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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롬 5:6-8)

여러분들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그 대상은 아주 뛰어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고 꿀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참 멋진 목소리를 가진 그런 연예인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인데요. 그런 연예인이 누가 있죠? 아마 현빈을 떠올렸을 수 있겠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이라고 하는 그 드라마를 하면서 정말 멋진 그 청년이 꿀 떨어지는 그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때 참 우리들의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에 대한 팬덤이 아주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연예인들을 보면서 좋아할까요? 왜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정말 멋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뛰어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스포츠계에서 아주 뛰어난 기능 역량을 발휘하는 선수가 있다고 한다면 모두가 다 좋아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손흥민 선수를 알고 계십니까? 잘 알고 계시죠. 지난 Aston Villa 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면서, 엄청난 기량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정말 우리나라 선수가, 아시아 선수가 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다 열광하고, 모두가 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그렇게 해트트릭을 달성하면서 엄청난 그런 성과를 보여주었을 때, 미국의 nbc 스포츠라고 하는 곳에서 손흥민 선수를 데려다 놓고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인터뷰를 많이 하는 가운데 레베카 로우 하는 로우라고 하는 그런 여자 아나운서가 있었는데요. 그 아나운서가 이 선흥민 선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은 겁니다. 아주 그윽한 눈으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또 대화를 하면서 그래서 손흥민 선수와 대화를 마치고 손흥민 선수가 이제 퇴장할 때, 그 여기자가 다른 동료 기자들에게 무슨 얘기를 했냐 하면, 사진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나, 저 선수 너무 좋아. 나, 사랑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것이 정말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튜브를 한번 찾아봐서 어떻게 했나 하고 보려고 했더니, 아 그 장면은 무음으로 처리했더라고요. 아마도 결혼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봐, 무음 처리를 했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사랑한다는 얘기는 정말 좋아한다는 얘기죠. 정말 그 선수가 너무나도 뛰어나고 너무나 좋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이나 아주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사람들을 좋아하다가도, 그런 선수들이 갑자기 실력이 없어지거나,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한때 열광했던 그런 팬들이 돌변해 버리는 경우들도 생깁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하는 축구팀에 해리 머과이어라고 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몰라도 됩니다. 근데 그 선수는 어떤 선수냐면, 엄청난 돈을 받고서 이적해 온 선수입니다. 정말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이고, 그래서 그 선수가 엄청난 기량을 발휘해 놓았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엄청난 부진입니다.

지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4대 0으로 지게 되었는데, 그때 부진한 활약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서 골을 먹게 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자, 그 해리 머과이어라고 하는 그 선수의 집에 폭탄을 설치해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그런 위협이 있었다고 해서 신문의 뉴스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 선수가 생긴 모습이 좀 나이가 들어 보이길래, 그래도 좀 꽤 나이가 있는 선수인가 했더니, 알고 봤더니 1993년생이더라고요. 제 둘째 딸보다 한 살 많은 그런 어린 선수인데, 참 팬들로부터 그런 협박에 시달리게 되었을 때,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우리 사람들이 하는 이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사랑합니까? 그것은 뛰어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죠. 뛰어나기 때문에 사랑하고, 좋아하는 겁니다. 그 선수가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나를 만족시켜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의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폴 트립이라고 하는 분이 계시는데요. 그분이 쓴 <복음 위에 세운 결혼>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한번 그 책을 보여주고 싶은데요. 이 책은 정말 우리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경적인 결혼이 무엇인가? 부부 관계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 정말 잘 써놓은 책이기 때문에, 한번 한 번쯤 구입하셔서 읽어본다고 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이 폴트립이라고 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썼냐면, 이런 말을 했어요.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서로 상당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가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내 계획에 내가 생각한 방식에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일 수가 있다고 진단하는 겁니다.

지금 내가 세운 그 계획에 가장 잘 들어맞는 배우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만일 그 사람이 더 이상 나의 계획에 맞지 않게 되고, 내 계획에 들어맞지 않게 된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돌변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정말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진짜 사랑인지, 아니면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를 향한 이기심 때문에 상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그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요. 한 번은 좋아하고 있지만, 그 사람이 내게 즐거움을 주고 나를 만족시켜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한 에 있어서는 좋아하고 열광하게 되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에 그 사람이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돌변해버리고 마는 겁니다.

