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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안 (롬 1:17)

이번 주에는 우리가 로마서의 말씀을 봉독 읽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부터 16장까지의 말씀을 이번 주간에 읽게 되겠는데요. 이 로마서는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쓴 편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전도 여행을 하는 가운데 고린도라고 하는 지역에 머무르면서, 거기서 로마 교회에게 이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편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바울 사도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도 아니고 자기가 세운 교회도 아니고 자기가 한 번도 방문해 본 적도 없는 그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 이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 사도는 전 지역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소아시아 지역,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일들을 다 했고, 이제는 건너가서 지금의 그리스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 지금 바울 사도가 글을 쓰고 있는 이 고린도도, 이 마게도냐 아가야 그리스 반도에 해당하게 되겠는데, 거기서도 복음을 충분히 다 전했기 때문에 이제 바울 사도는 어디로 가야 될까요? 좀 더 서쪽으로 가야 되는 거죠. 이제는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고, 그리고 이제는 로마 쪽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면, 이제 또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더 서쪽으로 가서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그런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가 로마를 방문하기에 앞서서 먼저 이 편지를 보내서 자신이 지금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그리고 지원을 받고 그러면서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그런 의도에서 이 로마서의 말씀을 쓰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 로마서를 쓰면서 그냥 단순하게 그냥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정도만 쓴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잘 정리해서, 로마 교회 성도들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로마 교회가 복음 위에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로마 교회 내에서는 여러 가지 신앙적인 갈등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신앙적인 갈등, 신앙적인 혼란들은 당연히 그 시절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왜 이런 갈등과 혼란들이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왔냐면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천 년 동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 구약 성경을 가지고서 그 말씀에 따라서 그 말씀을 철저히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해오던 이 사람들에게 아주 획기적인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 사건이 무엇이죠? 예수님께서 오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의 사역을 완성시키는 그 놀라운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죠.


근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역사를 베푸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 구약 성경에서 예언했던 그 예언들을 다 성취하는 것이고, 또 구약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수많은 규정들, 수많은 율법들을 완성시킨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 목적을 다 이루어 주신 겁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구약 성경 말씀대로 그냥 신앙생활을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변수가 생긴 겁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어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약에 있는 모든 율법의 요구들을 다 성취하셨어요. 모든 제사의 목적, 할례의 목적 구약에 나와 있는 모든 그 규정들에 대한 모든 것들이 예수님 안에서 다 성취되고 완성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더 이상 구약의 율법에 따라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죠. 어떻게 비유하면 좋겠습니까? 성경에서는 그림자라고 비유를 하고 있는데요. 구약 성경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그림자와 같은 것인데, 그 그림자의 실체인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림자 보고 좋아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요. 실체가 왔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그림자가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약에 있는 모든 제사 제도의 그 모든 목적들을 다 성취하시고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게 돼버린 겁니다. 할례를 받으라고 했지만 이제는 할례를 받을 필요도 없어지게 된 겁니다. 모든 것들을 다 완성시키게 된 것이죠.

따라서 예수님을 경험한 성도들은 구약 성경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구약 성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크리스천들이란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성경을 읽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게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사람들이 잘 받아들였냐 하면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냐 우리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싫어요. 늘 익숙하고 늘 해오던 것에 익숙하고, 그것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 성취하셨다고 하더라도 옛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들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구약 성경 말씀대로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그런 강한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신앙적인 갈등, 신앙적인 혼란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로마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서 어떤 일을 벌이셨으며,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구약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런 것들을 설명해 주는 그런 귀한 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셔야 했느냐? 예수님께서 왜 오셔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 구약 성경이 있는데, 그래서 구약 성경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될 텐데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율법의 요구들을 우리가 다 지키지 못하는 거죠. 다 죄인인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라고 하는 새로운 대안이 우리에게 필요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1장에서부터 3장 20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부터 3장 20절까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다. 누가 죄인이에요? 유대인들이 다 죄인이에요. 또 누가 죄인이에요? 이방인들이 다 죄인이에요.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이 복음의 가장 기초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복음이 정확하게 전달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이 죄인들이 받아야 될 당연한 대응 과정이 무엇입니까? 그 죄인들이 받아야 될 당연한 대가가 무엇입니까? 영원한 심판을 받고 그리고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들에게 새롭고 기쁜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그게 바로 누굽니까?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이죠. 로마서 3장 21절에서부터 23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인이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들이 다 죄를 지어서 율법을 지키는 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다 약간의 차이는 있어서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잘하고 어떤 사람은 더 못하고 하는 그런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제일 먼저 깨달아야 될 것이죠.


