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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 사랑 강해 06

조그마한 힘을 가지기만 하면 갑질을 해대는 못된 속성을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아주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지만, 사람이 수단으로가 아니라 인격으로 대우받고 싶어 하는 소망이 표출되고 있어서 갑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예의를 갖추어 대해주기를 원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고 말씀하셨다(마 7:12).

우리들은 사랑하기만 하면 정당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산다.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무례함으로 표현되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례함으로 표현되는 사랑이 참된 사랑이 아닌 것은 강간이나 스토킹이 사랑이 아니라 범죄인 것과 같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행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범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 가운데 하나는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짜증을 내든 말든 상관없이 광장에서 확성기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들의 생각에 지금은 싫어할지 모르지만 정말 복음을 알게 된다면 내게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며, 스토커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생각이다. 내가 하는 축복이 저주처럼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고(잠 27:14), 뱀같이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다(마 10:16).

사람들을 강권하여 잔치에 데려오라는 말씀(눅 13:23)은 억지로 또는 강제적으로 데려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간청해서 데려오라는 말씀이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딤후 4:2)은 상대방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복음을 막무가내로 전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내 형편이 좋은 상황이든 좋지 못한 상황이든 복음의 필요가 있다면 지체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무례하게 복음을 전해도 좋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

자녀를 양육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아야 하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엡 6:4).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방법이 주의 교훈과 훈계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실 때 어떻게 무레하지 않은 사랑을 하셨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적으로 사랑하시지 않으셨다. 죄를 지을 때 분노하며 심판해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참으시고 기다리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우리는 정말 참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늘 넘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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