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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길 (잠 12:26-28)

오늘은 잠언서에서 석 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장 26절 27절 28절, 세 구절을 살펴보게 될 텐데, 각각의 그 구절의 말씀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주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절씩 한 절씩 읽어보고, 그 구절의 의미들을 함께 묵상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겠습니다.

먼저 잠언서 12장 26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잠언서 12장 26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우리 한국말 성경에서는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될 것이지만,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한다”라고 되어 있어서, 도대체 자신을 미혹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요.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은 이 말씀을 여러 가지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어떻게 번역이 되어 있는지 한번 봤으면 좋겠네요. 예를 들어서 ESV라고 하는 성경이 있습니다. English Standard Version이라고 하는 영어 표준판 성경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거기에서는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했냐면, “의인은 자신의 이웃에게 인도자이나, 사악한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한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말 성경에서는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한다”라고 번역해 놓았는데, 영어의 번역은 “사악한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한다”라고 번역해 놓아서, 우리 한국말 성경과는 좀 약간 다른 번역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영어 번역에 의하면 대조가 확실하게 되는 것이죠. 의인은 이웃들에게 인도자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사악한 자는 어떻게 되는가?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길로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어버리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방황하게 만들어버린다. 정말 망하게 만들어버린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이 성경에서는 번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New International Version이라고 하는 NIV 성경에서는, 좀 더 의역을 해서 번역을 했는데요. “의인은 자신의 친구를 신중하게 선택하나, 사악한 자들은, 사악한 자의 길은 그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한다”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똑같은 히브리어 원문인데, 한국말 성경의 번역이나 또 여러 영어 성경의 번역들이 약간씩 다른 것은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를 번역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ESV의 성경 구절이 성경 히브리어 원문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의인은 어떤 사람인가? 이웃에게 인도자가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악인은 어떻게 되는가? 그 이웃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만들어 버리고,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어 버리고, 방황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오늘 잠언서 12장 26절의 말씀 가운데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죠. 그 사람이 선인이든 간에, 그 사람이 악인이든 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인데, 의인이라고 한다면 좋은 영향을 미쳐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되겠지만, 악인이 있다고 한다면, 그 악인은 많은 사람들을 악한 길로 인도해버리고, 결국은 망하게 만들어버리고 결국은 바른 길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기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다 배우는 것 같아요. 잘 배워요. 말로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겁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보면서 따라 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최근에 우리 결혼한 우리 큰아이하고 대화를 하는 가운데, 우리 큰아이가 미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화상 통화를 하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듣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나도 크고 즐거운 그런 경험이 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결혼을 해가지고, 그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보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어요. 엄마가 했던 그 모습, 엄마가 했던 그 삶의 그 방식을 우리 딸아이가 그대로 똑같이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우리 아이가 엄마를 빼다 닮았는가? 참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제 아내는 우리 장모님을 그렇게 빼다 박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결혼할 때 누구를 보냐면, 어머니를 봐야 되는 거예요. 제가 전도사로 부임을 했는데, 우리 장모님이 같은 교회 여전도사님이었어요. 그런데 그 여전도사님을 보니, 참 멋있고 믿음이 좋고 아주 좋은 분이시더라고요. 그런데 딸도 그래요. 가르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겁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아이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아이는 그 집에 강아지가 있고 고양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와 강아지가 함께 같이 생활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조그마한 아이가, 한 이제 돌 지나고 얼마 되지 아니한 그 아이인데, 강아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고, 그리고 고양이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고, 그리고 그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고양이의 행동과 강아지의 행동을 습득해서, 사람을 향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 마치 강아지가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의사 표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람은 영향을 받게 되어 있고, 같이 있으면 영향을 주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죠. 내가 영향을 주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그 영향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또 못된 시어머니가 나오는 거예요. 아 저런 시어머니였으면 정말 싫다고 생각했던 그 며느리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그 옛날 자기가 싫어했던 그 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런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얼마나 또 powerful 한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의인은 그 이웃들을 인도하는 자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의인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의인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의의 길로 가게 될 것이고, 바른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고, 영어 성경의 번역과 마찬가지로 악인은 어떻게 되는가? 많은 사람들을 망하는 길로,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방황하는 길로, 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 말씀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인의 삶을 살든, 악인의 삶을 살든,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기왕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거룩한 의인이 되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역할들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악인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망하게 만들 수가 있는 것이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될 거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떤 사람이 악한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따라서, 악한 길로 가다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예를 보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자기 혼자만 먹은 것이 아니라, 그 선악과를 자기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아담도 같이 먹고 범죄 하게 되었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모습을 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고, 선생 된 자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거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날마다 날마다 의로운 길로 걸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그 말은 아예 우리가 선생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쁜 선생이 되어서, 잘못된 영향을 미쳐서, 그래서 잘못된 사람들로 만들지 말고, 정말 의롭고 거룩한 의의 선생이 되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길로 인도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귀하고 복된 사람들이 되고, 복의 통로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의인된 인도자가 있고, 이 세상에 악인 된 인도자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그 사람의 영향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우리가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악인으로서 악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의인으로서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우리가 영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위치에 서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인도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길을 가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망하게 만드는 그런 잘못된 인도자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따라가고 우리가 영향받을 자를 분별하며, 영향을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잠언서 12장 26절의 말씀을 NIV 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다고 했습니까? NIV 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냐면, “의인은 자신의 친구를 신중하게 선택”한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표현은 어쩌면 같이 연결되는 그런 의미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인도자들이 있는데, 아무 인도자나 따라갈 것이 아니라, 아무나 친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내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바른 친구 바른 인도자를 우리가 선택하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선한 길 바른 길로 가게 될 수도 있거니와, 정반대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망하는 길,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또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신중하게 친구를 선택해야 됩니다. 