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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속임 (잠 12:5-7)

우리가 잠언서 12장 5절에서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읽었는데요. 이 말씀은 아주 간단한 말씀이고, 읽으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는 아주 쉬운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슨 의미겠습니까? 정직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의로운 사람 의인이라고 하는 것이고, 만일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악인이다”라고 하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냥 단순히 의인은 정직하고, 악인은 속임수를 쓴다는 그런 의미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 의미를 잘 이해한다고 하면,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의인인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악인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인과 악인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정직을 말하는 사람과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의인과 악인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그런데 그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고 하는 것이죠. 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악한 사람은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을 피 흘리게 할 것이다고 하는 것인데, 그게 바로 6절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정직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행동하게 되면, 그러면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겠지만, 만일 우리가 속이고 거짓말하고 그렇게 거짓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이 6절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데요. 지금 당장 나타나는 결과는 그런 의인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그리고 악인의 행동에 의해서 속임수를 쌓는 사람에 의해서 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 지금 당장 나타난 결과이겠는데, 그런데 궁극적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7절이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이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악인은 속임수를 쓴다고 오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데요. 왜 악인은 속임수를 쓰려고 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들은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고, 정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런 방법을 써야만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방법을 써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방법을 써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고, 그리고 진실하게 행동하면 무시를 당하고, 그리고 정말 의롭게 행하면 온갖 손해를 다 보게 되겠지만,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고, 그렇게 악하게 행동하게 되면 결국은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불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속임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있을까요?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바로 그런 일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 착하고 정직하고 정말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고, 그리고 아주 조롱을 당하기도 하고, 그리고 손해를 보는 게 많아요. 그런데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런 방법을 쓰게 되면, 더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는 겁니다.

