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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연합 (롬 6:5-11)

로마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주제들이 있는데요. 그 여러 가지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이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했다고 하는 그 주제를 아주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데요.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고 하는 그 내용을 오늘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고 하는 것,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그 문제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우리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은 잘못된 개념부터 먼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많이 퍼져 있지만 잘못된 개념이 무엇이냐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높은 단계이기 때문에, 그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높은 영적인 단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말 우리가 열심히 영적인 훈련을 통해서, 열정적인 기도를 통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통해서, 정말 우리가 노력을 하게 될 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단계, 주님과 하나가 되는 단계, 그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불교에서 수도승들이 있는데요. 그 불교의 수도승들이 참선을 하고, 도를 닦고, 정말 수많은 수련을 통해서, 그렇게 수련을 하다 보면, 결국 열반의 경지에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처럼, 우리 기독교 내에서도 그리스도와의 연합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 이러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영적인 아주 높은 고상한 목표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수련을 해야 되는 것이고, 우리가 영적인 단계를 자꾸만 높여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주님과 신비한 결합의 단계로 주님과 신비하게 하나가 되는, 그 단계로 올라가게 될 거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교회 내에 많이 퍼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영적인 높은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겠는가? 열정적인 기도를 하다 보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냥 평범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주 열정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그러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될 것이고,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 입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나를 통제하는 순간이 되게 되고, 소위 엑스타시(ecstasy)를 경험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그런 신비한 단계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교회 안에 많이 퍼져 있습니다.

그렇게 영적인 신비한 단계까지 올라가게 되면,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오직 주님만이 보이는, 정말 우리가 어떤 이 세상의 차원을 벗어난, 저 신비한 차원에까지 올라가게 되는, 그런 단계까지 올라가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림으로 보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열정적인 기도를 하다 보면, 그러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기도 하고, 방언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환상을 보게 되면서,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와의 연합, 신비한 연합 하나가 되는 그런 체험, 그리스도와 합일이 되는 그런 엄청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그런 단계로 올라갈 수가 있게 되겠는데, 그런 단계에 누가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오직 소수의 성도들만이, 모든 사람이 그런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열정적인 기도를 한, 영적으로 아주 탁월한,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만이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신비한 단계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단계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들이 많이 퍼져 있는데요. 사실은 이런 견해는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저 기초 단계일 뿐이고, 거기서부터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신비한 단계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는가? 내가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내가 종교적인 열정을 많이 보여주면, 그러면 그런 영적인 신비한 단계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견해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 한국 교회 안에 많이 퍼져 있기는 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결코 옳지 않은 견해이고, 결코 바람직한 건전한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것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면,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그렇게 표현한 그렇게 묘사한 성경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 열정적으로 기도를 해가지고, 종교적인 열정을 막 쏟아부어서, 그래서 강력한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는 성경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이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이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 잘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주신 것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주셨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고, 그것 말고 더 많은 높은 단계에 올라가야,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서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만, 그래야 우리가 어떤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복음의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런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그리스도와 연합을 그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6장 3절에서부터 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로마서 6장 3절에서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았는데요. 이 구절에 있는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것이고, 묻히게 된 것이고, 그래서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게 로마서 6장 3절에서부터 5절 사이에 기록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세례를 받는 그것과 더불어서,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이미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아직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안 된 것이 아니라, 기도를 열정적으로 해서, 뭔가 그렇게 막 우리가 열정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성령의 체험을 받고, 그래서 나중에 신비한 단계로 들어가야만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 상태로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까? 되지 않았습니까? 이미 된 거예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자가 된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 6장 3절에서부터 5절 말씀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세례라고 하는 “의식 절차”를 거쳐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세례 의식을 거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그냥 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세례를 받는 것이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주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을 내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라고 주님을 받아들이게 되면,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주님과 함께 연합한 자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죠.

