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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판단

아내와 나는 언제나 의견이 다르다. 특히 건강 문제에서 그렇다. 우리 몸에 건강의 문제가 생기면, 아내는 즉각적으로 말한다. 그러길래 평소 먹는 것 좀 줄이고 소식을 했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진단은 다르다. 아무래도 우리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영양부족에서 온 듯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실제 원인은 아내나 나나 모른다. 그냥 위기 상황이 나올 때마다 그냥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 이유를 함부로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 제대로 된 진단이라기 보다는 평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그런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말이다. 내가 말한 이유는 진짜 그 문제에 대한 진단을 드러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줄 가능성이 더 많다.

문제를 진단하고 싶어하는 것 자체는 악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상황을 이해하려는 우리들의 본능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그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함부로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은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폭력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욥의 세 친구들의 판단이 그랬다. 그들은 욥의 고난에 대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성급한 판단은 욥의 고통을 더 가중시켰다. 그러한 친구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책망하셨다. 그러한 성급한 판단은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큰 죄였다.

특히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함부로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성급하게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슬퍼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게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입은 다물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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