제가 손해 보는 게 많을까요? 손해 보는 게 적을까요? 손해 보는 게 굉장히 많아요. 왜? 제가 목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화를 낼 수 있습니까? 차라리 당하고 말지. 차라리 손해 보고 말지.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고, 그렇게 살게 되면 손해 보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데 거짓과 속임수를 쓰면, 내 이득을 챙길 수가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정직하게 살기보다는 거짓과 속임수와 위선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 말씀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자꾸만 우리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려고 하는 그런 우리들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면, 그런데 그 악인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의인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7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믿습니까? 결국 악인은 승리하는 것 같으나, 잘 되는 것 같으나, 성공하는 것 같으나, 궁극적으로 엎드려져서 소멸되어 버릴 것이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진실하게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지금 당장은 여러 가지 피해를 보는 것 같으나, “그 집은 설 것이다.”라고 하는 이 잠언서 12장 7절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거짓을 말하고 속임수를 쓰게 될 경우에, 결국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되어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6절 말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악인이라고 하는 말은 어떤 사람을 가리켜서 악인이라고 5절에서 정의했습니까?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가리켜서 악인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는 그런 악인의 말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다른 사람들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임수를 쓰고 거짓을 말할 때에는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나는 그저 거짓말을 했을 뿐이고, 속임수를 썼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칼을 들고 강도짓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를 흘리면서 그래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니고, 나는 그저 살짝 거짓을 말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나는 그냥 둘러댔을 뿐이고, 나는 그냥 속였을 뿐이지, 저 사악한 사람들처럼 칼을 들고 남의 것을 탈취하고, 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서 그래서 그 악한 짓을 하면서, 내가 그런 심각한 죄를 지르면서, 내가 부를 챙긴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살짝 속였을 뿐이라고 살짝 거짓말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 잠언서 12장 6절의 말씀은 그러한 우리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악인은” 다시 말하자면 속임수를 쓰는 그런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의 피를 기다리고 흘리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런 아주 심각한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고 오늘 6절의 말씀 가운데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행하는 그 아주 작은 잘못이 사실은 아주 작은 잘못이 아니라 아주 엄청나게 큰 죄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아브라함은 애굽 땅에 가게 되었을 때에, 애굽 땅에 도착해서 자기 아내 사라를 나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진실하지 못하게 행동한 것이죠.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그저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고 방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해치거나, 빼앗거나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이야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결국 그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이 죄를 짓게 만들었고, 애굽 땅에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겁니다. 나는 그저 간단한 거짓말을 했을 뿐이고, 간단하게 속였을 뿐이라고 하는 그런 변명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고요.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그 온갖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은 저 심각한 죄를 저질렀던 그런 사람들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오늘 행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 모든 죄와 잘못들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의로운 삶, 정직한 삶, 살아 나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진실하게 행해야 되는 것이죠. 마태복음 5장 37절의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나느니라?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모든 것들이 악에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신실하게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정말 의로운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이 축원합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고, 그것이 망하지 않는 길이고, 그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망하는 길처럼 보입니다. 마치 왜정시대 때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면, 패가망신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지금 이 사탄이 지배하는 것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정말 우리 이 세상에 그 시스템에서는 우리가 망하는 길처럼 보여요. 그렇게 해서 입에 풀칠조차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있어요.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러나 그렇게 망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이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의는 결국 어떻게 해야 될 것이다? 설 것이다. 악인은 결국 어떻게 될 것이다? “엎드려지고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는 정직하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진실할 수가 없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그 놀라운 복음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들어요. 예배드릴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피 흘려주셨다고 하는 그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날마다 날마다 듣는데, 그런데 우리는 실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사실을 까먹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잊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가 실수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의 부족함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나를 살려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그 사실을 바라보고, 그 믿음 안에서 나아가야 될 텐데, 우리들의 마음과 가운데 그 복음이 희미해져 버리고 실감으로 내 삶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고 진실한 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고 속이는 길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우리는 잘못을 합니까? 전혀 하지 않습니까?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미움이 솟아나기도 하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욕심이 솟아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장악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행동 가운데서, 그런 마음의 잘못된 생각들이 실제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래서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를 지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게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언제 더 악화되는가? 우리가 실수했을 때, 그 실수를 거짓말과 속임수로 만회하려고 할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맙니다. 어떻게 우리는 더 심각한 죄로 빠져들어가냐 하면, 항상 작은 죄부터 시작해요. 항상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냐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처음부터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아요. 강도 짓을 하거나 아주 엄청난 돈을 빼돌리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애들의 실수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냐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도 그냥 별것 아닌 것 같은 정말 작은 잘못으로부터 우리들의 잘못이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그 잘못이 됐을 때, 우리들은 그 즉시 우리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고, 그래서 그 주님의 보혈의 은혜로 용서하기를 간구하며, 그래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고 죄의 용서함의 기쁨을 얻어야 하는 그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냐면, 죄를 조그마한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 거짓말하고 속이는 겁니다. 왜 거짓말하고 속이나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전혀, 그 어떤 심각한 죄라도 하나님 앞에 앞에 나아가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그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죄가 드러나면 그것이 너무나도 커 보여서,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또 속임수와 또 다른 방법들을 쓰게 되는데 결국 그것이 죄를 더 크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죄를 덮기 위해서 더 큰 죄가 시작이 되고, 결국은 어마어마한 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일들이 누구에게서 일어났었는가? 다윗에게서 일어났던 겁니다. 다윗은 어느 날 저 멀리 보이는 한 여인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음욕이 이르게 되었고, 그리고 그 여인을 취하는 정말로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를 저질렀을 때, 그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 날 부르소서.” 죄를 회개하며 나아왔다고 한다면, 우리가 용서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 순간에 다윗은 그 죄를 숨기기로 작정합니다. 숨겨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밧세바의 남편을 전쟁터 최전방으로 보내서 교살하게 만드는 죽이게 만드는, 그런 더 큰 죄로 나아가게 된 것이죠.

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모든 죄가 다 마찬가지죠. 모든 잘못들이 다 마찬가지죠. 담배 한 대 피우기 시작하면,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중독으로 가게 되는 것이고, 술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결국은 그 길로 나가게 되는 것이고, 마약에 한 번 손을 대면 마약에 심취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죄는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아주 조그만 걸로 시작이 되는데, 그런데 결국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그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되는 것이고, 죄 용서를 구하게 된다고 하면, 그게 저와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됩니다. 잘못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되고, 내가 우리 이웃을 향해 향하여 잘못된 일들을 했을 때 잘못된 생각을 했을 때, 죄의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용서를 받고 다시 새로운 관계를 회복해 나가면서 그 일을 진행해 나갈 때 의로운 자는 서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계속해서 속이고 감추고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 모든 것을 가리기 시작한다고 하면, 결국은 우리는 더 큰 죄로 들어가게 되고, 결국은 악인은 엎드려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 잠언서의 말씀대로 될 거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넘어지고 늘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정직하게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이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또한 우리 이웃들을 향해서 진실하고 그리하여 의로운 길로 나아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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