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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 계시록 강해 9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관한 예언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실 이 요한계시록은 현재를 들추어 보게 만들어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종종 요한 계시록을 오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문자적으로 그대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루어질 거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요한계시록을 바라보면, 자꾸만 잘못된 해석, 이상한 해석, 그래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해석으로 잘못 해석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과 비슷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은 다윗이 죄를, 범죄를 졌을 때, 밧세바라고 하는 여인을 취하고, 그리고 그 여인의 남편을 전쟁터 최전방에 보내어서 죽게 만들었을 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다윗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그 부잣집에 손님이 찾아오게 되었을 때, 그 부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양들 가운데서 잡아서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이웃집 가난한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이 애지중지하고 마치 딸처럼 여기는 그런 정말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어린양을 빼앗아, 자신의 손님을 대접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다윗에게 어떤 악한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심심하니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들려준 것도 아니고요. 미래의 어떤 사건이 이런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 것을 예언하는 이야기로 들려준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이 이야기는 다윗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거울과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분노에 차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어디 있느냐? 그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그 양을 빼앗아서 손님을 대접하는 이런 나쁜 부자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당장 그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미래에 일어날 이야기도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 다윗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장치였습니다. 다윗은 결국 그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나쁜 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것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그 순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 시작한 것이죠.

요한 계시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요한이 사는 그 시절, 사도 요한이 살던 그 초대교회의 바로 그 시절에, 성도들은 엄청난 고난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박해를 합니다. 죽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당신에게는 내 채소를 팔지 않겠소.” 당신에게 내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초대교회 성도들,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그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그 두 짐승의 환상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그 현실을 그대로 드러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짐승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강요를 하고, 그런데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매매를 못하게 하는 그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 이야기를 보는 그 사도 요한,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에 듣게 된 초대교회 성도들은, “저 상황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구나.” “저 짐승이 매매를 하지 못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바로 저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말씀을 잘못 오해해서, 이것이 거울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하나의 예언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짐승이 언제 나타날까? 그리고 짐승의 표라고 하는 666이라고 하는 것을 언제 맞게 될까? 그것을 언제 강요하게 될까? 그렇다고 한다면 “666이 무엇일까?”라고 하는 오만 가지 잘못된 상상들을 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그런 잘못된 해석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시록 13장에서 이런 짐승의 환상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이 이유를, 이러한 환상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주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이 환상을 보면서, 짐승들이 나타나고, 그리고 매매를 하지 못하게 만들고 고통을 준다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공포심에 벌벌 떨게 만들기 위해서 이 환상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해 주시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짐승이 활개를 치고 있고, 그리고 이 세상이 정말 고통스러운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세상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기간을 단축시킬 것이고, 이렇게 이러한 짐승의 위협 가운데, 고통 가운데 살아가다가, 그러다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다고 하더라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죽음이 개죽음이 아니라,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는 은혜의 메시지를 들려주시기 위해서 이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14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면, 그러면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곧 끝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하는 그 기간이 단축될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까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15장에서부터 18장에 이르기까지 넉 장을 살펴보게 됩니다. 꽤 많은 장인데요. 15장 16장 17장 18장에서는 어떤 내용을 그려주고 있냐면, 간단하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읽은 15장에서부터 18장의 말씀은 예언적인 부분입니다. 요한 계시록이 요한 계시록을 예언적인 것으로 보면 안 되고, 거울로 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예언이 안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중에는 예언도 포함되어 있는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만큼은 예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오늘 읽은 15장에서부터 18장의 말씀은 미래에 있을 예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장의 그림을 한번 보겠습니다. 15장의 그림을 보면,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일곱 명의 천사들에게 금 대접을 준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곱 명의 천사들은 마지막 재앙이 담긴 일곱 개의 금 대접들을 하나씩 받아서, 그리고 그 금 대접을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계시록 15장의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위에서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믿음을 생활했던 그 성도들이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웠다고 하는 그 사실을 노래하고 있는 장면이 보이는데, 저 하늘에 놓여 있는 증거의 장막의 문이 열리고, 이제 성도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이 계시록 15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넘어가서 계시록 16장의 말씀을 보면 성전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립니다. 천사들에게 하는 이야기죠 “너희는 가서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으라.”라고 하는 그런 음성이 들리자, 이제 천사 7명이 하나씩 하나씩 재앙의 금 대접을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쏟아부을 때마다 엄청난 재앙이 땅에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첫째 천사가 붓자 독한 종기가 생겨나게 되었고, 두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아붓자 바다 생물이 죽게 되었고, 세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자 물이 피로 변하고, 네 번째 천사가 대접을 붓자 태양이 불이 뜨거워지면서 사람들을 태우게 되고, 그리고 다섯 번째 천사가 쏟자, 갑자기 어두워지고, 여섯 번째 천사가 쏟으니까 유프라테스 강이 말라져 버리고,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쏟으니까, 번개와 음성과 우레 소리와 큰 지진이 나며, 큰 섬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산악과 섬이 없어지며, 한 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무게의 우박이 땅에 쏟아지는 그런 재앙들이 있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특별히 여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았을 때, 개구리들이, 더러운 영들이 나타나서 아마겟돈으로 왕들을 모은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는 그런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림을 치워줘도 좋겠습니다.)