신중하게 우리의 인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은 “무조건 믿고 따라가라. 무조건 아무나 선생이면 따라가라”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선생이라고 이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괜찮은 선생이 아니라, 사실은 잘못된 선생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죠. 마태복음 7장 15절의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양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겉보기에는 진짜 선생 같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괜찮은 사람 같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믿고 따라갈 만한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는 말이에요. 하지만 믿고 따라갈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 사실은 우리를 망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영적으로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그런 이리와 같은 거짓 선지자가 있다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절 말씀 가운데서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어떻게 하고? “다 믿지 말고”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다 믿으면 된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 강단에서 전하는 메시지라고 할지라도, 그냥 믿으시면 안 돼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일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맞는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가? 한번 질문을 던져봐야 되는 것이죠. 이 강단 위에서 전해지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메시지인가? 잘못된 메시지인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메시지는 아닌가? 한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 9절의 말씀에서는 바울 사도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갈라디아서 1장 8절 9절 말씀에 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까? (제가 이것은 미리 안 줬나 보죠. 안 나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 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 사도가 전한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복음을 전하면 그건 저주받을 일이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가 말씀을 전한다고 할지라도, 그 메시지가 잘못되면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말씀이에요. 이 자리에 서서 전하는 그 말씀이 무조건 아멘만 하면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 말씀에 합한 말씀인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가? 아니면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우리를 망하게 하는 메시지인가를 구분해야 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많은 강사 목사님들을 이 강단 위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강사 목사님들을 모시고 집회도 했고, 또 여러 가지 세미나도 했고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했는데요. 찬양 집회도 하고 했는데, 우리 교회 강단에서 세워지는 목사님들 그리고 강사분들은 기왕이면 좋은 분을 모시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고, 그래도 이분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세우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100% 완벽한 분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간혹 가다가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의인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우리를 길을 잃게 만든다고 하는 잠언서 12장 26절의 말씀을 기억한다고 한다면, 그냥 들려지는 말씀을 무조건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우리 모두가 잘 분별하여, 우리가 잘못된 인도자를 따라가다가 소경 된 인도자를 따라가다가 함께 망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으로 분별해 나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잠언서 12장 27절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이미 지난 시간에 우리는 부지런한 것과 게으름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번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해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교훈을 듣고 싶고 다시 교훈을 듣고 싶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예전의 설교들을 참조하면서, 이 부지런함 그리고 게으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오늘 이 시간에 이 잠언서 12장 27절을 묵상하면서, 우리 한국말 번역과 영어 번역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SV 성경에서는 뭐라고 번역을 했냐면, “게으른 사람은 사냥한 것도 굽지 않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부를 얻는다”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좀 더 의역에 가까운 NIV 성경에서는 뭐라고 번역을 했냐면, “게으른 사람은 사냥한 것도 구워서, 굽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사냥해 놓고도, 요리를 하지 않고, 먹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 어떻게 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뜨끔합니다. 사냥한 것도 굽지 않고, 요리하지 않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풍성한 그 사냥을 먹는다”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번역이든지 간에 의미는 통한다고 봅니다. 똑같이 통할 거라고 봅니다. 부지런한 자가 상을 얻는 것이고, 부지런한 자가 성취하는 것이고, 부지런한 자가 다스리게 되는 것이고, 부지런한 자가 부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망하게 되는 것이고, 게으른 자는 얻지 못하게 될 것이고, 게으른 자는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법칙이고, 일반 사람들도 모두가 다 인정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법칙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정말 부지런한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가정에서도, 부지런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나태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나태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말 진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정말 영적으로도 부지런한 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잠언서 12장 28절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잠언서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혜는 무엇입니까? 지혜는 생명을 얻는 것이 지혜인데,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공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의의 길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게 생명의 길이고, 그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오늘 성경 말씀은 강조하고 있고, 잠언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를 향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의를 따라 사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의를 따라 살면, 의롭게 살고 정의롭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때때로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그런 위험한 모습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은 여전히 사탄이 활개를 치고 있고, 이 세상은 여전히 사탄의 그 힘에 의해서 악한 자들이 권세를 잡고 움직이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목숨의 위협을 당하게 되는 것이고, 정말 내가 진실해지려고 한다고 한다면, 사람들로부터 협박을 당하게 되고, 목숨을 잃을 그런 위험을 느끼게 되고, 거짓을 말하며, 본 것도 못 봤다고 말하고, 들은 것도 못 들었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도 괜찮다고 말하고, 사슴을 가리켜서 말이라고 말하고, 거짓말을 해야 살아남는 세상이 지금 이 시대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압력을 받게 되고, 이 거대한 악의 structure 속에서 정말 믿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마치 목숨을 내놓고 사는 것처럼, 진실을 말했다가는 언제 어떻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고, 언제 어떻게 자살을 한 것처럼 땅에서 죽게 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본문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런 위협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향해서 해주시는 말씀이 공의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 길에는 사망이 없다고 하는 이 귀한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의로운 선택을 하기보다는 거짓을 선택하고 악과 협력해야만 겨우 목에 풀칠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 세상 가운데서, 그러나 그것은 사는 것처럼 보이나 망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진실로 거룩하고 정직하게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정말 거룩한 길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며, 그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해서 늘 넘어지기 쉽습니다. 늘 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고, 바로 그런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주셨기에,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며, 다시 한번 또 회개의 길로 나아가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그 놀라운 기쁨과 그 축복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길 가운데 날마다 날마다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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