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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사이에 (막 4:26-29)

우리 교회 옥상에는 조그마한 화단이 하나 있습니다. 그 화단을 그냥 놀려두는 것이 아까워서 제가 종종 상추도 심고 여러 가지 작물들을 갖다 심었습니다. 재주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한 번도 농사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던 제가 그냥 재미 삼아 심어보았는데, 그것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늙어가는 이유인가요? 농사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늙어가는 거라고 하던데, 아무튼 뭐 그런 걸 심고 하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그 화단에 무엇을 심었냐면, 감자를 하나 심었습니다. 감자를 하나 심어놓았더니, 잘 자라고 그것을 매일매일 보는 것이 참 너무나도 즐거웠는데요. 어느 날 올라가 봤더니, 잡초를 제거하시던 어떤 분께서 잡초 사이에 있는 그것을 보고 그냥 잘라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게 됐어요. 너무 아쉽게 돼서 그런데, 혹시나 해서 그 땅을 파보았더니, 그 땅 속에 감자가 맺쳐져 있는 겁니다. 사진 한번 보여주실래요? 저렇게 조그마한 감자가 그 안에 맺혀 있었고, 그리고 저것만이 아니라 조그마한 알갱이 감자들이 맺히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것을 어떻게 심었냐면, 하루는 제가 우리 집안에서 요리를 하는데, 감자를 깎아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감자를 깎다가, 그 깎은 껍질을 보니까, 거기에 씨눈이 붙어 있는 게 있는 것을 보고,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씨눈이 붙어 있는 감자 껍질을 심어도 싹이 날까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져다가 제 사무실에 조그마한 받침에다 물을 넣고, 그 껍질을 올려놓았습니다. 처음에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안 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싹이 자라기 시작하고, 뿌리가 나기 시작한 겁니다. 한번 사진 한 번 보여주세요.

저거예요. 감자 깎다가 남은 그 씨눈에서 조그마한 싹이 나고, 하얀 그 뿌리가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신기해서 그것을 화단에 옮겨다 심었더니, 쑥쑥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것을 물에 담가 놓았을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냥 처음 제가 물에 담가놓은 그대로, 물론 썩지 않게 해야 된다고 해서 물을 자꾸 갈아주긴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겁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안 되나 보다. 소용없나 보다.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되나 보다 하면서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기다리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래서 꽃집도 하고, 이래서 농사도 짓고 그러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느꼈던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기다리는데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언젠가는 나겠지 하면서, 기다릴 수 있겠는데, 사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있어서 기다리는 것처럼 지루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참 힘 빠지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빨리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하고, 빠른 변화가 없고, 무엇인가 빨리 결과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이내 실망해 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정말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메시아로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가 왔다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면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기뻐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시므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분은 굉장히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어요. 성전에 가서 그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을 언제 구원해 주십니까? 메시아 약속해 주셨는데, 언제 메시아가 옵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셔서, 네가 죽기 전에 그 메시아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약속을 받게 되었는데요.

어느 날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 온 겁니다. 정결 예식을 행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 시므온으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이 시므온이라고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제여 이제는 족합니다. 이제는 말씀대로 이 종을 놓아주시옵소서. 이제는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죠. 예수님을 만났으니까, 메시아를 만났으니까, 너무나도 좋았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즐거워했던 사람이 시므온이었습니다.

