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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과 300용사 (삿 7:4-8)

오늘은 기드온과 300용사에 대해서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하죠. 전쟁에서 이길 만큼의 힘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겁니다. 최근에 UN이 열려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참여하고 왔는데요. 어 이번에 유엔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어 젤렌스키가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해서 신문 기사가 난 것을 보았습니다. 현재 유엔 국제기구가 무능하다고 젤렌스키는 강하게 비판하면서 무기가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현실이 어떤 현실인가, 국제법이 무너지고 제도가 무너지고 있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전쟁 억제를 하려면 또한 평화를 유지하려면 실제적인 군사력이 필요하고 무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젤렌스키 대통령이 했는데요. 맞는 말이죠.

강한 군사력이 있어야 평화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강한 군사력이 있어야 전쟁도 억제할 수 있는 것이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인데, 만일 힘이 없다고 한다면 그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잘 준비해야 되는 것이죠. 유비무환이라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나라도 미리미리 다 군사력을 잘 준비해 놓고 대비하지 아니하면 큰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정부가 돈을 거기에 많이 투자하고 어 그래서 자주 국방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어 이렇게 강한 군사력을 만들어서 전쟁을 대비하는 게 무슨 법칙일까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리는 그냥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예요. 이 세상의 법칙은 무슨 법칙인가 하나님의 법칙인 것이죠.

성경 안에 나와 있는 것들만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라 이 세상의 법칙, 이 세상의 진리도 다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누가 승리하는가, 그만큼 전쟁을 잘 준비하고 군사력이 강하고 힘을 길러야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는 것, 그것은 다른 법칙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러한 하나님의 법칙이 깨진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원래는 힘이 있어야 이기는 것인데, 힘이 없는데도 이기는 그런 기적과 같은 일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죠. 골리앗이라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장군수가 있고 블레셋이라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군대가 있었는데 그 군대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힘이 없어서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이라고 하는 어린 소년이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나갈 때 승리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 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요.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기드온과 300용사의 이야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저 미디안 민족과 싸워서 이길 만한 힘이 있었는가? 없었어요. 이기기에 택도 없이 너무나도 연약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었는데 놀랍게도 승리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사사기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미디안 민족과 싸워야 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그러나 군사력은 너무나도 열세 가운데 있었습니다. 미디안 민족은 몇 명의 군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13만 5천 명의 군대를 가지고 있는 게 미디안 민족입니다. 이에 비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군인들은 몇 명이었을까요? 이 기드온이 모으고 모아서 많이 모은 게 3만 2천 명밖에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3만 2천 명인데 13만 5천 명이면 몇 배 차이입니까? 4.2배, 4.2배나 더 강한 미디안 군사를 싸워서 이겨야 되는 그런 상황인데 3만 2천 명이라고 하는 숫자가 적당한가, 충분한가? 아니요. 충분하지 못해 너무나도 부족한 숫자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기드온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3만 2천 명이 너무 많으니 이 군인들 가운데서 두려워하는 사람들, 무서워하는 사람들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 소집 해제시켜라 하니까 얼씨구나 좋구나 하면서 다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남은 사람이 몇 명 남았습니까? 만 명이 남은 겁니다. 아까는 4.2배나 되는 군대를 싸워 이겨야 될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몇 배나 되는 군대와 싸워야 됩니까? 13.5배나 되는 군대와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겁니다. 더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놀랍게도 또 한 번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만 명의 군사도 너무 많다.

그러니까 이 만 명의 군사를 데리고 시냇가로 가서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300명의 사람들은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고요, 9,700명의 사람들은 물에 엎드려서 마시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해 주세요. 그 9,700명은 돌려보내라. 몇 명 남았습니까? 300명만 남게 된 것이죠. 축구 경기를 하다 보면 레드카드를 받아서 한 명이 퇴장되는 경우가 있는데 레드카드 한 장 받으면 그 팀은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부분 레드카드 한 장 받으면 그 경기는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10대 11로 싸워도 너무나도 힘들어서 물론 10명의 숫자를 가지고 이긴 팀들도 간혹가다 나오지만 한 명의 숫자만 부족해도 이기기 어려운 게 축구인데, 지금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이냐. 이쪽은 13만 5천 명이 있는데 이쪽은 몇 명이에요? 300명. 축구로 치면 어떤 셈입니까?

