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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사랑 강해 09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 말은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던 말이다. 단재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다시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그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대학살을 당했던 뼈아픈 역사를 결코 잊으려 하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 조각품을 만들어서 기억하게 하기도 하고, 박물관을 만들어 기억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녀상을 만들어 세우는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제니 스톨젠버그(Jenny Stolzenberg)라는 작가는 영국 핀츨리에 있는 유대인 박물관에 기억의 신발들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이와 비슷한 작품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다뉴브 강가에도 전시되어 있다. 이 모두가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토머스 샤츠(Thomas Szasz)는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5에 있는 이 말씀을 영어성경인 NIV 성경에서는 “사랑은 잘못들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지 않습니다.(It keeps no record of wrongs)”라고 번역했다. NLT 성경에서는 “사랑은 부당하게 취급받은 것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지 않습니다(It keeps no record of being wronged)”라고 번역했다. 사랑은 단순히 용서하는 것을 넘어서서 잘못했던 그 사실까지라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번역은 직역이 아니라 의역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과연 우리가 잊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잊고 싶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과연 잊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둘째, 과연 그렇게 잊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수많은 현인들은 용서는 해야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는데, 그렇게 잊어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정답은 잊으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불행한 과거를 잊어버리고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똑같은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미끼를 물다가 죽을 뻔했던 것을 망각하고 또다시 미끼를 무는 물고기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과거는 결코 잊어서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잊어야 한다. 잊지 않을 때 우리의 관계는 온전하게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잊는다는 것은 과거의 불행한 경험이 미래의 건설적인 관계를 세워나가는 것을 방해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게 잊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그런 점에서 다 잊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탕자를 환영하고 맞이해 주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아버지는 그 탕자가 아버지를 모욕하고 집을 떠났던 치욕스러운 그 날의 이야기를 잊어버렸던 것일까? 그 탕자가 자신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것을 다 잊어버린 것일까? 물론 하나도 잊지 않았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 때문에 그 아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의 불행한 경험들이 아버지의 사랑과 은총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그게 잊는다는 뜻이다.

왜 우리는 그 사람이 내게 행했던 악행까지 잊으면서까지 사랑해야 하는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고 우리의 죄를 완전히 잊으셨기 때문이다(렘 31:34). 그리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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