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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결혼의 서약은 한 사람만의 남편이 되고 한 사람만의 아내가 되겠다는 것인데, 그 서약은 배우자가 살아있을 때까지이다. 배우자가 죽게 되면,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있다. 결혼의 법이란 당사자가 죽으면 더 이상 그 법에서 얽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945년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이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일본의 법에 따를 필요가 없어졌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율법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셨고, 모든 율법의 요구와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얽매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해방되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가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에 여전히 할레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약에는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이밀면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이미 할례의 법은 무효화 되었으며 다시는 그런 율법의 요구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빚을 지고 있는데, 그 어떤 너그러운 부자가 나타나서 내 대신에 모든 채무를 청산해주고 그 채무증서를 찢어버렸다면, 우리가 더 이상 채권자들에게 시달릴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를 치르셨고, 우리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노예일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율법의 굴레를 씌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으로 우리의 신앙적 열정을 부추기기도 한다. 우리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복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안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억지로 마지못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자일 수는 없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걷는 자들이어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억지로 마지 못해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주셨다. 그런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고, 그래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억지로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할 게 아니다. 감사와 감격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6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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