13만 4,700명이 레드카드 받고 다 퇴장당한 상황에서 300명만 데리고 싸우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만드셨는가? 사사기 7장 2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민족이 교만한 마음을 가질까 봐, 하나님을 거슬러서 ‘우리가 해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지혜로 우리의 능력으로 해냈다’라고 하는 그 생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300명으로 13만 5천 명을 이겼으면 우리가 이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못하는 거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고백이 저절로 나올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이 숫자를 줄여버리셨다고 하는 것이죠.

결국 300명의 숫자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전쟁에서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대답 좀 하세요.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이겼습니다. 밤중에 항아리를 가지고 나팔을 가지고 횃불을 숨기고 슬금슬금 가서 밤중에 소리를 지르면서 항아리를 깨면서 횃불을 들면서 갑자기 외치는 거예요.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소리를 지르니까 사람들이 혼비백산이 되어서 서로 자기들끼리 죽이면서 미디안 민족이 다 쓰러져버린 것이죠. 우리나라 말로 번역했으니까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라고 하는 말이 좀 말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만, 히브리어로 하면 라도나이, 르 기드온이라고 하는 말로 하는 거야. 르 야훼, 르 기드온이라고 하는 말로 그 말을 외칠 때 갑자기 외치는 소리 가운데 이 미디안 사람들이 너무나도 놀라서 혼비백산되어서 자기 편끼리 찌르고 죽고 해서 결국 아주 손쉽게 이겼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교훈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선은 전쟁을 할 때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이다고 하는 것을 배우라고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오해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죠. 물론 이 방법이 어느 정도 배울 것도 있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늘 약자가 강팀을 이기려고 한다면 약팀이 가지고 있는 그 약점을 커버하면서 강팀을 물리칠 수 있는 그런 비결이 필요한 것이죠. 축구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약팀이 수비를 하는 거죠. 수비만 해요.

공격을 안 하고 수비만 하다가 상대가 실수가 나면 그때 역습을 해서 골을 넣어서 그래서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그런 전술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약팀은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기습 작전으로 상대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밤중에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시간에 기습을 해서 이기는 방법. 어쩌면 이 방법도 굉장히 우리가 얻어야 될 교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성경에서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그런 방법이 좋은 방법이다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까요? 또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숫자를 줄여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비결이라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씩 둘씩 줄여나가는 것이 그게 바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교만하지 말라고, 내가 해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숫자를 자꾸 줄여 나가고 계시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안 하고 줄여나가는 것이 그게 참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겁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병에서 낫고자 한다고 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세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약을 갖다 버리세요. 약 먹지 마세요. 하나님이 치료해 줄 걸 생각하고 병원에도 가지 마세요. 오로지 기도하고 하나님이 도와줄 걸 기대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일까요? 아니에요. 속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주의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실 텐데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실 거니까 당신은 교회 일만 열심히 하시오. 주의 일만 열심히 하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준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말씀은 아닙니다. 어 종종 우리 교계 내에서 논쟁이 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과연 목회자가 이중직을 가지고 세속적인 일을 해도 되는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 되는가라고 하는 논쟁이 교계 안에서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힘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생계를 얻기 위해서 세속적인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이중직 목회자가 있는데 이것이 괜찮은 것인가, 가능한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라고 하는 그런 논쟁이 있는데요. 어느 날 어떤 선교사님이 이런 글을 신문 광고에 낸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성경에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그랬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믿음 없이 세상 일을 하지 말고 열심히 주의 일만 하십시오. 이중직은 다 잘못된 겁니다라고 하는 광고를 써놓은 것을 봤습니다. 그게 맞는 말일까요? 성경 말씀만 보면 그게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의 몇몇 구절들만을 보고 해석할 게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해 주시는지, 어느 한 구절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보면 어떤 말씀이 있어요? 바울 사도는 어떻게 했습니까? 텐트를 만들면서 팔고, 텐트를 수리하면서 팔면서 자기 생계를 자신의 손으로 벌어가면서 그러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어요.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런 달란트를 사용해서 충분히 돈을 벌어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냈는데, 그 하나님의 일을 해낸 것이 그 일을 하는 것 때문에 방해를 받았는가? 그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잘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게 바울 사도의 모습인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칙은 수고한 자가 얻는 것이 법칙이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인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그게 바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능력을 가지고 수고하고 내가 심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 내가 노력한 대로 거두는 것. 전쟁은 누가 이기는가?