사랑과 폭탄 위협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사랑의 방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누구를 사랑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을 사랑하셨는가?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족시켜주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 5장 6절에서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 말씀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5장 6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주셨는데, 목숨을 내어주셨는데,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데, 왜 우리를 사랑했는가? 우리가 뛰어나고, 우리가 정말 멋지고,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언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셨다고요?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튼튼하고 건장할 때가 아니라, 연약해서 병들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 같고,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셨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연약할 때라고 했을 때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아스테네스”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연약하다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성경에서는 다양하게 이 단어를 번역했습니다. 연약할 때, 혹은 아플 때, 병들었을 때를 의미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우리가 손흥민 선수처럼, 그리고 현빈이라고 하는 그런 연예인처럼,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 아니라, 병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아무런 능력이 없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우리가 뛰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연약하고, 별 볼 일 없고, 나약하고, 심지어 병들어서 아무것도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연약한 자는 누구입니까? 연약한 자는 주님께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는 자에요. 우리는 마치 중풍병자와 같습니다. 중풍병자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중풍병이라고 하는 병에 걸려 있어요. 그래서 이 병을 낫고 싶어서, 치유자 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님 앞에 나아갈 능력이 없어요. 걸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움직일 수가 없는 거에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마치 38년 된 병자와 같아서, 내 몸이 낫기 위해서는 물이 동하는 순간에 제일 먼저 뛰어가고 싶은데, 그런데 뛰어가기는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죠.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지만 그러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이고, 연약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인데, 그렇게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연약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주님께서는 “탈락입니다”라고 선언해 버리신 것이 아니라,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그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연약한 것만이 아니라, 성경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또 표현하고 있는데요. 로마서 5장 6절에서, 또 어떤 식으로 우리를 표현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를 “경건하지 않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주의 성산에 올라갈 자격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자였는가? 경건하지 못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시편 15편에 보면 이런 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의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선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주의 장막, 주의 성산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죠.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에게 당당하게 나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의로운 자죠. 거룩한 자죠. 의롭고 경건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읽은 로마서 5장에서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연약한 자였을 뿐만 아니라,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었는데, 우리 경건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냐면, 죄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단순히 연약한 정도가 아니라, 단순히 경건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더 심각하게 말하면 죄인이라는 거예요.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사망이죠. 로마서 6장 23절의 말씀에 기록한 것처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으니까,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사망을 당해야 될 것인데, 심판을 당해야 될 것인데, 죄인인 우리를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건져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참사랑, 그 사랑을 확정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또한 우리를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냐면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이라. 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연약한 자를 향한 사랑이고, 경건하지 못한 자들을 향한 사랑이고, 죄인을 향한 사랑이고,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된 자를 향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제 사랑해 주셨는가요? 로마서 5장 6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로마서 5장 6절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여기서 “기약대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 “기약대로”라고 하는 말은 기약대로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바로 그때”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영어로는 그렇게 번역해 놓았는데요. 헬라어로 보면 “카타 카이론”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카타”라고 하는 말은 “무엇 무엇에 따라서” “뭐 뭐 할 때”라고 하는 말이고요. “카이론”이라고 하는 말은 “카이로스” “시간”이라고 하는 말의 목적격인데, 시간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시간에”라고 하는 말이죠. 그러니까 직역하면, 그때 우리가 연약한 그때, 주님께서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 사랑해 주셨는가? 그때 사랑해 주셨다고 하는 말이에요. 그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차일피일 미루면서, 그냥 시간 끌다가 마지못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 순식간에 나갔다는 겁니다. 그 바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황금 시간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지게 된다고 한다면, cpr을 하게 됩니다. cpr을 해서, 그 순간에 cpr을 하게 되면 살려낼 수 있을 것인데, 그런데 cpr을 하는 것이 늦어지게 되면 살려낼 수 없잖아요? 바로 그때, CPR을 해서 살려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살려내셨는가? 우리가 연약한 그때 그냥 방관해 두고 모른 척하고 나와 상관없다 하시면서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하면, 그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들을 향한, 더 나아가서 원수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조금만 상대가 실력이 떨어지거나,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거나, 나를 만족시켜주지 않거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마음이 돌변해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을 모른다고 방황하며 떠나갔을 때, 우리를 그냥 내 팽개쳐버린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하여 원수들을 위하여 희생해 주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제 가족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희생할 마음이 있어요. “패트릭 몰리”라고 하는 사람이 쓴 <거울 속의 남자>라고 하는 책을 보면 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 리틀포드”라고 하는 어떤 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어떤 그 필 리틀 포드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 21살짜리 마크라고 하는 아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알래스카로 연어 낚시를 하기 위해서 여행을 갔습니다. 수상 비행기를 빌려서 그 비행기를 타고, 알래스카라고 하는 추운 지방에 가서 연어를 낚기 위해서 잡기 위해서 놀러 간 거죠. 연어가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산란하기 위해서 돌아오면 그때 잡는 거잖아요? 수상 비행기를 타고 알래스카까지 날아가서 비행기를 세우고 바다 위에 세우고, 그리고 그 바다에서 그 비행기에서 내려서 연어를 잘 잡을 수 있는 상류 지역으로 걸어가 거기서 고기를 낚고 돌아오게 됐습니다. 한참 고기를 낳고 돌아오니까 바닷물이 쭉 빠진 겁니다. 썰물이 되어서 그 수상 비행기가 모래톱에 얹혀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물이 차야 그 바다 위에서 달려서 비행기가 뜨게 되어 있는 것인데요. 모래톱 위에 가라앉아 있는 그 비행기를 운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그날 밤은 비행기 안에서 자기로 결정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까 물이 들어왔어요. 비행기가 바닷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동을 걸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시동을 걸고 해서, 쫙 달려서 이륙하려고 했는데, 아뿔사 큰 일이 난 겁니다. 그 물 위에 떠 있게 만든 부력을 할 수 있는 그 플로트에 거기에 공기가 들어가 있어야 되는데, 바닷물이 빠지면서 비행기가 내려가다가 부딪혔는지 돌에 부딪혔는지 깨어졌고, 그 깨진 사이로 바닷물이 다 들어차 버려서 한쪽에 물이 가득 차 버린 겁니다. 다행히 그래서 그 비행기가 제대로 날지 못하고, 얼마 못 가서 바다에 꺾여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헤엄쳐야 되는 거죠. 같이 갔던 일행들은 열심히 헤엄쳐가지고 나와서 밖에 나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필 리틀 포드 박사가 못 나오는 거예요. 필리트포드 박사도 수영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못 나오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까 그 필 리틀포드 박사가 아들을 붙잡고 아들을 꺼내기 위해서 허둥버둥거리면서, 거기서 그렇게 노력하고, 자기 혼자 산다고 하면 그냥 헤엄쳐서 나와서 살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혼자 나와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나오지 못하는 그 모습을 보고, 아들을 붙잡고 그 아들을 끌어내려고 하다가, 이안류가 쳐서 그 리틀포드 박사는 그냥 아들과 함께 바닷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안타깝게 멀리서 보아야만 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쓰여져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일 것 같아요. 자녀들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내 목숨이 끊어져도, 그 아이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것이 우리 부모들의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자녀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것이죠. 2011년 2월에 나온 기사가 하나 있는데요. 어떤 캐빈 조던이라고 하는 그런 운동 선수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야구 선수인데요. 아주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서 고등학교 때 아주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입단 제의를 할 정도로 이렇게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가 케빈 조단이라고 하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프로야구 구단으로 바로 직행하기보다는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 해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 입학을 해서 야구부에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에 입학했는데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신장에 문제가 생겨서 신장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석을 해야만 하는 그런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휴대용 투석기를 차고 있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야구 선수가 그걸 자고서 운동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신장을 기증해 줄 수 있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맞는 신장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겁니다. 가족들에게서도 맞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원을 했습니다. 내가 신장을 주겠다고 해서, 자원을 했는데 신장을 줄 수 있도록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 대학의 야구 코치였습니다. 톰 월터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사진을 한번 잠깐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톰 월터라고 하는 야구 코치가 신입생 야구 선수를 위해서 자신에게 있는 신장 하나를 떼어서 기증한 거죠. 그래서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여러 신문에 보도되고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신장이 아무리 두 개라고 하지만 젊은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자기 가족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전혀 모르는 생면부지의 어떤 사람을 위해서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이야기가 뉴스에 난 거죠. 뉴스에 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뉴스에 난 거죠.

