기는 무슨 얘기입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성공한다는 얘기겠죠.

사악한 사람 폐업한 사람은 망하게 되겠지만, 성실한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잠언서 11장 3절에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읽은 잠언서 11장 3절의 말씀은 누가 성공하는 것이고 누 망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의 말씀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누가 성공하는 것인가?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들 가운데 성공하고 싶지 않으신 분 계십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 가운데 망하고 싶은분 분 계십니까? 아닐 거예요. 모두가 다 망하고 싶지 않고, 모두가 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데요. 우리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은데, 그런데 이 성경에서 가르쳐주시는 그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가? 누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건 바로 성실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얘기입니다.

성실하지 않고, 편법을 쓰고, 여러 가지 잘못된 방법을 쓰고, 여러 가지 잘못된, 이런 잘못된 일들을 통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은 망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성실한 사람은 성공하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이 오늘 잠언서 11장 3절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내용이죠.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는데요. 첫 번째 던지고 싶은 질문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다면 과연 성공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패역한 사람은 망하게 되고, 성실한 사람은 망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게를 인도하게 될 것이고, 성공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데, 도대체 성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이죠.

성공이 무엇입니까? 성공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에,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높은 지위에 올라가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엄청난 부를 이루거나, 아니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이죠.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야에서 탁월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 탁월한 성과를 드러낸 사람들,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가리켜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성공을 정의한다고 하면 조금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성공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어떤 관점으로 우리의 성공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것을 묵상해 본다고 한다면,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성공의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야 되겠는데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목적하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성공이 무엇이냐?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높은 지위에 올라가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어떤 뛰어난 업적을 이루는 그런 것들이 성공이 아니라,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성공한 사람은 불과 몇 명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거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사람이 소수인 것이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역시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고, 어떤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도 역시 소수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정의에 의해서는 대부분은 다 실패자일 수밖에 없고, 대부분은 다 성공자일 수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의 성공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시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살게 만드신 그 목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과 목적대로 따라 살아가는 삶, 그 삶이 성공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마다 주어진 사명, 그리고 사람들마다 주어진 목적은 다 다릅니다. 하나님께선 사람들을 만드실 때 똑같이 찍어내신 것이 아니라, 마치 비누 공장에서 비누를 찍어내듯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찍어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각각 다르게 아주 독특하게 창조하셨어요. 우리 옆에 사람 한번 쳐다볼까요? 한번 쳐다보세요. 독특해요? 독특하지 않아요? 정말 독특하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시죠. 따라서 성공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 다른 겁니다.

사람마다 다 성공이 성공의 기준이 다 달라요. 그래서 이걸 어디에 비유할 수 있느냐 하면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한다면, 그 안에는 여러 악기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있고 비올라가 있고 첼로가 있고, 트럼펫이 있고 트럼펫이 있나요? 아무튼 클라리넷이 있고, 오보에도 있고, 그리고 percussion 심벌도 있고, 여러 가지 악기들이 있는데요. 그 악기들이 성공한다고 하면, 어떤 게 성공입니까? 바이올린은 어떤 소리를 내야 성공이에요. 바이올린의 소리를 내야 성공이에요. 첼로는 첼로의 소리를 내야 성공해요. 심벌은 심벌의 소리를 내야 성공이에요. 그 악보에 맞추어서, 지휘자가 요구하는 그 순간에 뻥뻥 치면서, 그때 그 소리를 정확하게 내야 성공이 되는 것이죠. 모든 악기가 다 똑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소리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그 순간에, 그 음색에 따라서 정확하게 지휘자의 컨덕팅에 따라서 소리를 아름답게 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종종 우리가 합창을 하다 보면,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가 있는데, 4부로 쫙 맞춰서 찬양을 해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제가 테너를 막 하면, 옆에 베이스 하겠다고 서 있는 분이 제 목소리를 따라서 막 부르는 분이 계신데, 그럼 성공이에요? 성공이 아니에요? 성공이 아니에요. 베이스는 베이스를 노래 불러야지, 테너는 테너를 불러야 되고, 엘토는 엘토를 불러야 되고, 소프라는 소프라을 불러야, 그게 성공인 것이지 옆에 사람을 그대로 따라서 부르면 성공이 아니라 망하게 되는 겁니다.

