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영적 MRI로 검사해 보았는가?

바울 사도는 자신이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주 중요한데,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치료가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말기가 되어서야 발견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하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이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는가? 깔뱅 선생은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빛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구제불능의 상태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아주 심각한 상태에 있지만,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8:1-2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으면, 구원을 얻게 된다. 마치 비가 40주야 동안 쏟아져서 온 세상이 멸망하였을 때,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한 죽음에서부터 건져질 수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불신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불쾌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마치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내리셔야 공평하고 정의로운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악을 행했어도, 결코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니?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그냥 없던 일로 하자는 게 아니다. 사실 그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선 우리를 용서하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구원의 약속으로 주셨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를 위하여 일어났다. 불신자들이 우리를 향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면, 우리를 달리 대답할 말이 없다. “맞아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맞아요.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래서 나와 같은 정말 악한 사람도 용서를 받았다고 해요. 선생님은 저보다야 죄를 별로 짓지 않으셨으니, 용서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공간이 아닌 데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수 있는가? 로마서 8:9에서 그 대답을 준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우리가 영 안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의 왕좌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우리가 에수님 안에 있는 길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닌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길을 걸어간다는 뜻이다.

연관 설교: http://www.jjvision.org/?p=17514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