또 기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이 있었다고 한다면,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하면서, 그래서 이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세례 요한에게 나아온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세례 요한한테 세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줬는데요.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님께서 예수님 위에 머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비둘기같이 임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분이야말로 정말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됐고, 세례 요한은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메시아가 왔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그 메시아가 왔다.”라고 말하면서 그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면서 소개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고, 그의 마음 가운데 얼마나 기쁨이 넘쳤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간절하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오셔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여주셨습니다. 그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너무나도 기뻐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아가 왔구나. 이분이야말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아닌가?” 저 모세가 우리를 향해서 만나를 주었던 것처럼, 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니, 이 메시아가 왔다고 하는 것 때문에, 너무나도 기뻐하면서, 이제야말로 우리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을 하고, 우리 메시아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그렇게 잔뜩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리고, 아무리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는 것 같지 않은 겁니다. 여전히 로마 정부는 이 이스라엘 민족을 압제하고 있고, 그 밑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생각하기를, 말하기를, “아닌가? 메시아가 왔다고 하는데, 메시아가 아직 안 온 것인가?” 그런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그 가운데서 가장 실망했던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했던 사람인데,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라고 했던 것을 소개했는데, 세례 요한이 볼 때에도 이상한 거예요. 메시아가 왔으면 온 세상을 뒤집어버리고, 저 악한 자들은 다 심판해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만들어야 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아입니까? 예수님께서 바로 오시고자 했던 바로 그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지금 당장 악한 세상이 끝나지 않는 그 답답한 시간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세상이 아직도 오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때 그러한 질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을 해주신 것이죠.

어쩌면 이게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도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거죠. 예수님을 믿으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고, 나의 삶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고, 도대체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자와 불신자 사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신자들이라고 해서 복 받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신자들은 더 잘 나가고 있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더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질문이 던져지는 겁니다.

하나님 도대체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왜 지금 당장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도 똑같은 질문이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세례 요한에게 주셨던 예수님의 대답이 마태복음 11장 4절에서부터 5절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4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세례 요한이 지금 질문을 가지고 있어요. “예수님,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 맞습니까? 예수님이 메시아 맞습니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무엇이냐면, 지금 이 세상이 완벽하게 바뀐 것 같지 않아도, 지금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맹인이었던 사람들이 보게 되는 역사가 있고,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걷게 되고 있고, 정말 엄청난 일들이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눈을 들어서 보면 이런 엄청난 변화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신 것입니다.

마치 겨우내 그 찬 바람 속에서 온 세상이 죽어 있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봄이 되면 온 세상이 푸릇푸릇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아직 여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온 세상이 파랗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가만히 나무를 살펴보면 나무의 변화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죽은 것 같은 그 나무에 이파리가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움이 돋기 시작하는 거예요. 봄의 그런 표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겨울이 안 끝난 게 아니라, 지금 이 나무에서는 겨울이 끝났다고 하는 증거들이 조금 튀어나오고 있다 이 말입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저곳에서 놀라운 역사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는 것처럼, 메시아가 와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 주변에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일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 이게 첫 번째 대답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두 번째 대답을 예수님께서 해 주신 것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 마가복음 4장 26절에서부터 29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오. 다음에는 이삭이오. 그다음에는 이삭의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온 것 같지 않고,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근심하고 있는 세례 요한을 향해서 우리들을 향해서 해주시는 대답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어떻게 오는가?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은 어떻게 기대했냐면, 어느 날 갑자기 천지 개벽이 될 거라고 알았어요. 가만히 있다 보면, 하나님께서 짜잔 하고 나타나서, 완전히 온 세상을 뒤집어버리고, 그래서 모든 질서를 뒤집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짜잔 하고 나타날 것을 기대했던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은 전혀 색다른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오는가? 오는 것 같지 않게 온다는 거예요. 마치 씨앗을 땅에 뿌렸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아니 씨앗이 뿌려졌는지도 모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오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과 같다 말씀하신 것이죠.

마치 겨자씨 한 알처럼 조그마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누룩처럼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는 그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온 것 같지도 않고, “이게 뭐지?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뭐야? 아무런 변화도 없네.” 하면서, 똑같다고 생각되고, 실망스러웠던 그런 모습들을 보이고 있지만, 그러나 결국 이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을 뒤집어 버린다는 겁니다.