각각 다른 소리를, 각각 다른 시간에 내야만 하는 오케스트라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각각 다르게 창조해 주셔서 그 사람에게 맞는 성공의 기준이 있는 것이죠. 이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는 것이고, 이 사람에게 주어진 목적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각각의 달란트를 주셨는데, 거기에 맞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에 따라 산다고 하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드러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높은 직책을 얻게 되거나, 많은 돈을 벌게 되거나, 아니면 뛰어난 업적을 누려야만 그게 성공인 것이고, 나처럼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번 게 아니라 내게는 조그마한 정도의 돈밖에 없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나는 우리 가정생활만 잘 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았고, 나는 실패한 삶을 산 것이라고 그렇게 자조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성공한 사람인가? 대통령이 된 사람이 성공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번에 대통령을 누가 당선될 것 같습니까? 1번입니까? 2번입니까? 여기서는 그렇게 많이 하지만, 저쪽 동네 가면 다르게 얘기하더라고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살던 사람이 그래서 대통령의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한다면, 우리는 성공했다라고 평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데 그건 그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고,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몫이 있는 것이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누가 성공한 사람입니까? 신앙생활의 분야에 있어서도 성공이 있을 수가 있겠는데, 누가 성공한 사람입니까? 목사가 되면 성공한 겁니까? 장로가 되면 성공한 겁니까? 권사가 되면 성공한 겁니까? 그것이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대하고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하는 점을 먼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그러면 누가 성공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성실한 자가 성공한다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실은 속임수가 없이 아주 신실하게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그 사명을 꾸준히 성실하게 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있었는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두 종들은 주인이 보지 않아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주인이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남기게 된 것이죠. 그 사람은 전혀 누가 보지 않아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쉬고 놀아라고 이야기해도, 자기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 주인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사역했는가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처럼, 성실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박수 쳐주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환호해 주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그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자가 신실한 자 성실한 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누가 성실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노예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실할 수가 없죠. 일을 하는데, 일을 하는데, 내 마음의 자세가 노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성실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 없어요. 노예들은 기쁨이 없는 겁니다. 그냥 쉬고 싶고, 마지 못해 일하고, 자기를 억압하기 때문에, 자기가 일하지 아니하면 혼나기 때문에, 맞기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노예의 멘탈리티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노예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실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보면, 주인이 보면 일을 하지만, 보지 않으면 쉬게 되는 거죠.

그러면 누가 성실할 수 있는가? 노예의 멘탈리티가 아니라, 그 일 자체에서 사명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기쁘고, 그리고 그 일 자체가 내가 내게 주어진 그 사명 자체가 참 내게 주어진 그 기쁨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자라야 그래야 성실할 수가 있는 것이죠.

주인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하는 자마다 성실하게 할 수가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어떤 분들을 말할 수 있냐면, 어머니와 같은 분들이에요. 어머니가 자녀들을 양육하고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때, 누가 시켜서 합니까? 법이 하라고 하니까 하나요? 그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걸 줄까, 어떻게 하면 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줄까? 이 아이에게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일까?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정하는 마음 때문에, 그래서 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하는 그 마음이, 우리 어머니들에게 있는 것이 보여지게 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정말 성실하게 정말 신실하게 일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겁니다.

교회도 보면 그런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특별히 그런 교회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누가 시키기 때문에, 혹은 박수 쳐주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냥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냥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난 기쁨이 되고 감동이 됩니다. 어떤 때는 그냥 교회 와서 청소를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청소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주차장을 쓰는 분도 계시고 또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가면서 정말 어떻게 하면 이 교회를 위해서 내가 헌신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 교회를 위해서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을까를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제가 얼마나 고개가 숙여지고 얼마나 참 감동을 받게 되는지 모릅니다. 정말 교회들의 교회 보배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전혀 애정이 없이 일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특별히 그렇게 애정이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냐면, 교역자들 가운데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같은 교역자 팀으로서 사역을 해 나가는데, 그 옆에서 바라볼 때 제 마음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왜 저 사람은 목회자의 길로 간다고 결심을 했을까? 왜 주를 위해서 하는 일들을 짜증 내고 일을 하기를 싫어하고, 일이 더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고, 일이 많아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교역자를 볼 때 제 마음 가운데 엄청나게 혼란스럽습니다. 왜 그랬을까? 처음 목회자의 길로 가려고 했을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자의 길로 가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했지만, 도중에 그 마음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이렇게 사람이 정말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노예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교역자를 보게 될 때 제 마음이 굉장히 혼란스럽고, 어떻게 하면 이분의 그 첫사랑을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 담임 목회자로서 엄청난 고민이 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그런 교역자와 함께 사역하는 것을 중단해야만 하는 그런 안타까운 결정을 내려야 할 될 때도 있었는데요. 그런 일이 있다 보면 성도님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죠. 목사님, 왜 그분 그만뒀습니까? 그분 괜찮은 분 같았었는데요. 그분 설교를 꽤 잘 하시는 것 같았는데요? 내가 은혜 많이 받았는데요. 왜 그분 그만뒀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없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가능하면 그분이 가지고 있었던 첫 사랑을 회복시켜주고 싶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게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될 때는 너무나도 안타까울 때가 있는데요.

