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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 십계명 강해 11

제9계명은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옛날 증인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재판을 하던 과거의 시스템 속에서 이해하기 쉬운 말이다. 만일 증언하는 자가 거짓 증언을 하여서 잘못된 재판의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계명은 단순히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을 넘어서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거짓말로 진리를 세울 수 없고, 정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거짓말의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비참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 중에는 괜찮은 거짓말도 있을까? 십브라와 부아는 애굽 왕 바로에게 거짓말로 보고하고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죽이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책망하였다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출 1:21).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라합의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는 거짓말에는 해가 되는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도움이 되는 거짓말도 있고 악의가 없는 유쾌한 거짓말도 있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모든 거짓말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문제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때 그때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만일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틴 루터의 생각처럼 괜찮은 거짓말도 있다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반면 만일 어거스틴처럼 거짓말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진실만을 말한다고 하다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는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거짓말을 못 한다”고 하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는 비난의 말들을 해대는 것은 옳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하면서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한다. 사실 이 계명은 진실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나는 진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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