누룩이 들어가서 반죽을 부풀리는 것처럼, 겨자씨 하나가 커서 수많은 새들이 그 안에 거하게 되는 것처럼, 오늘 말씀에 보면 이 씨앗이 숨겨지면 싹이 자라서, 그래서 점점 자라게 되고, 결국 추수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오는 것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아주 미약하게 느끼지 못하게 오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반드시 오게 된다고 하는 것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오느냐면 갑자기 웅장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씨를 심으면 자라는지 자라지 않는지, 심었는지 심지 아니했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표시가 나지 않게 그렇게 작게 오지만,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 엄청난 역사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응답이 빠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즉각 즉각 응답해 줬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이게 필요해요.” 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주시고, “하나님, 돈이 필요해요.” 하면, 바로 돈을 주시고, “이 문제가 막혀서, 너무나도 힘들어요.” 하면, 바로 해결해 주시고, 기도하기만 하면 즉각 즉각으로 응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게 우리들의 고민이에요. 기도해도 소용없는 것 같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게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지쳐가는 것이죠. 그러다가 기도의 손을 놓기도 하고, 때로는 낙망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는 것이고,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볼 때, 하나님을 향해서 호소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시편 94편 1절에서부터 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하나님 앞에 정의를 회복해달라고, 악인들을 좀 징벌해 주시고, 선인들을 복 주시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보여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여전히 악인은 득세하고 있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아무리 기도해도 계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참아 두고 보십니까?” 하면서, 답답하게 울부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대답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뿌려서 심는 것과 같다. 씨를 뿌리면 그다음 날 열매 딸 수 있죠? 아니잖아요. 잭과 콩나무라고 하는 그런 동화에서 보는 것처럼, 밖에 씨를 던졌는데, 그다음 날 일어나 보니까, 커다란 나무가 자라서 저 하늘 끝까지 펼쳐져서 올라갈 수 있게끔 그렇게 자라는 건가요? 그게 아니잖아요.

이 말씀을 해주시는 예수님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낙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 우리들의 눈앞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무런 힘과 능력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낙망하지 말라. 아무리 수고해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들은 쉽게 낙망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변화시키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데, 자녀들에게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또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아무리 기도해도, 우리 자녀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 가족들의 마음이 닫혀 버려서, 결코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낙망을 하는 거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데도, 역시 어려운 일들만 계속되고, 기도하면 좋은 일이 있어야 되는데, 오히려 더 나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낙망하기도 하고, 기도해봤자 소용없다고 하는 그런 포기를 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것인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부터 9절 말씀 우리가 늘 기억해야 될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어떻게 되리라? “거두리라.” 우리는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을 게 아니에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사람 구실 할 것을 기대할 게 아니에요. 기다림이 사랑이고, 기다림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가 무엇인지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고, 나중에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잘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이죠. 씨를 뿌려야 되고 물을 주어야 하는 겁니다. 씨를 뿌렸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고, 물을 주었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애쓰며 기다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결국 엄청난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물을 뿌려봤는데, 그다음 날 아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 물 뿌려봤자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대하다 보면, 이야기하다 보면, 이거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전도해봤자 소용없다. 이거 해봤자 소용없고, 저거 해봤자 소용없고, 이거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소용이 없는 것 같은 것을 하는 게 믿음의 사람이에요. 기도하는 게 믿음의 사람이고, 말씀을 전하는 게 믿음의 사람이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물 주기를 매일매일 하는 것이 그게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고,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실망할 게 아니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거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바울 사도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러 가는 가운데,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정말 믿음이 준비돼가지고 복음을 잘 받아들인 사람들만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하는 가운데 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적대자들을 만났습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비웃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전하면, 실패를 경험했고, 반발을 경험했고,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그런 딱딱한 심령들을 바울 사도가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그것 때문에 절망하고, “일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구나.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변화가 없구나.” 하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또 복음을 전하러 다녔고, 또 복음을 전하러 다녔고 또 복음을 전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거예요. 복음을 받아들이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가 어떻게 설명하냐면,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7절 말씀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 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아멘.

