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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의 등, 내 길의 빛 (시 119:105)

우리가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정말로 고마운 것들이 많이 있죠. 그 가운데 공기가 있을 겁니다. 공기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그러나 공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숨을 쉬면서 살고 있는 것이죠. 정말 고마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름다운 얼굴들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만일 빛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습니다. 저는 새벽에 주로 일어나는데요. 아직 어두컴컴할 때 집 안에 불을 켜지 않고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땅바닥에 있는 것을 한두 번 차 가지고 발을 다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빛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낭패를 당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빛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정말 큰 낭패를 당하게 될 텐데, 누가복음 6장 3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앞을 보지 못하는 빛이 없는 그런 경우에, 빛이 없는 상태로 가다 보면, 인도자나 그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의 말씀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빛이 필요한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 시편 119편 105절의 말씀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등불이 되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빛이 된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를 안내해 주고 우리들의 길을 비추어주는 것들이 이 세상에 참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운전을 하다 보면 무엇이 우리를 인도해 주죠? 내비게이션이 인도를 해줍니다. 내비게이션이 인도를 해주어서 정말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을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전만 해도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 어디를 찾아가려고 하면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데, 잘못 찾아가서 낭패를 당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내비게이션이라고 하는 친절한 안내가 있어서, 그래서 어느 곳이든지 잘 찾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울 정도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인생의 선배들이 해줄 수 있는 조언들이 좋은 안내자가 되곤 합니다. 먼저 경험했던 분들이 그 경험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게 될 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고 좀 더 확실하게 갈 수 있는 그런 좋은 유익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선배들에게 책을 통해서 혹은 강연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런 지혜를 얻는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내는 완벽한 것은 아니죠. 믿고 따라갔는데 때로는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죠. 철저하게 내비를 믿고 따라갔는데, 잘못 도착해 본 그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도 몇 번 있습니다. 정말 가까운 길인데, 빙 돌아서 안내하는 그런 경우도 있는 것이죠. 내비게이션도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많이 줄어들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생의 선배들의 조언도 정말 좋은 조언 같았는데, 그 조언을 믿고 따라갔다가 나와 맞지 않아서 그래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죠. 이 세상의 안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완벽한 것이 없고, 그래서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안내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빛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어떤 안내자인가? 최선의 안내자이며 최선의 빛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정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잘 읽고, 그 하나님의 말씀의 안내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선의 안내자이며 최선의 빛인 이유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하나님의 말씀의 안내는 최선의 안내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디서 안내를 받아야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안내를 받아야 하는 것이죠. 종종 어떤 분이 제게 묻습니다. 목사님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요? 이 꿈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생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을까요? 예전에 하나님께서 꿈을 사용해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해 주신 적도 있고, 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 주신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꿈이 우리들에게 안내를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사용된 것이지,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꿈은 우리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앞길을 걸어갈 때에 꿈에 의존해서 걸어가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목사님을 의지하거나 어떤 신령한 권사님, 기도 많이 하시는 권사님, 기도 많이 하시는 장로님들을 의지하면서 기대하기도 하는데 사람을 의지할 게 아닌 것이죠. 우리들의 참된 안내자는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들에게 안전한 안내자이요. 그리고 우리들에게 가장 최선의 안내자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교리 공부를 하다 보면 그 교리 가운데서 어떤 게 있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라고 하는 그 문제를 다루는 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그걸 다루는 그런 항목이 있는데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을 무엇이라고 말하냐면, 말씀과 성례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어떻게 베풀어 주시는가? 그 수단이 무엇인가? 그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보통 이야기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이라고 하는 이 은혜의 방편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고, 또 성례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된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마치 우리 집에서 수돗물을 쓰려고 한다면 수돗물이 우리 집 안에까지 들어와야 수돗물을 틀 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있는데, 그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어떻게 우리들에게 전달되는가? 꿈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다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그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최선의 안내자가 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만일 우리가 악한 길로 간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망하게 되는 겁니다. 악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독버섯과 같아서, 보기에는 예뻐 보이고, 보기에는 참 좋아 보이지만, 그 독버섯을 먹으면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따라가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들에게 선한 길을 알려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안내해 주기 때문에 , 이 길이 선한 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는 길은 어떤 길로 인도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는 안전한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안전한 것이죠. 