여기 요한계시록 16장에 기록된 7개의 대접들을 쏟을 때마다 나타났던 재앙을 보시면서, 여러분들은 무엇이 생각이 나셨습니까? 무엇을 연상하게 되었습니까? 마음속에 아무것도 연상이 안 됐나요? 아마 출애굽 당시에 있었던 10가지 재앙을 상상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왜냐하면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옛날 바로의 권세가 등등한 시절에, 모세는 바로 왕을 찾아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내어 보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하니까, 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보내라고 했지만 바로 왕은 거부합니다. 그때 모세는 10가지 재앙을 내려서, 결국 항복을 받아냈는데요. 그때 내렸던 재앙들 중에 비슷한 재앙이 종기가 생겨나는 것, 독종이 생겨나는 것, 그리고 물이 피로 변하고 바다 생물이 죽고, 온 세상이 어두워지는 등등 이런 비슷한 재앙들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런 비슷한, 그 옛날 바로 왕을 무너뜨리고 바로 왕의 권세를 완전히 박살 내고,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했던 것과 같은, 바로 그 구원의 역사가 마지막 때가 되면, 또다시 이런 비슷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앙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상상하시면, 그것은 잘못된 상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판타지와 같은 그림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판타지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그것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날이 되면 정말 종기가 생겨나고, 물이 피로 변하고, 이러한 일들이 실제적으로 마지막 날에 이런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여러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는구나.”라고 하는 그 메시지만 이해하시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종종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서,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것들이 언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해석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겟돈 전쟁이, 이렇게 요한계시록 16장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도대체 그 아마겟돈 전쟁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아니면 저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아니면 중동에서 자꾸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면서, 자꾸만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그런 전쟁들이 “아마겟돈 전쟁이 아니겠느냐?”라고 자꾸만 대입해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대입해보려고 하는 것은 한 번도 성공해 본 적도 없고, 그것은 주관적인 추측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이대로 진행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바로 왕을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항복을 받아내셨던 것처럼, 마지막 날에도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라고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 언제 이런 일이 있을 것인가? 언제 있을 것이죠? 모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마지막 날, 마지막 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심판의 날은 그 누구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알 필요도 없고, 오직 너희는 성령을 받아, 오직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신경 쓸 것이지, 언제 이런 재앙이 오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너희들의 알 바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오늘을 우리가 살펴보는 말씀 가운데 계시록 16장 1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축복이 있도다.” 마지막 날이 언제라고요? 예수님께서 도둑 같이 오신다. 도둑같이 온다는 얘기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작스럽게 오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17장에 보면 음녀가 등장합니다. 17장의 그림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음녀가 등장하는데, 그 음녀는 많은 물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7개고, 뿔이 10개나 달려 있는 붉은 짐승에 타고 있습니다. 저 짐승의 머리가 7개나 되고, 그리고 뿔이 10개나 된다고 했는데, 그 일곱 머리는 7명의 왕을 상징하는 것인데, 5개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하나는 지금 있고, 하나는 나중에 올 것이라고 하는 이 표현 때문에 도대체 이 왕이 누구를 의미할 것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입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바벨론 나라, 이집트 나라, 페르시아 나라, 로마 나라, 헬라 나라 해가지고 그래서 어느 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대입해봤자 제대로 맞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0명의 왕이 있고, 10개의 뿌리, 10명의 왕이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해석하기를 그 열명의 왕이라고 하는 것은 10개의 나라가 연합한 것이니까, 유럽연합(EU)이 바로 “이 짐승이다”라고 주장한 적도 있어요. 누가. 왜냐하면 옛날에 유럽연합이 지금 10개의 나라가 연합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 연합이 커져가지고 스물몇 개 나라가 됐잖아요? 아무튼 역사에 이렇게 대립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이걸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말씀해 주시는 것이 뭐냐면, 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 음녀가 어떻게 있는가? 자줏빛 옷을 입고, 붉은 옷을 입고, 금은보석, 진주로 치장하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잔을 가지고 있는데, 가증한 물건, 음행한 것으로 더러운 것들을 다 가지고 있는 음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음녀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이제 치워도 좋습니다.)

