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잠언서 19장에 두 절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 싶은데, 먼저 잠언서 19장 13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19장 13절 말씀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미련한 아들을 둔 그 아버지는 재앙을 만난 것과 같다고 하는 말이고요. 다투는 아내는 무엇과 같은가? 이어떨어지는 물방울과 같다고 했는데, 이어떨어지는 물방울이 뭐가 어때서 그렇죠?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이죠? 바위를 뚫나요? 무언가를 망가뜨리나요? 아니면 지붕에서 비가 오는데 지붕이 막혀 있지 않아서 뚫려서 물이 계속 떨어지게 되면 그 집은 어떻게 될까요? 거주할 만한 곳이 되지 못하는 것이죠. 비가 오면 그 비를 막아줘야 되는데 막지 못하고 빗물이 새서 집 안으로 물이 떨어진다고 한다면 그 집은 집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다투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은 어떤 가정인가? 정말 살기 힘든, 어려운, 정말 고통스러운 가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그 표현이 오늘 잠언서 19장 13절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까요? 어떠한 가정이 불행한 가정일까요? 미련한 자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자녀가 있다고 한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의미겠고, 다투는 아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화목할 수 있도록, 가정이 행복해지도록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가정에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아내가 있는 가정이 행복하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미련한 아들은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미련한 아들은 정말 골치 썩을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그런 재앙과 같다.”라고 하였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하는 말일까요? 아기를 낳지 않는 게 최선일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련한 자녀를 낳는 것보다 차라리 무자식이 상팔자니까 자녀를 낳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 자녀들이 미련한 자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자녀가 되도록 길러야 하는 것이죠. 우리 부모에게는 책임이 있는 겁니다. 우리 부모에게는 사명이 있는 것이죠. 우리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하나? 어리석은 자녀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녀로 자랄 수 있도록, 슬기로운 자녀로 자라갈 수 있도록 부모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이 아이들을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녀로 양육해야 그래야 그 가정이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를 잘 양육하지 못해서, 부모가 자녀를 어리석게 그냥 방치해 두어서 그래서 그 자녀가 어리석은 자녀가 된다고 한다면 평생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부모로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자녀가 있을 때 그 자녀가 아직 어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잠언서 22장 6절 말씀에 보니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 아이들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로부터 시작해서 이 아이에게 정말 지혜로운 아이로, 슬기로운 자녀로 자라갈 수 있도록 부모가 최선을 다하고 이 아이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지혜로운 아이가 되는 것이고, 미련한 자가 되어서 부모에게 재앙과 같은 그런 자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자녀들이 미련한 자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로 자라게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잠언서 19장 13절의 말씀에서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에게 재앙”이라고 했는데, 미련한 아들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을 잘 양육해서 우리 아이들이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녀로 자라게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언서 10장 1절 말씀에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빠에게만 기쁘다는 얘기입니까? 미련한 아들은 어미에게만 근심이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게 아니죠. 히브리 평행법적으로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지혜로운 아들이라고 한다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고, 어리석은 아들이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자녀라고 한다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근심거리가 되는 것이고 재앙거리가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해야 되는가? 자녀를 지혜롭게 양육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을 하고 보니까 전부 다 다 기르신 분들이에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자녀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우리 자녀들에게 손주를 어떻게 길러야 될 것인가 우리가 가르쳐 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자녀를 지혜롭게 기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자녀를 지혜롭게 양육할 수가 있는 것이죠? 지혜가 무엇일까요? 지혜가 무엇이냐 하면 잠언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지혜의 정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정말 지혜로운 아들은 어떤 아들인가? 지혜로운 자는 어떤 자녀인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만드는 것이 지혜로운 자녀로 기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자녀들을 신앙생활을 하라고 억지로 데려다가 교회 안에 들여다 놓기만 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을 억지로 끌고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그 말이 물을 먹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 자녀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생활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들 것인가? 교회에 가지 아니하면 때려서라도 교회로 데려오면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해요. 때려서라도, 성경에 보니까 자녀들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때려서라도 우리 자녀들을 교회 안에다가 데려다 놓기만이라도 한다면 억지로 끌려왔어도 예배 시간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래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그의 마음이 열릴 수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책망이 되면 그래서 변화되고 지혜로운 자로, 믿음이 있는 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들은 다 역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 자녀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되는 거죠. 만일 부모가 강압적으로 무섭게 교회 안으로 이끌어들인다고 한다면 어렸을 때는 부모가 무서워서 교회당에 나올 수는 있겠지만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자라서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이 무섭지 않을 때, 그때는 아무런 억압이 없기 때문에, 그 어떠한 강압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청년이 되고 이제 자기가 성년이 되면 그러면 부모로부터 혼나지 않기 때문에 이제 마음껏 교회를 나가지 않는 그런 모습이 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변화시켜 주는 일들을 할 필요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솝 이야기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이 외투를 입고 있을 때 그 외투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 외투를 벗길 수 있겠는가? 바람을 불어서 그 외투를 벗기려고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외투를 계속해서 붙들고 추위를 막기 위해 그 외투를 벗어버리지 않지만, 그러나 햇볕을 비춰서 따뜻하게 만들면 자기가 스스로 그 외투를 벗어버리게 만드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신앙생활도 강압적으로 데리고 와서 억지로 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억지로라도 교회에 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 자녀들을 잘 양육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인가를 보여주어야 되는 거죠.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지, 나와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다고 하는 그런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고,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은혜의 사실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잘 증거해서,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고 지혜로운 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힘쓰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투는 아내는 빗물이 새서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입니까? 다투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는 말씀일까요? 다투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차라리 이혼해 버리는 게 그게 낫다고 하는 그런 말씀일까요? 