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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4-7)

오래간만에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을 읽게 되었는데요. 오늘 읽은 말씀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해내고 난 다음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서 “이후에”라고 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이후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14장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던 일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린 종들을 데리고 가서, 그 조카 롯을 구해내고, 그리고 빼앗겼던 재물들을 다시 되찾아오는 그런 전쟁을 한 일이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재빠르게 뒤쫓아가서, 그 나라를 싸워서 이기고, 그리고 그래서 조카 롯을 구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는데요. 이런 일을 겪은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 어떠한 마음이 생겼을까요? 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 승리의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을까요? 굉장히 기분이 좋아서, 흥분 가운데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엄습했을까요?

물론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기쁜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하마터면 조카 롯을 잃을 수도 있었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아브라함 가운데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떠한 세상인가? 평안하고 괜찮고 좋은 세상이 아니라,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죽을 수도 있고,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세상 가운데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아마도 아브라함은 생생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지난 연말에 아주 참 놀라운, 아주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요. 참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설치해 놓았던 그 도로 위의 방음벽이, 그것이 화재에 아주 정말 취약한 시설물이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정말 안타까운 생명들을 잃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참 끔찍한 뉴스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듭니까? 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안전한 세상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죠.

예전에 제가 단기 선교를 하기 위해서 멕시코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 멕시코의 우리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멕시코라고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가? 참 강도들이 많이 있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총기가 허용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총기가 많은 나라였던 것이죠. 그런데 어떤 한인이 멕시코에서 장사를 하고, 그런 데로 많은 돈을 모으고 사업에서 성공을 한 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강도가 침입을 해서, 그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들이밀고, 그리고 돈을 내놓으라고 해서, 정말 목숨을 잃을 뻔한 그런 아주 위험한 일을 당한 분이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일을 당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했는가? 모든 사업을 다 접어버리고, 멕시코를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죠. “지금 죽지 않고 살았구나. 이번 강도에서 내가 목숨을 건졌구나.”라고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구나. 이러다가 내가 언제 큰일을 당할 수도 있구나.”라고 하는 그런 두려움이 그의 마음 가운데 생기게 되어서, 결국 정말 장사를 잘하고 아주 크게 했던 분인데, 모든 것을 다 접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버렸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아브라함의 상황도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런대로 이 가나안 땅에 잘 정착해서 살고 있었고, 그리고 그런 데로 많은 부를 얻어서 잘 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아침에 자기의 조카 롯이 전쟁 가운데서 포로가 되어 버리고, 죽을 수도 있었던 그런 어떤 정말 엄청난 일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이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했던 말이, 창세기 15장 1절 말씀 이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죠.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 겨우 모면하고 불안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인 것이죠. 두려워하고 있는 그 아브라함, “이렇게 살다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되는 그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해서 했던 말이 그다음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나님, 그런데 지금 내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불안합니다. 자식이 한 명도 없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도 해 주셨고, 그리고 자손들도 많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지금 자식 하나도 없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은 불안 불안한 가운데 있는데,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나님, 저에게 자식이 없으니까, 우리 집에서 길리운 이 종, 엘리에셀을 나의 양자로 삼아서, 그래서 내 아들로 삼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게 된 것이죠.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만드시면서, 다시 한번 약속해 주는 내용이 5절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지금 불안에 떨고 있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 무엇이냐면, 아브라함을 밖으로 이끌고 나가서, 하늘을 보게 만드신 거죠. 밤하늘을 보게 만드시면서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아, 저 하늘의 별들을 봐라. 저 별들을 내가 살 수 있느냐?” 셀 수가 없는 저 무수히 많은 그 별들만큼, 네 자손이 많아지게 해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 약속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느냐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믿었다. 그 말을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을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어요. 아들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 한 명도 없는 그런 지금, 아이가 전혀 한 명도 없는 그 아브라함을 향해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해 주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 이 순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해서 항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런 말씀 마시고 아들이나 하나 줘놓고 얘기하세요. 아들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임형섭 목사님처럼 아들이 셋이라면 좋겠지만, 아들 하나도 없는 제가 어떻게 아들이 이렇게 수없이 많아진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내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항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아브라함과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가 있을까요? 무엇인가 증거도 내놓는 것도 아니고, 뭔가 아들이라도 하나 주면서 믿으라고 하면, “이 아들을 통해서 자손이 많아지겠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아들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을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수없이 많은 자녀 손을 주겠다고 하니까,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증거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내가 당신을 부자 만들어 줄게요. 그렇게 약속하면 그 사람 말이 신빙성이 있습니까? 믿을 만합니까? 믿지 못할 말입니까? 믿지 못할 말이죠. 만일 누군가 나타나서 내게 돈을 주면, 내가 그 돈을 가지고 엄청나게 많이 불려서, 부자가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면, 그런 말 믿어야 됩니까? 믿지 말아야 됩니까? 믿지 말아야 되는 것이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약속한다고 하면, 어쩌면 믿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번에 어떤 사람에게서 우리 교회로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이 오면서 무슨 연락을 하냐면, 교회도 산업안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혹시 산업안전교육 받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안 받았는데요.” “받으셔야 합니다. 당장 내일 약속 잡으십시오.” 해서 얼떨결에 약속을 잡아서, 산업안전 교육을 하신다는 분이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그래서 저랑 우리 목사님이랑 심혜경 전도사님이랑, 3명을 앉혀놓고, 산업안전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서,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면서 심폐소생술 하는 교육을 막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갑자기 쓰러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야 된다고 하면서 교육을 하는데, 정말 좋은 교육이구나 하고 제가 열심히 교육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교육을 하는 가운데, 그분이 그래요.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는 이유는 혈전 때문에 쓰러지는 것인데, 그 혈전을 녹이는 아주 좋은 약이 나왔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만들어낸 아주 좋은 약이 나왔다고 하는데, 제 느낌이 이상하더라고요. 이거 고도의 상술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혈전이 막힐 때 나타나는 증상을 이야기하는데, 눈 밑이 떨리고, 그리고 손톱에 줄이 생기고, 어깨 아프고, 밤에 자다가 쥐가 생기고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제 아내의 증상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러면서 이 약을 사라고 하면서, 방송 뉴스도 보여주고, 이 약이 얼마나 좋다는 그 뉴스도 보여주는데 사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48만 원이라서 못 샀습니다. 근데 그 약을 선전을 들으면서 믿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안 믿었습니다. 증거를 들이밀어도, 내 앞에서 우리들 앞에서 그 약 방울을 떨어뜨리니까, 막 스티로폼이 막 녹고 하는, 이렇게 혈전을 잘 녹인다고 하면서 선전을 하는데, 그런데 그것을 보고도 믿는 것이 좋을까요? 안 믿는 것이 좋을까요? 안 믿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 증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안 믿어야 정상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증거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만 그렇게 약속해 주셔요? 말씀으로만 약속해주고 계시는 그 하나님 믿어야 됩니까? 안 믿어야 됩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이 순간에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증거를 보여주어야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사실은 증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증거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증거가 없어도 믿어주는 것이 믿음이고 신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죠. 증거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지나가는 사람이 말해준 게 아니고, 그냥 어떤 사기꾼이 우리들에게 말해준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말씀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동안 아브라함은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정말 어마어마한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내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그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그 길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생애 동안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함께해 주시고 지켜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기근이 생겨서 애굽으로 이주를 가게 되었을 때, 그렇게 이주해 가서 그 애굽 땅에서 위험을 만나게 됐습니다. 아내를 빼앗길 뻔한 그런 상황에 처하게도 되었고, 그래서 아주 가정이 풍비박산이 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순간이 되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셔서 애굽 왕 바로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아브라함의 아내를 다시 찾아오게 만들어주셔서, 그래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호해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아무런 증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주신 것이죠.

