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은 정말 긴 연휴의 설날 연휴 기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좋았죠? 별로입니까? 설날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다시 만나셨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좋았나요? 스트레스만 넘쳤나요? 좋았군요. 감사합니다. 아마 좋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기도 하고 한 게, 어쩌면 가족의 모임일 거라 생각이 듭니다. 항상 만날 수는 없어도, 일 년에 이런 명절에, 설날 때, 또는 추석 때, 또는 생신 때, 이렇게 가족들이 함께 다시 만나서,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늘 전화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만나서 같이 밥이라도 먹고, 같이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는 것이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자녀들은 미국에 있어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물론 외롭게 외롭고 쓸쓸하게 지난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요. 그래도 지금 기대가 되는 것은, 이번 5월에 저희 둘째 딸이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금년에 한 번 다시 미국에 가서 우리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행복합니다. 참 이렇게 가족들이 만나는 게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 본문에 보면, 몇 년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 야곱이,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1장에서부터 33장의 말씀을 보면, 오랫동안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생활하던, 이 야곱이 이제는 아버지의 집으로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모든 것이 다 변해버렸습니다. 다 바뀌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는 혈혈단신이었죠. 그냥 지팡이 하나만 들고 참 쓸쓸하게 아버지의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많이 거느리게 된 그런 가장이 된 야곱이고요. 뿐만 아니라, 이제는 많은 양 떼를 거느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갑부가 되어서 어떻게 보면 금의환향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은, 설날이나 추석 때 고향에 가기 전에 차를 사더라고요. 혹은 차를 빌리기도 해서, 그래서 고향을 해서 멀리 떠나서 살았지만, 성공했다고 하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야곱도 이제 참 예전에는 청년에 불과했었고,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청년이 몇 년 동안의 세월을 지난 다음에, 아내와 그리고 아이들과, 그리고 수많은 양 떼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렇게 변해버린 이렇게 성공한 모습을 우리 가족들에게 보여줄 마음에 마음이 너무나도 들떠 있었을까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요? 물론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과 근심이 앞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옛날에 했었던, 그런 잘못이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서, 그래서 형의 분노를 사서, 도망가야만 했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이 야곱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냈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 같았고, 그 문제가 사라진 것처럼 생각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이 과정 가운데서, 그 문제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야곱의 마음 가운데는 여러 가지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야곱이 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야곱은 먼저 사람들을 형 에서에게 먼저 보냈습니다.가족들에게 먼저 보낸 것이죠. 그래서 야곱이 이제는 돌아오게 된다고 하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을 보는 것이죠.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냈는데, 그 사람들이 가족에게 돌아가서 그리고 전해진 소식은 걱정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 6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400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나이다.” 400명을 데리고 형이 온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400명이 어떤 사람들일까요? 대대적인 환영 인파인가요? 환영하기 위해서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야곱을 죽이려고 오는 것이죠. 잘 됐다. 도망가 버려서 우리가 어떻게 처치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돌아온다고 하니까, 야곱을 죽이겠다고 벼르면서, 이 형 에서가 그때의 그 감정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그 감정이 더 심화되어서,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400명이라고 하는 군사들을 데리고 다 맞이하러 나온다고 하는 이야기에 야곱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이 어떠한 마음이었을까요? 창세기 32장 7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때로 나누고” 그랬습니다. 야곱은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러다가 내가 아버지도 만나지 못하고, 내가 이곳에서 내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답답한 마음에 그래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죠.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두 떼로 나누어서, 그래서 대비를 세우는 것이죠. 만일 에서가 군인들을 이끌고 와서, 첫 번째 1차 저지선을 뚫는다고 한다면, 나는 그 사이에 도망가겠다. 1차 저지선과, 그리고 2대로 나누어 놓고, 그래서 도망가겠다고 하는 36계 줄행랑이라고 하는 그런 방법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완벽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도망은 해답이 아닌 것이죠. 이제 또 도망가서, 아버지도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도 만나지 못하고, 또다시 타지에서 방황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 가운데서 야곱이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무엇이냐면, 그 순간에 야곱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부른 것이죠.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오늘 이 야곱이 한 일이 창세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야곱은 자신의 도움이 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간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야곱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아주 몇 가지 점을 우리가 주목해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는 이 야곱이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는가 하는 것이죠. 창세기 32장 9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도합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야곱은 하나님을 부르면서 뭐라고 부릅니까? 우리 할아버지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어요. 특이한 것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는 않은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아직 야곱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런 이유도 있을 겁니다. 나중에 가면 이 야곱은 바로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요, 나의 힘이신 하나님이요,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게 나오죠.
