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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기도(고후 1:8-11)

바울 사도는 과거에 자신을 고통 가운데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회상하면서, 바로 그 하나님이 자신을 다시 건져주실 것이고, 미래에도 건져주실 것이라고 소망한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기도하면 결국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망은 정당한 것일까? 과거에 건져주신 하나님이 미래에도 반드시 건져주실 것인가?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편지를 쓴 후 약 10년 뒤에 순교를 당하게 된다. 그러면 순교를 당하기 10년 전에 썼던 바울 사도의 이 표현을 허망된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는가? 

우리는 기도란 응답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응답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알라딘의 마술램프에 나오는 거인처럼 우리의 종이 아니라, 주권을 가지시고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도는 응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치 우리 부모와 같기 때문이다. 자녀가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줄 부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때때로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요청을 거부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때가 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고, 불의한 재판관처럼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이 세상의 아버지들처럼 하나님에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것이며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기도한대로 행하시지 않으실 때가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순교의 순간에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통 가운데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도 바울을 가장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바울을 위로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고린도 교인들도 실망하고 낙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다. 참된 기도는 감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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