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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아이러니 (삼상 8:10-18)

오래간만에 사무엘상의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되었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왜 왕이 없었죠? 그것은 아직 문명이 발달하지 못해서, 아직 국가라고 하는 체계를 제대로 잘 갖추지 못한, 아직 발달되지 못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왕이 없었을 것인가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 애굽 땅에서 바로 왕의 학정 가운데 지내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건져냈습니다. 전에는 바로 왕을 섬기고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 되어 주셔서, 이스라엘을 친히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 신정 국가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오게 되었던 것이죠.


그동안의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세라고 하는 지도자가 있었고, 여호수아라고 하는 지도자가 있었고, 또 여러 사사들과, 그리고 사무엘이라고 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이런 지도자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왕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왕들처럼 그렇게 체계를 갖추고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인도했던, 그런 임시적인 그런 지도자들이었지, 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 지내왔었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이 갑자기 사무엘에게 와서 우리도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사무엘이 다 늙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전과 같은 그런 총명함이 없어요. 예전과 같이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릴 능력이 되지 않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과 달랐습니다. 사무엘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급기야 그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간청하게 된 겁니다. 우리도 왕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왕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왕을 세워달라고 한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 상 8장 7절에서 8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사무엘을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하나님을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 하는도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면서 살아왔지만, 사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쭉 살펴보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던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는데, 그 결정체로 이제는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된 것이고,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를 버리고 있구나. 이스라엘 민족이 왕이신 나를 왕이 나를 버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그 잘못된 요구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왕을 세우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빚어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이 바로 그 내용의 말씀이죠. 사무엘상 8장 11절에서부터 17절 말씀에 보면, 왕이 세워지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장 11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절 보겠습니다.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왕이 세워지게 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시는 말씀을 해 주신 것인데요. 한마디로 말하면 왕이 세워지는 게 좋다는 얘기입니까? 나쁘다는 얘기입니까? 나쁘다는 얘기!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달라고 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이 세워지게 되면 우리도 국가를 이루고 그리고 국가적인 체계를 갖추고, 군대를 만들어서, 외적이 쳐들어오면, 그 왕이 나서서 막아주고, 그 왕이 우리 백성들의 삶을 돌보아 주고, 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우리가 더 편안하고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왕을 세워 달라고 하는 것인데, 왕이 나타나게 되면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요? 그 왕이 너희들의 아들 딸들을 데려다가 종을 삼을 것이며, 너희 아들 딸들을 데려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들이 수고한 그 포도원에서 무화과 밭에서 그 곡식들을 가져갈 것이며, 왕이 결국 너희들의 아들 딸과 재산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 주시는 말씀인 거죠.

이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모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기를, 왕이 있으면, 그 왕이 왕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왕이 우리로 하여금 종으로 팔려가는 것을 막아주고 왕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왕을 세워 달라고 하지만, 정작 왕이 나타나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우리 아들 딸들을 종으로 삼아버리고, 우리의 재산을 세금을 걷어가 버리고, 재산을 가져가 버릴 것이고, 결국 외적이 침입하는 것이나 왕이 가져가는 것이나 별로 다를 게 없는 결과가 모순적인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들이 늘 만나는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망은 늘 정치인들을 바라보면서 제발 우리들을 위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어 주세요. 정말 우리를 위해서 좋은 정치를 펼쳐 달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투표장에 달려갑니다. 하지만 선거 때는 서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선거 때는 우리를 위해서 좋은 것을 다 해주겠다고 입에 발린 이야기들을 다 했지만, 그러나 막상 그들이 당선되고 난 다음에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 군림하는 통치자가 되어 버리고, 서민들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결국 무엇이 바뀌었나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표를 몰아주었건만, 그러나 결국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우리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영원한 쳇바퀴의 삶을 걸어가는 것 같은 배신감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것이에요. 왕이 무엇인가? 왕이 우리들에게 해결책이 아니라, 왕이 우리의 답이 아니라, 전혀 답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은 무엇입니까? 일종의 우상인 것이죠.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화려한 약속을 합니다. 우리들에게 정말 장밋빛 세상을 보여줍니다.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내게 모든 것을 바치면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려주겠고, 너희의 삶이 풍성해질 것이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들을 유혹하는 것이죠. 마치 예수님 앞에 나타났던 사탄이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세상을 내게 주겠다고 거짓말로 약속하는 것처럼,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 앞에 절하면 다 줄 것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빼앗기기는 해도 전혀 그 우상이 우리들을 위해서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움직이지 못하고 걸어가지도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우상들이 우리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늘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늘 그런 우상과 같은 것을 갈망하면서 삽니다. 이것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과연 이것이 나의 그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 줄 것인가 하면서 우리의 소망을 이 세상에 썩어질 것에 우상에게 우리의 소망을 건네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카지노와 같은 것이 우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카지노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누가 알아 당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될지 조금만 돈을 넣고 당기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고 운명이 바뀔 수 있고 인생이 역전될 수 있다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삶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 그곳에 가서 자신에게 남아 있는 조그마한 그 것마저도 그 카지노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안에 집어넣는 거죠. 하지만 결과는 내가 일확천금을 얻게 되고, 인생이 역전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었던 얼마 되지 않은 것마저도 다 털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되는 그 나락에 떨어지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카지노라고 하는 우상인 것이죠.


