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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강요하는 아이

어제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이 밤새 마음에 걸렸다. 어떤 아이가 밥을 먹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싫다고 하면서 밥을 먹기를 거부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위대한 오은영 선생님마저도 이 아이에 대해서 별다른 처방이 없고, 일단 살려야 한다면서 병원에 입원시켰다. 일단 살아야 하고, 일단 건강이 회복되어야, 그다음 단계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고, 어디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아이는(방송에서는 금쪽이라고 통칭하고 있었다) 왜 밥을 먹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자기에게로 돌리게 하는 극약처방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지 않고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엄마는 더 쩔쩔매고 금쪽이에게 올인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만족스럽지 않은 성공이다. 엄마가 동생에게 대하는 태도는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동생에게는 하나도 슬픈 기색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충분한 사랑으로 대해준다. 하지만 엄마가 금쪽이에게는 근심과 시름을 가지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엄마의 시간을 동생에게서부터 대부분 빼앗아버렸지만, 여전히 금쪽이는 불만이다. 그래서 더 밥을 먹지 않는다. 그게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악순환의 수렁에 빠진다. 엄마는 금쪽이를 사랑하지만, 그러나 근심과 걱정으로 대한다. 금쪽이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금쪽이는 불만일 뿐이다.

금쪽이는 아무 효과도 없는 방법을 포기해야 한다. 밥을 먹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금쪽이는 동생에게서 배워야 한다. 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논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엄마는 자연스럽게 대한다. 동생을 향해서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사랑이 나온다. 그 사랑의 질(quality)을 억지로 자신에게 집중시킨 사랑이 결코 이길 수 없다. 따라서 금쪽이는 배워야 한다. 억지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생각은 결코 성공할 수도,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금쪽이는 동생에게 배워야 한다.

하지만 금쪽이에게는 이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자신이 삐딱하게 나가면 나갈수록 엄마는 자신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의 만족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밥을 먹는다면, 다시 엄마는 동생에게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러기에 밥을 먹을 수 없다. 엄마의 사랑을 내게 묶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금쪽이에게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서 자신의 방법을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엄마의 충분한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금쪽이는 죽기를 각오하고 밥을 거부해도 조그마한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동생은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아도, 마음껏 먹고 살아도 엄마의 완벽한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쪽이는 혼란스럽다. 답이 아닌데, 그래도 이게 최선이어서 밀고 나가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금쪽이는 동생에게 배워야 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배울 방법이 없다. 결국, 부모가 가르쳐줘야 한다. 밥을 먹지 않고 거부했을 때 금쪽이에게 더 밀착하고 더 염려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밥을 먹지 않는 것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밥을 먹으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밥을 먹으라고 애원하면 애원할수록 먹지 않을 것이다. 밥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여기 밥이 있어. 밥을 먹어야 건강할 수 있고, 네가 건강해야 엄마가 너와 오래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어. 하지만 밥을 먹고 먹지 않는 것은 네가 선택해.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울 거야. 1시간 뒤에 돌아와서 볼 거야. 그때 밥을 먹었는지 볼 거야. 그런데 네 안 먹었다면, 난 너에 대해 굉장히 실망스러울 거야. 왜냐하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래서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와 함께 있는 것은 어려워. 그러니까 나는 또 잠시 자리를 비울 거야.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으니까. 그리고 한 시간 뒤에 다시 와서 볼 거야. 아무튼, 네가 밥을 먹었다면, 나는 너무 기쁠 것이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럼 너와 함께 같이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것도 하나 들어줄 수 있을 거야.” 물론 이 금쪽이가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모니터는 필요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그동안 금쪽이가 밥을 거부하면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밥을 더 안 먹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엄마의 사랑을 얻는 방법이라고 배운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 밥을 먹지 않는 것으로서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의 종이 되어서는 아이를 충분히 사랑할 수 없고, 아이에게 결코 유익하지도 않다. 부모는 부모여야 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불만을 표시하겠지만, 바른 것을 가르치는 부모를 고마워할 것이다.

우리 중에는 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아이들이 많다. 어떤 아이는 욕하기도 하고, 도둑질하기도 하고, 자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부모가 싫어하는 짓을 하면 할수록 부모가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그때 그 아이들의 생각이 맞았다는 식으로 반응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일을 해서 엄마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대신 평상시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 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슬픈 모습으로 또는 화난 모습으로 대할 게 아니라, 밝게 웃는 모습으로 대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늘 말해주어야 한다. 조그마한 것도 칭찬해 주어야 한다. 조그마한 선물도 준비하여 주어야 한다. 여러 명의 아이가 있다면, 한꺼번에 몰아서 사육하지 말고, 한 아이 한 아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 날은 한 아이만 데리고 둘만의 여행을 해도 좋다. 다른 아이 때문에 한 아이에 대해서 소홀해서는 안 된다. 어떤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다른 아이들이 중간에 끼지 못하게 하고 기다리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와 충분히 모든 것을 다 소통한 후에 그다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할 때, 그들은 사랑을 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어린이 교육의 전문가가 아닌 문외한이다. 그러기에 이 글은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냥 내가 생각한 것을 적은 것뿐이어서, 실제로 적용하다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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