종종 어떤 사람이 알려주는 인포메이션이 좋은 줄 알고 그 안내를 따라갔다가 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잘못된 길로 갈 수가 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한 길로 인도해 준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안전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게 문제예요. 성경 말씀을 보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안전한 길인데,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잘못 오해해서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어느 경우에 그렇죠? 이단들의 경우에 그렇고요. 이단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종종 오해해서 잘못된 길로 가는 때가 많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는 거죠. 성경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되고, 그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성경 말씀을 오해할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말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맥락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을 하게 된 맥락이 무엇인지, 어떠한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무엇인지, 그 전체를 알고서 그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돼요.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사랑의 말이란 말이에요. 내가 언제 화를 낼 수도 있고, 언제 신경질을 낼 수도 있고, 언제나 마음 상하게 하는 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말 하나만 떼버리면, 정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어머니가 누구인가 우리 어머니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그런 분인데, 그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 가운데서 해주는 말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면,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제대로 잘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그냥 어느 한 구절 어느 한 표현, 어떤 특이한 그런 표현들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그 말씀의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안전한 길로 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를 해요.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하라고. 남편과 아내가 이야기하다가 아내가 이야기합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면 남편이 그 얘기를 듣고 마음대로 하라고 잘됐다. 그러면서 마음대로 하면 됩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 맥락을 보고서, 이해를 해야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해를 잘해서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해야 되는 거죠. 사람의 말 한 표현을 듣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을 제대로 잘 이해해서, 표현 하나를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성경 말씀을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살펴볼 때, 우리가 안전한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늘 우리는 말하면 말한 그 의도와 그 말의 내용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확인해 봐야 돼요. 무슨 말을 남편이 이야기를 하고, 아내가 이야기하고, 우리 부모님이 이야기하고, 우리 자녀들이 이야기하면, 그 말을 듣는 대로 그냥 해버릴 것이 아니라, 지금 말한 것이 내가 이해한 것은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 말이 맞는지 물어봐야 돼요. 확인해 봐야 돼요. 그래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서 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 것인지, 혹시 잘못 이해한 것은 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또 묵상하고 또 고민하면서, 우리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묵상 공동체를 통해서,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발견해 나가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안전한 하나님의 안내를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어떤 길로 인도하는가? 안식과 쉼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쉼을 얻게 되는 것이죠.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해 주신 바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해 주셨는데요. 주님을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주님을 영접한다고 하면, 주님께로 가면, 우리가 쉼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게 된다고 하면, 우리가 어떤 유익을 누릴 수 있는가? 쉼을 얻게 되는 것이고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9편 165절의 말씀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무엇이 있으니?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큰 평안, 샬롬,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사랑하게 되면, 샬롬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도대체 이 평안을 얻는 것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종종 생각하기를 그것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마치 우리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고, 성경 말씀을 읽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그래서 우리가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다른 종교에서 경전을 읽으면, 예를 들어서 불경을 쭉 읽으면,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모른다고 할지라도 근심과 번뇌가 사라져 버리고, 마음의 평안이 오는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불안한 마음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들 다 사라져 버리고,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평안히 오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는데요. 사실은 그런 것 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마음에 평안을 얻고 큰 평안을 얻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과 같아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어때요? 마음에 평안함이 생기잖아요? 우리가 저 야외에 나가서 숲을 찾아가서 산속에 있으면 마음의 평안함을 얻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하면, 그런 종류의 평안함을 누리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요. 사실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평안이 온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것은 우리가 마음이 잔잔해지고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이 그냥 저절로 사라진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게 아니고 불편하게 만드는 게 성경 말씀입니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 마태복음 10장 34절 말씀에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오.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이 아주 놀랍습니다. 예수님에게 가면 그냥 마음이 평안해지고 아무 근심도 없어지고 그냥 편안한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불편하게 만들러 왔다. 