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늙은 다윗 (왕상 1:1-4)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다윗이 늙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장사라고 할지라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는 말처럼, 다윗의 말년은 어쩌면 다윗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천하를 호령했던 그 다윗인데, 이제는 자기 몸 하나조차 따뜻하게 할 수 없는, 나약한 열로 한 노인의 모습의 그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가 않은 것이죠. 여러분들도 좀 그렇습니까? 이불을 덮으면 좀 안 따뜻한가요? 몸이 좀 차가워진 것이죠. 예전에는 열이 많이 났었는데, 이제는 지방이 몸에서 많이 빠져나가면서, 신체의 모든 기능들이 하나씩 둘씩 망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예전보다 더 추위를 타고 이불을 덮어도 춥지 않은 모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날에는 난방 시스템이 그나마 잘 되어 있고, 그리고 옷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오리털 이불에, 오리털 옷을 입고 다니니까, 그나마 참 따뜻하게 우리가 지낼 수 있게 되겠지만, 이 당시만 해도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다윗이 노년에 자기 몸 하나 따뜻하게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게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하나의 제안을 했습니다.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서 시종을 들게 하자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처녀의 온기로 왕을 따뜻하게 만들려고 하는 신하들의 생각을 생각이 있었고요. 결국 그래서 수넴 여인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인을 구해서, 다윗에게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고대 세계에서는 가능했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왕정시대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그 왕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기에, 충분히 가능했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쓰여 있다고 하는 사실은,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이런 비슷한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 항상 조심해야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우리를 향한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하나님의 뜻이 당시의 문화의 옷을 입고 전달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당시의 이야기들 그 당시의 삶의 스토리들로 우리들에게 전달된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다 우리들에게 모범적이고,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모범으로 그렇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 당시 문화 속에서는 왕정시대 때에는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일이었고, 용납된 일이었고, 그 당시에는 어쩌면 당연시되는 일이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사실은 이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읽는 가운데 너무나도 쉽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과연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체로 되어 있는 그 부분들을 우리가 평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본다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따라야 할 이야기도 아니고, 오늘날의 그대로 반복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이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다윗의 말년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윗이 우리들이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누구였습니까? 다윗은 물맷돌로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군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그 위기 가운데서 구원해낸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다윗은 누구였습니까? 수많은 전쟁 가운데서 블레셋 나라를 무찌르고, 또한 수많은 외적들을 무찌르며, 이스라엘을 최대 강국으로 만들어낸 당시의 최고의 무사요 영웅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에 비견될 정도로, 아주 훌륭한 인물이 누구였는가 바로 다윗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윗이 우리의 소망일 수 있겠는가? 그 다윗이 우리의 구세주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그 질문 앞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니다”라고 대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조차 따뜻하게 할 수 없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젊은 처녀의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예전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구원했고, 다윗이 이스라엘을 먹여 살리고, 그래서 다윗의 날개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윗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보면서 열광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나, 혹은 우리의 지도자들이나, 때로는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서 열광하곤 하는 것이죠. 어쩌면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고 환호하고 지지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하나님의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시편 146편 3절 4절 말씀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가 없고, 우리의 메시아가 될 수 없는 게, 아무리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모습은 결국 늙어가게 되어 있고, 그리고 결국 수명이 다하게 되어 있고, 그러면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한낮 무덤에 묻히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을 의지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이죠.