가족 간에는 줄 수 있어요. 제가 예전에 섬기던 교회의 어떤 성도님은 신장이 망가졌는데 언니로부터 신장 이식을 받았어요. 그런데 뉴스에 안 나더라고요. 왜 안 나죠? 가족이니까요. 가족이니까. 그건 줄 수 있는 거예요. 서로 사랑하는 관계니까, 줄 수 있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고, 자녀가 부모에게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코치가 선수에게 주는 것은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뉴스에 난 거예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일이니까, 뉴스에 난 거죠.

그런데 이런 뉴스를 보신 적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전과 18범이고 살인범인데, 그 살인범에 의해서 자신의 아들을 잃어버린 그 피해자가 그 전과자를 위하여 신장을 떼주었다고 하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안 나와요. 쫓아가서 죽이고 싶은 것이지, 그 사람 만나면 쫓아가서 죽여버리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지, 그 사람을 위해서 신장을 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우리를 향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수된 우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한 자가 아니라 연약한 자였고, 경건한 자가 아니라 경건하지 않은 자였고, 우리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로서 하나님을 거부했던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해 주셨습니까? 사랑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쓸모 있어서, 우리가 뭔가 하나님께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유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도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있을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왜 구원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셨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해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면서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이래봬도 봉사 많이 하니까, 당연히 날 사랑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여전도 회장도 하고, 주방에서 봉사도 많이 하고, 성가대에서 수고도 많이 하고, 나는 전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내가 이 정도면 인텔리이고,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정도는 사랑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내가 목사요, 장르니까, 내가 권사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감사가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기쁨이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그만 일에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해 버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망각해 버릴 때, 우리는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게 되고 시험에 빠진다고 믿습니다.

워낙 이런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매일 매 순간마다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것이,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원해 주시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날마다 날마다 고백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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