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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도 없고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기독교 영화

문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가운데 영화는 대중들이 쉽게 접하면서 막강현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영화는 세속적인 아젠다로 우리 사회를 점점 더 타락한 세속문화에 노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크리스천들은 아예 세속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이런 영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들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더러운 문화에 노출되면 결국 영적인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렇게 문화의 영역을 포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오히려 기독교적 정신을 표방하는 카운터 문화를 만들어 세속적이고 타락한 문화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기독교 영화이다. 그런 사명을 가지고 기독교 영화를 만들려는 분들을 보면 너무 고맙고, 그러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마음껏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기독교 영화들은 한결같이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말, 억지로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으려는 어색함 때문에 기독교 영화들은 거의 성공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는 제작비, 배우의 캐스팅, 플롯의 창의성 등등 여러 요소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적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최고의 배우들과 최첨단 장비들을 사용하면서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쏟아붓는 세속 영화와는 달리, 소수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제한된 인력과 자금을 동원하여 만드는 것에서 처음부터 영화의 수준이 갈리고 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라 할지라도 재미있어서 영화를 찾기보다는, 기독교 영화의 명맥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관람하는 지경이다. 한마디로 불쌍해서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탄생한 소위 기독교 영화가 사실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영화에 목사님이 등장하고, 교회가 등장하고, 주님을 믿는 성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적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복음과는 상관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회심한 이야기,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지에 대한 이야기, 선교를 위해 어떤 놀라운 일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희생적인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기독교 영화에 등장한다.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엘리엇 선교사님, 옥한흠 목사님, 교회 오빠, 등등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런대로 꽤 괜찮은 종교이고 멋있는 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을 어필한다. 하지만 이런식의 접근은 전혀 기독교적이라 할 수 없다.

사실 불교 쪽 영화에서는 어떤 스님이 정말 차원이 높은 경지에 올라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조폭들을 한 없이 품는 스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산 스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 등 불교 영화는 그야말로 불교적이다. 불교는 위대한 스승의 모범을 제시하면서 누구든지 그 위대한 스승의 뒤를 따른다면 똑같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부처의 길을 간 사람의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길은 감동을 주곤 한다.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마다 불교적 가르침을 확신한다. “그래, 나도 수도를 하고 또 하면 나도 그런 부처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영화라고 나온 영화들은 등장인물과 배경은 기독교인들이고 교회이지만, 그 영화의 메시지는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불교적이다. 즉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사랑의 실천을 하는 삶을 살았는데, 여러분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살면서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옥한흠 목사님은 제자훈련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주의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사랑의 교회 비슷한 규모의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는 “적어도 존경받는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기독교의 메시지가 아니다.

복음은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하더라도 선하게 살 수 없는 죄인이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기독교 영화에서는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는지가 실종되어버렸다. 사실 그 복음이 먼저 사라진 것은 교회의 강단에서부터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독교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에겐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전혀 발견할 수 없고, 그냥 우리도 열심히 잘 살면 보다 더 나은 삶을 얻게 될 것이라는 불교적 메시지만 보인다. 위대한 선각자나 위대한 스승, 위대한 사랑의 실천자들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불교적 메시지만 보인다.

크리스천과 교회가 등장하고 대화 중에 예수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기독교 영화가 되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안에는 전혀 기독교적 요소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재미가 있을 뿐 아니라 감동도 넘친다. 안타깝게도 한국 기독교 영화는 7,80년대 문학의 밤 수준보다 더 나아진 것은 규모와 재정 정도일 뿐이다. 물론 그 책임은 잘못 가르친 목사들에게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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