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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둔 하나님의 이름 (왕상 9:1-9)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예전에도 나타나신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죠? 기브온에서 나타나신 적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1천 마리의 재물을 하나님 앞에 바쳤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셨고,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이 부족한 사람에게 지혜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민족을 잘 다스리고 섬길 수 있겠는가? 내가 잘 먹고 내가 잘 살고 내가 좋은 그 기도 제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사명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의 제목, 지혜를 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의 제목을 구한 이야기가 우리가 잘 알 수가 있겠는데요. 이번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성전을 다 지었고 그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한 일을 마친 후에 이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무슨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겠다. 이 세상에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 세상에 수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 이 성전을 구별하겠다. 거룩하게 구별하겠다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거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별해 냈다고 하는 것이 거룩함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이 성전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두시고 그리고 거기에 내 이름을 두겠다. 이 성전을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곳으로 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곳에 두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길이 그곳을 향하며 하나님의 마음이 그곳을 향하게 하시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이 성전에 둔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만나주시겠다고 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마다 죄를 지어서 회개해야 될 상황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내 이름을 거기에 두겠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따라서 사람들은 어디에 가면 됩니까? 성전으로 가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찾아간다고 한다면 번지수를 잘 찾아야 되겠죠. 번지수를 잘 찾아야 됩니다. 편지를 붙이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우체국에 가야 됩니다. 요즘에는 편의점에 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뭔가 식료품을 사려면 식품점으로 가야 되는 것이고 옷을 사려면 옷가게로 가듯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둔 이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겠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다 하는 것이 바로 내 이름을 거기에 두겠다고 하는 약속인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이 성전에 두겠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할 때 성막 가운데 계시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동행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시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내 이름을 거기에 두겠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이 말씀을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고 하면 하나님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약간 배치가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 어려운 한자 말로 편재하신 하나님, 또 한자 말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이에요. 따라서 성전에만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아니요. 성전이 아니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왜?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아요.

바울 사도가 빌립보 지방에서 감옥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차단이 되고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 자리가 고난의 자리, 고통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자리,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셨던 거예요.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새 친구들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을지라도 그 풀무불이 고통의 장소요 정말 힘든 장소가 아니라 그 풀무불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에도 하나님께서 계셔서 주님께서 다니엘의 새 친구들과 함께하셨다고 하는 그 이야기들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이다 라고 하는 게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때, 그때 야곱이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야곱의 하나님, 나를 사랑해 주시는 그 하나님이 아버지 이삭의 집에만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저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는 그 길에 아무도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고 지금 내가 이 들판에서 짐승이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상황 가운데서 ‘나는 이제 외롭구나’라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다리를 통해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보호해 주시는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가 어디든지 어디에 있든지 바로 그곳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어디든지 갈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수술대 위에 누울 때에도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의사 선생님이 아주 뛰어난 의사 선생님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은가요?

이런 얘기를 하면 될지 모르겠는데 마취했다가 안 깨어나는 경우도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 수술대 위에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고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 상황에 있든지 편재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어디든지 계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구하면 응답해 주시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담대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특별히 솔로몬을 향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이 성전에 두겠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이러한 말씀이 하나님의 속성과 비추어 보아서는 약간 배치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성전이 아니면 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이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될 때 우리가 이 성전을 향해서 나오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주시겠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디서든지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회당에 나와서, 그 옛날에는 성전에 가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특별히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이러한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찾게 되고, 하나님을 더 생각나게 해 주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 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이 성전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특별히 우리가 성전에 간 이유가 뭐예요?

집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왜 성전으로 굳이 가요? 그것은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과 똑같아요. 공부하는 학생이 꼭 스터디 카페에 가야만 공부가 됩니까? 꼭 도서실에 가야만 공부가 됩니까? 그게 아니라 어디서든지 할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공부할 때는 우리 집 모든 식구들이 다 일을 하고 이삿짐 나르고 막 일을 하는데 저 혼자 방구석에 앉아서 책을 봤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같이 일을 해야지. 아무튼 공부라고 하는 거 어디서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특별히 도서관에 가고 학교에 가고 스터디 카페에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거기 가서 더 집중하고 더 효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전에 굳이 안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는 있지만 왜 성전에 갔는가? 구약시대 때 그곳에 갔을 때 하나님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찾으며 간구할 수 있고, 거기서 진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한나는 자기 집에서 여호와의 전 앞에 가서 거기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된 것이고요. 또 시편의 기자는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고라 자손은 시편 84편에서 이렇게 고백했는데요. 시편 84편 10절 말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첫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래서 가능하면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에서도 기도하지만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또 직장에 가거나 직장에서 돌아올 때 또는 때때로 이곳에 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게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이곳만이 만나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더 집중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장소로서 활용을 해야 될 것인데,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는가? 내가 만나 주겠다. 내 이름을 거기 두어서 너희를 만나 주겠다 말씀해 주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솔로몬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이 성전에 영원히 두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을 붙여주셨습니다. 솔로몬에게 권고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 왕위가 영원할 것이고,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땅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될 것이고 영원할 거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영원해요, 영원하지 않아요? 영원하지 않아요. 이것은 하나님이 거짓말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영원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우리가 누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따라서 오늘 우리가 솔로몬에게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하나님을 영원히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마음속의 결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성공했나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결과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고야 말았는데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약간의 낙담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도 완벽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거죠. 우리도 때를 따라 우상들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둡니다.

때로는 돈이 우상이 될 때도 있고, 때로는 명예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우상이 될 수가 있고, 때로는 우리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그게 우상이 될 수가 있고, 그래서 우리가 늘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하나님의 자리로 올려놓을 때, 그럴 때 우리는 결국 어려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다시 회복되는 그런 은혜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에게 약속했던 이 약속, 그 약속이 사실은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약속이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제일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멋지고 화려한 성전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어떤 멋있는 화려한 건물보다도 더 중요한 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로 서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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