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무엇을 피하지 못한다는 말일까요?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화를 피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벌을 피하지 못한다. 즉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 우리가 화를 입게 될 것이다. 벌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하는 게 오늘 잠언 19장 5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 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걸로 보니까 해도 되는 건가 보죠. 그렇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가 좋은 게 아니라 화를 입을 것이다. 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이죠.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다 똑같이 대우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공평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시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주시는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공평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행한 만큼 행한 대로 거기에 합당한 보응을 해 주신다고 하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가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거라고 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듯이, 거짓말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 벌을 받지 않고 그냥 무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공평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거짓말을 하다가 화를 입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 37절의 말씀에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내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내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가 하는 그 말에 따라서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도 있겠고, 우리가 하는 그 말에 따라서 우리가 정죄함을 받아 심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죠. 심판을 받지 말아야 하고 우리가 인정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본다고 한다면 소위 크리스천이라고 자기 자신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돈을 빌려놓고 돈을 갚는다고 하고 안 갚아버리는 거죠. 거짓말하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면서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보통 크리스천들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목사라고 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장로라고 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권사라고 하는 그런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자주자주 하면서 정말 중요한 순간에 정말 의로운 증언을 해야 되는 것을 모두가 다 기대하고 있는 순간에 뻔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그런 목사,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그런 장로들을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겠습니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목사라고 하면서 장로라고 하면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가 있겠는데요. 첫 번째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공의의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가 말한 대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한다고 하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거짓말해서 빠져나갈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거짓말해서 이익을 챙길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거짓말로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거잖아요.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사람들의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계신 그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고 한다면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인데 왜 거짓말을 하는가?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하나님이 없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일들이 우리들 가운데 넘쳐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바로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의 확신을 가지는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고, 목사의 모습을 보고, 장로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없으니까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확신을 갖고 안위함을 가지고, 그렇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도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살게 되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죠. 성경은 가르쳐 주시기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거짓 선지자들이, 가짜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영적인 지도자라고 말하면서 밥 먹듯이 거짓말하는 그런 일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분별하고 조심해야 되는 것이겠죠.
적어도 그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아예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거짓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의 존재를 잊었거나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태연하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알 수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복음을 오해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복음은 우리들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인데요. 우리를 얽매이고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그 율법의 굴레로부터 복음은 우리를 해방해 주었지만 그렇게 우리를 그 율법의 굴레로부터 해방해 주었다고 하는 것은 그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그것을 완전히 다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체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냈다고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해서,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살아도,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만 하면, 내가 교회를 다니기만 하면 나는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확신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는데 주님의 그 용서하심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 죄와 허물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잘못과 죄와 허물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미래에 있을 죄까지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오해하냐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실 것이니까, 미래의 죄까지 다 없는 것으로 해 줄 것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어떤 죄를 저지른다고 할지라도 나는 구원받을 수 있겠다’고 하는 거짓된 잘못된 확신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어떻게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로마서 6장의 말씀은 우리를 향해서 가르쳐 주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이상 죄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임을 당한 것이고, 이 세상의 죄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고, 이제는 그리스도와 다시 부활하여 이제는 거룩한 사람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사는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로마서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인 것이죠.
따라서 만일 의도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있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고, 뻔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는 거예요. 로마서 6장 23절의 말씀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이제는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되느냐’라고 하는 그 질문을 던져놓고 ‘아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쭉 이야기한 다음에 로마서 6장 마지막 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예수님을 믿고 나는 구원받았다고 말을 하면서—여전히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고,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의 말씀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인데, 그 믿음이 어떻게 나타나야 되는가? 우리의 거룩한 행실로 뒷받침돼야 되는 것이고, 그 거룩한 행실이 우리의 입술에 있어서 진실함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면, 그러한 것이 완전히 배제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구원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거짓말할 게 아니다.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거짓말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거짓말한 사람들의 부류를 살펴보니까 첫 번째 부류는 내가 거짓말함으로써 나의 잘못과 나의 허물들을 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겁니다.
거짓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의 잘못을 감추고, 나의 죄악을 감추고, 나의 약점들을 감추기 위해서 그래서 거짓말로 그렇게 가리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라헬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거짓말을 했습니까? 자기 아버지 라반의 우상 드라빔을 훔치는 죄를 지었는데, 그 도둑질한 죄를 감추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 마침 경수가 나서 일어서지 못한다고 거짓말로서 그 자신의 도둑질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을 시도한 것이죠. 다윗은 말로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려고 했었는데요. 밧세바와의 그런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아를 집으로 돌려보내 자신의 행위를 감추려고 하는 그런 거짓말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이죠. 요셉의 형들은 어떻게 거짓말을 했습니까?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요셉을 팔아버렸는데, 그러한 자신들의 행위가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의 동생 요셉이 짐승에 물려 죽은 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알리면서도 거짓말하는—그러니까 사람들은 왜 거짓말하는가?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 더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하는 그런 안타까운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저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뻔한 거짓말을 앞에서 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자기가 잘못하고 자기가 실수했으면 ‘실수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렇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저의 잘못을 깨닫고 이제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될 텐데, 거짓말로 은폐하려고 하고 거짓말로 속이려고 하는데 뻔히 아는 거, 들킬 수밖에 없는 그런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그런 모습을 볼 때 그 영혼이 얼마나 불쌍한지 안타까울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들은 늘 실수와 잘못을 하게 되고 허물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짓말로써 더 큰 죄를 지을 것이 아니라, 거짓말로 더 나쁜 죄를 저지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고, 그리고 다시 원상 회복을 시킬 수 있는 진실한 마음으로—거짓말하면서 더 큰 죄를 키워 나가기보다—주님 앞에 바로 서고 또 이웃들과의 관계 가운데서 바로 잘못되었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용기와 결단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합니까? 거짓말로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거짓말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들이 그런 유익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사람들의 예가 성경에 많이 나와 있는데요. 엘리사의 종은 나만 장군의 뒤를 쫓아가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주 그럴듯한 거짓말을 한 것이죠.
