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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삼하 19:9-15)

2020년 11월 11일 수요예배 설교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누가 당선이 됐나요? 시사를 잘 따라가고 계시는군요. 바이든이라고 하는 민주당 후보가 이번에 740만 표인가요? 7400만 표. 7400만 표 이상을 얻어서, 그리고 선거인단을 270석 이상 확보를 해서 그래서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고 하는 소식이 들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라고 하면서, 앞으로 법정 공방을 해 나가겠다고 예고하고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모르는 그런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 있는데요. 아무튼 모든 언론들이 선거 결과가 선거인단 270 이상 확보되었다고 하는 소식에 따라서, 바이든이 이제는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다고 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이렇게 보도하게 됐고, 그렇게 보도하게 된 날, 바이든이 델라웨어 웰밍턴이라고 하는 곳에서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의 연설을 하는 모습이 뉴스에 방영이 됐습니다. 한번 보셨습니까? 관심이 많으시군요.

델라웨어 주의 월밍턴은 제가 자주 가던 곳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제가 목회할 때 우리 교회에서 약 1시간 한 10분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계시던 가정이 두 가정이 우리 교회까지 출석했는데요. 매 주일 그 두 분이 월밍턴에 사셨기 때문에 종종 심방도 가고 했던, 그래서 그렇게 연설하던 그 자리가 낯설지 않은 그곳에서 바이든이 연설하는 그 모습을 저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약간 약간만 방송을 했을 텐데, 전체적인 연설을 쭉 들어보면, 참 감동적인 연설을 이번에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특별히 바이든이 그 연설을 하면서 무슨 말을 했냐면,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는데, 이제 나는 이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나를 지지했던 민주당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나를 반대했던 공화당원들을 포함하여 모든 미국, 미국 국민의 연합된 나라의 united states. blue states라고 하는 민주당, red states라고 하는 공화당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united states, 미국을 위한, 연합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그런 포부를 할 때 참 많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성경 전도서 3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경 전도서 3장에 무슨 말이 있나요? 천하, 만국에, 범사에 때가 다 있는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고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다고 하는 그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now is the time to cure. 이제는 치료할 시간이라고, 전에 우리 선거운동할 때는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그리고 서로 승리하기 위해서 많이 다투었지만, 이제는 치유할 때가 되었으니, 이제는 서로가 서로 적대시하지 말고, 치유해서, 서로 상처를 보듬어서, 이제는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하는 그런 연설을 하는 모습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정치인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많이 다르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적어도 그렇게 표현하는 것, 적어도 그가 표현한 그 내용 자체만으로 본다고 한다면, 정말 바람직한 내용을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어쩌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 지은 그 상황과 비슷한 상황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선거를 통해서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하는가가 결정이 되는 것이지만, 예전에는 선거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이 되는 것이죠. 오늘날에는 트럼프와 바이든이 선거를 통해서 서로 비난하고, 서로 자신의 정책을 소개하면서,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투표로서 승자를 결정하는 것이 오늘날의 법칙이지만, 그 당시에는 압살롬과 다윗이 서로 전쟁을 통해서, 누가 이 나라에 적합한 왕이냐라고 하는 것을 결정하는 그런 아주 원시적인 결정법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 많이 발전이 된 거죠.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투표를 통해서 결정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높은 발전이 된 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다윗의 시대에는 어떻게 결정했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임명하고,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러나 실제 그 현장 가운데서는 어떻게 누가 왕이 되는가를 어떻게 결정했는가? 바로 전쟁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이 결정이 나는 겁니다. 얼마 전에는 사울과 다윗이 서로 경쟁하는 그 관계 가운데서,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 속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승패가 갈리게 되고, 이제는 사울 왕의 시대가 끝나고 다윗이 왕으로서 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 쿠데타가 일어나서, 압살롬의 그 세력과 그리고 다윗의 세력 사이에 전쟁이 있게 되었고, 그 전쟁 가운데서 결국은 다윗의 군대 요압이 이끄는 그 군대가 압살롬을 죽이고 압살롬을 따르던 사람들을 완전히 물리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모든 그 경쟁이 끝나고, 다윗이 온전히 승리하게 된 상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배경이 될 것입니다.