하나님이 누구신가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말씀해 주신 것이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었고, 그렇게 믿은 것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하는 점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증거가 없이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럴듯한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증거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없어도 믿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거가 없으면서도 얼마나 잘 믿는지 몰라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엇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게 그것이 어리석은 것인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어리석은 것인가요? 가짜를 믿으면 어리석은 것이고. 진짜를 믿으면 현명한 것이죠. 무엇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믿을 수 있는 대상을 믿는 것이 그게 옳은 것이고, 믿을 수 없는 대상을, 믿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죠.

개념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어리석은 겁니까? 증거가 없는 것을 믿는, 증거가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죠. 증거가 없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증거가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믿지 못할 것을 믿는다고 한다면,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증거가 없으면서도 엄청나게 믿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가장 잘 믿는 믿음이 무엇인가요? 돈에 대한 믿음입니다.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조금 더 편리할 수는 있겠지만,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는 증거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으면서도 사람들은 돈을 믿습니다.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고 그런 것들을 얻으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철저하게 믿는 것이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는 것이죠. 내가 원수를 갚고 복수하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는데도, 우리들은 그것을 믿어요. 복수를 하고 원수를 갚아야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무엇을 믿는가 정치인들을 믿습니다. 정치인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하는 증거가 없고, 오히려 우리를 배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철저하게 우리 편을 믿어요. 내가 이 당을 지지하면 이 당을 철저하게 믿고, 저 당을 지지하면 저 당을 철저하게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 당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고 그 정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하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인, 사람들은 슬픔과 분노 가운데 온갖 믿지 말아야 될 것들을 믿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이 남편과 이 아내와 헤어지면 오히려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아무 증거가 없는 것들을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죠.