크리스천 중에서 오직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그렇게 정말 열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높은 단계의 성도들만이,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예수님과 우리가 연합한 자가 되어 버린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러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서 한번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는데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어떤 영적인 엑스타시(ecstasy) 상태로 들어가서, 내가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겁니다. 무엇을 의미하냐면, “예수님과 결혼했다”라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인의 개념이 연합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어, 주님의 주님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 연합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고,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어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결혼의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결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죠? 마태복음 19장 4절에서부터 6절 말씀에 보면 결혼에 대해서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잊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오.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 남자와 한 여자, 두 사람이 연합하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이죠. 한 몸이 된다고 하는 말은 무슨 얘긴가요?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 개라고, 두 개가 되는 괴물이 된다는 얘기인가요? 그게 아니죠. 여전히 몸은 두 개입니다. 하지만 부부가 되게 되면, 같은 생각, 같은 목적, 같은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제는 두 사람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돌보는, 그런 하나의 공동체가, 하나의 마치 두 사람이 하나인 것처럼 연합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그게 바로 결혼인 것이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예수님과 부부가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우리가 결혼의 관계가 되어 버려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버려서, 이제는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고 있는 성경적인 개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고 하면,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요? 당연하죠. 이제는 주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거죠. 같이. 부부가 마음이 서로 다르면 됩니까? 안 되잖아요? 서로 부부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가 주님과 함께 결혼을 했다고 한다면, 주님과 연합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결혼이라고 하는 건 무엇인가요?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다 내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다 내버리는 것이죠. 몇 명을 내버렸습니까? 이 세상에 인구가 77억 5천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정확하게 반절로 나눈다고 한다면 38억 7650만 명의 여자들을 버리고, 한 여자를 선택한 거예요. 결혼이라는 38억 7650만 명의 남자들을 버리고, 이 남자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게 결혼이에요. 결혼하고서도, 옛 남자 옛날 애인 첫사랑을 생각하면 됩니까? 되나요? 안 되죠. 그럼 큰 일 나는 것이죠.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야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6절에서부터 11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주셨는데, 그 예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게 되면,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단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스도와 결혼한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러면 무엇이 자동적으로 나와야 되는가? 죄에 대해서는 죽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다 버려야 하듯이,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다 버리고, 한 여자만 바라보아야 하듯이, 이제는 주님과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면, 죄에 대해서는 다 버려버려야 되는 거예요. 죄에 대해서는 다 죽어버려야 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누구랑 살아야 돼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결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게 성도의 삶이라고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결혼하고서, 다른 사람과 눈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죠. 그렇게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 악한 것인 것처럼, 이제 우리가 주님과 결혼해서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면,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죄와는 완전히 결별을 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만 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주님의 신부가 되었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사귀던 모든 남자들, 결혼하기 전에 사귀던 모든 여자들 다 내어버리고, 이제는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이제는 죄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야만 한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라고 하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악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성도라고 하는 사람이 악을 계속 행한다고 한다면,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나쁜 짓을 계속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아, 그 사람은 아무리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니까, 그 사람은 천국에 갈 거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까? 그런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판명해야 되나요? “아, 가짜구나.”라고 판명해야 해요. 예수님을 내가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고, 주님과 함께함을 나타내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고 악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니까, 천국에 갈 거야. 아무리 악을 저질러도, 예수님을 믿으면 괜찮아. 천국 갈 수 있어. 천국 입장권 확보한 거니까, 천국 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순 엉터리구나. 순 가짜구나.”라고 판별해야 하는 것이죠.

야고보서 2장 26절의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내가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말하는데,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믿음인데, 그런데 정작 그의 삶이 예수님과 연합한 자의 삶이 아니라, 죄와 연합한 자, 사탄과 연합한 자의 삶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그 사람 예수님과 결혼한 거 맞습니까? 아니죠.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그 아내와 그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결혼해놓고도 딴 여자랑 산다면, 결혼해놓고도 딴 남자랑 산다고 한다면, 그 사람, 이 사람과 결혼한 거 맞습니까? 아니잖아요. 가짜잖아요. 순 사기잖아요.