오늘 열왕기상의 첫 부분을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데, 이 열왕기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아주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사무엘상의 이야기들, 그리고 사무엘하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다윗이 그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 다윗이 이제 열왕기상에 들어가면, 나약한 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고,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에,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무엇이냐면, 연약해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그 인생, 호흡이 끊어지면 땅에 묻힐 수밖에 없는 그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면 어떻게 되나요? 결국 배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이 다윗의 이야기가 열왕기상에 와서야, 다윗의 누추한 모습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이전에 이미 사무엘하의 말씀 가운데서 다윗의 아주 참 파렴치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었던 것이죠.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주요, 구세주요, 메시아처럼 등장했지만, 그 다윗이 어느 한순간에 돌변해 버린 겁니다. 다윗을 위해서 충성을 바쳤지만, 그 다윗이 자신의 아내를 겁탈하고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최전방에 내보내어 죽게 만드는, 그래서 다윗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그게 우리들이 사람을 의지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만일 누구 어떤 한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 가족을 믿는다든지, 우리들의 지도자들을 믿는다든지, 아니면 우리의 친구를 믿고, 우리의 어떤 든든한 백이 되는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는 누구에게 속습니까? 정치인들에게 속는 것이죠. 정치인들은 상대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욕하면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구세주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포장합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자신들의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그렇게 나타났지만, 결국은 그들에게 표를 주고 믿고 신뢰했지만,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정작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는 아는 척하지도 않고, 정작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아니하는, 그런 배신당하는 경험을 우리가 매번 하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녀들에게 속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믿고 밀어주고 도와주면, 이 자녀들이 결국 나에게 많은 것을 되갚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자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생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뿐이고, 오히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그런 경험을 할 때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윗과 같은 그런 어마어마한 용맹을 지녔던 사람조차도, 아주 나약한 허망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그려주면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고, 그리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그러니까 사람들을 의심하고 불신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믿어주어야 하고 지지해 주어야 되고 협력해야 합니다. 지도자들과 함께 협력해야 되고, 우리의 모든 사람들, 이웃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고, 그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그 사람들에게 지지하고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의심하면서 불신하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아무런 협력도 하지 아니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라고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더 나가서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말라고 하는 의미도 아닙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말은 과장법적 대조의 구문으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될 분이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 말은 아예 도움을 거부해야 된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의 가용한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도움을 받아야 되고, 때로는 의지해야 되고, 많은 경우에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활용해야 되는 것이죠.

병원에 가지 말아야 되는가? 아니요. 가야 하는 거예요. 약을 먹지 말아야 되는가? 아니요. 약을 먹어야 돼요. 종종 극단적이고 과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는 복용하고 있는 약을 내 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약을 먹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약을 버리고 병원에 가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기도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오해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밥은 먹는지는 모르겠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약을 먹지 말아야 되고,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왜 밥은 먹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밥에 의지하는지 모르겠어요. 모순이 되는 것이죠. 앞뒤 모순이 되는 것이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도움을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고,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는 전혀 아무런 도움이 없이, 다 모든 도움을 끊어버리고, 아무것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성을 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고 한다면, 그 성이 세워질 수가 없고, 우리가 파수하며 경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시편 127편 1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에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말은 전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우리가 노력을 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여러 가지 수고와 땀방울과 노력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 때문에 된 것이 아니고, 내가 똑똑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셨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겸손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하거나 염려한다고 해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좋은 길로 선한 길로 인도해주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어떠한 상황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담대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말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염려를 다 맡겨버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하면 우리는 잠을 잘 수 있어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것이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면서, 걱정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그러면서 걱정하기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다 맡겨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으로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선하신 길로 인도할 것을 믿고 잠을 둘 수가 있는 것이죠.

세 번째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말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무리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선하신 길로 인도하실 거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절망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여인이 등장하는 것이죠.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아비삭이라고 하는 여인은 어떤 여인입니까? 그냥 한 평범한 여인인 것이죠. 다윗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죠. 사실은 다윗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닙니까? 어렸을 때 다윗은 어떻게 됐는가? 그 젊은 나이에 아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않는 그 상황 가운데서, 두려워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물러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포기해버리고 절망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그 사명을 위해서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왜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하며 떨며 걱정할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믿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다윗이 소망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러므로 우리의 눈을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우리의 참된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윗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옛날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서서 그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그 앞에 나가면 골리앗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골리앗 앞에 나갔던 것처럼,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향해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2023년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헌신을 다짐하는 우리 교역자들과 또 우리 장로님들 또한 우리 온 교우들 금년 안에 헌신을 다짐하면서, 주님 앞에 겸손하게 섰으면 좋겠는데, 그 모든 것들을 이루실 분이 누구신가? 우리의 소망이 누구신가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oading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