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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계명 (왕상 6:1-13)

지난 시간에 솔로몬이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성전 건축하는 모든 것들을 준비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된 거죠. 정말 많은 물자가 동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들을 이용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성전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성전을 짓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전 규모가 정말 엄청났다고, 오늘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데요. 2절 말씀에 보면, 성전은 길이가 몇 규빗? 60규빗! 그리고 너비가 20규빗, 높이가 30규빗. 규빗이 어느 정도 길이죠? 규빗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팔 뒷금치)서부터 여기(손가락 끝)까지의 그 길이를 규빗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략 45cm 정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 편리하게 50cm 정도라고, 우리가 계산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길이가 60규빗이라고 하면 길이가 몇 미터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30미터! 그렇죠? 너비가 20규빗이니까, 몇 미터? 이렇게 산수가 안 돼서야! 10m. 그렇죠? 높이가 30 규빗, 그러니까 몇 미터? 15미터.

그 정도 되면, 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예배당, 우리 예배당 크기보다 작아요? 커요? 비슷해요? 어때요? 약간 큰 정도의 사이즈의 성전을 지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성전, 우리 예배당의 길이가 이쪽에서 이쪽까지 약 20, 22m인가? 23m가 되는데, 20m가 아니라 30m니까, 한 7m 정도 더 뒤로 더 나가고, 그리고 이쪽 너비가 우리가 한 12m 정도 될 텐데, 10m 정도 높이니까, 대략 우리 교회당보다 조금 더 길고, 약간 좁은 그런 건물이니까, 그 당시 지었던 솔로몬 성전이 우리 교회 예배당하고 얼추 비슷하겠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높이는 어느 정도가 될까요? 15m라고 했으니까 대략 4층 높이의 건물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교회는 3층 높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보다는 좀 더 높은, 4층 정도의, 어쩌면 우리 교회를 어떻게 성전이랑 거의 비슷하게 지었죠? 생각하고 진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정도의 규모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그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이 무너지고, 한쪽 벽만 남은 통곡의 벽을 보고 왔는데, 그 통곡의 벽의 길이를 보니까, 훨씬 더 길더라고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전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은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다시 포로 이후에 돌아와서 지었던 성전, 그리고 그것을 증축했기 때문에, 사이즈가 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튼 그 당시에 지었던 솔로몬의 성전 건축의 크기가 대략 우리 교회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성전을 지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지은 때가 언제입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4천 년 전에 지금으로부터 약 한 3천 년 전에 지었던 건물을, 그 당시에는 크레인이 있었겠습니까? 포클레인이 있었겠습니까? 지게차가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던 그 시절에 이런 어마어마한 크기의 규모의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그 현장에서 돌을 다듬지 않고, 멀리서 다듬어서 그 돌 다듬는 소리가 성전에 들리지 않게 해서, 그것을 운반해 와서 지었다고 하니까, 정말 그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큰 규모의 성전을 지을 수 있었을는지, 생각만 해도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전을 지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성전은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겠죠. 그 당시의 집들은 다 대부분 조그마한 집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조그마한 건축물이었을 텐데, 이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이야말로, 엄청난 큰 건축물, 그야말로 눈에 띄는 랜드마크와 같은 그런 건축물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느낌이냐 하면, 옛날 서울에 가면 무엇이 보였죠? 63 빌딩이 있었습니다. 그때 63 빌딩을 보면, “야, 저렇게 높은 빌딩을 지었나?” 참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에서 더 높은 빌딩이 지어졌습니다. 무엇이죠? 롯데타워가 123층이랍니다. 올라가 보셨습니까? 올라갔습니다. 저는 돈 내고 올라가야 되더라고요. 우리 전주에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타워가 세워진다고 합니다. 찬성인가요? 반대인가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주에도 타워가 생기는데, 약 470미터짜리 높은 타워를 세운다고 하는데, 현재 전 세계에서 400미터가 넘는 타워가, 중국에만 한 4개 있고, 전주에 세워지면, 아마 다섯 번째로 세워지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한다고 하니까, 놀라고 자빠질 지경입니다. 여기서 36년에 올림픽도 한다고 하니까 정말 놀랍습니다. 좋은 일인지 좋은 일이 아닌지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아무튼 그 건축물이 이스라엘 땅에 섬기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얼마나 큰 자부심이 생겼겠습니까?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도 예배당을 건축하고 테이프를 끊을 그때, 우리도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 자리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될 때, 다른 교회들에 비해서는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쁨과 행복이 넘쳤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이 당시에 정말 조그마한 건물들만 있던 그 시대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정말 대단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을 때, 그때 이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 가운데, 그 성전을 바라보면서, 정말 어마어마한 자부심과 기쁨이 넘쳤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지은 솔로몬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열왕기상 6장 11절에서부터 13절까지의 말씀 가운데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며, 내가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내게 확실히 이룰 것이오.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해주신 말씀이, “야, 네가 이런 어마어마한 성전을 지었구나. 네가 엄청난 큰 일을 했구나 됐다. 이젠 됐다. 이제부턴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너에게 모든 축복을 쏟아부어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 성전을 바라보면서 내가 전에는 천막에 거주했는데, 내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삐까뻔쩍한 이런 대단한 건물을 지었으니 “이제는 다 됐다.” “이제는 괜찮다.” 내가 너에게 엄청난 복을 내려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무슨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네가 성전을 지었는데,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거라고 하시면서, 해주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너희가 내 법도를 따르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해야 한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너희에게 이루어 줄 것이고, 내가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할 것이고, 하늘의 은혜를 너희들에게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법도를 따라야 하고 율례를 행해야 하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그랬는데, 법도와 율례와 계명이 뭐가 다른 것이죠? 법도는 무엇이고 율례는 무엇이고 계명은 무엇인가요? 서로 다른 게 아니라, 같은 의미를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내 말을 지키란 말이야. 내가 들려준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해 내 명령을 지켜야 해. 내 말씀을 정확하게 들어야 된다고 하는 그 말씀을, 그 같은 의미의 말씀을 세 번 반복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듣고 순종해야 된다고 하는 그 말씀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죠.