하지만 이 순간에도 이 야곱이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느끼면서 살았어요. 언제 느꼈죠?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야곱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는 것이죠. 꿈에 사다리가 보이며 층계가 보이며,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광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해 주시기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너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할아버지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한 적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그 야곱이 저 라반 외삼촌이라고 하는 그곳에 가서 살았을 때에도, 하나님이 저 가나안 땅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한 것이죠. 외삼촌 라반이 자기를 속이면서 임금 착취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편에 서서 야곱의 부를 늘려주신 하나님이에요. 뿐만 아니라 야곱이 집에서 나올 때, 라반이 화가 나서 죽이려고 달려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이 야곱을 보호해 주시고, 안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그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이 야곱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 야곱은 조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영원하신 하나님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요. 아브라함은 죽어서 없어요. 아버지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할아버지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또 나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영원토록 어제나 오늘이라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야곱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가운데 무엇을 생각해 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낸 것이죠. 창세기 32장 9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셨는가를 기억하고 그것에 의지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는 것이죠. 창세기 32장 12절의 말씀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내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게 누구의 약속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약속입니까? 내 자손이 바다에 모래와 같이 많게 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그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겠어요? 살리시겠어요? 살리신다면 에서가 와서 나를 죽이려고 할 때 건져주시겠어요? 안 건져주시겠어요? 건져주시겠다는 거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 해 주셨는가?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하나님이었는가를 기억해 냈습니다. 창세기 32장 10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때나 이루었나이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 지팡이 하나만 들고 건너갔던 나를, 두 떼나 이루도록 만들어주신, 그 하나님.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어요? 내가 똑똑해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잘나서 이렇게 많은 부를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고 하는 사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의 하나님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담대한 약속,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만 생각하면 두려워할 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죠.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고 한다면 걱정될 게 없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 앞에는 뭐가 보여요? 애서가 쫓아온다고 하는 게 보이는 그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거예요. 창세기 32장 1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들의 마음이에요. 우리가 믿는 게 뭐죠? 하나님을 믿어요. 우리가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을 믿어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실 것을 믿어요. 하지만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현상들이 보이는 것이죠. 문제가 보이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될 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예요.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일들 때문에 걱정이 되고, 근심이 생기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게 아니라 당연히 드는 거예요.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주님, 제가 물 위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했을 때, 오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물속에 바다로 뛰어들어서, 그 물 위를 걸었지만,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눈앞에 있지만, 그런 예수님을 볼 수가 있었고, 무리를 실제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빠져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도 마찬가지고요. 어려운 일을 닥치게 되면,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근심과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를 에서의 손에서 건져 주옵소서 기도하는 것이죠. 그게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야곱이 이 위기의 순간 가운데,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고 하는 것이 잘한 일입니다. 이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한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인데, 그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죠.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내게 귀를 막으셨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생각해 보세요. 어떤 퀴즈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문제를 다 하나씩 하나씩 맞히고 이제 마지막 한 문제가 남았어요. 이 마지막 한 문제를 풀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게 되어 있는데, 모르는 문제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나에게 어떤 찬스가 있느냐? 전화를 걸 수 있는 찬스가 있어요. 전화를 걸어서 척척박사에게 물어볼 수 있는 찬스가 있어요. 그러면 전화해야 합니까? 하지 말고 그냥 떨어질까요? 해야죠! 당연히 해야죠. 물어보면 되는 거예요. 전화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찬스를 써서, 그 우승 상금을 얻는 게, 그게 당연한 것처럼, 그게 지혜로운 것처럼, 우리 가운데 누가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은 척척박사 정도가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간구할 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가 무엇일까요? 기도는 어려운 게 아니에요. 기도가 어려운 게 아니라 기도는 너무나도 쉬운 것이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기도는 방법이 없어서, 내가 지금 당장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 가슴이 좀 쪼여가지고, 가슴에 좀 뭔가 좀 쪼이는 느낌이 들어가지고, 병원에 간 적이 있어요. 병원에 가서 이게 좀 가슴이 좀 이상하다. “내가 이러다 심장마비로 죽는 거 아니냐?” 하고 물어봤더니, 의사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정상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 말을 한 후에, 의사 선생님께서 뭐라고, 뭘 주셨냐면은 약을 제게 주셨어요. “정상이고 괜찮습니다. 그 정도 나이에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라고 안심을 시켜줬지만, “그런데 아프셔서 저한테 왔다고 하니까 비상약을 하나 드릴게요.” 그런 거예요. 그 비상약이 뭐냐 하면, 만일 응급 상황이 생기면, 그 약을 혓바닥 밑에 집어넣으면, 막혔던 혈관이 뻥 뚫어지는 특효약이에요. 아마 119 대원들이 그걸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약을 먹으면, 위급 순간에 심장이 막혔을 때, 혈관이 막혔을 때, 혈관을 뚫어주는 그런 생명의 약인 것이죠.
