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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앞에서 (잠 16:12-15)

지난 시간에 우리는 왕이 내리는 판결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억이 좀 나십니까? 한번 복습을 해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은 바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말씀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의 재판은 무엇과 같은가? 왕의 판결은 무엇과 같은가? 어떤 판결과 같다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하나님의 판결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왕이 내리는 그 심판, 판결이 “하나님께서 내리는 판결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고요. 따라서 우리가 그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또한 우리가 그 판결을 보면서 조심해야 되는 것이죠. 참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는 수많은 엉터리 판결들이 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러한 판결들이 많이 있고, 또 어쩌다 보면 정말 좋은 판결보다는 나쁜 판결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은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왕이나 이런 권세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의 판결을 내리는 것을 그냥 하찮게 그냥 무시해 버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존중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왕이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그 왕 혹은 재판관 혹은 정부 어떤 권세를 가진 사람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권세는 무슨 권세인가? 그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권세다”라고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고요. 따라서 그 권세에 대해서 우리가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권세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님을 존중해야 되는 것이고, 공경해야 되는 것이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고,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하는 것이고, 아무튼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해서 존중하고 복종하는 것은 성경적인 그런 가르침이라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런 권세 잡은 자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그 통치를 대리로 어떠한 분야에 대해서 어떠한 영역에 대해서 대리로 통치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고, 따라서 그러한 권세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복종해야 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잠언서 16장의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먼저 잠언서 16장 12절, 13절의 말씀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요약이 되겠습니까?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이 미워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 의롭게, “의로운 입술은 그 왕이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잠언서 16장 12절, 13절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좀 특이한 면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악에 대해서는 말할 때,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악을 행하는 것,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왕이 미워하는 거라고 말하면서, 의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의로운 “입술”은 “왕이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악에 대해서는 행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반면에, 의로운 것에 대해서는 입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좀 특이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악은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겨져야 그때서야 문제가 되는 것이고, 의로운 것은 입술에만 있어도, 그래도 좋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잘못된 결론을 내리면 안 되겠습니다. 악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가지고만 있으면 괜찮은 것이 아닌 것이죠.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밖으로 악을 표현해 내야만, 악을 밖으로 실제적으로 행동을 보여주어야만, 그게 진짜 나쁜 악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악한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벌써 하나님 앞에 큰 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그렇죠? 우리가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것도 이미 살인한 것과 똑같다. 살인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온갖 악을 행한, 실제적으로 악을 행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악을 행한 사람들이나 그러나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던 사람이나, 큰 차이가 아니라, 사실은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라고 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 22절의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대하여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여기서 “라가”라고 하는 말은 막 욕하는 말이에요. 욕하는 말! 형제에 대해서 욕을 해대고,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고, 또 속으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실제적으로 행동으로 안 옮겼기 때문에 괜찮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아니고, “그냥 괜찮으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 이미 그걸 살인했다는 거예요. 이미 살인죄와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모든 죄가 다 똑같다고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많이 오해하고, 크리스천들이 종종 혼란스럽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이죠. 그래서 누군가 정말 정말 나쁜 죄를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을 두둔하면서 하는 말이, 그 사람이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그 사람만 나쁜 짓을 저지른 게 아니고, 우리도 또 똑같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냐? 우리도 마음으로 죄를 짓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미 우리가 그 살인죄를 똑같이 저지른 사람이다. 우리는 이미 그 사람들과 똑같이 간음죄를 이미 저지른 사람이다.” 말하면서, 누구나 할 것이 다 똑같은 죄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누가 누구를 향해서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라고, 그렇게 악을 행하는 자를 그런 식으로 두둔하는 경우가 종종 교회 안에서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회는 죄의 경중이 없는 게 아니라, 죄의 경중이 있어요. 죄가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죄는 좀 더 약하고, 어떤 죄는 좀 더 무거운 죄가 있는 겁니다. 어떤 죄는 좀 덜 무겁습니까? 마음속으로만 생각을 하는 것은 좀 덜 무거운 거죠. 덜 악한 죄인 것이죠. 하지만 그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던 생각을 실제적으로 실행에 옮겨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악한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훨씬 더 큰 죄라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가 실제적으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을 징계하거나, 훈계하거나 어떠한 절차를 밟을 때, 어떤 기준으로 절차를 밟습니까? 마음속에 그런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책망하거나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죄짓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제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큰 죄이기 때문에 그 문제는 반드시 해결을 해야 되는 것이죠. 징계를 해야 되는 그런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는 경중이 있어서, 그냥 참고 두고 봐야 되는 단계의 죄가 있는가 하면, 반드시 징계하고 반드시 문제를 다뤄야 될 악한 죄, 아주 심한 죄가 있다고 하는, 죄의 경중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의 경중이 어떻게 다릅니까? 모르고 지은 죄는 좀 약한 죄죠. “내가 잘 몰랐어요. 이게 죄가 되는 줄 몰랐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고 한다면, 그런 죄는 그나마 약한 죄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이것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거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악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죄는 훨씬 더 큰 거죠.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어떤 죄가 더 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교사들의 죄가 훨씬 더 크다고 가르쳐주고 있어요. 일반 성도들이 짓는 죄보다도 목사나 장로나 교사나 남을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죄가 훨씬 더 큰 죄라고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죄의 경중이 없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죄의 경중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경중이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죄가 또 똑같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모든 죄가 똑같다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그 죄를 다룰 때 똑같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가 똑같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실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나, 마음속에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만한 그런 어마어마한 큰 죄라고 하는 사실에 있어서, 어느 죄나 다 똑같다고 하는 하나님 앞에서 볼 때는 모든 죄가 다 똑같다고 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똑같은 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잘 개념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악이라고 하는 것은 행하는 것만이 악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가 악을 행한다고 해서 그게, 그것만이 악이 아니라, 실제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품고 있는 미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가지고 있는 시기, 질투, 탐욕,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엄청나게 큰 죄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회개해야 될 텐데요.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악에 대해서는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의에 대해서는 입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는 점이 놀랍습니다.