그런데 이 말씀이 성전을 짓기 전이나, 성전을 지은 후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도 중요했던 것은 너희가 내 말을 따르느냐? 내가 내 법도를 지키느냐를 보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성전을 지은 후에도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내 법도를 따를 수 있겠는가?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묻고 계신 것이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들의 눈에 엄청난 크기의 위용을 자랑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에 만족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규모를 보는 거죠.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그 모든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천 마리의 재물을 하나님 앞에 바쳤다고 하는 그 숫자를 보는 것이고, 성전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지어졌다고 하는 그 규모를 보는 것이고, 그런 숫자와 규모에 열광하고 높은 그 드러낼 수 있는 측량할 수 있고 잴 수 있는 것들이 어마어마한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열광하고 빠져 들어갑니다. 그게 사람들의 관점인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너희가 내 말을 따르고 순종하느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그 성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예수님의 대답이 어떤 말씀이셨습니까? 마태복음 24장 1절에서 2절 말씀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않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그 어마어마한 성전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무엇이 중요합니까? 호세야서 6장 6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우리 생각에 번제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생각에 제사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희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네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느냐? 인애를 베풀고 있느냐? 사랑을 베풀고 있느냐? 불쌍한 자들을 너희들이 돌아보고 있는가를 주님께서 중요하게 보시고 계시다고 하는 것이죠.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철저하게 드려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3장 23절의 말씀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로움과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무엘 상 15장 22절의 말씀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순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믿음이란 겉모습으로 드러나고, 아름다운 성전과 그리고 화려한 예배와, 그 어떤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은 무엇인가? 야고보서 1장 27절의 말씀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강단 위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 공의롭게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약자들과 소외당하는 사람들과 정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며, 우리가 얼마나 좋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되는가에 대해서, 그것을 더 강조하는 예수님의 강조와는 정반대의 강조만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이 강단 위에서 얼마나 많이 자주자주 반복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전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그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됐다. 그것으로 끝났다. 네가 바치는 이 헌신이 최고의 헌신이니까, 됐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아니하세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내 명령에, 계명에, 율례를 따르고 행하고 지키는가? 뜻을 물으시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에 내가 너희와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성전 필요 없다는 얘기 아닙니다. 예배 필요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헌신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반대의 작용으로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그 모습들을 보면서, 그러니까 이거 다 필요 없다. “이거 아무것 쓸데없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거기에 안주하거나 만족하고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가? 그래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그리고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가를 주님께서 보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화려한 성전, 정말 웅장한 성전을 지었지만 말년에 솔로몬은 하나님의 계명에서부터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떠나 이방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된 것이죠.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것을 압니다.

오늘 우리는 늘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해주셨던 이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고 있는가? 우리,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지키고 있는가? 이 점을 항상 묵상하면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우리가 온전한 이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순종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우리는 늘 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성전이 되어 주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친히 성전의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친히 자신의 몸으로 제사를 드리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죠.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21절의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거늘 내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솔로몬이 지었던 그 성전은 정말 외향적인 면에서는 완벽했었습니다. 그 당시의 건물 가운데 가장 멋있는 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성전이 정말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시며 또한 우리를 하나님께로 연결해 주는 진짜 성전의 역할을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 이 말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말씀을 늘 기억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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