오늘 기드온과 300용사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전쟁에서 누가 이기는가? 준비한 자가, 힘을 기른 자가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고, 누가 부자가 되는가? 열심히 일을 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고 그래서 제대로 심고 한 자가 부자가 되는 것이고, 누가 성공하는가? 성공을 위해서 신실하게 열심히 하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지, 그냥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하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분들한테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신다고 한다면 밥은 왜 먹냐고. 밥 안 먹어도 하나님이 살려줄 텐데 밥은 왜 먹냐고. 밥을 먹어야 돼요. 일을 해야 돼요. 다 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될 겁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기도하고 주리셨을 때 사탄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하기도 했지만, 성전 높은 곳에 세워놓고 뛰어내리라.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천사를 동원해서 네 발이 상하지 않게, 너의 발이 다치지 않게 해주겠다고 하는 성경 말씀이 있으니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를 동원해서 너를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뛰어내려라. 이 사탄의 말이 정말 은혜스러운 말처럼 들려요. 하나님을 전부 정말 믿으라고 하는 그런 말처럼 들려요. 그런데 뛰어내려야 됩니까? 뛰어내리지 않아야 됩니까? 뛰어내리지 않아야 돼요.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시험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칙이 무엇입니까? 내가 안전하게 걸어 다니면 안전한 게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뛰어내리지 않고 좋은 길로, 안전한 길로 걸어 다니면 안전할 거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그 법칙을 무시하면서 일부러 뛰어내리고, 내가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먹을 수 있는데 먹지 않고, 땀을 흘리고 수고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해주실 걸 기대하는 게 그게 참된 믿음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잘못된 믿음인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이야기를 보면서 하나님이 예외적으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렇게 승리케 하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그저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신뢰하면서 약을 버려야 된다, 병원을 가지 말아야 된다, 그냥 주의 일만 힘쓰면 된다—그런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주장에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들려주시고자 하는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이 메시지는, 이 기드온의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리고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이 세상의 것들을 더 갈망하면서 죄악을 저지르고 악을 저지른 이스라엘 민족—하나님께서는 미디안 민족을 들어서 심판하셨습니다. 정당한 하나님의 대응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 대응일까요?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셔서 진멸시켰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도 심판해 버리고 진멸시켜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바른 대응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 민족으로부터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기 시작했어.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엎드릴 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풀어 주셨어요. 어떻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어요? 이길 수 없는 것 같은 상황 가운데서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이죠. 누구를 통해서? 바로 기드온이라고 하는 연약한 사람을 통해서. 이 기드온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못 이겨요. 이 기드온이라고 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었을까요? 아니에요.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자기 자신을 한번 보세요. 나랑 똑같은 사람이에요. 조그만 거 하나에 믿음이 흔들리고, 정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고, 늘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은 사람이 기드온이었습니다. 기드온을 향해서 천사가 나타나서 제물을 불로 태우는 그 기적을 보여주었어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양털을 내어놓고 “하나님, 이 양털에게만 이슬이 내리고 다른 땅은 마르게 해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정말 그렇게 해 주셨어요.

“내가 함께한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도 믿지 못해서 또 한 번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번엔 정반대로 해주세요. 이번에는 양털이 마르고 다른 땅은 이슬이 내리게 해주세요.” 그걸 알려주고 또 알려줘도 믿음의 확신이 없는 그 기드온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나쁜 놈’ 하면서 내팽개쳐버린 것이 아니라, 미디안 진영에 들어갔을 때 꿈 이야기를 통해서—어디선가 굴러 들어온 보리떡 하나가 미디안 진영을 치니까 완전히 폭삭 망해버렸다고 하는—그 미디안 군인의 이야기를 듣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확신 주시고, 다시 한 번 힘 주셔서 그래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가 이 본문의 이야기를 보면서 기억해야 할 메시지인 줄로 믿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신다고 우리처럼 대하셨다고 한다면 우리를 그냥 외면하고 말았을 겁니다. 우리는 한두 번 얘기했다가 마음이 상하면, 그러면 다시는 마음을 열지 않고 끊어버리고 외면해 버린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또 기회를 주시고 또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 또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그래도 끌어안으시고 또 회복시키시고 또 안아주시는—예배드리고 나가면서 또 잘못하고, 설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직 귀에 생생한데 나가면서 서로 싸우고—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 주시는 그 하나님이 오늘 또 저와 여러분들을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려 나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감히 나갈 수 없는 그런 모습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또 나가고 또 나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총이 부어졌을 때, 믿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기드온은 그 순간에 하나님을 믿었어요.

군사들을 돌려보내라 했을 때 안 돌려보내야만 될 것 같은데, 돌려보내고. 9,700명 또 돌려보내라 할 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계산을 어디에 두었어요? 사람에게 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대체하고도 남을 하나님을 계산에 넣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줄로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의 길이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이 마치 9,700명을 떠나보내는 것 같이 위태위태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이라면, 주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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