이때 다윗은 할 수 있는 선택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본문에서 기록한 것처럼 다윗은 화합과 치유의 길을 선택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자신을 적대시하던 압살롬과 그 일당들을 잡아내고, 그리고 죽이고, 그들을 완전히 멸절시켜버리는 그런 피의 복수의 혈전을 시작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 다윗이 생각해 보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왕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수많은 혜택을 베풀어주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었는데, 자신의 사랑을 입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바로 그 신하들이, 그리고 자신을 찬양했던 바로 그 백성들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그리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달려든 그 사람들을 생각해본다고 한다면 정말 치가 떨리고, 밤잠 못 잘 정도로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고 화가 날 법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이렇게 나쁜 내게 나쁜 짓을 했는가? 누가 나에게 반역을 했는가? 쿠데타 세력이 누구인가라고 하는 그 명단을 뽑아놓고, 그래서 블랙리스트를 만든 다음에, 그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색출해서, 그래서 완전히 죽여버리든가, 아니면 자금줄을 끊어놓든가,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신에게 적대시했던 그런 사람들을 원수 갚는 일을 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승리의 순간에 다윗은 원수를 갚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반대하고, 자신의 반대편 적의 편이 되어서 쿠데타 세력에 동조했던, 바로 그 모든 사람들을 품고, 하나의 백성으로 이제는 통일된 이제는 연합된 나라에 한 백성으로서 같이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유화 정책을 쓰고 있는 모습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이 있다고 한다면, 다윗이 아마사라고 하는 사람에게 군대 지휘관이 될 것을 약속했다고 하는 바로 이 점입니다. 여러분, 아마사가 누굽니까? 아마사라고 하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자주 나오는 이름이 아니라, 잘 모르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아마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요압 장군의 사촌 외사촌 동생입니다. 그런데 이 아마사라고 하는 사람이, 아마사라고 하는 사람이 바로 압살롬의 군 지휘관 역할을 해서, 압살롬의 군대를 이끌던 사람이 바로 아마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적대시했던 가장 최고의 적이 누구겠습니까? 압살롬이 최고의 우두머리라고 한다면, 압살롬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누구죠? 아마사인 거죠. 압살롬이 아마사를 군대 지휘관으로 삼아놓고, 그 군대를 일으켜서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군대들을 동원한 바로 그 총책임자가 누구냐면, 바로 이 아마사라고 하는 사람인 거죠.

그러니까 이 아마사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전쟁에서 지금 이겼습니다. 다윗이 이기고 이제 다시 모든 정권을 잡았습니다. 힘을 잡았습니다. 그럴 때 이 아마사라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겠습니까? 당연히 적장이기 때문에, 사형을 시키는 것이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윗은 아마사를 자기의 편으로 품고, “우리와 함께 같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함께 일하자.”라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뭐라고 약속을 하냐면, 지금 현재는 요압이 군대의 장관인데 군 지휘관인데, 이 요압을 이어서 아마사 네가 그다음 군 지휘관으로 삼아주겠다. 지금은 군 지휘관으로 삼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요압이라고 하는 사람이 워낙 강하게 버티고 있고, 이 요압이라고 하는 사람이 지금 현재 지휘관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물리칠 이유가 없는 거죠. 공신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물리칠 이유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 요압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이가 들 것이고, 그리고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될 것이고, 물러나야 될 때가 있을 텐데, 그렇게 요압이 물러나게 되면, 그다음 군 지휘관을 누구로 삼겠는가? 아마사, 너를 삼겠다는 거예요.

