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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야 할까? 기뻐해야 할까?

애통하는 자, 즉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울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는 우리들의 삶의 태도가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팔복에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가? 예수님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이 구절의 해석이 어려운 것은 이 말씀이 아무런 맥락이 없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게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우는 여인들을 향해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이때 울어야 하는 이유는 슬픔과 고통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울음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악을 행하다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두려워서 우는 울음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덤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탄로가 나게 되었을 때, 울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두려웠던 것은 왕위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며 울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애통하며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리보우셔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받아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를 품어주셨다.

애통함의 반대는 웃는 것이라기보다는 뻔뻔함이다. 죄를 지었으면서도 애통함이 없고 뻔뻔하다면 그 사람을 망할 수밖에 없다. 가인의 후손이었던 라멕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회개하는 마음이 없었다. 하나님의 은총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겐 애통함이 없고, 뻔뻔함 뿐이다.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는 엉터리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뻔뻔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면서 울어야 한다. 자신의 사악한 모습 앞에서 회개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울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진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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