바울 사도가 씨를 뿌렸습니다. 씨를 뿌린 것만 가지고, 싹이 나나요? 누군가 와서 물을 줘야 되는 거죠. 물을 주면 바로 그다음 날 싹이 나나요? 아니요. 또 그다음 날 와서 또 물을 줘야 되는 거예요. 의미 없는 일들을 계속 반복해야 되는 겁니다. 내가 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이 섞어지고 또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시간이 한 달 정도 지나야 그래야 싹이 나는 거예요.

그래야 뿌리가 열리는 거예요. 그래야 모든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생겨나는 것이지,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안 되나 보다.” 전도하러 가서 전도했는데 반발하면 “안 되나 보다.” 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들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 내가 심고 다른 사람들이 물 주고 내가 수고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수고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열매가 맺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 나가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참 힘들고 어려웠던 때들이 있었는데요. 언제가 어려웠냐면 설교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 교우들은 얼마나 참 감사한지 몰라요 왜냐하면 말씀을 듣고 변화가 보이는 것이 눈에 보여서 너무나도 감사해요. 말씀을 전하니까, “이런 변화가 있구나.”라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얼마나 힘이 되고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근데 제가 미국에서 한 2년 동안 아주 정말 조그마한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주말에는 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하는데요. 그 교회 한인들이 모인 교회인데, 그 한인들이 그 동네에 몇 명이 있냐면 기껏해야 한인들 숫자가 20~30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마을에, 거기에서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10명도 채 안 되는, 너무나도 조그마한 교회가 있는데, 거기 가서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가겠냐고 해서, 제가 선교지라도 가는데, 거기 왜 못 가겠습니까? 그래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그 10명도 채 안 되는 교인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난 겁니다. 교회에 중요한 아주 집사님, 중요한 집사님 한 분과 교회에 중요한 아주 중요한 권사님 한 분이 서로 마음이 상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교회 와서 서로 아는 척도 안 하는 거예요. 제가 설교를 하는데, 앞에서 두 분이 앉아있는데, 딴 데만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열심히 열심히 전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가를 전하고, 눈물로 호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전했는데, 이분들이 마음의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안 가져왔을까요? 안 가져와요. 교회 오면서 서로 싸우고, 서로 아는 척도 안 하고, 예배 끝나자마자 밥도 안 먹고 그냥 가버리고, 그것이 얼마나 낙망이 되고, 얼마나 괴로운지 그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한 번은 목회를 오랫동안 하신 목사님에게 전화를 하는 가운데 상담을 드렸어요. “목사님, 도대체 힘들어서 못 해 먹겠습니다. 도대체 제가 설교는 왜 하는지,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무런 설교를 해봤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런 설교를 내가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몇 달 뒤에 그 노 권사님 한 분이 이러시는 거예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셨는데, 내가 우리 교우조차 사랑하지 못해서, 너무나도 잘못했다.”라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요.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서 답답했고, 그래서 “아, 이거 포기해야 되나? 아무런 능력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고,” 그런데 그때 했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흘러가는 것 같고,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고, 아무도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자라게 하셔서, 그 말씀이 사용이 되고, 그래서 그 마음 가운데 마음이 열리고, 사랑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주는 그 모습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게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하신 일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을 보시면서 이 구제불능의 사람들 하면서, 포기해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냈고, 말씀의 사역자들을 보내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찍질을 하셨고,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개를 촉구하시는데, 그것도 안 되니까 마지막에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셔서, 저 십자가 위에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피 흘리게 만드시고, 그 보혈의 피로 우리들을 씻겨주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회복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천 년을 하루같이 참으신 그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또 참고 참고 또 참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아무런 결과가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기도해도 변화가 없는 것 같고, 전도해도 문을 닫혀버린 것 같고, 아무리 해도 수고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낙망스럽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에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믿고 기억하면서,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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