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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 계시록 강해 9

두 짐승의 환상은 미래에 펼쳐질 일을 에언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 사도 요한과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위험한 것이고, 신앙을 버저리고 악에게 복종해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그 당시의 상황을 그려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상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그 가공할 짐승을 보면서 두려워 떨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다. 이러한 가공할 위험도 영워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끝장날 때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성도들은 그러한 위험 속에서도 보호되고 있으며 심지어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다고 해도 그 죽음은 복된 죽음이라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5-18장은 두 짐승의 환상 뒤에 심판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예언적인 내용이다. 아직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마음대로 활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7천사가 7개의 금대접에 재앙을 담아서 하나씩 부을 때마다 아주 무시무시한 재앙이 이 세상 가운데 일어나는 모습을 사도 요한은 보았다.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천사들이 대접을 쏟을 때 독한 종기가 생겨나고 바다 생물이 죽고 물이 피로 변하고 불로 사람들을 태우고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유프라테스 강이 말라버리고 섬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하늘에서 한 달란트나 되는 무거운 우박들이 쏟아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러한 재앙이 쏟아지는 것은 언제일까?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혹은 중동 전쟁이나, 핵폭탄 투하 같은 것들이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주장하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주님께서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16:15),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닥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에 묘사된 그대로 재앙이 쏟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묘사를 통해서 엄청난 재난이 닥칠 것을 그려주는 것이지, 이 방식 그대로의 재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짐승을 탄 음녀의 환상을 보았다. 음녀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영적인 간음이라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음녀는 나중에 바로 그 짐승이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불로 살라버리게 된다(17:16). 음녀는 하나님을 버리고 짐승과 합한 자인데, 왜 짐승이 음녀를 이렇게 취급하는가? 그게 이 세상 우상의 본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을 선택하는 이유는 우리들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상은 항상 우리를 배반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망하게 한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는 것인데, 사실 바벨론은 역사상 벌써 사라진 국가이다. 그런데 이 바벨론이란 표현으로 지금 이 세상을 장악하고 신앙을 위협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들의 세력이 아무리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이다. 그게 심판의 환상이 보여주는 약속이다.

어쩌면 우리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살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를 살고 있다. 지금은 악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악에 순종하며 살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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