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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삼상 6:1-21)

1. 블레셋 땅에 언약궤가 머무른 기간이 7개월이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면서도 7개월을 보낸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조그만 어려움이 생기면 신앙생활을 당장 중단하기도 하고, 그 동안 다녔던 교회를 떠나기도 하는데, 조그만 어려움이 아니라 정말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7개월을 버텼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러한 고통이 하나님에게서부터 왔을 것이라는 것을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7개월을 보낸 것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여 그들이 고안해낸 것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신들의 신념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싶은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암소가 끄는 수레에 언약궤를 실어서 보내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 그러면 분명 그 암소는 벧세메스로 가지 못할 것이고, 분명 어미를 찾는 송아지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돌아설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설사 언약궤 때문에 고통이 왔다면 언약궤만 없애버려서 고통만 없애면 되겠다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호 6:1).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해주실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부인하고 싶어 했고, 그저 고통만을 없애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암소가 벧세메스로 똑바로 걸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것이 확증되는 순간이었다. 

2. 하나님의 언약궤가 벧세메스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그 언약궤를 들여다보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블레셋 사람들을 괴롭혔던 언약궤인데 이스라엘 민족도 이 언약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언약궤가 저주거리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벳에돔은 언약궤로 인하여 복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삼하 6:11). 문제는 언약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것은 축복으로 주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축복거리를 저주거리로 바꾸어버렸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부모도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셨다. 교회도 직장도 모두 축복거리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죄성(罪性)이 많은 우리는 그것들을 저주거리로 만들고 원망한다. 사실은 우리 자신이 문제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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