오늘 잠언서의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면 성실한 자가 성공할 수 있다. 성실한 자가 망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그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 어떤 사역이든지 내게 주어진 그 사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어떤 사역이든지 가정에서 남편으로서의 사명이든지 아내로서의 사명이든지 아니면 회사에서 회사의 직원으로서의 사명이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가진 그 사명이든지 어떠한 것이 내게 주어져 있든지 간에, 성실한 마음으로 사역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서의 말씀을 보니까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가 성실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겠죠. 그래서 제가 이 잠언서 11장 3절 말씀을 읽고 그래서 설교 제목을 “정직이 인도하는 길은 안전합니다”라고 하는 제목을 잡았어요. 잡아놓고 오늘 잠언서 11장 3절을 연구를, 설교 제목은 미리 잡아놓지 않습니까? 미리 잡아놓고 그러고 나서 잠언서 11장 3절을 연구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이고 성경 말씀을 연구하다 보니까 번역이 좀 애매하게 돼 있습니다. 정직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정직. 정직이라고 하는 것은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직이잖아요.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정직의 의미죠. 숨기지 않고, 속이지 않고,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하는 그걸 가르쳐서 우리는 정직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그런데 제가 이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니까, 이 말은 정직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올곧은 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아요. 히브리어로 보면 예샤림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임”이라고 하는 것은 “임”하는 것은 복수형인데요. 이게 예샤림 하면 곧은, 바른, 그러니까 구부러지지 않은 똑바로 된, 그런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예샤림.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예샤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정직 “정직한 자의 성실은”이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굳은 사람 바른 사람 굽어지지 않은 아주 “올곧은 사람이 가지는 그 성실은 자기를 인도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맞은 번역 같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니까 전부 다 upright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 내용은 무엇이냐 하면 이게 솔직해야 된다 그런 의미를 여기서 표현하는 게 아니고, 아주 강직한 사람 굳은 사람 바른 사람 구부러짐이 없는 사람 그런 의미를 의미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성실과 어쩌면 같은 의미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의로운 자 성실한 자는 성공을 하게 되는 것이고, 사악한 자, 꾸부러진 자, 제대로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술수를 쓰고 제대로 하지 않고 뭔가 편법을 쓰고 하는 그런 자들은 결국 망하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이 잠언서 11장 3절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솔직한 것, 이거 honest하고는 좀 다른 본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성실에는 솔직함도 포함되는 내용이기는 하겠지만, 정직의 문제는 나중에 그 정직의 문제가 나올 때 따로 다루도록 하고,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냥 강직하고 구부러지지 않고 그래서 아주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야말로 성공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성실한 자가 성공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세 번째 우리의 질문이 무엇이냐면 그런데 왜 우리는 성실할 수 없는가? 성실하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 성공하고 싶은데, 그런데 왜 우리는 성실하지 못할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실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실한 것 자체의 기쁨을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성실할 수가 있는 거죠. 사랑하기 때문에 성실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자녀들에 대한 성실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그건 내가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쁨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인데,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끝까지 해나가기가 신실하게 해 나가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성실하게 하기보다는 어느 샛길이 없을까? 빠른 길이 없을까? 손쉽게 달성할 길이 없을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이라고 한다면 학생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무슨 방법을 써야 합니까?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나요? 열심히 공부하는 거죠.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공부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쉬지 않고 기도 공부하고 그러면 그 학생은 점수를 많이 받는 겁니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것이 재밌나요? 재미가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뭘 하고 싶어요? 게임도 하고 싶고, 나가 놀고 싶기도 하고, 또는 친구들하고 놀고 싶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면서, 그런데 내 마음 가운데 좋은 점수를 얻고 싶은 그 마음이 있다면,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니까 이런 학생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면, 컨닝하는 거죠. 혹은 여러 가지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서, 성실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서 성공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죠. 왜 우리는 성공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성실 자체가 힘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번 대학 입학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서 낙방을 하게 되면, 재수의 길을 걸어가게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데 그 재수를 결심할 때만 해도, 나는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내년에는 반드시 합격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그런데 왜 성공하지 못하죠? 그 마음이 대학 입시에서 실패했을 때는 그런 마음이 간절한데, 조금 하루 이틀 지나면 그 마음이 약해져 버려요. 놀고 싶은 마음, 쉬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른 데 신경 써야 될 것들도 많고, 자꾸 다른 일들이 자꾸만 생각이 처음 떨어졌을 때 그 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하고 성실하게 일년 내내 한다고 하면, 성공하겠지만, 그 마음이 그때 그 마음 첫 마음이 사라져버리는 거죠. 그래서 성실하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재수를 하면서도, 성실하지 못하니까, 자꾸만 오히려 재수하기 전보다 점수가 더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이 나오는 거에요.