또 우상이 무엇이 있습니까? 마약과 같은 것이 우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다 잃어버리게 만들고 더 이상 아픔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이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하는 쾌락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하지만 그 마약을 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럽고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결국 모든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모든 것들이 우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우상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우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예를 들자면 돈이 우리의 우상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또는 사랑이 우상이 될 수가 있고 때로는 권력이 우상이 될 수가 있고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우상이 될 수가 있고 우리들의 자녀가 우상이 될 수가 있는 거 이것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이것이 나의 모든 근심을 해결해 줄 줄 알고 우리가 거기에 올인하게 되지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슬픈 나락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상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이 세상 헛된 우상 헛된 왕에게 소망을 두면서 거기서 무엇인가 희망을 얻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의 소망이 헛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왕을 세우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될 것 같은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이게 모순된 모습처럼 보입니다. 왕이 해답이 아니라 우상일 뿐이고 왕을 세운다고 한다면 이런 나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놓고도 하나님께서는 그래 왕을 세워라라고 허락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너희들 골탕 먹어보라고 그렇게 세워주시는 것일까요? 사무엘상 8장 2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의 일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왕에 대해서 경고하시면서도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시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왕을 세우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실은 그것은 왕을 세운다고 해서 왕이 모두가 다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이 있지만 우리가 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에게 둘 수만 있다면, 우리가 왕을 보면서 왕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둘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소망을 두어야 될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시편 146편 3절에서부터 5절 말씀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의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왕을 세우게 되겠지만, 우리의 소망을 왕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두어야 된다는, 우리가 돈을 벌지만 돈에게 우리의 소망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두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세상의 것들을 다 버리라고 하는 얘기가 아닌 겁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에는 양자 태기를 말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서 많이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들을 다 버려라. 다 없애라. 다 내려놓아라. 내려놓으라고 수없이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러니까 정말로 그 모든 것들을 다 없애버려야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좀 조심스러운데요. 성경에서는 아예 내버려라 아예 다 포기해 버려라. 하나님만 붙잡고 다른 모든 것들은 다 내어버리라고 그런 식으로 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요? 너희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어떻게 해라 돈을 버려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젊은 관원에게 도전해 주신 말씀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도전해 주셨어요. 그 말씀만 보면 정말 우리가 모든 재물을 다 버려야만 할 것 같아요.

