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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4-45)

성경 잘 읽고 계시죠? 온 교회가 성경 말씀을 잘 읽게 돼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지난주는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분량이 좀 많아져서 약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도 꾸준히 성경 말씀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읽을 수 있으면 좋겠고, 내년에는 좀 1년 365일로 분산해서 적절하게 읽을 수 있도록, 그렇게 안내를 할까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이번 주 그리고 다음 주에 걸쳐서 우리는 레위기의 말씀을 읽게 됩니다. 어쩌면 성경을 읽다가 레위기쯤 가면 사람들이 재미도 없고 지루해서 포기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다음 주에는 더더욱 서로 격려하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고요. 오늘 이 시간에는 레위기의 말씀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레위기의 말씀에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한번 우리가 살펴보고, 이번 주 다음 주에 레위기의 말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우리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라. 또 속죄제를 드려라, 화목제를 드려라. 소제를 드려라. 등등 여러 가지 그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하는, 그리고 그 드리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겠는데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왜 제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제사를 드리면, 그 제사 음식을 하나님께서 맛보시기 위해서 그러신 걸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면 조상 귀신들이 와서 먹는다고 하는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드리는 그 제물을 드시기 위해서, 그것이 탐이 나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제물을 드리라고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제사를 드리라고 한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는데, 첫 번째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이 제사라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먼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부터 건져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인데,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낸 것은, 지금까지 바로 왕의 종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건져내서, 이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서 순종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들이 그러기가 어려워요.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게 죄성이 있어서,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그런 일을 할 때가 많이 있는 것이죠. 미워하기도 하고 또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악한 일을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게 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언약의 관계가 깨어져버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 언약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떤 언약 가운데서 결혼이 유지됩니까? 서로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신의를 지키면서 서로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 약속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결혼이라고 하는 언약 속에 있는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언약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킬 때,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고,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서 자꾸만 죄를 저지르는 거예요. 언약을 깨뜨려버리는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 마치 파혼하게 되는 것처럼, 결혼에 남편이나 아내 둘 중에 하나가 만일 그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을 한다면, 결국 그 결혼 관계가 깨어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그 언약이 깨어져버리게 된다고 한다면,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이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가 없는 자리에 들어가게 해버린 것이죠. 그런데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래. 너희들은 약속 안 지켰지? 잘못했지?” 하면서 그냥 끝내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 들이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제사라고 하는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주는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사람 대신에 짐승을 잡아서, 그리고 그 짐승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려서, 마치 내가 죄를 지었는데, 내가 그 죗값을 치른 것과 똑같은, 그러한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제사 제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이렇게 제사를 드리라고 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장에 보면 소제를 드리도록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데, 소제라고 하는 것은 곡물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겁니다. 농사를 지으면 곡식들이 나게 되고, 그런 곡식을 얻은 다음에는 그 가운데서 일부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소제를 드리게 되는데요. 이렇게 소제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의 소득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로 말하자면,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왕이 있고 백성들이 있다고 한다면, 백성들이 살면서 세금을 냅니다. 그 세금을 내는 게 무슨 의미죠? 왕이 이 나라의 주인인데, 우리는 그 주인의 종으로 살면서, 그래서 우리가 농사를 지었으니까, 그 농사의 일부를 주인에게 바치는 것이죠. 그게 이 땅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죠. 예전에 우리나라도 보면 소작제도가 있어서, 지주가 있고 그리고 소작농이 있는 겁니다. 소작농은 땅이 없어요. 누가 땅을 갖고 있어요? 지주가 갖고 있는 것이죠. 우리 교회도 보니까 지주였던 분들이 꽤 있던데, 땅을 가지고 있으면, 그 땅을 소작농들에게 빌려주는 겁니다. 소장동이 열심히 농사를 짓 다음에, 그래서 곡식이 나오면, 그 곡식을 다 자기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소작을 내는 거죠. 일부를 냅니다. 보통 얼마씩 냈습니까? 10분의 1만 내면 되나요? 30% 줍니까?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렇게 지주에게, 그 땅의 소산의 일부를 줌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지주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우리가 여기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아무튼 열심히 수고했지만, 이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제사 제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에 세 번째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잔치를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이스라엘 장로들이 신의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그다음에 함께 거기서 잔치를 벌입니다. 화목제를 드린 다음에 그 화목제를 드릴 경우에는 다 태워드리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기름만을 태워버리고, 나머지 살 부분은 가지고 와서 모든 백성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어요. 그래서 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그 언약의 복을 함께 누리는 의미에서 제사를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레위기에는 여러 가지 제사의 제도가 나와 있는데, 그런데 이 제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인데, 이 희생제사가 완전한 것이었느냐 하면, 완전하지 못한 것이죠.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사람 대신에 짐승을 잡아 죽이면 그 가치가 똑같나요? 좀 부족한가요? 좀 부족한 것이죠. 