결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아내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투는 아내가 아니라 지혜로운 아내, 슬기로운 아내—지금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배우자이기 때문에 남편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인데—아무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배우자를 얻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노력으로 되는 것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읽은 잠언서 19장 14절의 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지혜로운 아내, 슬기로운 아내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셔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이야 조상이 줄 수 있고, 집이야 조상들이 우리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지만, 배우자는 우리가 어떻게 좋은 배우자는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좋은 배우자를 허락해 주셔야 그래야 우리가 좋은 배우자, 슬기로운 배우자를 얻을 수 있다고 잠언서 19장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까요? 네, 물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배우자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기도의 제목인 것이죠.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계획을 세우든지,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나든지, 아픔이 있든지, 기쁨이 있든지, 슬픔이 있든지—어떤 상황에 만나든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좋은 배우자, 슬기로운 배우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배우자를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그 이야기는,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배우자를 준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좋은 배우자를 주실 수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 가운데 ‘에반 올마이티’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에반 올마이티’라는 영화 가운데 보면, 거기에 하나님 역할을 하는 모건 프리먼이라고 하는 흑인 영화배우가 있는데, 그 영화배우가 하나님 역할을 하면서 이런 아주 유명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뭐라고 얘기했냐면, “내가 하나 물어볼게요.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인내를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를 배울 수 있도록, 인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실까요? 만일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용기의 마음을 당신에게 줄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실까요? 하나님, 우리 가정이 좀 더 가까워지고 우리 가정이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갑자기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포근한 그런 감정을 ‘뿅’ 하고 주셔서 갑자기 우리 가족이 따뜻하고 행복해지게 만들까요, 아니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줄까요?”라고 질문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우리는 늘 하나님께서 한 방에, 한 큐에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며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일꾼으로 빚어가신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다윗에게 꿈을 주셨어요. 다윗에게 어떤 꿈을 주셨습니까? 어느 날 양치기로 있던 목자 다윗에게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셔서 그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어주셨어요.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삼겠다.” 사울이 첫 번째 왕인데 그 첫 번째 왕 이후에 너를 두 번째 왕으로 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기름을 부어주신 거죠. 그 어린 소년의 마음 가운데 어떤 꿈을 가지게 됐습니까? “야, 내가 이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겠구나.” 두 번째 왕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냥 어느 날 한순간에 ‘뿅’ 하고 사울을 물리쳐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날부터 훈련시키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떤 훈련? 왕이 되는 훈련을 시키는 거죠. 왕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배워 나가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종이 되어서 사울의 그 정신적인 문제를 귀신을 쫓아내는, 그래서 망가진 인생을 바로잡아 주는 왕의 역할을 하게 만들고, 다윗으로 하여금 억울한 자, 정말 고통 가운데 있는 자, 정말 힘들고 고통을 받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정의를 세워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집을 마련해 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게 만들고, 그들의 가족을 찾아주면서 왕이 해야 될 일들을 배울 수 있도록 다윗에게 그 일들을 다 시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어떻게 왕이 됐는가? 어느 날 그냥 가만히 있다가 운 좋게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마다 그때그때마다 문제를 풀어 가면서 블레셋과의 전투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왕의 역할들을 하나씩 하나씩 배워 나가면서 왕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겁니다.
오늘 우리가 가정을 어떻게 따뜻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가 있겠는가? 미련한 아들은 우리 가정의 재앙이 되는 것이고, 다투는 아내는 정말 우리 집이 못 살 것 같은—지붕에서 계속 물이 떨어져서 도무지 그 집 안에서는 있을 수 없게 만드는 것처럼—그렇게 고통스러운 아내와 같은 그런 사람인데, 그러면 어떻게 우리 가정은 행복해질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했으니까 “하나님, 바꿔 주세요. 우리 아들도 바꿔 주고 우리 아내도 바꿔 주고 성품이 바뀌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뿅’ 하고 바꿔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자녀들이 슬기롭게 자랄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하며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고, 또 이 사랑하는 아내가 어떻게 밝게 웃게 만들 수 있는지, 정말 좋은 가정의 일원이 되어서 그래서 우리 가정의 행복한 그런 양념과 같은, 비타민과 같은 그런 구성원들이 될 수 있을지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다투는 아내가 점점점점 변해서 정말 사랑이 많고 웃음이 넘치는 그런 아내가 될 수 있도록, 미련한 아들이 점점점점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런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희생해 가면서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우리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 나가는 그런 최선의 노력들을 우리 모두가 기도하며 노력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죠?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우리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고 믿음의 길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화내 버리고, 분노해 버리고, 내 성질대로 그렇게 해 버려서 자녀들과의 막힌 담이 계속 쌓여져 가고 관계가 단절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정말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며 정말 늘 만나면 웃고 즐겁고 행복한 가정 만들고, 정말 집에 돌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밖에 있다가도 밖에서 고통스러워도 집에 돌아가서 아내의 얼굴을 보고 남편의 얼굴을 보면 모든 피곤이 다 없어져 버리는 그런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데, 우리의 소망 가운데 안타깝게도 배우자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거슬릴 때마다 좋은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노해 버리고, 성질 부려 버리고, 짜증 내 버리면서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는 게 그게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저의 문제예요. 이러지 말아야지 해 놓고 또 실수하고 또 넘어지고, 복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고 하는 게 우리의 문제인 것이죠.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겁니다. 바로 우리들의 그 연약함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허물과 우리들의 약함을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다시 한 번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놀라운 소망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매일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돼요.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용서해 주시고, 이제 다시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가 늘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 걸어가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때마다 시마다 공급해 주시는 그런 놀라운 은총이 각 가정들마다 조금씩 조금씩 넘쳐나고, 행복한 가정, 복된 가정으로 변해져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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