우리가 결정하는 그 모든 것들은 안타깝게도 증거가 있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증거가 없는 것들을 그렇게 철저하게 믿어버리면서도, 유독 하나님에 대해서만 증거가 없으니까 못 믿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죠. 어리석은 것은 증거가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줄 거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하나님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도 주지 않고 아무런 증거도 없고, 그냥 말씀으로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하나님께서 아주 특이한 명령을 하나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너는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과 비둘기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셔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런 짐승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짐승들을 반으로 쪼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가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짐승들을 둘로 쪼개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아브라함이 꿈을 꾸는데, 어떤 꿈을 꾸냐면, 이상한 꿈을 꿔요. 그 쪼갠 고기 사이로 횃불이 그 사이를 쏙 통과하는 그런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읽으면 도대체 무슨 장면인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연구한 고대 근동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것은 고대 근동의 계약 형식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계약을 하게 되면 어떻게 계약을 하죠? 만약에 우리가 아파트를 산다든가, 부동산을 산다든가 해서, 우리가 계약금을 걸고, 그리고 잔금을 치른다고 한다면, 무엇을 보고 계약을 하게 되고 돈을 지불하죠?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겁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작성해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입회한 가운데 매수인과 매도인이 서로 앉아서 계약서에 서명을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서에 무엇을 찍죠? 도장을 딱 찍습니다. 그래서 매매 계약이 체결이 되면, 그 부동산을 내가 살 수 있게 됩니까? 못 삽니까? 사게 되죠. 돈 줘도 됩니까? 안 줘야 됩니까? 돈 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도장이 찍힌 걸 보고 아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고대 근동 지방에서 중동 지방에서 있었던 계약 형식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개인 간의 그런 계약 형식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 계약을 맺을 때 있었던 그런 조약 형식이라고 합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는데 그 강대국과 약소국이 서로 약속을 맺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약속을 맺냐면 강대국은 약소국을 보호해 준다고 하는 약속을 하고, 그리고 약속은 매년 조공을 얼마씩 바치겠다고 하는 그런 약속을 하게 되는데, 그 약속을 하면서 두 나라가 어떤 의식을 치르냐면, 짐승을 가지고 와서 짐승을 둘로 짜개버립니다. 소를 가지고 와서 소를 둘로 짜개고 염소를 가지고 와서 둘로 짜개고, 그렇게 짜갠 다음에 그다음에 그 짜갠 고기 사이로 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누가 지나갈까요? 약소국의 왕이 그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게 되는 것이죠. 그 의미가 무엇이냐면, 만일 내가 이 계약을 어기게 된다면, “이 짐승들처럼 나도 처단을 당해서 죽어도 마땅하다”라고 하는 그런 서약으로서, 그 짐승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죠.

그래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왕 등이 서로 조약을 맺으면서, 그 사이로 약소국의 왕이 지나가서, 계약이 성사가 되고, 그때부터 강대국은 약소국을 보호해 주고, 약소국은 매년 조공을 바치게 되는 그런 조공 형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오늘 지금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지금 이 장면이 어떤 장면이냐면, 바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조공 약속을 맺는 것과 같은 그런 계약 형식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내가 믿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자녀들을 주겠다고 했고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까?”라고 이야기했을 때, 하나님께서 짐승을 둘로 반으로 쪼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이상한 장면이 하나 나타나는 거죠. 원래 이 짐승 사이에 승을 쪼개놓은 짐승 사이에 가운데로 지나가는 사람은 누가 지나가야 맞습니까? 약소국 왕이 지나가는 게 맞는 것이죠.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약속,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할 때, 아브라함이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심판을 받아 마땅하겠다고 하는 그런 약속을 해야 되는 것이 맞는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꿈 가운데 놀라운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죠. 횃불이 그 사이로 지나가는, 그 횃불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시대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해주는 그런 장면,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약속을 해주냐면, 내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하겠다고 하는 그런 표시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해 주셨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1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8절 말씀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약속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내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면서, 내가 내 생명을 걸고 너에게 이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이 아브라함에게 해주셨던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해 주시겠다고 해주셨던 그 약속이 잊힌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셨는데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아니하게 될 때, 우리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는 그런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금년 한 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불안한 마음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3년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늘 실수 투성이고 늘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결심은 작심삼일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또 실패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금년 한 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해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승리하며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와서 이제 교회로 오려고 했는데요. 저희 아파트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옆집인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지만 큰 소리가 나는 거예요.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니 새해 벽두부터 어떻게 저 집은 싸우는 걸로 한 해를 시작하는가?”라고 하는 그런 참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여기 앉아 있는 분들 가운데도 싸우고 나오신 분 계십니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금년 한 해는 믿음으로 살겠다고 노력하고, 금년 한 해는 좀 가족들에게 잘해보겠다고 노력하고 결심하고, 그렇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 잘 살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소리 지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이고, 믿음으로 살고 싶었지만, 그러나 첫날부터 제대로 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2023년 또 망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 순간에 우리 주님을 바라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자신의 생명을 약속하시면서까지, 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시고, 내가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이끌어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금년 한 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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