다윗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달려들었던 바로 그 아마사를 향해서 약속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너로 하여금 그다음 군 지휘관을 삼을 것이다.”라고 약속하면서, 뭐라고 약속하냐면 이렇게 약속합니다. “만일 내가 너를 요압을 이어서 군 지휘관으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이 표현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벌을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하는 그 표현이 무슨 표현이죠? 이것은 내가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하는 각오를 다짐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뭐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나라 표현에 비슷한 말이 있는데, 뭐가 있죠?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가 너를 군대 장관 안 시키면, 내 손에 장을 지을 거야. 또 무슨 표현이 있죠? 내 성을 갈 거야. 그런 말이죠.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 내게 하나님께서 내 위에 벌을 내리시고, 벌을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하는 그런 표현을 통해서 확실하게 이 아마사를 다음번 군대 장관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반대하고, 압살롬 편에 붙었던 사람들을 회유하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다윗 왕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는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 대화를 하는 겁니다. 자기들이 따르던 압살롬이 죽어버렸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백성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 왕이 예전에 우리를 구원해 주었고, 우리를 살렸고, 우리를 구원해 주는 그 놀라운 역할을 했던 바로 그 왕인데, 그런데 그 왕을 다시 모셔와서 우리가 그 왕 다윗을 다시 우리의 왕으로 모셔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백성들 사이에서 의견을 제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견을 제출할 때 모든 사람들이 “맞아. 맞아.” 하면서 동감을 했냐면, 동감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왜 동감하지 못할까요? 왜냐하면 면목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압살롬에게 붙어서, 다윗을 죽이겠다고 했던 바로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다윗을 죽이겠다고 나섰던 바로 그 사람들이 어떤 염치를 가지고 다윗 왕 앞에 가서, 다시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그런 말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너무나도 염치가 없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말 못 해.” “아니야. 우리가 다윗왕을 모셔와야 돼.”라고 하는 그런 논란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신들이 한 죄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시는 일에 너무나도 주저하고 있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설득하고 있는 겁니다.

유다 장로들에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말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다윗 왕은 아마사를 군대 지휘관으로 다시 복권시켜줄 것이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적대했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내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전에는 싸웠을는지 몰라도, 이제는 다시 한 나라 한 민족으로서 함께 같이 돕고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하는 그런 제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결과에 따라서 어떤 결과가 만들어졌습니까? 오늘 읽은 사무엘하 19장 15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모든 유다 사람들이, 전에는 다윗을 대적한 그런 반역의 길에 동참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이제 다윗 왕을 맞이하기 위해서 길갈로 나오게 되었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들이 함께 그 다윗을 왕으로 다시 모셔드리는 일에 같이 동참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15절 말씀 결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윗의 경우에는 다윗은 포용 정책을 실시했고, 그리고 그 포용 정책 때문에, 한때 다윗을 비난하고 다윗의 적이 되었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군인으로 뛰었던 그런 사람들조차도 다시 다윗왕의 백성으로 함께 협력하고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서, 이제는 그 옛날의 모든 상처들을 치유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에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방식은 사울이 취했던 방식과는 아주 대조적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울은 다윗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식을 취한 것이죠.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돌아오게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울은 다윗을 향해서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나쁜 짓을 했나요? 아니요. 다윗이 사울을 대적했나요? 아니요. 다윗은 골리앗을 무찔렀을 뿐이고,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가서 내가 죽을 수도 있지만, 목숨을 내놓고 나가서 싸워서, 그래서 골리앗을 무찔러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낸 민족의 영웅이 된 겁니다.