그런데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 복음에는 무엇이 나타났다고 쓰여 있어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의가 의로움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의로움이라고 하는 게 무엇일까요? 의 의로움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생각하기에 의로움 의라고 하는 것은 정직하게 행하고 선하게 행하고 바르게 행하고 이것을 의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요. 물론 그것도 의지만 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의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하고 어떤 사람이 서로 약속을 했어요. 약속을 했는데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의로운 사람인 것이죠. 약속을 잘 안 지킨다 그러면 그 사람은 불의한 사람인 거예요. 예를 들자면 내가 어떤 물건을 사고 싶어서 내가 돈을 줄 테니까 물건을 달라. 그리고 서로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정작 물건을 주려고 하는데 돈을 안 가져오면 그 사람 의로운 거예요. 의롭지 못한 거예요. 의롭지 못한 거죠. 성경에서 말하는 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의인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 사이에는 하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겁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줄 거라고 하는 그 약속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잘 지키며 믿음 안에서 잘 살아가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계속 영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거죠.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그 약속을 잘 지켰나요? 못 지켰나요? 못 지킨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잘 지켰습니까? 못 지켰습니까? 못 지켰어요.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고 잘못된 길로 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 깨져버린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해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그 관계가 계속 유지가 돼야 되는데,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버린 그 우리들의 얘기 하나님과의 약속이 깨져버리게 된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약속이 깨져버린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약속을 깨뜨렸지만 그래 약속이 깨졌네 하면서 너는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 만나고 살아 나는 딴 사람이랑 살 거야 하면서 헤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변치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은 약속을 깨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을 설명한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호세아서에 나오는 고멜의 이야기예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야야 네가 한 여인 저 음탕한 여인 고멜이랑 결혼을 해라. 그런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고멜이라고 하는 여인과 함께 결혼을 해서 삽니다. 그런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했으면 어떻게 두 사람이 살아야 되죠? 서로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야죠. 무슨 약속하면서 결혼하셨어요?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하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는 우리가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부부의 서약을 하면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나 아내가 둘 중에 한 사람이 외도를 해버리면 그러면 그 결혼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끝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결혼의 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고 끝나져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깨어져버리는 것이 정상일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말씀하는 겁니다. 그 고멜이라고 하는 여인을 다시 데리고 와라. 호세아 선지자가 그 고멜이라고 하는 여인을 저 창기들이 있는 곳에서 돈 주고 사 와서 다시 자기 아내로 데리고 오는 또 집을 나가면 또 돈을 주고 가서 사 와서 자기 아내로 다시 맞이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해주시는 그 모습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나쁜 길로 가고 우상을 섬기는 길로 가고 하나님을 버리고 갔을 때 이제 끝났다. 우리와의 관계가 하나님과 백성,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가 끝났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파토 선언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중단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게 복음이라는 거 그래서 그 복음은 무엇인가 그 복음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신 거죠.

호세아가 돈을 지불하고 고매를 사 온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린 저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값으로 주고 죽임에 내어주시고,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 로마서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서 단 한 사람도 하나님과의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 인간들을 이제 끝났다고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의가 어디서 나타났는가 복음에서 나타났는데 그 복음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의 소식이 주어졌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옛날 구약 시대의 방식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사역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되는 그런 놀라운 관계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놀라운 은혜죠.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면 계속해서 죄를 더 지어도 되죠? 그게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뭡니까? 이제는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로마서 6장 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고 하는 한 몸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제는 어떤 삶을 살아야 돼요? 이제는 악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게 로마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난 다음에 12절부터 16장에 이르기까지는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돼요? 로마서 12장 1절 2절 말씀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제는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는 놀라운 길이 주어졌지만, 그러니까 이제 더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깨닫고, 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깨닫는 이번 한 주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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