그래서 그걸 받아왔는데, 제가 그것을 어디다 둘까? 그러다가 제 침대 머리 위에다 하나 놓고, 제 사무실에다 또 하나 놓고, 위기의 순간에 그걸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여기저기 놨는데, 그런데 제가 운전하고 가다가 약이 없을 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하죠? 그럼 못 보는 거예요. 여러분! 필요한데 없으면, 못 쓰는 거예요. 그런데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거예요. 기도는 그냥 그 자리에서, 어디서든지, 하나님 앞에 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못 찾아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고,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거예요. 새벽잠 못 자고 새벽에 나와서 기도해야만 응답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 때나 기도하시면 되는 거예요. 밤잠 못 자며 그래서 철야를 하면서 기도해야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도하시면 되는 거예요. 2시간, 3시간, 4시간씩 오래 기도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씩 기도해야만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도하면 되는 것이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금식해야만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상시에 기도해도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엄청난 은혜의 약속을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간단하게 기도하시면 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 맡기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분노가 가득 찰 때, 하나님 제 마음을 만져주옵소서. 제 마음 가운데 욕심이 생길 때, 두려운 마음이 들 때, 그때그때마다 제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야곱의 기도를 보면 야곱이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것만, 지금 우리가 봤는데, 야곱이 무엇을 표현했는가만 봤는데, 야곱이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어요. 하나님 내가 누굽니까? 내가 어떻게 신실하게 살았는지 아세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착하게 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입니다를 말하지 않았어요. 야곱이 말하지 않은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 수능 성적표가 이거예요.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이만큼 헌신했어요. 그걸 말하지 않았어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부모님과 같아서, 아무리 못난 자식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부족한 자식도, 우리가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며, 매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야곱은 승리하게 된 것이죠. 에서가 죽이러 왔지만, 그 순간에 야곱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했습니다. 선물로 선물을 주면서 애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도 했고, 여전히 불안해서 야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강구했는데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극적인 상봉을 하게 해 주신 것이죠. 창세기 33장 3절 4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죽이려고 했던 에서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바꿔주시니까, 에서의 마음 가운데 긍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에서의 마음 가운데 그 야곱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게 되어서, 결국 이 야곱과 화해하고 상봉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이런 일들이 있는 것이죠. 야곱과 같이 위기의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앞에 정말 어려운 일들,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하고 걱정하게 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언제나 들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정말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정말 나의 주님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기도로 경험하며, 승리해 나가는 금년 한 해가 되시고 우리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 뉴스에서 봤던 이야기인데요. 119 소방 관리 최우수상을 받은 김현근 경기도 소방본부장의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이분이 119 상황실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새벽 4시에 119로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으면서 응답을 한 거죠.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랬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겁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툭 툭 툭” 이런 소리만 나는 거예요. “무슨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말씀하세요? 말씀 안 하시면 그냥 전화 끊겠습니다.” 하면서 전화를 끊었어요. 하지만 조금 뒤에 다시 전화가 왔어요. 똑같은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또 말을 하지 않고 “툭툭툭툭” 소리만 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느낌이 이상해서 그 전화기에 대고 물었습니다. “지금 119가 필요하신 상황이십니까?” 근데 역시 툭툭툭툭 소리만 나요. 그래서 다시 물었어요. “119가 필요한 상황이시면, 한 번만 툭 하시고, 그게 아니라면 두 번 올려주세요.” 그랬더니 저쪽에서 툭 하고 한 번 치는 소리가 들린 겁니다. “지금 현재 어떤 상황이세요? 몸이 지금 아픈 상황입니까? 맞으면 툭 한 번만 하시고, 아니면 두 번 치세요.” 그랬더니 툭 하고 한 번만 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전화를 하면서 전화를 검색해 봤더니, 예전에 신고가 한 번 들어온 사람입니다. 암 환자로 기록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죠. 그래서 “지금 현재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까?” 물어보니까 맞으면 한 번만 아니면 두 번 치라고 하니까, 한 번 툭 하고 하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집에 계십니까? 집 밖에 계십니까? 지금 자기 집에 있습니까? 아닙니까? 자기 집에 계시면, 한 번만 툭 치세요.” 툭 하고 친 거예요. 그래서 119가 출동해서 그 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는데요.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60대 남성인데 후두암 수술을 받고, 그리고 지금 그 이후의 단계에 있는 사람인데, 말을, 후두암 수술을 했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서, 가족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호흡 곤란이 와가지고, 그래서 말도 못 하고 지금 죽을 것만 같은 상황 가운데서, 119에다가 전화했는데 놀랍게도 이 소방관의 재치로 이 한 사람을 살려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들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미사여구를 쓰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많은 말을 하고, 하나님 앞에 육하원칙에 따라서 잘 설명해야만, 겨우 알아듣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119 소방관보다도 더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가 신음을 하면 그 신음소리조차도 들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하며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상황 가운데서 울고만 있지 말고, 답답하다고 화만 내고 있지 말고, 슬퍼하지만 말고, 매 순간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정말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사실들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