성경에서는 간음이라고 하는 것을, 그런 간음이라고 하는 이미지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나타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고,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과 짝하게 되는 순간, 이 세상에 우상을 섬기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영적으로 간음하게 된다고 하는 그런 이미지가 성경 전체에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버리고 이 세상과 짝하게 되면, “간음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인데, 여기서 나타나는 음녀라고 하는 것은, 그러면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이,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해서 이 세상과 짝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음녀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이 음녀가 무엇을 타고 있냐면, 짐승을 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짐승을 타고, 같이 연합해가지고 뭔가 큰 일을 이루는 것 같다가, 그런데 놀라운 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6절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6절 말씀을 보면 “내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 장면이 아주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왜냐면 이 음녀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짐승을 따르는 사람이거든요. 짐승을 따르는 사람인데, 이 짐승이 오히려 이 음녀를 망하게 만드는 이것이 좀 모순되어 보이는데, 사실은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상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따르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나에게 유익을 주는 줄 알고 따라가다 보면, 이 세상이 나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죠.

어제가 광복절인데 일제강점기 동안에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아무리 해도 독립이 안 되니까, 중간에 다 변절을 해버렸어요. 친일파로 다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 친일파로 바뀐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봤자, 핍박만 당하고 고난만 당하고 제대로 살 수가 없는데, 내가 친일파로 변절하는 그 순간에 온갖 부귀영화가 다 따라오고, 그런 회유에 끌려서 결국 변절하게 된 거죠.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신앙생활을 해도 고통을 당하고 신앙생활을 해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데, 이 세상과 짝해서 사는 사람들을 보니까 잘 먹고 잘 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을 따라가면서, 그러면 내가 잘 먹고 잘 살 줄 알고, 이 세상과 짝하면서 살게 되는데,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돈을 추구하게 되면, 그러면 그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줄 알고, 돈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알고 보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돼버리는 거죠. 마약이 나의 고통을 잊게 해 줄줄 알고 마약을 하는데, 그래서 마약을 하는 그 순간에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껴지는데, 그런데 그 결과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피폐한 인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게 바로 음녀의 모순이죠. 음녀는 이 세상의 권력에 취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주님을 따르는 것보다 이 세상과 짝하며 살고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과 더불어서 그렇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짐승을 따르면서 짐승 위에 타면서 살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 짐승이 어떻게 해요? 이 음녀를 망하게 만들어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종종 얘기를 하면서, 돈을 따르다가 결국 그 돈의 노예가 된다고 하는 그런 표현들을 종종 쓰게 되는데, 돈 버는 게 나쁘다고 말씀드리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건전하게 소득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들의 우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돈이 우리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는 하지만, 그 유익을 준다고 하는 것 때문에, 내가 그 돈의 노예가 돼버리고 우상으로 섬기기 시작하게 된다고 하면 결국 망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우상이 되기가 쉽습니다. 가족 자식 정말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가족이 우상이 되고 자식이 우상이 되면 고통스러운 결과만 가져오게 되는 겁니다. 명예와 자존심 학식이나 경력이나 음식이나 그 모든 유익한 것, 심지어 정치인들까지 우리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에 우상이 되어 버리면, 결국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죠. 그걸 묘사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18장에서는 그 음녀의 운명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18장의 그림을 한번 보겠습니다. 결국 바벨론을 물속에 던져버립니다. 마치 큰 맷돌을 바다에 던져버리면, 다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음녀 바벨론을 심판해 버리고 더 이상 이제는 이 세상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음녀를 위해 울고 애통하게 되는데 더 이상 상품을 살 자가 없는 겁니다. 지금까지 누렸던 그 모든 것들이 다 심판을 당해서,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며 살고 있었던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당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요한계시록 18장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지워주시면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5, 16, 17, 18장을 다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데요. 아무튼 이 그림을 통해서 이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그 메시지가 무엇이냐면, 지금 권력을 가지고, 지금 우리들에게 유익을 주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마지막 때가 되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다 무너지게 되고 다 사라지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이죠. 여기에 기록된 심판이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아주 나쁜 소식이 되겠습니까? 기쁜 소식이에요. 우리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렵게 살겠지만, 그리고 주님을 배반하고 이 세상과 짝하며 살던 사람들은 승승장구를 하는 것 같지만, 오늘 이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면,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고, 도둑같이 오는 그날이겠지만, 그때가 되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이루어질 거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과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환상을 보면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을까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난을 당하고 있고 힘들게 살지만, 그런데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승승장구하면서 떵떵거리며 권력을 누리고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살던 사람들은 다 심판을 당할 것이다. 음녀와 같은 사람들은 다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고, 바벨론처럼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은 다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고, 결국 믿음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받아주신다고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정말 그렇죠.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것이 비난을 받기 쉽고, 무시당하기 쉬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의 길을 향해서 나간다면, 이 세상과 짝하며 살다가는, 결국 이것들이 망하게 될 때, 우리도 함께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이 세상 짐승은 음녀가 자기를 보호해 줄줄 알고 그 짐승 위에 타고 그 자신의 몸을 거기에 맡겼지만, 그러나 결국 이 세상의 짐승은 그 음녀를 배신해버리고 망하게 만드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셨고, 그 사랑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산다고 하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불확실한 이 시대 가운데,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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