다이어트에 왜 실패합니까? 처음 충격을 받아서 내가 살 빼야 되겠다 할 때는 살 빼고 싶은 마음이 막 들어요. 그런데 먹을 거 앞에 보면, 무너지는 거죠. 맛있는 치킨을 보면서, 맛있는 야식을 보면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면서, 무너져 버리는 거에요. 왜 우리는 성실하지 못한가? 성실하지 못하는 것은 성실 자체가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죠.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별로 재미가 없는 것이고, 그리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성실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손쉬운 성공을 갈망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이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되면 잠시 잠깐은 성공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 잘 속여서 그래서 내가 승리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 같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당장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건 결국 망하는 길이다.

성실한 사람은 그것이 더딘 것 같아도 늦는 것 같아도, 성실한 자가 승리하는 거라고 말씀해 주고, 따라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될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 성실하지 못한 채 쉬운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패망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서 해볼까요? 쉽게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패망의 길이다. 성실하게 인내하며 노력하는 것은 성공의 길이다. 이러한 잠언서의 교훈을 우리 모두가 다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늘 우리들에게 유혹이 있어요. 그 유혹이 어떤 유혹이죠? 그 옛날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선악과의 유혹이죠. 하나님께서는 어떤 길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셨는데, 그런데 하와에게 나타난 그 유혹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방법이 아닌 선악과를 먹어버리고, 단순히 아주 짧은 순간에 하나님처럼 되는 그 길을 지름길이 있다는 거에요. 그 길로 가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승인하지 아니한 그 길로 가서 성공할 것을 유혹하는 길이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어떤 유혹이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기다리는 그것보다, 하갈이라고 하는 여인을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되는 빠른 길, 손 쉬운 길, 성실하지 못한 길로 성공하는 그런 유혹이 주어졌던 것이죠. 예수님에게도 똑같은 유혹이 왔는데요.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할 그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지만, 사탄은 예수님에게 유혹하기를 돌로 떡을 만들어 버려라. 그렇게 유혹하고 있는 것이고, 내에게 절하기만 하면, 사탄에게 절하기만 하면, 네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아도,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내게 절하기만 하면, 이 세상 모두를 너에게 주겠다고 하는 그런 유혹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그 시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공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똑같은 시험들이 다가오게 됩니다. 성실하게 살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른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성실하지 못한 방법, 패역한 방법, 구부러진 방법,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표절을 하거나, 컨닝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여러 가지 잘못된 방법을 통해서 일확천금을 꿈꾸고 갑작스러운 성공을 꿈꾸고 무엇인가를 확 획득하려고 하는 그런 잘못된 그런 유혹들이 우리들에게 있을 텐데요. 그런 유혹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이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다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서 성실한 길보다는 성실하지 못한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순간에 다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완벽할 수만 있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 연약해서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다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바른 길이 아닌 잘못된 길로 또 가고 또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연약한 모습을 가진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주님의 십자가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 앞에 나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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