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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사랑하나?

우리는 뛰어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멋진 외모에 아주 매력적인 목소리의 배우를 좋아하고, 스포츠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들에 열광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금세 우리의 마음은 돌변한다. 한때 좋아하고 열광했던 스타라 할지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분노를 쏟아낸다. 그게 이 세상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가 나에게 유용하고, 내게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주는 한에서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다. 바로 주님이시다. 주님은 누구를 사랑하셨는가? 로마서 5:6은 우리가 연약할 때 사랑하셨다고 한다. 연약하다는 것은 병약할 때를 의미하기도 한다. 주님은 우리가 건장하고 쓸모 있고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여 주님께 유용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별 볼 일 없고 나약하고 심지어 병들었다 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더 나아가 주님께선 경건하지 않은 자를 사랑하셨다(롬 5:6). 의롭고 경건한 자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시편 15편에서는 주의 장막에 거하며 주의 성산에 올라갈 수 있는 자는 오직 의롭고 경건한 자들만이 가능하다고 노래한다. 따라서 경건하지 않은 자는 주님께 갈 수 없는 게 맞다. 하지만 놀랍게도 로마서 5:6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경건하지 않은 자를 사랑하셨다고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죄인이며(롬 5:8)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다(롬 5:10). 죄를 지은 자는 당연히 사망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데(롬 6:23), 놀랍게도 주님은 죄인이며 원수인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그런데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바로 그때”(카타 카이론) 사랑하셨다. “기약대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바로 그때”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심장마비가 일어났을 때 지체하지 않고 CPR을 해야 살 수 있다. 살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랑을 베푸시면서 목숨을 내어주어 우리를 살리신 것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하신 일이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종 가족이 아닌 사람을 위해서 조그마한 희생이라도 하면 뉴스에 나온다. 하지만 원수를 위해서 희생을 하거나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건 어렵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셨다.

도대체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시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늘 감격해하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것은 우리가 효용가치가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려서도 아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망각하니까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는 것이다.

연관설교: http://www.jjvision.org/?p=1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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