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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결과 II (잠 19:15-16)

오늘 두 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특별히 게으름에 관한 교훈을 우리가 주목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잠언서 19장 15절의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19장 15절 말씀,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이다? 줄일 것이라. 우리가 게으름에 관한 이야기를 벌써 잠언서를 통해서 몇 번에 걸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는 주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만, 옛날에 한 번 들었으니까 다시는 들을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들어야 될 필요가 있는 메시지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자꾸 잠언서의 반복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이 한 번 들어서 잘 안 되고 두 번 들어서 잘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반복해서 듣고, 늘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반복해서 듣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잠언서의 말씀 가운데서 같은 주제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게으름은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며 결과적으로 굶주리게 만들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게으름이 주는 유익이 있을까요? 게으름이 주는 유익, 유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도 합니다. 게으름이 주는 유익이 있는 것이죠. 무엇이 유익입니까? 깊이 잠들게 하는 유익이 있는 거죠. 편안하고 잠을 푹 잘 수 있는 그런 유익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평안함, 평안함을 누리는 유익이 게으른 사람에게 있을 수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엄격하게 말한다고 한다면 이런 것 자체가 전부 다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유익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할 수가 있겠는데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하신 다음에 제 7일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 쉬셨습니다.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쉬신 것이 아니라 안식하신 그 날을 기념하며 그 날을 거룩하게 하고 우리 모두에게 제 7일은 안식하라고 명령하시기까지 하신 것이죠.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규례들을 만드셨는데요.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 세 가지 태초의 규례가 있다고 한다면 첫 번째는 노동의 규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안식해야 된다고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결혼의 규례, 이렇게 세 가지 규례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향해서 법칙을 만드시면서 너희들은 일만 해라, 일만 하는 게 제일 좋다, 일만 해야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안식하라, 쉬어라라고도 말씀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쉬는 게 필요해요. 쉬어야 하는 것이죠. 만일 어떤 사람이 24시간 내내 잠을 자지 않고 일을 계속 한다고 하면 일을 열심히 하는 거니까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루에 8시간 이상은 잠을 자야 하는 것이고 중간중간에 쉬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우리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니라, 일하다가 쉬어야 하고 쉬었기 때문에 일할 수 있고, 이것을 섞어가면서 하게끔 되어 있는 게 바로 우리들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24시간도 그럴 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주일 내내 일해서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년 365일 내내 일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쉬어라, 안식하라 그렇게 명령해 주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쉬는 것을 경멸하거나 죄악시하는 습관이 있는데 사실은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유교적인 그런 관습에서 나온 것이지,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적절하게 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일만 하는 것, 일에 중독되어 있는 것,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또 쉬고, 쉬고 일하고 이것을 적절하게 섞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거라고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 언제가 문제가 될까요? 무엇이든지 과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쉬긴 쉬는데 쉼을 과도하게 쉬어서 정말 너무나도 많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쉰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게으름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데요. 이렇게 게으름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루어 두는 것, 그런 것이고,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 같아요.

게으름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쉼을 많이 주는 것 같기 때문에 그래서 유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과도하게 쉬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된다고 한다면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줄이게 될 것이다. 그런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도한 쉼인 것이죠. 정당한 쉼이 아니라 과도하게 쉬고 과도하게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 오늘 읽은 잠언서 19장 15절의 말씀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잠언서를 살펴보면서 이런 게으름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여러 번 살펴본 적이 있었습니다. 잠언서 18장 9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폐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게을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폐가 망신당한다 이 말이에요. 자기 집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온전하게 자기 집이 잘 세워져 있어야 그 안에서 잘 살 수 있을 텐데, 게으른 사람은 그 집이 무너져 버린다는 거죠. 가정이 깨져 버린다는 것이지, 나라가 깨져 버린다는 것이죠. 게으르게 되면 모든 것들이 다 망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잠언서 18장 9절의 말씀이었고요. 뿐만 아니라 잠언서 15장 19절의 말씀에서도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게으른 자의 길은 왜 가시 울타리 같아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적당한 때에 부지런하게 자기 일을 잘 했다고 한다면 편해요. 게으른 게 편한 게 아니라 일을 하는 게 편한 것이죠. 게으르면 더 어려워지는 겁니다. 더 힘들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게으른 것은 어떤 길인가? 가시 울타리가 있어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잠언서에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고요. 뿐만 아니라 잠언서 6장 6절에서부터 1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내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내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내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내 궁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건강한 삶,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바로바로, 안식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 몸을 과도하게 혹사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해야 그게 제일 좋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쉬는 것이 당연한 거예요. 쉬는 것이 옳은 거예요. 쉬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그러나 너무나도 과도해서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미루어 두고 그래서 정말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괴로워진다는 것이죠. 학생은 어떻게 공부해야 됩니까? 게으르지 말고 그때그때 공부할 때 공부해야 되는 거예요. 공부할 때 공부해야 나중에 편한 거예요. 제때 공부하지 아니하면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농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농부는 제때 제때 씨를 뿌려야 되는 거예요. 제때 제때 심어야 되는 거예요. 제때 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거예요. 제가 이번에 집 안에 집에다가 고구마를 심었다고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나요?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고구마가 하나도 안 열렸어요. 조그마한 땅을 봤더니 오늘 아침에 봤더니 조그마한 줄기만 땅속에 묻어 있어요. 왜 그렇게 됐는가? 제가 고구마를 심은 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고구마를 한참 전에 심어서 밭에 이파리가 이만큼씩 나오고 고구마 밭이 아주 무성한 상황, 그것을 보고 “나도 한번 고구마를 심어볼까?” 하고 그때 심었어요. 늦게 심어 놓으니 별 이득이 없는 거죠. 농부는 언제 고구마를 심어야 되는가? 심어야 될 때를 놓치지 않고 빨리 제때 심어야 됩니다. 늦게 심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농부도 그때그때 게으르지 않고 심어야 될 때 심고, 뽑아야 될 때 뽑아야 되고, 언제 뽑아야 돼요? 언제 추수해야 돼요?