제가 대학 때 우리 후배 여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정말 예쁜 여학생이 있었어요. 미스코리아 나가도 될 만한 그런 예쁜 여학생이 있었어요. 마음씨도 착하고, 예쁘고, 정말 좋은 자매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자매가 대학 1학년 때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결혼하나 보다.” 그랬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결혼식장에 신랑 혼자만 와 있는 거예요. 신랑 측이 아무도 없어요.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무슨 사기 결혼인 거예요. 이미 유부남인데, 가짜로 결혼해서, 결혼식을 올리고, 속여 먹은 거예요. 그래서 그 여자 후배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는데, 결국은 결국 무효로 해버리고, 나중에 아무튼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긴 했습니다마는, 회복되고 뭐 아무튼 잘 인생을 잘 살게 되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었긴 했습니다마는 그런 가짜 결혼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신앙의 영역에서도 사기 결혼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런데 실제 삶은 어떤 삶인가?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연합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죄와 결혼한, 사탄과 결혼한 삶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타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평신도일 수도 있고, 교회의 중요한 직분자일 수도 있고, 심지어 목사일 수도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냥 무조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순 엉터리 믿음이고 영적인 사기 결혼에 해당하는 것인 것이죠.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그런데 의도적으로 악을 계속해서 저지르고 의도적으로 악한 삶을 살고 의도적으로 거룩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니까, 천국 갈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서 13절의 말씀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다시 말하자면 교회 안에 성도라고 일컫는 자가, “음행 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 거나 속여 빼앗거든,” 괜찮아. 우리 교인이야. 예수 믿었으니까, 천국 갈 거야 라고 할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만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어떻게 해라? “너희 중에서 내쫓아라.” 사귀지도 말고, 같이 밥도 먹지 말라고 하는 얘기는 우리 성도의 교제에서 쫓아내 버리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성찬 예식에 같이 참여시킬 게 아니라고 하는 얘기예요. 거룩한 성도의 모임에서 쫓아내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우리 성도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서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사탄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쫓아내 버려라 이 말이에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신경 쓰지 말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악한 사람이 있으면 쫓아내 버리라고 하는 것이 고린도전서 5장 1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천국 입장권을 획득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까, 악을 마음대로 저질러도 결국에는 내가 예수님 믿었기 때문에 천국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원파적인 생각이고, 이단적인 생각이고, 결코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들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인가? 어떻게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신앙생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거룩한 삶을 완벽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했다고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그리스도와 결혼한 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매일매일 죄를 짓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니 그 이상씩 악한 생각과 음란한 생각과 탐욕적인 생각과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 여러 가지 우상 숭배하는 마음들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넘쳐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신앙은 가짜인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중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림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어떤 상태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주님의 신부가 되었고. 이미 죄에서부터 깨끗하게 되었다고 의롭다고 선언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단계가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고 죄를 짓고 있는 상태인 것이죠. 그런 이중적인 상태가 지금 우리들의 상태예요. 그래서 우리는 already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난 옛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그런 이중적인 상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저지를 가능성들이 늘 있는 것인데요. 우리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뻔뻔하게 “내가 죄짓는 게, 뭐가 문제야? 나는 예수님 믿었으니까, 구원받아.”라고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불륜을 저지르고도 발각된 되었지만, 그러나 뻔뻔하게 있는 그런 사람들처럼. 그런 영적인 뻔뻔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늘 애통해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정말 안타까워하고 매 순간순간마다 회개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나가고,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저 복종시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길로 가기 위한 그런 결단들이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최근에 6.25. 어제가 6.25였잖아요? 그래서 6.25를 기념해서 신문에 났던 한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라고 하는 신문에 박도 기자가 쓴 글 가운데 미국에 NARA 미국 국립문서보관청에서 찾은 사진이라고 해서, 그 6.25 때의 사진을 찾아가서 글도 써서 이렇게 보여준 사진을 제가 보게 됐는데요. 그 사진을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6.25 때 사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게 어떤 사진처럼 보입니까? 설명에 뭐라고 되어 있냐면, 한 남정네가 병에 걸린, 병 중에 시각장애인 아내를 지게에 지고 피난길에 오른 모습이라고 합니다. 전쟁의 포화 가운데 도망가는 그 순간에, 어떻게 지고 피난길에 오르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병에 걸린 자신의 아내. 시각장애인 아내를 안고 가는 거죠. 참, 이 사진 한 장을 보면서, 굉장히 감동이 됐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게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에요. 우리가 죄로 인하여 우리의 몸이 망가지고, 우리가 영원히 죽게 되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 팽개쳐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고통을 지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그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 예수 믿었으니까, 이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그런 뻔뻔한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더욱더 거룩하고 더 더욱더 믿음으로 결단하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늘 넘어질 때마다, 다시 한번 주님 앞으로 돌아오고, 다시 한번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해 가다가, 마지막 날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그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살아가게 되는 그러한 꿈을 꾸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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