그뿐만 아니라 기드온에게도 무슨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까? 기드온이 군민들을 모아서 위대한 민족과 전쟁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데리고 있는 군인들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군사력으로 이겼다고 오해할까 봐, 그러니까 군인들을 다 잘라내라. 군인들을 다 돌려보내라. 그래서 몇 명까지 남겨놨습니까? 300명만 남겨놓은 거 300명 300명으로 저 수만의 위대한 민족을 이길 수 없는 그 상태까지 만들어놓고, 다 잘라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부모와 자녀를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그렇게 극단적으로까지 말씀해 주시는 그런 말씀들이 성경에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종종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맞아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서는 다 내버려야 돼. 돈도 다 내버려야 되고, 사람도 다 끊어버려야 되고, 심지어 병에 걸렸지만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거나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하나님만 의지하는 방법으로 병을 나아서 해야지 이 세상의 방법을 쓰면 안 되라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중의 새들도 먹이시고 들레 백카파도 입히시기 때문에 내가 일하고 수고할 필요가 없이 내가 일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고 내가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고, 오로지 나는 일을 다 중단해 버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겠다고 결론을 내리시는 분들도 있어요. 학생들도 내가 공부를 안 해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대학 보내주겠지 그렇게 오해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에 대해서 경고하시면서도 그러니까 왕을 세우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왕을 세워주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것은 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누구에게로 향해 있느냐에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돈을 가져도 우리가 왕을 세우더라도 그 어떠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다 없애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왕이 있다고 할지라도, 돈이 있다고 할지라도 권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병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에 과학적인 그런 발전에 우리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아끼시는 하나님에게 소망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에게 온전히 우리의 소망을 두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누굽니까? 하나님 이 세상의 왕이 우리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참되신 왕이신 하나님만이 오늘 우리가 믿을 대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굳건하게 믿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참되신 왕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왕은 모순이에요. 이 세상의 왕은 아이러니해요. 우리를 외적에서부터부터 지켜주고, 그 적군들이 우리를 잡아서 종으로 삼는 것을 막아달라고 왕을 세우는데, 정작 그 왕이 우리들의 아들 딸들을 데려다가 종으로 삼고, 정작 그 왕이 우리들의 재물을 가져다가 자신들을 위해서 쓰는 모순된 결과를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왕인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들 딸들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우리 위해 내어 주셨어요. 우리를 군림하고 착취하는 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사랑이 많으신 왕, 참되신 왕으로 이기신 우리 주님만이 우리가 영원히 믿고 의지하고 소망을 둘 하나님 참되신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된 우리 둘째 딸아이는요. 어렸을 때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제가 교회 사무실에 있는데 제 아내가 우리 아이를 교회 사무실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있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아이가 들어오는 그 순간에 저는 다른 문으로 차 타고 나가서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아이를 교회에다 놔둔 채 혼자 집으로 간 거죠. 집에 가서 들어갔는데 아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때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다시 교회로 가봤지만 교회도 없고 아이가 갈 만한 곳을 차 타고 이리저리 다녀봤지만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이 아이를 잃어버렸나 이 아이 어떡하면 좋지 갑자기 무서움이 마음 가운데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1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동네 백인 부부가 울고 가고 있는 우리 딸아이를 발견해서 그 아이에게 다가가 집이 어디냐고 묻고 그 아이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어서 그때 정말 1시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아이를 잃었다가 찾으면서 그 아이를 재회하는 기쁨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가운데 다짐을 했어요. 다시는 이 아이를 잃지 않겠다. 다시는 이 아이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지난 결혼식에서 이 아이의 손을 놓았습니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사위에게 건네줬어요.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그 마음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사, 십자가 위에 달리신 우리 주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할 때, 그 손을 내어놓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그 은혜를 저와 여러분들이 받은 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졌습니다. 미국에 갈 때는 없었는데 돌아오니까 새로운 대통령이 뽑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십니까? 아마 80%는 좋아할 것 같고 20%는 아마 싫어할 것 같은데, 어떤 기대와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사람들에게 둘 것이 아닙니다. 사울 왕도 배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좋은 왕이었던 다윗도 나중에는 자신이 보호해야 될 백성의 아내를 빼앗고, 자신이 보호해야 될 군인을 전쟁터로 보내어서 죽여버리는 배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고, 늘 기회가 주어지면 넘어지고 쓰러지고, 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인데,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연약함을 안으시고 품으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셔서,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이끌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우리의 소망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거기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돈에게 둘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소망을 둘 게 아니고, 어떤 권력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참되신 왕, 우리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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