서리가 내리기 이르기 전에 추수해야 되고, 그때그때 제때제때 하지 아니하면 올바른 수확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고요. 모든 일들이, 우리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 혹시라도 우리가 게을러서 망치는 부분은 없는지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왜 게으르게 되는가요? 그것은 게으름의 결과를 우리가 잘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게을러서 얻게 되는 그 비참한 상황이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그 미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당장 편한 것, 지금 당장 내 그 욕망에 따른 것을 따라 행하다가 결국 머지않은 훗날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 인간은 어떤 인간입니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아, 내가 지금 이 순간에 게으르면 이런 결과가 오겠구나.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좀 더 열심히 하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얻겠구나, 그것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게 인간이거든요. 그런 예지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실을 잘 기억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지금 당장 편한 것을 추구하면 나중에 힘들고, 지금 잠깐 힘든 것을 견뎌 나가면 나중에 오히려 편하고 풍성해진다고 하는 이 사실을, 이것이 이 세속적인 진리만이 아니라 성경적인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대로 부지런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먹을 것이 많아지는 거, 게으른 자는 굶주릴 것이지만 부지런한 자는 어떻게 됩니까? 잘 먹을 것이에요. 먹을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오늘 낮에 우리 박병덕 장로님, 정진우 장로님 오셔서 여기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몇 바구니를 땄습니다. 그래서 지금 1층에 감이 엄청나게 많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수요 예배 나오신 분들 가시면서 몇 개씩 가지고 가시길 바랍니다.

감이 없으신 분들 가지고 가셨다가 집에 놔두시면 하나씩 하나씩 익으면서 맛있는 홍시를 먹을 수 있을 텐데, 금년에도 이렇게 때에 맞춰서 잘 따서 감을 이렇게 많이 수확하게 됐어요. 제가 보니까 한 500개 되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집사님이 딴 거랑 오늘 딴 거랑 해서 합치면 한 500개 따지 않았나 싶고, 작년에도 노진범 집사님이 따셔 가지고 얼마나 많이 땄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전에는 어떻게 했는가? 저걸 딸까 말까, 딸까 말까 하고 차일피일 차일피일 미뤘더니 어느 날 보니까 하나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가 버린 거죠.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미루면 먹을 게 없는 겁니다. 하지만 부지런하면, 부지런하면 있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항상 이 원리를 기억하며 우리가 기도하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이것을 해결해 주세요.”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과 동시에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너희가 부지런해라, 게으르지 말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부분, 이 점이 어느 부분에까지 미쳐야 되는가? 모든 분야에서 다 연결이 돼야 되는데, 특별히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전도 대상자들을 이제 1명씩 1명씩 작정하고,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작정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붙여주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바로 나로 하여금 전도하라고 붙여준 사람들인데 그 전도 대상자들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되겠습니까?

부지런하게, 게으르지 말고 “아, 오늘 할까 말까 하다가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해야지” 자꾸자꾸 미룰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도 계속해서 사랑을 베풀며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또 여러 가지 음식도 주고 많은 친절을 베풀고, 기회를 봐가면서 복음을 언제 전해야 될 것인가 계속해서 부지런하게 살펴보고 있다가 정말 좋은 때가 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지 말고 우리 교회에 한번 가보면 어떻겠는가” 인생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또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주겠다” 이야기하고 교회로 인도하고, 그 부지런하게 살펴보면서 복음을 증거할 때 전도의 열매들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았는데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전도를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서 전도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은 안 되고, 다음에 해야 되겠다, 다음에 해야 되겠다” 하면서 미루고 있다가 나중에 보니까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복음을 전해 드리려고 내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런데 기회를 찾지 못하고 그냥 차일피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분이 그냥 돌아가신 것을 보고서 “아, 내가 미루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했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걸 전하지 못하고 내가 기회를 잃어버렸구나”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는 말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 사람이 듣든지 말든지 막 아무런 상관도 하지 말고 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좀 피곤하고 그래서 “오늘은 힘들어서 안 되겠다.

내가 지금은 바쁜 일이 있어서 안 되겠다.” 이렇게 바빠서 안 되고 저렇게 바빠서 안 되고 해서 그렇게 자꾸만 차일피일 미룰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복음의 열매들을 거둘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것도 게으르지 않아야 영혼을 지킬 수가 있겠는데요. 오늘 읽은 잠언서 19장 16절의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우리가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 사는 길이고 생명을 지키는 길인데, 이 계명도 우리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부지런히,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것인가” 늘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수행할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말씀해 주고 있으며, 그 사랑하라고 하는 그 메시지를 듣고도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우리 이웃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용서해라” 그러면 그 용서하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 용서해야 될 텐데, 해야 될 텐데” 하면서 그냥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바로, 지금 당장 용서해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어떻게 지킬 것인가? 바로 지금 당장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거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부지런해야 됩니까?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도 게으르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냥 내버려두면서 내 방관해 버리고 그냥 내팽개쳐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그 옛날 보아스가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서 모든 것들을 다 어레인지하고, 모든 것을 다 조정해서, 그래서 결국 룻이라고 하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서 보아스가 쉬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열심이 일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 구원해 내신 그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가 게으르며 차일피일 미루며 그렇게 하나님 앞에 부족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결단하며 순종하는, 즉각적인 순종이 있는 그런 믿음의 삶이 있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게으름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다시 한 번 나가서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 다시 한 번 주님의 뜻에 따라 살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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