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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을 위해 도둑질을?

팀 켈러 목사님은 <내가 만든 신>이라고 번역된 책에서, 우리에게 좋고 유익한 모든 것들이 우상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주를 위한 사역에서 성공하는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경고는 아주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이원론적 관점에 빠지곤 한다. 즉 이 세상의 일과 주의 일로 구분하고, 이 세상의 일은 세속적인 일이거나 나쁜 것인 반면에, 주의 일은 거룩한 일이고 선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한데, 이러한 관점은 성격적 관점이 아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신부가 되거나 수녀가 되고 수도원에 들어가는 게 가장 거룩한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召命, calling)이라고 보았다. 농부는 농사를 짓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비즈니스맨은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다. 종은 자신의 주인을 섬길 때, 주께 하듯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으로 최선을 다해 손님들에게 제공하여 행복한 시간을 갖게 만드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반대로 주를 위한 사역이라도 때때로 악한 일로 변해버릴 수 있다. 세속적인 일도 거룩한 소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거룩한 일처럼 보이는 것도 종종 세속적인 동기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였다. 나는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나의 신앙생활로 점수를 매기는 것을 보았다. 출석, 헌금, 요절 암송, 전도 등등을 출석부에 체크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잘할 때마다 체크를 하고, 나중에 상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헌금도 잘했고, 요절도 잘 외웠으며, 친구들을 교회로 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하고 교회에서 주는 상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라는 세팅 속에서 신앙적인 일을 아주 잘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에 목말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아버지가 저금하던 돼지 저금통을 몰래 털었다. 돈을 집어넣는 그 작은 구멍으로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 목적은 헌금하기 위해서였다. 헌금을 잘해야 교회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모범 어린이로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거룩한 일이 아니었다. 인정받으려는 우상을 섬겼을 뿐이었다. 거룩한 일을 한다고 모두가 칭찬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일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일이 놀랍게도 어른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심지어 목회자에게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어른이 되거나 목회자가 된다고 해서 순식간에 영적으로 성숙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가 종교적인 일에 열정을 내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사탄은 너무나도 영악해서 그 종교적인 일, 거룩한 일을 우상으로 만들어버려서 망하게 만든다.

우리는 목적이 선하면 모든 게 정당화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즉 내가 교회당을 건축하려는 목적이 있거나, 전도하려는 목적이 있거나, 부흥을 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을 해도 정당하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편법을 동원하고, 뇌물을 주거나, 우리의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선한 목적을 방해하는 것 같은 이웃들과 싸우거나, 때로는 폭력을 쓰기도 한다. 왜? 목적이 선하니까, 그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악한 일이다. 주의 일을 하는 것에서 성공하는 게 우상이 되어버린 단계이다. 사람들은 결과만 보기에, 그가 훔쳐서 헌금을 많이 했는지 몰라서 박수를 칠 수 있다. 그가 부정을 저지르면서 멋진 예배당을 건축했는지 몰라서 치켜세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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