그런 다윗을 향해서 사울 왕은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 “우리들의 구세주구나. 우리 민족의 영웅이구나.” 하면서 받아주고, 함께 사역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울은 그날부터 다윗을 마음속의 적으로 생각했고, 이 다윗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아서,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은 망하게 된 거죠. 사울의 이야기 그 수많은 사울의 이야기들이 결국은 어떻게 어떤 것으로 결론이 납니까? 결국 죽는 이야기로 끝나게 되는데, 사울은 왜 이런 실패자의 삶을 살게 되었는가? 다윗을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할 때, 결국 다윗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는 외롭고 쓸쓸하게 전쟁터 가운데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그 사실을 오늘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우리의 진짜 적이 되는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간주하면, 내가 그 사람을 친구로 간주하고, 사랑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래서 사랑을 베풀면, 그 사람은 내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간단합니까? 복잡합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친구로 생각하고 사랑을 베풀면, 그 사람에게서부터 사랑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미워하기 시작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그 사람은 내게 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만일 외롭다고 한다면, 외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내 주변에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고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들의 문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을 때, 결국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어 버리고, 결국 나 혼자 외톨이로 남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오늘 이 사무엘하 19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모든 것들을 적으로 생각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그 따뜻한 사랑의 품속에서 지나던 우리 어린아이들이, 어머니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굉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낯선 환경 새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정말 두려워해요. 저 아이들이 적이면 어떡하지? 나를 미워하면 할 사람이면 어떡하지? 나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두려움과 걱정 가운데 불안에 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처음 어린이집으로 등원시키려고 하면, 그 등원시키려고 할 때, 그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잘 가려고 하냐면, 가려고 하지 않아요.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나, 가기 싫어. 안 갈래.” 무서워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고, 그 어린이집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혀 낯선 곳,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정말 그곳에 가면 내가 죽을 것만 같고, 내가 정말 어떤 일을 당할 것만 같고, 무서워 떨면서 그래서 그 엄마의 손을 붙들고 전혀 그 어린이집에 등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나요?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 아이가 불안해하는구나. 무서워하는구나. 그 마음을 이해하고, 그리고 그 아이를 잘 달래줄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불안에 떨지 아니하도록, 같이 손을 붙들고 어린이 집 안으로 같이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그 안에서 같이 있기도 하면서 안심시켜주고, 조금씩 조금씩 경험하게 하게 될 때 나중에는 어떻게 되죠? 어린이집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거죠. 알고 봤더니 적이 아니라, 거기 가면 재밌고, 거기 가면 친구가 있고, 거기 가면 나와 말이 통하는 게 있고, 거기 가면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있고, 너무나도 기뻐서 그다음에는 마음껏 가서 놀게 되는 거죠.

우리 아이들이 주일 학교에 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부모님들이 교회 주일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옵니다.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우리 아이들이 “정말 내가 이 교회에서 주일 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쁘고 너무나도 감사하고 너무나도 행복합니다.”라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주일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가운데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있어요. 저 주일 학교에 가면 너는 외톨이일 거야. 아무도 너를 반겨주지 않을 거야. 너는 외로운 아이고, 다들 다들 적일 것이고, 너를 미워하는 아이들만 잔뜩 있을 것이고, 그래서 너는 거기서 아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 하는 그런 걱정 때문에 주일 학교에 가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이 아이들이 만일 나의 적이면 어떡하지? 내가 그곳에서 외로우면 어떡하지?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내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우리 부모님들은 그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잘 설득시키고 도와주고, 그래서 너희 내가 그곳에 간다면, 선생님들이 너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친구들이 너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될 것이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래서 그 주일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네가 싫어하는구나. 그래 그러면 안 되겠다.” 교회를 옮겨버릴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어떻게 하면 잘 정착할 수 있겠는지 마음을 써가면서, 그 아이에게 잘 인도해 줄 때, 이 아이가 참된 주일학교에 가서 엄청난 많은 혜택과 유익을 누리게 되는 거죠.

그런데 아이들만이 아니라 사실 어른들도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다윗처럼 손을 내밀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다윗처럼 먼저 사랑의 손을 내밀고, 내가 너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나의 군 지휘관으로 삼겠다고 제안도 해주고, 사랑을 베풀고, 먼저 무엇인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될 때, 그 상대방이 내 마음을 진정성을 알아주고, 그제야 마음을 열게 되고, 그렇게 마음을 연 사람들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그런 결과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꼭 예배당에서만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너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이때라.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디서 예배드리든지 다 괜찮다.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꼭 이곳에서 예배드리지 않아도, 아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려도 돼요.