오히려 아픔을 주러 왔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인데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묵상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금년 한 해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으면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지느냐 하면, 사실은 평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편해지는 경우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찌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잔잔한 음악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향해서 찔러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부터 13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밑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는 언제 마음의 평안을 느껴요? 가릴 때 마음의 평안함을 느낍니다. 누가 나의 수치를 보면 불안해요. 그런데 그것을 옷으로 가리고, 자동차로 가리고, 우리의 신분으로 가리고, 우리의 성공으로 가리고, 그것으로 가리면, 그때 우리들의 마음이 평안함을 느낍니다. 마치 아담이 하와가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것처럼, 그렇게 무엇인가 우리를 가려야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함을 얻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성경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우리가 가리고 있는 것을 벗겨내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있는 그 죄와 우리들의 허물들, 우리들의 실수들, 우리들의 실패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성경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하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을 찔러대기 때문에 그래요. 너 그거 잘못했잖아! 너 그렇게 살면 안 되잖아! 그렇게 탐욕을 부리며 살면 안 되잖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마치 수술 메스와 같아요. 수술용 칼과 같아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픔이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살해 수술용 칼을 들이밀고, 그리고 그 암덩어리를 제거해 내는 겁니다. 썩은 부분들을 돌려내는 겁니다.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 쉬운 일이냐면, 사실 쉽지가 않아요. 수술받아보셨어요? 수술받으셨습니까? 괜찮아요? 힘들어요? 힘들어요. 저도 작년에 수술을 한 번 받았습니다.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았어요. 다리 종아리에 핏줄이 튀어나와 가지고, 보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는 그런 말 때문에, 그래서 오랫동안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수술하기로 마음먹고 가서 수술하게 됐는데요. 허리에다가 주사를 푹 찔러가지고 반신마취를 하는데 괴로워 죽겠어요. 괴로워 죽겠어요. 그리고 막 수술을 해야 되는데, 마취해서 아프지는 않지만, 그 느낌 그 과정 정말 싫더라고요.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난 다음에 그리고 그 모든 하지정맥류의 모든 것들을 다 깨끗하게 정리해서, 그래서 딱 수술 결과가 나왔는데, 제 다리가 너무 예뻐요. 이렇게 멋있는 다리를 내가 가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쁘게 만들어주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영적인 수술하는 칼과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우리가 다가가게 될 때, 우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내가 남들에게 감추어놓았던 그런 나의 허물들, 나의 잘못들 다 드러나면서,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 괴롭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은 마음들이 있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우리들에게 궁극적인 평안을 가져다주는 것이죠. 죄를 그냥 잘못한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회개하고,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한 삶으로 제대로 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때, 이것이 우리들에게 큰 평안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의 수술대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닫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19편 165절의 말씀 후반부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무엇이 없으리다? “장애물이 없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없어진다? 장애물이 없어진다고 하는 말입니다. 장애물이 없어진다고 하는 말이 뭐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아무런 고통이 없이 아무런 질병이 없이, 모든 것들이 다 형통하고 모든 것들이 다 풀리게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까요? 마치 우리가 부적을 붙이면 전혀 악마가 악귀가 우리들에게 접근 못하는 것처럼, 성경을 읽으면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이 뻥뻥 뚫린 테로를 걷는 것과 같은 그런 일들이 우리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일까요? 그게 아니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의 삶 가운데 장애물들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그 장애물이 계속 따라와요? 죽을 때까지 따라와요. 우리의 인생에 가는 길에 실패도 있을 것이고, 아픔도 있을 것이고, 질병도 있을 것이고, 고통도 있을 것이고, 불편한 일들이 계속 그냥 끊어버리고 싶어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올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장애물이 없다고 하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면, 더 이상 그 장애물이 장애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요즘 보니까 아주 신기한 것이 발견 발명이 돼서 아주 참 좋아 보이던데요. 뭐냐 하면 로봇 슈트예요. 그래서 그 로봇 슈트를 입으면 힘을 힘이 없는 사람도 자기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그런 물건들을 딱 들어 올릴 수 있는 이 로버트 슈트의 힘을 받아가지고 짐을 올릴 수 있고, 그다음에 뛰어갈 수도 있고 하는, 그런 걸 보여주더라고요. 그런 뉴스 봤습니까? 안 봤나요? 그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로봇을 입으면 자기가 할 수 없는 것도 해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까이하게 된다면, 사랑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그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그 어떠한 것들이 온다고 할지라도 승리해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 승용차들은 잘 닦여진 도로는 잘 갈 수 있지만, 비포장도로는 잘 다니질 못해요. 하지만 비포장 도로도 잘 가는 차들이 있습니다. 어떤 차들이죠? SUV 같은 차량들, 트럭 같은 차량들은 거뜬하게 다닙니다. 군대에 있어 보니까 포바이포라고 하는 그 트럭들은 막 이런 경사도 막 올라가더라고 어떠한 장애물도 막 넘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장애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승리하며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2024년 한 해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년에 우리가 2024년에 성경 읽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기대하고 얼마나 기다리시는지, 제가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야 우리 성도님들이 이렇게 성경을 읽고 싶어 하는구나. 그렇죠? 맞아요.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우리 교회를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성경 읽기에는 참여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참 우리가 2024년도에 성경 말씀을 잘 읽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별히 혼자서 성경을 읽는다고 한다면 늘 실패하기 쉬워요. 늘 우리가 잘 읽지 못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어요? 혼자 결심하고 혼자 읽다 보니까 어디서 막혀요? 레위기에서 막히는 겁니다. 거기서 중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끝까지 갈 때 끝까지 가려고 하면, 어떻게 가야 되는가? 믿음의 동료들이 필요한 거예요. 힘들지만 같이 읽자. 힘들지? 오늘 본문은 읽는 게 너무 어렵지? 같이 읽자. 격려하면서 갈 때, 이것을 잘 읽을 수가 있는 것이죠.


