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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 계시록 강해 11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당의 환상을 보았다. 이전에 있었던 하늘과 땅과 바다는 사라져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땅이 사도 요한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새 예루살렘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 새 예루살렘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성의 빛이 보석과 같고 수정 같았다는 점이며, 그 예루살렘 안에는 성전이 없었다는 점이고, 해와 달이 비추는 것이 필요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환상은 우리 성도들이 마지막에 들어갈 저 천국의 모습을 그려준 것이다.

이러한 환상을 보면서 사도 요한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주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앞에는 악한 세력이 다스리고 있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박해를 당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버리고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게 해주시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교회당을 건축하게 될 때, 성도들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설렜다. 아직 눈앞에 완성된 교회당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계도를 보면서 얼마 뒤에는 저런 모양의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했고, 그것을 꿈꾸면서 행복했었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지금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천국의 설계도, 천국의 청사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저 천국을 소망하면서 지금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질 것을 권면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었다. 그것은 아주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하면 언제나 성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성전이 없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땅에서의 성전은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성전의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장사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영적인 착취를 하고 있었으며. 일반인들도 하나님을 만나려는 목적보다는 그저 면죄부만 얻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방법으로만 성전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계셔서 거기서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신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회복된 에덴동산의 모습을 그려준다. 최초의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던 곳이 에덴동산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는 저주가 없고 생명수가 흐르는 곳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다시 품게 된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고통이 있고 실패가 있고 아픔이 있지만, 우리는 내팽개쳐버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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