사람이 지은 잘못을 짐승이 죽음으로써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의 죄를 짐승이 대신 죽는 것, 이것은 완벽한 대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희생 제사 제도를 통해서 결국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에 죽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을 예표해주는, 미리 보여주는 예시해 주는 그런 모습이 바로 구약시대의 제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이 레위기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냐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라고 하는 명령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특별히 레위 지파를 선택하셨고, 그 가운데서 제사장을 세웠는데 이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죄 때문에, 죄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 대신에 누가 가요? 제사장이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도록 제사장을 세워둔 것이죠. 그래서 이 제사장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요. 그러면 어떻게 알려줍니까?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알려주는, 하나님의 뜻을 대리해서 전달해 주는 역할을 제사장이 한 것이고, 또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들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 것이고, 또 제사를 드릴 때 우리가 직접 제사를 못 드리니까,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중재자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역시 이 제사장이라고 하는 제도도 여전히 불완전한 제도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진정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한 겁니다. 왜냐하면 제사장도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제사장이 완벽하고 깨끗한 사람이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이 구약의 제사장 제도도 역시 그냥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나중에 오실 진짜 제사장인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어서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약시대에 기록되어 있는 제사장 제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세 번째로 레위기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냐면 정결 규례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음식 가운데서 어떤 것은 먹어도 되고 어떤 것은 먹지 말아야 된다. 어떤 것은 깨끗한 음식이고 어떤 것은 깨끗하지 못한 부정한 것이니까 먹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규정, 그리고 피를 흘리거나 이러면 그것도 부정하게 되는 것 또 피부병을 앓는다든지 곰팡이가 피게 되면 그것이 부정하다고 하면서, 이 정결함과 부정함에 대해서 서로 구분하고 그것을 잘 구분해서, 부정한 것에 노출되지 않도록 강조하는 이야기가 레위기서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이 정결 규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서야 되는데, 거룩하지 못하고 자꾸만 더러운 것에 묻혀지게 되는, 그래서 우리가 더러움에 전염되는 것을 방지하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러한 정결 규례를 만들어 놓았는데, 역시 이것도 결국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에 의해서 이 정결 규례는 폐지가 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8절에서부터 19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가니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구약시대 때는 부정한 게 있고 깨끗한 게 있어서, 부정한 것은 먹지 말아야 됐고, 더러운 것은 피해야 됐고 하는 그런 엄청난 규례가 아주 강하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만들어준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너희가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우리의 더러움을 다 씻어버리고, 정결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레위기에서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규정이 이제는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다 없어지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이 레위기에 있는 규정에 따라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먹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요즘 돼지고기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그건 어떻게 잘 아세요? 먹어도 돼요. 근데 이제 일 일부 교파에서는 이단들에서는 예를 들어서 안식교나 이런 데서는 아직 이 신약시대에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여전히 구약의 방식대로 먹지 말아야 될 것과 먹어야 될 것을 구분하려고 하고, 그렇게 “그 구약의 방식대로 그대로 따라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곳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는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을 해요. 이 구속사적인 관점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사건을 렌즈로 해서 모든 말씀들을 살펴보아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구약 성경에 있는 그 말씀들 그 문자적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보면서, 구약의 말씀들을 이해하고 우리가 적용해야 되는 겁니다.   아무튼 레위기의 말씀에 여러 가지 정결 규례가 있는데, 이제는 그런 규정대로 우리가 다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얻을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겠다.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교훈들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레위기에는 여러 가지 절기들이 나옵니다. 7번째 달 여기서 7월이 아니라, 유대 달력으로 7번째 달이죠. 일곱번째 달 1일에는 나팔절을 지켰습니다. 이 나팔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기뻐하는 날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다”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날이 나팔절입니다. 그리고 9일 뒤에 나오는 제10일에는 대속죄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대속죄일에는 9일 동안 금식을 하고 회개를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다음에 속죄의 제물을 바치게 되는 것이죠. 속죄의 제물을 바쳐서, 그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또 그 대속죄의 염소에게는 그 손을 얹어서, 우리들의 죄를 전가시킨 다음에, 그 염소를 광야 밖으로 내보내서, 마치 우리들의 죄를 멀리 떨어져 나가게 만드는 그런 의미로 염소를 내보내게 되는 규정들이 대속죄일의 규정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제 15일에는 초막절로서, 7일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열매를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날이 되겠고, 그다음에 맨 마지막에는 칠칠절이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날에는 추수를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려드리는 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절기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이 절기들을 우리가 문자적으로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그리고 우리의 죄가 용서받게 되고,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멀리 보냈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그런 날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레위기의 말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요즘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레위기의 말씀대로 일일이 일일이 다 그 규정 하나하나씩 지키면서 살아가야 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고, 그리고 지금까지 기록된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실제가 왔다고 한다면, 그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이 구약의 것들은 다 이제는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이 레위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이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말씀들을 보면서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이 거룩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었을까를 보면서, 우리도 거룩해지려고 하는 그런 결단들을 하는 성경 읽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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