예전에 어떤 영국의 신문사에서 저 영국의 끝 마을에서부터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현상 공모를 내걸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응모를 했어요. 그 가운데서 1등으로 당첨된 이 이 답입니다.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다. 좋은 친구랑 가면 가는 길이 힘들지 않고, 기쁘고 즐겁다고 하는 그런 의미인 것이죠. 교회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천성을 가는 길에 함께 동료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성경 읽기 그룹으로 다 조직을 했어요. 요람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자기 이름이 들어있는지 안 들어있는지 보시고, 빠졌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빠질 수 있어요. 작업하다 보면 넣었는데 넣은 줄 알았는데, 못 넣고 빠진 사람이 있을 텐데,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성경 읽기 그룹으로서 우리가 함께 읽게 되겠는데요. 좋은 친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친구가 딱 만들어져서 나오는 거죠? 그게 아니죠. 처음부터 만들어져서 나오는 게 아니라, 좋은 친구도 만들어가는… 제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란 과거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고, 미래를 향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년에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 저랑 많이 친하게 지낸 분이 아닌데, 제가 오래간만에 미국에 온다니까, “목사님” 한 번 꼭 만나서 식사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동안 별로 그렇게 교재가 없었던 분인데, 저에게 그렇게 요청을 해왔어요. 제가 그래요. 밥을 같이 먹읍시다 그랬을까요? 싫어요. 그랬을까요? 먹었어요. 공짜니까. 근데 제 마음에 무슨 마음이 있었냐면, 과거에 우리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부터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밥 먹으면서 좋은 관계가 시작하는 것이고, 현재가 관계이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관계이기 때문에, 좋은 친구는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골때녀도 보면 골때녀라고 하는 그 프로그램에 보면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옵니다. 새로운 선수 들어오는데 전에 한 번도 안 만나본 선수예요. 그러니까 같이 경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같이 경기하면서 훈련하면서 축구하면서 정말 친자매처럼 친해지면서 좋아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 읽기 그룹을 통해서 온 성도가 하나가 되어서, 전에 지금 아마 그룹에 편성된 분들 중에는 누군지 얼굴도조차 모르는 그런 사람도 같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름이 생소한 분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어서, 온 교우가 함께 성경 말씀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그 엄청난 놀라운 영적인 유익들이 우리 온 교회 성도들 가운데 항상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번에 읽는 성경 프로그램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교수진들이 만들어낸 리딩 지저스라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에 따라 성경을 읽게 되는 거예요. 그냥 성경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여주며,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그 예수님을 어떻게 이 성경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안내해 주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하게 될 텐데, 서로 격려하면서 이 말씀을 읽는 일에 참여했으면 좋겠고, 성경을 하루 분량 읽는 게, 한 빨리 읽으시는 분이면 10분이면 읽을 수 있고, 어떤 분은 15분이면 읽을 수 있겠고, 천천히 읽는 분이라고 하면 1시간도 읽을 수 있겠고 30분도 읽을 수 있겠는데, 읽는 가운데 기쁨이 넘치고, 그리고 평안함이 넘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안전한 길로 인도되어 가는 그런 놀라운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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