하지만 교회가 있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예배만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고 눈으로 인사하고, 함께 성도들을 가지고 함께 기도해 주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모임을 회복해야 되는 거예요. 성경 말씀에 그러므로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날이 오는 것을 볼수록,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함께 사랑하고 도와주고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성도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때, 믿음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죠. 그래서 이 교회 공동체 가운데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데, 그런데 공동체에 온다고 할지라도 혼자만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갈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먼저 사랑의 손을 내밀어서 함께 사랑의 공동체 사랑의 관계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그런 복된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와서 합시다. “우리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그때는 좀 누구 보고 그런 말 합시다. 옆에 있는 사람 보고, “우리 같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저는 미국에서 장례식을 참 많이 했었는데요. 장례식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평상시 남들에게 수많은 사랑을 베풀고, 남들의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주고 정말 봉사도 많이 하고 정말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힘썼던 사람의 장례식의 경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마지막 가는 그 순간에 정말 애통해하며 눈물 흘리며 천국으로 가는 그 모습을 환송하는데, 그 장례식장도 얼마나 감동적이고 얼마나 참 은혜가 풍성했는지 정말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례식은요. 아무도 없는 거예요. 평상시 교회도 안 나왔던 분인데, 연락이 왔어요. 그냥 동네 사람인데, 동네 한인인데, 우리 교회 온 사람도 아니고, 동네 한인인데, 누가 돌아가셔서 목사님이 좀 장례식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 교인이 아닌 데 가서 장례식을 집전하려고 갔는데, 그 장례 현장에 아무도 안 나타나는 거예요. 왜? 그 땅에 살면서 아무하고도 관계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베푼 적도 없고, 관계하지 않고, 그냥 나 혼자 외톨이로 마음의 문을 꽉 닫아버리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에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예요. 일부러 우리가 데리고 가서, 장례식을 했는데요.

우리가 사랑의 손을 내밀기를 중단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결국 외로운 존재가 되고야 말 겁니다. 어쩌면 인생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윗과 압살롬과의 전쟁, 사울과 다윗과의 전쟁, 그리고 트럼프와 바이든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사실 우리들은 전쟁터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그 가운데서 어떠한 결과가 일어나든지, 무슨 결과를 맞이하든지, 우리 모두가 다 오늘 다윗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사랑과 포용의 정책으로 나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러분, 누가 와서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것이 기다려지시죠? 누가 나한테 따뜻한 물 한 잔 주면서 힘내라고 말해 주는 것, 그거 기다리고 갈망하고 계시죠? 누가 지나가면서 커피 한 잔이라도 사주면 좋은 마음이 있잖아요?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길 원하는 마음만 가지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베풀고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기억하고 계십니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그렇게 해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셨지만,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압살롬을 따라가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대신에 돈을 우상으로 섬겼고, 하나님 대신에 자존심을 우상으로 섬겼고, 탐욕과 여러 가지 죄악 가운데 살아가던 인생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들의 일상에서부터 다 쫓아버리고, 내 마음의 왕자 가운데서 하나님을 축출해 버리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내가 그 자리에 왕이 되고 내 욕심이 내 마음을 차지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인생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죠.

바로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영원히 책망하셔도 아무 할 말이 없는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아마사를 향해서 내가 너로 하여금 군 지휘관을 삼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나의 자녀 삼아 주겠다. 나의 아들이오. 나의 딸로 삼아주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11월은 감사의 달이고 곧 다음 주가 이번 주가 추수 감사 주일인데, 우리는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이 무엇인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한다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친구로 간주하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적으로 간주할 게 아니고, 동지가 되어야 되는 것이고, 부모와 자녀가 적이 아니라 동지가 되어야 되는 것이고, 직장의 상사와 직원들이 적이 아니라 서로 친구가 되어야 될 것이고,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친구의 관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사랑의 손을 내밀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결단들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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