의는 그러면 그 입술에만 의가 있으면 괜찮은 건가요? 아니죠. 그것도 역시 아닙니다. 행동으로 구체화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의는 헛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정말 선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실제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져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베풀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들을 해나가야, 그래야 의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왜 악에 대해서는 행동, 의에 대해서는 입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히브리 평행법이라고 하는 표현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번 구체적으로 도표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악을 행하는 것, 의로운 입술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것이 평행을 이루어서, 대조를 이루어서, 사실은 그 의미가 무엇이냐?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악을 말하고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의로운 입술이라고 하는 것은 의로운 말만 하면 된다고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말하고 실제로 행하는 것까지 같이 표현하는 것을 저렇게 말하고, 행하는 것을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좀 너무나 말을 너무나 길게 말하고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하나씩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악을 행하는 것, 의로운 입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악을 말하거나 행하는 것 그것이 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왕이 미워하는 것이고, 의를 말하고 행하는 것이 왕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왕이 기뻐한다고 말하고 왕이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우리 앞에 있는 최고 권력자가 기뻐하고, 최고 권력자가 미워한다고 하는 것 정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왕이 누군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그 통치하는 왕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왕이 의를 보면 기뻐하고, 악을 보면 미워하는 그 모습을 표현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왕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당연하죠! 의롭게 살아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죠.

우리가 잠언서를 살펴보면서 계속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거예요. 다른 걸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서워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법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그것이 복된 길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하고 의로운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악을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잠언서 16장 14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우리가 악을 행하여 왕의 진노를 사게 된다면,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고 한다면, 무엇이 온다고요? 죽음의 사자들, “죽음의 사자들과 같이 진노가 우리들에게 올 것이다”라고 잠언서 16장 1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자라고 하는 말이, 사자가 뭐죠? 사자가 뭡니까? 밀림의 왕 사자? 죽음을? 그 사자가 동물들을 막 잡아먹듯이, “죽음의 사자가 우리들을 잡아먹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일까요? 그게 첫 번째. 두 번째, 사자라고 하는 말이 심부름꾼이라고 하는 말도 있죠? 천사라고 하는 말도 있죠? 하나 왕이 보낸 심부름꾼, 왕의 신하, 왕의 그 사신이 와서, 죽음의 사자가 와서, “사약받아라” 하듯이, 그 왕의 죽음의 사자, 그 신하가 와서 “그 진노를 우리들에게 베풀게 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일까요? 사자라고 하는 말, 한국말로만 보니까, 이게 짐승인지 신하인지 잘 모르시죠? 정답은 2번입니다. 짐승 아닙니다. 거기다 잘 적어놓으세요. 사자, 사자가 나오면, 짐승 사자인지, 천사 혹은 신하인지 한번 구분해 봐야 되는데, 오늘 잠언서 16장 14절은 짐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진노는, 죽음을 가져오는 그 신하처럼, 우리들에게 다가올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악을 행한다면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잠언서 16장 15절의 말씀 가운데서 “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우리가 선을 행한다면 왕이 기뻐할 것이고, 기뻐하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왕이 어떻게 판단한다고요? 우리가 선을 행하는가 악을 행하는가를 보고서 판단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잠깐 읽은 이 말씀들의 결론이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요? 선을 행해야 되겠다. 악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살아가는 길이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것이 망하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하신 뜻을 따라 의를 따라 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의를 행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악을 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싶은 게 우리들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그냥 어떤 사람을 아무도 터치하지 않고, 그냥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내버려 두면,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타락하는 거죠. 이 세상 이치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음식이 있습니다. 어떤 맛있는 과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놔두면 어떻게 됩니까? 썩어요. 안 썩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냉장고에 넣든지, 삶든지, 냉동실에 넣든지, 무슨 대책을 세워야 안 썩는 것과 마찬가지. 우리 아이들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돼요? 바보가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돼요? 자꾸 배워야죠. 공부를 해야죠. 시간을 내서 정말 책을 봐야죠. 열심히 노력해야죠. 노력해야 그래야 똑똑해지고,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겁니다. 우리 가정이 있는데, 우리 가정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요? 망하는 거예요. 망하는 거예요. 우리 가정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노력해야 돼요. 노력해야 돼요. 서로 남편과 아내가 사랑하고,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서로 사랑하는 그런 행복한 가정이 되는 거예요. 사업은 어떻게 하면 잘 돼요? 그냥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잘 되죠? 그렇게 안 된단 말이에요. 정말 이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 사업이 잘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믿음이 생기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그런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까요? 아니요. 우리 인생의 본성은 너무나도 사악해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잘못된 길로 계속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악을 행하는 길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오늘 성경 말씀은 왕의 죽음의 사자가 임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오늘 읽은 말씀의 결론은 무엇이냐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순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그래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면을 해줘야 돼요. 신앙에 나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줘야 되고, 우리 함께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자고 하고, 예배에 참석하자고 하고, 기도하자고 하고, 자꾸만 권면해서, 그 사람들이 자꾸만 하나님 앞에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로 가게 만들어야, 그게 그 사람이 망하지 않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가족 가운데, 혹은 우리의 친구들 가운데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권면하고 기도하고 돌봐주는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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