선지생도가 저 에브라임 지역에서 왔습니다. 선지생도가 2명이 왔는데 그 선지생도를 도와줘야 됩니다. 나만 장군님, 그러니까 은 한 달란트, 옷 두 벌을 좀 주시면 우리가 이런 선한 일에 쓰겠습니다. 선교 사역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구제 사역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이런 선한 일을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선한 일로 포장하고 그리고 뒤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들이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선교의 결과를 가지고 마치 자신이 선교의 결과인 양 속이면서, 그러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그런 잘못된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죠. 그것이 무사히 지나갔는가? 열왕기하 5장 27절에서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엘리사가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나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옴에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오늘 우리가 이런 유혹들이 있을 때마다 게하시의 이야기, 엘리사의 종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이키는 그런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하고, 얼마 되지 않는 그 조그마한 이득을 위해서 거짓말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죠. 정말 우리는 너무나도 죄성이 강해서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데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때마다 우리는 늘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서기 위한 몸부림을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 에서라고 하고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고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인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 헌금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죠.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용서하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요셉의 그 원한으로부터 벗어나는 그런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고, 사울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겠다고 하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을 감추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유혹들이 이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에게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거짓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사무엘 선지자는 다윗에게 기름 부으러 가면서도 사울 왕이 무서워서 ‘나는 제사 드리러 왔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고요.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신의 아내를 빼앗길까 두려워서 누이라고 거짓말하며 반절짜리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심판정 앞에 따라갔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 봐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거짓말하면서 세 번씩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고, 다윗은 아비멜렉 앞에서 ‘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다니고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블레셋 민족 가운데서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 봐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고, 또한 가드 왕 앞에서 미친 척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들을 하게 된 것이죠. 마지막으로 네 번째 거짓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십브라와 부아는 바로 왕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히브리 산모들은 건장해서 애굽 사람들보다 더 건장해서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아기를 다 낳아버려서 왕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죠. 선한 거짓말, 하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미갈은 다윗을 살리기 위해서 ‘다윗이 병들었다’고 거짓말하면서 침대에 다른 인형을 놓고, 우상을 놓고, 그리고 다윗을 빼돌리는 거짓말을 한 것이고요. 라합은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서 ‘정탐꾼들이 저 멀리 다른 길로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하여서 군인들을 돌리는 그런 거짓말을 했는데, 선한 거짓말은 괜찮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어떻습니까? 뭐라고 대답하기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십브라와 부아, 히브리 산파들의 이야기나 라합의 이야기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고 오히려 그들을 칭찬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리고 여러 가지 잘못된 행위를 함으로써 그렇게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른—나 자신의 이기적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선한 목적, 생명을 살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그러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악한 사람들로부터, 사악한 자들로부터 선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런 필요불가분한, 반드시 그렇지 않으면 안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거짓말을 하게 된 이 하얀 거짓말, 선한 거짓말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것처럼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악한 자들 가운데서 목숨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한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는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나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우리가 너무 단편적으로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가?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유치원생들에게 가르치듯이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이것은 괜찮고 저것은 괜찮지 않다’는 식으로—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이,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모든 것이 뚜렷하게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의 삶의 여러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하면 이것이 잘못이고 저렇게 하면 이것이 잘못이고, 그래서 과연 내가 이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을까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경우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십브라와 부아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되겠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도 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못할 것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왕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면서 아이들을 죽인다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일일 뿐만 아니라, 그러나 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은 또 거짓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될 것인가—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의 생각과 고민과 그 결단을 꿰뚫어 보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이것은 좋다, 이것은 나쁘다’라고 이렇게 단편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도 참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그때그때 상황 가운데서 무엇이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일까, 무엇이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만한 것일까 우리는 기도하며 고민하며, 가능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로 서기 위해, 가능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그런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들이 말할 때는 예는 예라 하고 아니는 아니오라 이야기하라 말씀하고 계신데,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의 동기를 주님께서 짚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그리고 나의 잘못된 이익을 위해서, 그래서 이렇게 함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을 위하여서 정말 고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데 그때마다 다시 십자가 앞에 나가서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가 늘 실패해요. 늘 넘어져요.’ 그때그때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진실로 진실하게 설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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